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1
1부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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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훈구와 사림들이 연계를 갖고 나를 공격하는 낌새인 게 너무 빤하게 보인다. 훈구 대신들이 한 차례씩 국정 운영에서 나한테 엿인지 아닌지 애매한 충격을 먹이고 나니, 이번엔 사간원이 아주 작정하고 상소를 올렸다. 차분히 읽어 보니 오랜만에 참 긴 상소였다.
《신들은 간관으로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이 너무도 부끄럽기에 전하를 위해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그래, 제발 좀 제대로 수행해 주라. ‘제대로’ 말이다. 간관의 존재 자체는 나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는데, 실무는 알지도 못하면서 도덕 타령으로 잔소리만 해대는 케이스가 너무 많은 건 좀 문제가 있잖아?
《1. 경연을 성실히 하소서. 제왕의 도는 학문을 통해 넓어지고 밝아집니다. 성종대왕께서는 하루 세 번 경연에 납시고 밤까지도 하셨으며, 중대한 국사가 없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전하께서도 친히 보신 바입니다.
전하께서는 천품이 고명하시며 춘추(春秋)가 젊으셔서 학문에 정신을 쓰실 때인데도 경연을 자주 폐하시며, 무부들과만 친하고 현명한 사대부들과는 날로 소원해지니, 전하께서 누구와 더불어 바른 의논을 하시겠습니까.》
미안한데, 나한테는 흉년 대책을 세우거나 과연 여진족들이 노략질을 그만두게 하려면 어떤 수단으로 위협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경연보다 더 급하다. 옛 사례를 근거로 현재를 고찰하는 수업은 그래도 괜찮은데, 성리학 이론수업은 정말 참고 듣지를 못하겠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그 무관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공맹을 논할 수 있는 거다. 고맙게 여겨라.
《2. 간언을 받아들이소서. 간언을 받아들인 제왕은 흥하였고 거절하면 망했습니다. 성종대왕께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 지나친 의논일지라도 너그럽게 용납하여 일찍이 한 사람도 일을 말하는 신하를 죄주지 않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덕은 근고(近古)에 없던 바로서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이제 8년이지만, 아직 한 사람의 간신(諫臣)도 상을 주지 않으셨으며, 간언을 물리침이 잇따릅니다. 받아들인다 해도 어렵게 여기고 넓은 도량을 보이지 않으시니, 간언 좇기를 물 흐르듯 하였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옛 말에 이르기를 ‘좋은 약이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직한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습니다.》
과장법 쩌네! 내가 간언을 안 받아들여? 여진족 토벌 이야기 나오자마자 하지 말라고 발목 붙드는 바람에 못 가다가 즉위 4년차에야 전쟁하러 갔었잖아! 그거 말고도 많이 들어줬어!
그리고 간관들한테 상을 한 번도 준 적이 없다고? 가끔이긴 해도 대간들 중에서 상식적인 소리 하는 이한테 저화 10석, 20석씩 뿌려준 거 한두 번 아니거든? 이 망할 놈의 자식들은 꼭 벼슬이나 품계를 높여주고 논밭이나 노비를 받아야 상을 받은 걸로 치나?
《3. 하늘의 경계를 조심하소서. 천변(天變)은 하늘이 주는 경고로 반드시 연유가 있습니다. 옛 현군들은 재이(災異)를 두려워했고, 성종대왕께서도 조금만 재변(災變)을 만나도 경계하고 두려워하셨습니다. 직언을 구하고 수라(水剌)의 음식 가짓수를 줄여 마땅히 재를 피하셨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근래 흉년이 잇따르고 천문과 날씨의 변괴가 겹쳐 일어나니, 이 어찌 까닭이 없다 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마땅히 두려워하시고 자신을 반성하며 직언을 구하셔야 합니다. 이를 책으로만 보고 실천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전하께서 하늘에 순응하는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자연현상을 보고 하늘을 두려워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흙비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 탓이고, 천둥번개는 전기적인 현상이다. 지진은 땅 속에서 맨틀이 움직이는 탓인데 무슨 하늘이 내리는 징조로 보란 말인가? 그저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을 뿐이다.
《4. 군사를 일으키는 일을 줄이소서. 한무제는 과도한 원정을 벌여 조정과 백성을 곤궁하게 하였으며 수양제는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였나이다. 성종대왕께서도 끝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도적을 치지 않고 덕으로 다스리셨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전하께서 태평한 시기를 타시고 부성(富盛)한 뒤를 이어받아, 재정이 한도가 있음을 생각지 않으며 총포를 만들고 성보를 수축하며 증기기관을 만든다 하십니다. 군비가 점차 많아지고 징수(徵收)는 보충되지 못하면, 검약하고 백성을 아끼는 도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하께서 현명히 판단하소서.》
그래서 성종 때 토벌을 안 해서 내 즉위 초기에 여진족들이 아주 지랄을 했지, 지랄을.
지금 조선의 재정 형편으로는 내가 쓰는 군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고 본다. 총 만드는데 쓰는 돈은 거의 명나라에 조총 바치고 사여 받은 은으로 충당하고, 고래 잡아 번 돈도 보태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고래기름이 등화용으로 뜻밖에 히트를 쳐서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지금은 아직 소규모니까 이걸로 되는 거고, 본격적으로 군비증강에 들어가려면 조세를 돌려서 써야만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단계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도 그 정도는 부담할 수 있단 말이다. 그리고 두만강 방면과 대마도, 일본은 그 돈을 뽑아낼 수 있는 터전이고,
《5. 관작(官爵)을 소중히 여기소서. 관작이란 본래 임금이 덕 있는 이를 우대하고 공로 있는 이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일찍이 보필하는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에는 금은(金銀)의 생산이 없으니, 사대부에게 주어 대우할 것은 다만 관작뿐이다.’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관작을 삼가니 사람들이 작록이 귀함을 알았습니다. 성종대왕께서도 이 법을 따라 행하여 반 등급이라도 가벼이 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모두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근년 이래로 관작이 남발되어 심지어는 서얼, 일반 군사에 이르기까지 그저 군공을 세웠다 해서 공신이 되고 벼슬을 받으니, 이 어찌 옳다 하겠습니까? 신들은 실로 훗날 비난을 받게 될까 두렵습니다. 전하께서는 옛 글과 같이 덕을 힘쓰고 공을 힘쓰는 이들에게 상을 주소서.》
이것도 요점은 후반부에 있네. 무관이나 서얼, 평민들이 무공으로 자기들이랑 같은 격으로 올라와 깝치는 모습이 보기 싫다 이거잖아. 근데 벌써 몇 번째 하는 소린지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너희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할 수 있다니까?
그나마 대간들이 이 상소문을 쓰면서 최소한의 양심은 지킨 모양이다. 적어도 내가 정사를 돌보는 데 있어서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만 부린다고 적어놓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환관과 후궁들에게 둘러싸여 놀기만 한다고 쓰지도 않고.
당연하지만 이런 사안들은 진짜 연산군에게는 분명히 있었던 문제들이다. 어쩌면 내가 받은 상소문은 연산군이 받은 상소문에서 저 파트만 빠지고 작성된 건지도 모르지.
까놓고 말해서 진짜 연산군에 비하면 난 지금 워커홀릭 수준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런 욕설을 들었으면, 아마 빡쳐서 다 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전하, 신들이 올리는 뜻을 부디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신들은 오직 전하께서 성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되시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글을 올렸을 뿐이옵니다.”
대사간 안윤손. 이름 있는 언관이었고, 청백리 소리를 들으며 지방관으로 선정도 베풀었다. 다만 무관직인 전라우수사만은 잘 끝내지 못했다. 3년 전에 진도군수가 멋대로 섬에 사냥하러 갔다가 왜적에게 기습당했을 때, 그 책임을 지고 파직당한 전라우수사가 바로 안윤손이다.
이거야 뭐 애초에 장수감으로는 맞지 않았던 사람이 당한 불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안윤손 역시 작년에 경상우병사였던 안침처럼, 전문 무관이 아니면서도 문무관 교대 보임이라는 관행 탓에 어떻게 보면 억지로 수사 자리에 앉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안씨로군.
장래에는 이런 인사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행정관인 관찰사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병사나 수사 같은 군 지휘관 자리에는 진짜 무관 출신이 앉아야 하지 않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문관을 앉히더라도 생짜 초보는 안 된다. 실력으로 무재를 입증한 이를 앉혀야지.
어쨌든 상소문을 손에 쥐었으니 답은 해야 한다. 잠시 생각을 해 본 결과, 구두로 간단히 답하기로 했다.
“선왕이신 성종께서는 실로 고금의 모든 임금에 미치지 못한 부분을 찾지 못할 만큼 뛰어난 분이시니 진실로 드문 성군이시로다. 하지만 과인은 실로 덕이 부족하여 도저히 그에 미치지 못하니, 설사 힘써 노력한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전하, 그리 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안윤손이 뭔가 말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손을 쳐들어 그만 말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주춤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과인도 과인 나름대로 임금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허나 산을 오를 때 오르는 길이 어찌 하나밖에 없겠느냐? 과인이 선택한 길에도 그 길을 오르는 이유가 있음을 알지어다.”
길게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간단히 답하고 일어섰다. 진리를 얻는 길이 어찌 복수로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여기는 저 유교 탈레반들에게는 씨알머리도 안 먹힐 말인 거 알지만, 그렇다고 예, 예, 하면서 다 받아들이고 끝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7 –
“너는 과인이 옛 법도에 맞지 않게 이것저것 바꾸는 일들을 어찌 여기느냐?”
“소인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면 총을 겨눌 뿐이옵니다.”
“그럼 묻는 말을 바꿔 보마. 지금 도성 백성들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 듯하냐?”
“…속 시원하게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겁니다.”
다지의 솔직한 말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사실 흉년 때문에 지금 전국에는 금주령이 내려져 있다. 그 덕분에 나와 다지도 모주 한 잔 곁들이지 못하고 국밥을 먹는 중이었다.
“핫핫핫, 나도 반주 한 잔이 아쉽긴 하다. 너도 술이 그리우냐?”
다지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사내종처럼 꾸미고 있는 맨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저희 동리에서는 늘 마십니다. 궁궐 숙위 때문에 한참 마시지 못해서 좀 그립습니다.”
백정들이 사는 동리는 치안이 안 먹히기로 유명하다. 아마 금주령이건 금육령이건 신경도 안 쓰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으면서 즐겁게들 지내리라. 백정들이 마음대로 소와 말을 잡아먹거나 파는 문제는 역대 임금들이 깊이 고심하면서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고민거리였다.
“금주령을 내리기 전에는 하번한 겸사복들이 종종 술잔치를 벌인 것으로 안다만.”
겸사복이건 내금위건, 당연히 궐내에서 근무중일 때는 술을 마실 수 없다. 근무교대 후에 술청으로들 몰려가서 마시는 것이다. 금군들이 받는 두둑한 월봉이 종로 일대 술집들 절반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 임용되었을 때 같이 가자기에 멋모르고 한번 따라가 보았더니, 논다니까지 불러다가 끼고 노는데 꼬라지가 정말 꼴불견이었습니다. 술김인지 소인의 몸에 손대는 놈까지 있었고, 그 뒤로는 다른 자들이 술을 마시러 가도 절대 같이 가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직장 내 성추행을 저지르다니! 그 놈 누군지 당장 잘라버려야겠다. 명색이 조선 최정예 기병에, 임금을 경호하는 금군이라는 놈들이 동료에게 손을 대다니?
“언제 있었던 일이냐? 그 짓을 한 놈은 누구고?”
내가 버럭거리며 화를 내는데도 다지는 뜻밖에 태연했다.
“박가라고, 작년에 이미 그만뒀습니다. 그날 소인이 팔을 꺾어주었는데, 그게 좀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났다. 작년 초겨울에, 말에서 떨어져 팔이 꺾어졌다면서 스스로 사직한 겸사복이 한 명 있었다. 칠칠치 못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잊어버렸는데, 그게 다지에게 손을 댔다가 응징을 당하고 인생 퇴갤한 거였나.
“아주 잘 해주었다. 그런 놈은 단단히 혼이 나야 하는 법이다. 손을 대는 건 제 계집에게나 해야지, 어디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댄단 말이냐?”
하필 이때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 아니 목륜마(木輪馬)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먼지를 피웠지만 화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기가 찼다. 다지는 내 경호원이다. 내 신변을 지키는 소중한 이에게 함부로 손을 대다니?
“뭐 다 지난 일입니다. 그보다 지금 당장 술 한 잔이 있으면 저뿐만 아니라 저기 앉아서 밥 먹는 백성들도 다들 기운이 날 겁니다.”
술이 얼마나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물건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술중에서도 막걸리 같은 건 밥 대신 한 사발 들이켜서 끼니 대용으로 삼을 수도 있고 말이다.
사실 금주법이라는 것도 참 쓸모없는 수작인 게, 아무리 나라에서 술을 먹지 말라고 해도 여유가 있는 자들은 술을 찾아서 마시게 되어 있다. 그나마 흉년에만 금지한 조선과는 달리 술을 아예 금지하려고 시도한 나라도 많았지만,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10여 년 동안 유지된 금주법은 국가와 법률이 가진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트렸고 동네 깡패 수준이던 마피아들을 전국구에 걸친 범죄조직으로 바꿔놓았다. 이슬람교는 교리로 음주를 금지시켰지만, 15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수많은 무슬림들이 몰래몰래 술을 마신다.
“네 말대로, 흉년이라고 술 제조를 금지해 보아야 마시는 자들은 다 구해서 마신다. 그렇게 놓아두느니 차라리 술을 마실 놈은 마시게 놓아두고 술 빚는 항아리 하나당 세금이나 호되게 때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다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긍정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시중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나리.”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심부름하는 중노미 녀석이 잽싸게 달려왔다. 저화를 꺼내주자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하며 냉큼 받아 넣었다. 이젠 적어도 도성 안에서는 저화가 별 장애 없이 통용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이게 아직도 쌀 본위라는 거다. 나도 얼른 귀금속 준비금을 넉넉히 마련해서 은본위제나 금본위제를 하고 싶다. 언제쯤이면 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