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92
3부 310화
– 1 –
올해도 목련이 피었다. 깔끔하게 비질이 된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목련 나무가 피워올리는 진한 향기가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폐하, 완친왕께서 문안차 친왕비와 함께 입궐하셨습니다.”
목련을 감상하고 있는데 내관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답했다.
“오늘도 왔느냐? 교태전으로 들라 일러라.”
며느리 문안은 당연히 부부가 함께 받는 법이다. 은이가 아침마다 태자비와 함께 인사를 오는 곳도 교태전이다. 후궁 처소에 들었다가도 새벽에 꼬박꼬박 일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피곤할 때는 내관을 통해 내일 문안은 쉬라고 미리 말해둘 때도 있긴 하다만.
준이도 문안을 드린다는 핑계로 오후마다 꼬박꼬박 입궁했다. 분가했으니 굳이 매일 궁에 들어와서 인사할 필요는 없건만, 그래도 들어와서 한참을 교태전에 머물다 가곤 했다.
이해는 갔다. 매일 부모 얼굴을 보면서 형제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왔으니 혼인하라는 명을 받고, 분가까지 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제 고작 만으로 11살, 딱히 혼인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던 준이 입장으로서야 날벼락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 보니 나야 반갑다만, 친왕비가 고생이겠구나. 여봐라, 내관. 교태전으로 가자.”
“예, 폐하.”
“간밤에 평안하셨사옵니까, 아바마마.”
“평안하였다. 너희도 하루를 잘 보냈느냐?”
준이가 작년 9월, 양력으로는 10월에 혼인하여 옛 예왕저로 분가한 지도 이제 딱 반년이 지났다. 그 대저택은 8년 가까이 빈집으로 남아있었지만, 보존상태는 완벽했다. 그동안 내 집사 박종선이 맡아서 잘 관리한 덕분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다.
예왕의 집을 준이에게 물려주는 건 이미 8년 전부터 정해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이루어지고 보니, 옛날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점이 하나 있었다.
“친왕비는 도성 생활이 낯설지 않으냐? 집에 불편한 점은 없고?”
“괜찮습니다. 익숙한 구조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폐하.”
예왕의 집에는 혜비 진씨를 위해서 만든 중국식 생활 공간이 있었다. 아무리 한국인이 될 각오로 왔다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좌식이 주가 되는 한국식 생활 공간이 공주에게 편할 리 없다. 물론 개조하면 그만이나, 예왕의 집은 일부러 개조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다만 아예 수선을 안 한 건 아니다. 혜비 진씨는 집안을 명나라 스타일로 꾸며놨던지라, 공주의 취향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혼수로 가져온 가구와 소품들을 장식해서 자기 마음에 들도록 적당히 장식했다고 했다.
“그래도 바다를 건너 이국에 오지 않았느냐. 지내기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여라. 내 성의껏 돌봐줄 터이니.”
“너무 잘해주셔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상희가 걱정해주자 친왕비 김씨가 생긋 웃었다. ‘애신각라’라는 본래 성씨는 여기서 쓰기 너무 길다 보니, 옛 전례에 따라서 김씨 성을 쓴다. 장조 시절에 다이샨과 홍타이지 형제가 조선에 와서 김씨 성을 사용하던 전례 말이다.
성만 우리 식으로 바꾼 게 아니다. 공주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청나라 옷을 입더라도 대문 밖으로 나설 때는 꼬박꼬박 한복을 입었다. 머리도 한국식으로 손질했고, 만주 관습에 따라 길게 기르고 있던 손톱도 짧게 깎았다.
만주 귀족들은 직접 일할 필요가 없는 귀한 신분임을 나타내기 위해 손톱을 길게 기르고 호갑투(護甲套)라고 하는 보호용 고깔을 손가락에 씌운다. 귀금속과 보석을 잔뜩 써서 만든 호갑투는 그 자체가 값비싼 장신구이기도 하다.
처음 도성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공주도 그런 장신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인을 치르자마자 미리 말했던 것처럼 청나라 복색은 모두 벗어버렸다. 환골탈태라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태도 변화였다.
시종과 시녀들은 여전히 청나라 궁중 복식을 입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공주는 꼭 한복을 입고 있으니, 청나라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한층 더 눈에 띄었다. 이게 노리고 한 거라면 정말 손뼉을 칠 수밖에 없다.
공주가 데려온 만주족 시종과 시녀 숫자는 50명이다. 내가 나눠준 내수사 노비와 원래 그 집에 속한 사용인 숫자도 그만큼은 되니, 대략 백 명이 한 집에 모여서 우글거리는 셈이다. 집이 원체 커서 이들이 다 들어가 지낼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친왕비가 힘든 일이 많으리라. 완친왕이 아직 어린 탓에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 하니, 내가 안쓰럽고 미안하구나.”
“아바마마, 저도 사내이옵니다.”
“준아, 바지를 입고 상투만 틀었다고 해서 사내가 되는 것이 아니니라.”
첫날밤에도 색시 손만 잡…아니, 손도 안 잡고 잔 놈이 잔말이 많다. 은이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남녀 간의 정에 눈을 뜬 상태여서 처음부터 할 거 다 했었다. 넉 달 전에는 첫딸도 낳았다. 건강하고 예쁜, 내 첫 손녀다. 첫 손자는 디에고가 이미 낳았다.
다만 디에고의 아들에게는 계승권이 없으니, 은이가 아들을 낳기는 낳아야 한다. 원손을 기대했던 사람들 맨 앞에 있던 모후는 조금 실망한 티를 내긴 했지만, ‘태자가 아직 젊으니 괜찮다’라며 일단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준이 이놈은 제 형보다 2년 일찍 혼인해서 그런지 남녀관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코끼리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개구쟁이일 뿐이다.
게다가 자기가 바라지도 않은 혼인 때문에 집(경복궁)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을 속에 품고 있어서, 은연중에 겉으로까지 드러내곤 했다. 당연히 자기 아내에 대한 감정도 좋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건 공주도 자기 부모가 보내는 바람에 억지로 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 사실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 자기가 대한에 시집오고 싶어서 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준이도 자기 처를 대놓고 미워하지는 않았다. 열한 살치고는 대견하다.
“며느리로서 부모님께 매일 문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비록 자식이 분가하여 동거하지 않는다고 해도, 예의를 차릴 수 있다면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주는 이런 식으로 우리 부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창경궁과 창덕궁에 있는 모후, 태후에게도 매일은 아니라도 며칠에 한 번씩은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예의를 차렸다. 물론 혼자는 안 가고 준이를 앞세워서 간다.
“청나라 황제가 작심하고 가르쳐서 보냈나 봐. 가거든 시댁 식구들하고 친해져서 우리가 동맹을 깨고 후송에 붙지 않게 하라고.”
“그렇겠지. 태자비가 됐으면 별다른 노력 같은 거 안 해도 우리를 청나라 편에 묶어둘 수 있겠지만, 친왕비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준이 부부에게 동궁전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가라고 해서 내보낸 뒤, 향원정에서 상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얌전한 큰애하고는 성격이 달라서 충돌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큰애한테 기어오르는 모습 같은 건 안 보여서 다행이야. 자기 배경이 훨씬 더 좋은 데다가, 그 자리가 원래 자기 거였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심사가 불편할 텐데 말이지.”
태자비 한씨네 집안도 명망과 재산을 갖춘 꽤 이름 있는 문벌이지만, 청나라 황실에 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청나라가 대한과 비교해서 경제적인 여유가 떨어진다지만, 황실이 가진 부와 권력을 일반 사대부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태자비 자리도 그렇다. 청나라 쪽에서 갑자기 교섭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공주가 태자비가 되었을 공산은 있었다. 준이가 혼인하는 것보다 논란이 좀 더 커지기야 했겠지만, 괜찮게 생각하는 여론도 있기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청나라 태후의 반대 때문에 혼담은 무산됐고,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었던 우리 쪽은 은이를 국내에서 혼인시켰다. 만약 공주 본인이 태자비 자리에 욕심이 있었다면,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 전혀 티를 내지 않아서 알 수는 없다만.
“자기는 그런 제안이 오간 줄도 몰랐다고 했잖아. 몰랐다니까 몰랐나보다 해야지.”
적어도 청나라 황실에서는 현재 상태로 만족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작년에 공주와 함께 한양에 다녀간 복전이 전한 이야기만 해도 그랬다.
– 2 –
정예 기병들이 들판을 질주했다. 화살이 날자 짐승이 피를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손님을 맞이하는 행사로는 역시 사냥만큼 무난한 게 없다.
“화북에서는 훨씬 넓은 평야가 있으니 여기와는 사냥 규모가 다르겠지요. 대한은 평야가 좁고 골이 깊다 보니, 화북에서처럼 크게 사냥을 벌일 수는 없소.”
본국이 좁다 보니 바깥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북쪽, 남쪽, 동쪽 순으로 넓은 땅을 얻게 된 배경이 그거다. 내 옆에서 말을 몰던 복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나라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중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수하지는 못했습니다. 조가의 그 도적놈들 때문에 말입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일반 신하를 보내지 않고 복전이 직접 찾아온 거였다. 전선에서 대공을 세운 명장이면서 황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전부 갖춘 사람이 나와 직접 후송과의 전쟁에 관해 의논하려고 말이다.
“청에서는 장차 후송을 치게 될 때 수군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현재 청이 후송을 도모하지 못하는 데는 수군이 없다는 게 크게 작용한다. 회수를 건너는 거야 이제껏 해왔듯이 뗏목이나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 수전에 약한 거야 적이 예상하지 못한 지점을 도하함으로써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복전이 말하는 바는 바다를 통해 남진하여 장강에 진입할 수 있는 수군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지. 그동안 여러 번 논의하였으니, 그대들이 내린 결론을 각자 말해 보라.”
수군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자는 게 파사합의 생각인지, 박화탁의 생각인지는 복전도 밝히지 않았다. 어느 쪽이건 우리로서는 상관없기는 하다만.
“사돈도 맺은 처지에 딱 잘라 거절하면 두 나라 사이에 의가 상할 것입니다.”
예부대신 윤시현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중원의 싸움에 끼어들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했다.
“지금 후송은 우리와 함께 마다구에 맞서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우군을 배신하여 등에 칼을 꽂음은 옳지 않으니, 청제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심이 옳습니다.”
“저들에게 판옥전선을 주시는 정도는 괜찮을 것입니다.”
좌승상 성시균이 나섰다. 외교적인 사안이다 보니, ‘무기’를 넘기는 일인데도 군무를 맡은 신하들보다 외교를 담당하는 이들이 더 목소리를 냈다.
“현재 전국에 있는 판옥전선은 48척입니다. 계속 줄여나가는 중이라 조만간 통영에 있는 12척밖에 남지 않을 예정입니다.”
내가 유럽에 있을 때 들은 바로는 판옥선이 80척쯤 있다고 했었다. 유사시에 증기선보다 빨리 출격할 수 있는 즉응전력이라고 해서 보존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툭하면 터진 기근과 4년째로 접어든 전쟁 탓으로 판옥선 전력은 꼼짝없이 퇴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쓸 일도 없는 데다가 인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전선을, 옛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들여가며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신함 건조가 중단되고, 인원은 다른 배로 돌려졌다. 그리고 내구연한이 다 돼가는 배들부터 민간에 불하했다. 한 번에 몽땅 털어버리지 않은 건 그 자리를 메울 증기선들이 완성되어 배치되는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1:1로 교체하지는 않는다.
통영에 12척을 남기는 건, 그게 이순신과 이순신이 거둔 여러 대첩을 기리는 재연행사용 함정이기 때문이다. 판옥선 12척에 대장선으로 쓸 대전선 1척, 돌격선인 거북선 1척까지 총 14척을 경인왜란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해서 잘 보존해두었다.
이 함대로 인해서 장차 대한 해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함대’가 존재하게 될 거다. HMS빅토리? USS컨스티투션? 이쪽 세상에서 그 배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만, 있더라도 다 꺼지라 이거야! 우리는 1600년대부터 내려간다. 100년은 더 먹는다.
아무튼, 이 12척을 제외한 나머지 판옥선들은 다 폐기 대상인 건 사실이다. 성시균은 이 배들을 청나라 쪽에 넘겨주자는 거였다. 왠지 현대 한국 해군이 퇴역하는 군함들을 군함 살 돈 없는 필리핀이나 페루, 카자흐스탄 같은 데 푼돈 받고 양도하던 생각이 나는구나.
“우리 땅에 노역하러 온 청나라 역군들에게 배 젓는 법을 가르치고, 귀국하는 길에 직접 노를 저어 가져가게 하면 우리가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후송 측에서 이를 알고 항의한다면 우리는 그저 낡은 배를 상선으로 쓰게 줬을 뿐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대신 청나라 조정은 그 역군들에게 마땅히 좋은 대우를 해주어야 하리라. 최소한 청나라 녹영병이 받는 정도의 보수를 주고, 그 가족들의 처우도 올려주어야 노를 젓게 된 한인들이 배반하지 않고 충실히 일할 것이다.
“공부, 우리 땅에 노역하러 온 청인의 수가 지금 얼마나 되는가?”
“3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격군으로 훈련할 숫자가 부족하지는 않겠구나.”
흉년이 들 때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노역장에 우리 백성들이 주로 들어온다. 옛날 무종 때 그랬듯이, ‘공짜 밥은 없다’라는 원칙 때문이다. 흉년이 들어 구휼에 나서도 최소한 도로에 나가서 돌이라도 깔아야지, 그냥 공으로 곡식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병자라면 다르지만.
하지만 작년에는 모처럼 풍년이 들었고, 당연히 노역장에 나올 사람 숫자도 줄었다. 고로 청나라에서 한족 노동자를 좀 더 들여올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그 노임도 치러야 하니, 판옥전선을 싸게 넘기고 역군 일부를 격군으로 돌려 배 젓는 법을 가르친 뒤 청국에 보내소서. 그러면서 수군을 이끌 장수를 골라 우리 땅에 보내 전법을 배우게 하라 하시면 될 듯합니다.”
수군에는 아직 강무관과 같은 교육기관이 따로 없다. 강무관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무관 중 수군으로 갈 이들은 전선에 타고 실습하면서 실무를 배운다. 영국 해군으로 따지면 midshipman, 그러니까 견습사관인 셈이다. 우리 수군에서는 그냥 ‘생도’라고 부른다.
“배를 타고 제물포에 들어오는 청인은 매달 천 명이 넘습니다. 그중에 무관 몇 명이 섞여 오간다 한들 후송이 어찌 알겠습니까?”
“좌승상의 말이 옳은 듯하다. 예부에서는 그리 써서 청에 보내고, 회답이 오면 보고하도록 하라.”
사실 청나라 쪽에서 은근히 원하는 건 증기선일 거다. 이번 계획을 박화탁이 주도했다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좀 망설여진단 말이다.
“혹시 대놓고 달라고 한다면, 미숙한 이가 만지거든 쉬이 폭발하니 아니 된다고 하소서.”
“알겠다.”
판옥선이라고 해도 정크선보다는 전투에 쓰기 낫다. 물론 청나라가 자체적으로 판옥선을 건조해서 의미 있는 숫자의 함대를 건설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후송이 그동안 건설한 함대와 포대라면 청나라 판옥선 함대가 장강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정도는 쉬울 거다.
다음 차례로는 대동양을 건너 도착한 장계 두 통이 자기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각 미주원정군과 하와이 구호대가 보낸 장계들이다. 자, 과연 어떤 소식들이 적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