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28
3부 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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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은 지금도 일본에서 크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비록 운이 없어 좌절하기는 하였으나, 일본의 힘을 대륙으로 뻗치려다 더 대단한 영웅을 만나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전국시대의 끝을 장식한 세 사람으로서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세 사람이 꼽히는 건 이쪽 세계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세 사람에 관한 평가는 내가 있던 원래 세계와는 조금 다르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리고 그 힘을 모아서 일본 66주 천하를 벗어나 대륙으로 손을 뻗치려고 했다. 하지만 성시균이 방금 언급했듯이 ‘더 대단한 영웅’과 만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비운의 영웅이다.
히데요시는 가장 평가가 좋지 않다. 가장 급이 낮은 병졸인 아시가루에서부터 천하인으로 올라간 그 입지전적인 출세기는 찬탄의 대상이나, 딱 한 계단 더 올라가서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저지른 마지막 무리수가 그를 주군을 팔아먹은 배신자로 만들었다.
이것뿐이면 차라리 낫다. 권력을 쥔 뒤에 조선과 화해할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다가 조선군의 역공을 받아 일본 서부를 폐허로 만들었고, 심지어 천황에게서 조적(朝敵)으로 선포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세 사람 중 가장 평이 좋지 않다.
이에야스는 정확히 반대 이유로 호평을 받는다. 노부나가에게 맞서 무리한 조선 원정을 반대했으며, 히데요시를 잡아 복수를 마친 조선군이 지체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일본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그리고 뛰어난 정치력으로 일본을 재건했다.
물론 이에야스의 평가가 높은 건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세운 창건자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웬만큼 간이 붓지 않고서야 현 막부의 시조를 대놓고 악평할 리가 없지 않은가.
노부나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막부는 이에야스의 삼남 히데타다와 노부나가의 일곱째 딸 아이히메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물려받고 있다. 쇼군가에는 노부나가의 피도 흐르고 있으니, 당연히 계속 평이 좋을 수밖에 없다.
“대군이 신장의 유골을 반환받는다면, 이국에서 떠도는 조상의 혼을 모셔온 것이 되니 그 위업이 일본 전역에 떨치게 됩니다. 이는 과거 장조께서 대명으로부터 종계변무를 이루어낸 것만큼이나 대단한 위업이 될 것입니다.”
“그건 확실히 그럴 것이다.”
지난 백여 년, 에도 막부에는 쇼군 여섯 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노부나가의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청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요시무네가 처음이다.
앞서 여섯 쇼군은 모두 이에야스로부터 히데타다를 거쳐 내려오는 직계였다. 하지만 이번 쇼군인 요시무네는 히데타다의 후손이긴 하되 방계다. 그러니만큼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할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것도 참 유교적인 방법이구먼….’
심지어 노부나가의 유골만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강무관 수장고에 보관된 왜장 수급은 숫자가 대략 2백 개 가까운데, 그걸 다 돌려달라는 거다. 그 해골바가지들을 각각의 가문에 나눠주면 요시노부는 그 가문들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게 된다.
“정말로 모든 유골을 다 돌려달라 하였는가?”
“아닙니다, 폐하. 세 개는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요시무네가 돌려받지 않겠다고 한 수급 세 개는 히데요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그리고 원균 세 명의 머리였다. 그 셋은 진실로 극악한 죄인이라 받아들일 수 없으니 우리 쪽에서 알아서 처분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어차피 그 세 놈은 일본 땅에서 시신을 인수할 후손들도 없지 않은가.”
히데요시는 친자가 없고, 양자들도 거의 전사했다. 사실상 마지막 양자였던 히데토시는 전쟁에서는 살아남았어도 승려가 되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다카카게 역시 후손이 없다. 원균의 후손은 있지만…글쎄, 원준에게 원균의 유골을 보내면 대동양에 던져버릴 것 같은데.
“좋다. 이미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치른 지 백여 년이 넘게 지났고, 그동안 일본인들이 화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도 알고 있으니 그 청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보내주도록 하자. 혹시 그대들 중 왜장들의 수급을 일본에 보내는 데 반대하는 이가 있는가?”
대전에 모인 조정 중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 강무관 수장고에 쌓인 해골 무더기는 누구나 끔찍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다만 ‘장조께서 직접 수집하신’ 물건을 버리자고 먼저 나서서 말할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왜장들의 유골을 돌려보냄으로써 우리는 자비를 보일 수 있고, 일인들은 효를 실천할 수 있으니 참으로 서로에게 좋은 방책이라 하겠습니다. 받아들이소서.”
좌승상 김회정이 허리를 조아리며 진언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라 수긍하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비류선 한 척 정도면 모두 실어낼 수 있을 것이니, 병부에서는 채비를 하도록 하라. 헌데 이부대신,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대군이 그저 유골의 반환을 청하고 싶었다면 짐에게 국서를 보내 요청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직접 만나겠다고 고집을 피웠는가?”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될 무슨 비밀스러운 목적도 아니다. 조상의 유골을 돌려받고자 하는 건 아주 효성스러운 일이고, 그런 노력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을 받아야 한다. 조선도 종계변무를 아주 공개적으로 대놓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요시무네는 자기가 그런 협상을 시도한다는 사실 자체를 숨겼다. 대놓고 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밝히겠다며 그동안 계속 비밀로 해온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부대신은 내 큰처남 민지훈이다. 대신 자리에 충분히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 그동안 부친 때문에 승진을 못 한 게 안타까워서 귀국하자마자 이부대신 벼슬을 내렸다.
“이런 중대한 부탁을 직접 만나서 드리지 않고 글월 한 장으로 청하는 게 지극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합니다. 게다가 문서로 청하면 우리가 ‘전리품이니 돌려주지 않겠다’라고 반환을 거부할 위험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합니다.”
“면전에서 간곡하게 부탁하면 차마 거절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이건가.”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상대가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쩝, 내가 착한 사람인 줄은 요시무네도 아나 보군.
“서면으로 반환을 청했다가 거부당하고, 그 내용이 시중에 새어나가면 막부가 큰 망신을 당할 것도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폐하를 흠모하는 마음이 깊었기에, 한 번쯤 폐하를 꼭 뵙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편지로 문제가 해결돼 버리면 나를 만날 핑계가 없어져 버리니 곤란하다고 했다고 한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요시무네가 나를 동경하기라도 한다는 건가…낯이 조금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난처한 감정을 헛기침 몇 번으로 날려 버린 뒤 다음 질문을 했다.
“그동안 거부당할까 봐 말을 못 하였다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그대에게 입을 열었나?”
“지난 5년 동안 우리 대한과 일본이 한층 더 긴밀한 사이가 되었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신뢰가 쌓였기에 이제는 미리 말씀드려도 폐하께서 유골을 돌려주기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만나주기도 하시리라는 기대가 들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결국, 전쟁 때 보내준 군량미가 노부나가의 유골 값이었던 셈이군.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그게 더 마음은 놓인다. 거래를 통해 맺어지는 타산적인 관계 쪽이 순전하게 호의를 통해 이어진 관계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다. 호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까.
“폐하. 유골을 보내주는 것은 좋사오나 장조께서 거두신 전리품을 거저 건네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마땅히 그 가치에 따라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누가 이런 소리를 하는지 내가 고개를 돌려 확인하기도 전에 노호성이 떨어졌다. 우승상 최석정이었다.
“그대는 제정신이오? 타인의 유골을 그 후손에게 돌려주면서 값을 받으려고 하다니! 그건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묘구들이나 하는 짓이오!”
묘구(墓寇)는 무덤을 파헤치고 그 속에 있는 유골을 훔쳐다가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며 인질극을 벌이는 도적을 가리킨다. 성리학 사회인 조선에서 남의 조상 유골을 볼모로 잡는 묘구는 최고 악질 범죄자 중 하나다.
“거저 돌려주거나, 돌려주지 않거나 둘 중 하나요. 비록 내 조상이 아니라고 하나, 조상의 유골을 되찾고자 하는 이에게 재물을 내지 않으면 유골을 내주지 않겠다고 하자니! 그대는 이 대한이라는 나라를 묘구들의 나라로 만들 셈이오!”
삽시간에 대전 내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래, 역시 유교적인 도덕률에 따르면 이런 유골 같은 걸 돌려주면서 대가를 요구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저쪽에서 감사의 표시로 ‘알아서 바치는’ 선물이 있다면야 그건 사양할 것 없이 받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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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정의 호통 덕분에 유골을 돌려주면서 대가를 요구하자는 말은 쑥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폐하, 저들의 요구 조건을 알았으니 굳이 폐하께서 일부러 대군을 친견하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골을 보내 달라면 유골을 배에 실어 보내면 그만인 것이지, 폐하께서 대군을 직접 만나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조정 일각에서는 아예 회견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3백여 년에 걸친 대한(조선)의 역사에서 임금이 다른 나라 군주와 만난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려 때도 마찬가지라, 외국 군주를 만난 임금은 원나라에 항복한 원종과 충자 돌림 왕들뿐이었다.
중국에서도 나라가 망해 포로로 끌려갈 때가 아니고는 군주 간에 얼굴을 볼 일이 없기는 하지만, 그것도 요즘 이야기다. 옛날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왕들이 이웃 나라 군주를 만나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때 중국은 지금 유럽이나 다를 게 없었으니까.
“장조께서는 건주 태조를 몇 번이나 만나지 않으셨는가.”
“그때 건주 태조는 대명을 위해 번병(藩兵)을 지휘하는 일개 장수였지 아직 자기 나라를 이끄는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나하고 만나던 시절에 누르하치의 정식 지위는 건주위사였지 건주국왕이 아니긴 했다.
“허나 대군이 그토록 짐을 만나보고 싶어 한다고 하니, 한 번쯤은 용안을 볼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기특하지 않은가.”
이 문제를 두고 한참 동안 격론을 벌였다. 예가 아니라 하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각승상 성시균과 좌승상 김회정을 비롯한 중신 상당수는 내 뜻에 찬동했다.
성시균은 유럽 국왕들이 이웃한 다른 군주들을 만나기를 꺼리지 않듯이, 우리도 인접국인 일본의 군주인 쇼군을 만나는 일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열변에다 한 번쯤은 만나보는 게 좋겠다는 내 뜻도 있고 해서 결국 반대하던 중신들도 동의했다.
다만 ‘절대로 우리 쪽에서 체통이 상하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조건이 덧붙었다. 어쨌든 방향은 잡은 셈이기에 한시름 돌린 뒤 민지훈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런데 이부, 대군은 대체 어디서 짐을 만나고 싶다는 것인가? 설마 자기가 바다를 건너 우리 도성으로 찾아오겠다는 건 아니겠지?”
“예. 그건 아닙니다, 폐하.”
쇼군이 한양에 온다면 그건 갈데없는 입조(入朝)다. 절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므로 내가 에도에 갈 수도 없다. 상대국의 수도에 가다니, 정복자가 되어서 군대를 끌고 가는 게 아닌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회견할 장소는 폐하께서 현명하게 결정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서로 거북하지 않으면서 편히 왕래할 수 있는 장소를 골라주시리라 믿는다면서 말이옵니다.”
“그러냐.”
내게 결정을 맡기겠다고…. 21세기라면, 서로 상대국을 방문하고 싶지 않은데 꼭 만나서 회견은 해야겠다면 적당한 중립국에 갈 수 있다. 이를테면 아모국이나 유구를 회담 장소로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것도 어렵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유구도 엄연히 타국인데 어찌 폐하께서 그 먼 곳에 납시겠습니까? 귀하신 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타국을 함부로 방문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당한 말이다. 짐도 그럴 생각은 없다.”
혹시 새 유구국왕이 미쳐서 나와 요시무네를 인질로 잡고서 뭔가 내놓으라고 나서기라도 하면 그거 정말 볼만하겠지. 그런 일을 막으려고 대규모 호위대를 편성해서 거느리고 간다? 그게 무슨 한일회담이냐? 유구 원정이지.
아모국은 더더욱 후보가 안 된다. 유구만큼 먼데다가 계절을 잘못 맞추면 춥기까지 하고, 일본 본토에서 너무 가깝다. 아모국에 관한 얘기는 지금 급한 게 아니니까 일단 미뤄두고.
하여튼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오가는 21세기라면 모를까, 지금 시대에는 ‘중립국’은 한일 정상회담을 열기에 적당하지 않다.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는 지역 중 한 곳이 좋다.
“짐이 생각하기에는, 역시 북구주에서 회견하는 편이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북구주는 명목상으로는 일본령이고 실질적으로는 우리 땅이다. 그러니 양쪽 군주가 모두 적당한 명분을 가지고 방문할 수 있다. 나로서는 내 땅을 살펴보러 가는 셈이고, 요시무네 쪽에서는 내게 맡겨놓은 자기 백성들이 잘 지내는지 보러 오는 셈이다.
“하지만 대군을 북구주로 부르면, 대군이 다녀갔다는 핑계로 저들이 북구주를 반환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들이 먼저 을미조약을 깨는 것이 된다. 그보다는 대군이 방문한 김에 북구주는 우리가 관리할 영토임을 명확히 하고 가도록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것도 협상하기 나름이다. 내가 직접 북구주로 건너가기 전에 필요한 사항은 막부 측과 협의하여 사전에 조율을 마쳐 두는 것, 그게 예부에서 할 일이다.
“그대들이 대군이 북구주에 발을 들이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북구주 인근 바다 위에서 배를 탄 채 만날 수도 있다. 그리하면 한결 부담이 적을 게 아니냐?”
선상 회담도 괜찮을 듯하다. 양쪽 어승선이 나란히 정박하고, 보트를 이용해 상대편 배를 방문해서 한 차례씩 교대로 회의를 열어도 되지 않겠는가.
“고장난명이라 하였으니, 이 문제는 우리가 혼자 정할 게 아니다. 대군 측에 사자를 보내 논의케 하는 편이 좋겠다. 예부에서 적당한 사람을 뽑아 보내도록 하라. 만나자고 한 것은 저쪽이지 우리가 아니니,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논의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만 한 가지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저 ‘요시무네를 만나려고’ 내가 직접 구주까지 간다는 건 노력의 낭비라는 거다.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이 몸이 움직이려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계획을 짜야 하지 않겠는가.
“대군을 만나는 것과 별개로, 짐이 삼남을 직접 순행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과거에 무종께서도 남방으로 내려가시며 도로를 확인하시고 우리 땅과 백성을 직접 살피지 않으셨느냐.”
장조 때도 저 북쪽까지 직접 올라가고 남쪽 끝 동래까지도 갔었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그때는 백성들 삶을 살피러 나간 게 아니고 전쟁 때문에 군대 끌고 갔었으니까.
“그대들도 짐이 순전히 대군을 만나기 위해서 구주까지 가는 건 체면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하지만 짐이 남순(南巡)하는 길에 구주를 들르고,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을 살피는 도중에 회견을 청하는 대군을 맞아 회동한다면 훨씬 모양새가 좋을 것이다.”
“폐하께서 하시는 말씀이 실로 옳사옵니다.”
내각승상 성시균이 적극적으로 찬의를 표했다. 남순 여정의 일부로 북구주를 지나간다면, 북구주 지방이 실질적인 우리 영토임을 천하에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는 내 뜻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혹시 정상회담이 무산된다고 해도 남순은 다녀오는 편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