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09
3부 3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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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만에 만난 사람이다. 전에 만났을 때는 30대의 젊은 백수였던 사람이, 어느새 나이는 50대에 영국 해군을 이끄는 중진이 되었다.
내가 잉글랜드에 머무른 때는 1687년 8월부터 1689년 3월까지였다. 그때 오포드 백작은 아직 작위가 없이 미스터 러셀이었는데, 국왕(찰스 2세)과 왕세제(제임스 2세)를 암살하려 했다는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가문 전체가 몇 년째 관직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특별히 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피프스한테 해군에 관한 과외를 받으러 다닐 때 간혹 마주치면서 얼굴을 익혔고, 어쩌다 시간이 맞을 때면 잡담도 나누곤 했다. 무도회 같은 데서도 만났지만 그렇게 깊게 사귀진 않았다.
그러던 양반이 윌리엄 3세를 잉글랜드로 불러들인 반정공신 중 하나가 되었다. 출셋길을 달려 올라가 백작이 되고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 이렇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백작이 되었다는 소식은 잉글랜드를 떠난 뒤에 들었소.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쁘구려.”
“임금 폐하께서도 건강하신 듯하여 기쁩니다.”
오포드 백작은 윌리엄 3세가 직접 썼다는 친서를 정중하게 내 앞에 내밀었다. 도승지가 받아다 넘겨준 친서를 펼쳐서 직접 읽어보니, 전혀 싸울 이유가 없는 두 나라가 엉뚱하게도 싸움을 시작한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어서 평화를 회복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유럽에서 그대와 만나 담화를 나누며 군주의 진정한 의무에 관해서 논하던 젊은 날이 그립소. 이제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지니, 벗을 생각하며 앞날을 걱정할 뿐이오. 다투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우리 두 나라가 분쟁을 시작했으니, 실로 슬프다 하겠소….』
“잉글랜드, 아니 대 브리튼 국왕께서 이토록 호의를 보여주셨는데 어찌 우리라고 하여 그 성의에 보답하지 않겠소. 우리도 귀국 및 네덜란드와의 전쟁은 애초에 원하지 않았으니, 이 싸움을 기꺼이 끝내자고 찾아온 그대가 참으로 반갑소.”
겉으로는 웃으며 답했지만, 영국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식으로 합쳤다니 이제 내 머릿속에서는 영국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 측에서 순수한 선의로 화평을 제의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왜냐고? 그야 간단하지 않은가.
국가 간의 관계에 선의 따위가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다. 지금 영국은 우리랑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평화를 유지할 이유는 많다. 그럼 무의미한 충돌 따위는 얼른 집어치우는 게 맞다. 그리고 우리도 이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말이다.
“레이디 올렝카께서도 건강하신지요? 1688년에 무도회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으니 상당히 변하셨을 것 같기는 합니다.”
“무탈하오. 화의를 맺고 나면 성대한 연회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 직접 만나보고 인사 나누시오.”
국왕 특사가 왔으니 오늘 바로 환영 연회를 베푸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화로울 때의 예의다. 지금처럼 명목상으로나마 영국과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대접은 지양함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기껏 먼 길을 온 사절단에게 술 한 잔 안 주겠다는 게 아니다. 스페인 사절단도 내가 아니라 성시균에게 받기는 했어도 남평관 안에서 거나하게 대접을 받았다. 그게 전부 객을 맞이하는 주인으로서의 내 관대함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영국인들에게도 주연을 베풀어주기는 할 거다. 다만 그 연회 자리에 올렝카가 나서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거지. ‘적국’의 사신을 위로하는 연회야 내 아량을 보여주는 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자리에 내 후궁인 올렝카를 내보낸다면 중추원이 발칵 뒤집히리라.
“유럽에서야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대한에서는 법도가 그렇소. 양해하기 바라오.”
“집마다 그 집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쪽에서 마땅히 조선의 예절을 존중해야지요.”
영국인이 가가례(家家禮)를 언급하다니,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관용구는 아직 안 나온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영국에 있을 때도 못 들어보긴 했다.
“그대들이 마다구만 풀어놓지 않았어도 조야의 반응이 훨씬 나았겠지만, 이미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동대문 쪽에 그대를 위한 숙소를 마련해두었으니 오늘은 푹 쉬면서 쌓인 여독을 풀도록 하시오. 내일 사람을 보내 앞으로의 일정을 통보하겠소.”
본래대로라면 이들도 남평관에 머무르는 게 상례다. 하지만 지금 남평관에는 우르수아를 비롯한 스페인 사절단이 머물고 있으니 함께 지내게 할 수가 없다.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며 단독강화를 맺으러 온 처지에 같이 지내다니 될 말인가.
그래서 이들에게는 다른 숙소를 배정했다. 알렉세이가 돌아간 뒤로 비어있는 북평관에서 지내게 하면 적당하겠구나 싶었다. 영국하고 러시아가 지금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니, 숙소 정도야 빌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표트르는 북평관을 실질적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만들 계획이긴 했다. 하지만 스웨덴과의 전쟁 때문에 여념이 없어서 그런지, 아직 상주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평관은 지금 머무는 이 없이 비어있다.
예수회에 스페인인들이 많이 있으니 우르수아 일행을 마포 대성당으로 보내고 영국인들을 서평관에 묵게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기껏 들어간 숙소에서 겨우 1주일 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될 스페인인들을 생각하니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단념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오포드 백작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확실히 잉글랜드 측과는 따질 문제가 별로 없어서 회담이 빨리 끝날 테니, 이쪽과 먼저 강화를 맺고 그걸 무기로 해서 우르수아 쪽을 압박하는 편이 좋겠다.
– 13 –
임금은 오포드 백작과의 교섭도 성시균, 윤시현 두 사람에게 맡겼다. 공연히 다른 사람을 또 뽑아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대신에 기왕 맡은 사람이 양쪽 다 맡아 확실하게 끝내라는 지시였다.
그로 인해 4일에 한 번씩 진행될 예정이던 스페인 측과의 협상 일정은 8일에 한 번으로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잉글국 ? 나라 이름을 ‘그레이트 브리튼’으로 바꾸었다고 하나, 대한 조정에서는 그동안 사용하던 ‘잉글국’이라는 공식 명칭을 아직 바꾸지 않았다 ? 대표단과의 회견 역시 8일에 한 번으로 정해졌다.
이쪽에서는 확실히 양측이 크게 부딪힐 쟁점 사안이 거의 없었다. 스페인 측과 논의했을 때랑은 달랐다. 스페인 측과는 영토 할양이나 배상금 지급 같은 복잡한 문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야 했지만, 영국 쪽은 그런 문제가 없었다.
“배상금 같은 것은 서로 한 푼도 치르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그편이 일을 깔끔하게 끝낼 방법이라고 봅니다.”
첫 회견에서 오포드 백작이 꺼낸 첫마디였다. 성시균도 잠시 생각하더니 동의했다.
“좋습니다.”
승패가 확실하게 갈렸다면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적당히 타협해서 끝을 내기로 했다면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우리 두 나라는 서로를 적으로 여겨 싸우기 시작한 게 아니고, 스페인과의 관계 때문에 서로가 원하지 않던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딱히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전쟁이 아니었는데 책임을 따져 묻는다면 훗날의 의를 상하는 결과를 빚을 뿐이겠지요.”
양측이 입은 손해를 따져봐도 별 의미가 없다. 전투에서 사상자를 더 많이 낸 쪽은 대한 수군이다. 하지만 영국 측에선 배를 한 척 잃었다. 게다가 기후가 좋지 않은 동남아시아에 장기간 머무르느라 잃은 병력도 많다. 영토는 어느 쪽도 뺏기지 않았다.
해적으로 인해 입은 피해도 마찬가지다. 잉내 연합군 측이 마다구를 푸는 바람에 대한이 막대한 손실을 보았지만, 잉내 양국 역시 대한 편에 선 정가군과 왕가군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다. 이것 역시 서로 상쇄하고 넘기기로 했다.
“해적 문제는 우리가 잘못한 바가 큽니다. 본관이 여기 오기 전에 먼저 건너온 제독들이 부족한 전력을 어떻게든 보강해 보고자 수를 쓴다는 게 하필이면 그런 짓을 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정식으로 면허증을 받고 시작한 사략선이라고 해도 욕심을 억제하지 못한 끝에 해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숱하다. 그런데 이미 해적으로 활동한 지 오래된 자들을 끌어들여 싸움에 내보냈으니 제대로 통제에 따라 움직일 리가 없다.
오포드 백작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상을 기안한 페어본 제독을 매우 좋지 않게 보았다. 그러던 참에 페어본 제독이 또 실수를 저질렀다. 성 자크만 해전에서 기함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다가 자기 전대를 전멸시킬 뻔했다.
이제 페어본 제독은 완전히 백작의 눈 밖에 났다.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 일단 당장은 놓아두지만, 본국에 귀환한 뒤에는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 뒷수습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요? 배상금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하셨으니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보상하시겠다는 것 같은데, 그 구체적인 방안을 알고 싶습니다.”
성시균의 질문을 받은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마땅히 수습해야지요. 우리 함대와 조선 함대가 함께 힘을 합쳐 동인도 해역 전역에서 해적을 토벌하면 어떻겠습니까. 무겁고 느린 전열함으로 해적을 쫓아 잡기는 어려우나, 양측 프리깃함들만 동원해도 해적 소탕에는 충분할 겁니다.”
마다가스카르 해적들은 만만한 먹잇감이 눈에 띄기만 하면 습격하는 정신 나간 놈들이다. 원래 고용주였던 잉내 측까지 가리지 않는다. 마땅히 모조리 쓸어버려야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그놈들의 소굴까지 공동으로 토벌하는 겁니다. 그러면 유럽에서 오는 항로가 훨씬 안전해질 테고, 공동의 적을 상대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싸운 양국 간의 우애도 한층 깊어질 겁니다.”
힘을 합쳐 없앨 대상은 마다구만이 아니다. 왕가군을 비롯한 중국계 해적들도 대대적으로 토벌하여 그 수를 대폭 줄인다. 이참에 영국과 대한이 손을 잡고 동남아시아 일대 해상로를 대대적으로 청소하자는 제안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당장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만, 폐하께 아뢰어 검토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폐하께서도 그 제안은 좋게 받아들이실 겁니다.”
해적을 토벌하자는 데는 성시균도 이의가 없었다. 이번에 마다구를 상대하면서 잠시 같은 편에 섰지만, 왕가군은 결국 해적이다. 쓸어 없앨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없애야 하는 놈들이니, 이번 전쟁의 여세를 몰아 토벌하는 것도 좋다.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있소이다. 골가타에 있는 우리 상관은 어찌 되었습니까? 지난 4년 동안 소식이 완전히 끊어진 탓에 우리 상하가 모두 궁금하게 여깁니다.”
이홍권이 바타비아를 봉쇄하면서 잉내 측과 대립을 시작한 이래로 골가타 상관과 연락이 두절됐다. 전쟁 전반기에는 잉내 해군, 후반기에는 마다구의 위협 때문에 어떤 배도 믈라카 해협을 통과해 벵골로 가지 못했다.
그동안 바타비아에 몇 차례 종전을 교섭하는 밀사를 보냈을 때도 벵골 소식을 알아보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접촉한 잉내인들은 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골가타 상관은 이미 잉내군에게 파괴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보내둔 군사가 몇천 명이라 하나, 적지 한가운데 고립되어 오래 버틸 수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벵골에 있는 조선 상관은 무사합니다. 본국과 연락이 끊어진 뒤로는 세력을 보존하는 데 집중해서 4년 동안 요새 바깥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알몬데 제독과 페어본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아시아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퐁디셰리 공략이었다. 인도에서 유일한 프랑스 측의 거점을 제거함으로써 프랑스 사략함대가 인도양 방면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퐁디셰리가 함락된 사실은 곧바로 벵골까지 전해졌고, 본국이 프랑스에 우호적임을 알고 있던 골가타 상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언제 잉내 연합함대가 벵골로 쳐들어올지 몰랐던 탓이다. 곧바로 외부에 나간 모든 병력을 불러들이고 방어태세를 다졌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 상관을 공격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 상대는 프랑스지 조선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벵골 상관에 있는 조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뭐, 우리가 가서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일이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오포드 백작이 골가타 상관의 사정을 알고 있는 건 거기서 나온 배를 포획하고 선원들을 포로로 잡았기 때문이다. 개전 전에 벵골에 가 있던 외수사 상선 2척이 귀환을 시도하다가 몽땅 믈라카에서 붙잡혔고, 지금도 바타비아에 억류되어 있다.
차라리 좀 더 일찍 귀환했으면 바타비아에서 싸우다가 나포된 전선들과 함께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은 너무 시간을 끌었다. 망설이다가 잉내 함대가 본격적으로 적대행위를 시작한 뒤에 뒤늦게 돌아오려다 잡혔으니 그대로 억류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면 석방하겠습니다. 나포 포상금을 지급하느라 화물은 이미 처분했으니 배와 사람만 돌려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만.”
“사람과 배라도 무사히 돌려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스페인 측을 만날 때와는 회견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강화를 맺어 전쟁을 끝내자고 모인 자리가 아니라 우호국 대사들이 사교모임이라도 갖는 것 같은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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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루이 14세 때문에 안 치러도 될 전쟁을 치른 셈이다. 프랑스와 얽히지만 않았다면, 이번 전쟁은 계미년(1703) 안에 끝나고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필리핀을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었다. 지금쯤은 패잔병 소탕도 마치고 스페인이 강화에 응하든 말든 하고 있었겠지.
물론 그렇게 전쟁을 끝냈으면 칼리포르니아 반도는 얻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4년에 걸쳐 막대한 전비를 쓰지 않아도 됐다. 그 시간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미 모두 지나간 일이니 인제 와서 아쉬워한들 소용이 없다. 우리가 불랑국에서 이득을 얻은 바도 많으니, 공연히 원망을 품을 필요는 없으리라.”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성시균의 보고를 들은 비변사 관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기왕 일어난 일이라면 우리 편에 조금이라도 더 득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옛일을 생각하면서 남의 탓만 해 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공동으로 해적을 토벌하자는 제안은 괜찮구나. 받아들일 만하겠다.”
마다구 토벌은 내가 이를 갈면서 결심했던 거기도 하다. 쏘아죽이고 남은 놈들은 모조리 산 채로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만들고 말겠다.
“그런데 폐하, 왕가군 우두머리는 비록 해적이나 형식상으로는 서나라 관군이 아닙니까? 그자들은 서나라 해군 대도독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니, 저들을 토벌하려다가 자칫 서나라와 적대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상관없다. 서나라 조정이 정가군과 왕가군을 수군으로 내세웠던 건 순전히 내륙 출신인 자신들이 바다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놈들을 아껴서가 아니다. 그놈들을 다소 죽여 숫자를 줄인다 해도 서나라 조정은 눈도 깜짝하지 않으리라.”
토벌 과정에서 내세울 수 있는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서나라에서 이참에 제대로 된 정규 수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조홀국이 우리 세력권임을 인정받고 그 강역에 우리가 거점을 세우는 데 관한 양해를 얻는 것이다. 저들에게 우리가 위협이 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여 동의를 얻도록 하라.”
“예, 폐하. 추후 회견에서 그 점을 꼭 강조하겠습니다.”
우리가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아서 아시아 해로를 틀어쥐겠다는 욕심을 드러내면 영국과 네덜란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점거를 인정할 수 없다고 나오거나 당장 때려 부수겠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걸 막을 수가 없다.
스페인을 상대로는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떤 거점도 허락할 수 없다’라고 주장해놓고 영란 측을 상대로는 ‘너희를 위협할 수 있는 우리 거점을 인정해라’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건 너무 낯뜨거운 일이다.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