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30
3부 348화
– 1 –
제주도의 하늘은 역시 맑고 푸르다. 바다처럼 파란 하늘, 하늘처럼 파란 바다, 푸른 땅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이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중전과 함께 즐겼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중궁전께서는 태자마마를 도와 나라의 중심을 잡는 막중한 책무가 있으시니 어찌 도성을 비우시겠습니까. 신도 안타깝사오나, 귀한 자리에 오르신 이상 그 자리에서 맡으신 책무를 다하셔야 하니 마음껏 천하를 주유하시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제주도 풍경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 상대는 이번 남순에서 나를 수행하는 최고위 현직 관원이면서 내 셋째 처남인 예부 협판 민지원이다. 민지원은 겨울 동안 일본에 가서 머무르면서 일본 측과 이번 회견에 관한 논의를 마치고 돌아온 상태다.
이번 남순에 따라나선 일행은 매우 단출하다. 승상 성시균을 비롯해서 중신들 대부분을 도성에 두고 왔다. 병조판서를 제외한 의정부를 전부 도성에 남겨두고 국정을 맡겼던 옛날 무종 시절 남순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번에는 병부대신 양대현도 두고 왔다.
그때와 또 하나 다른 점은 대리청정을 맡을 태자를 남겨두고 왔다는 게 있겠다. 장조 때 성이가 처음 대리청정을 맡았을 때 나이가 열여섯 내외였으니, 올해 만으로 열여덟이 되는 은이가 대리청정을 못 맡을 이유는 전혀 없다.
“불안하지는 않아? 그때 세자한테 처음 대리청정 맡겼을 때 신하들 몇몇이 반란 일으켜서 왕위 차지하라고 세자 부추겼었잖아.”
“사간원의 난? 그거 정말 희극이었지. 그런데 이젠 그런 일을 일으킬 사림들도 없고, 혹시 자기 욕심 때문에 반정을 부추기는 놈이 있더라도 우리 은이가 그런 헛소리에 넘어갈 앤가. 그리고 너도 있고 태후마마도 계시니까 괜찮아.”
무자호란 당시 내가 친정에 나서 자리를 비웠을 때 간관들이 세자를 부추겼던 사간원의 난. 대한에서 붙인 공식 명칭은 ‘무자지역(戊子之逆)’이다. 젊은 관원 수십 명이 성이 앞에 엎드려 찬탈을 권한, 역모라고 부르기에도 가당찮은 규모였지만 일단 역모는 역모였다.
그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시도했는지는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수수께끼지만, 덕분에 그 뒤로 더 편안하게 조정을 끌고 나갈 수 있었다. 그 머저리 놈들이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대신 두고두고 날 괴롭히는 쪽을 택했으면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다만 그때 왕실에 대비가 없었고, 어른은 중전뿐이었다는 점이 그놈들이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기는 했겠지. 물론 중전 김씨는 성이가 그놈들의 망언에 살짝이라도 솔깃해하는 기색을 보였으면 대전을 뒤집어엎었겠지만, 그 멍청이들은 그걸 몰랐다.
지금 상희도 그런 면에서는 절대 김씨에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황실에는 황태후도 있지 않은가. 내 형수인 황태후 양씨는 조용하고 정 많은 성격이라서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지만, 모후께서 돌아가신 뒤에 황실의 중심은 확실히 잡고 있다.
든든한 아들과 아내, 형수를 믿고 있으니까 나도 안심하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반년쯤 내가 도성을 비운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날 걱정은 없다.
“폐하, 제주부사가 객사에 저녁 수라를 준비해 놓았다 합니다. 이제 산책을 그만 멈추시고 객사로 드시지요.”
조금 떨어져 있던 선전관 김국표가 와서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주부에 속한 아전 하나가 잔뜩 긴장해서 그 뒤에 서 있었다.
제주도는 원래 행정구역상 제주목(濟州牧)이었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어서 인구도 적고, 그다지 풍족하지도 않은 변방의 섬이라 당연히 그 격도 면적에 비해 낮았다.
하지만 장조 시절 조선(대한)이 남방으로 확장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주도는 유구로, 주산으로, 대남도로, 남만으로 내려가는 배들이 거치는 중계점이 되었다. 개항장이 아닌지라 외국 상선은 기항할 수 없었지만, 우리 배들만으로도 분위기는 바뀌었다.
게다가 남방으로 가는 항로를 지키기 위해 제주수영이 별도로 설치, 강화되었다. 상선이 기항하며 교역 중심지가 되고 대규모 수군이 주둔하자 인구가 증가했고 당연히 관아의 격도 올랐다. 제주목이 대도호부로 승격한 건 연이가 다스리던 시기다.
“그래, 가자. 때가 되었으면 밥을 먹어야지.”
김국표가 끌고 온 말에 오르자 경호를 겸해 주변을 돌아다니던 겸사복과 백위영 기병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앞다투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이놈들, 은근히 알력다툼이 있다. 과연 누가 대한 최정예 기병인지를 두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다.
다만 이런 갈등은 부대가 다른 데서 오는 소속감 탓이지, 신분이나 혈통으로 인한 적대감 같은 건 의외로 적다. 겸사복은 국초부터 순전히 승마술 하나만 보고 뽑은 부대라 백정이나 재인 같은 하류층에 스페인계, 여진계, 몽골계, 미주계 같은 이민족까지 우글거리는 탓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스페인계에는 장조 때 들어온 무어인 후손들도 포함이다. 백인들과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같은 나라 출신이고 같은 말을 쓴다고 해서 대한에서는 이들도 똑같이 스페인계로 취급했다.
“말 타는 재주는 둘째 치고, 칼싸움으로 붙으면 그대가 최강일 터인데.”
“과찬이시옵니다, 폐하. 신의 칼은 아직 신의 아비가 했던 만큼도 미치지 못하나이다.”
김국표는 별명이 ‘대한제이검(大韓第二劍)’이다. 과거에 ‘대한제일검’이라고 불리던 최강의 검객, 부친 김체건에게 직접 검술을 사사하여 대한에서 검으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다는 명인이다. 하지만 늘 자기는 부친보다 못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가끔 잠행을 나갈 때도 늘 김국표가 동행한다. 가장 친한 사람을 고른다면 보리스겠지만, 보리스도 옛날 임꺽정만큼이나 시중에서 유명인사인 탓으로 데리고 나가면 잠행하는 의미가 없다. 게다가 백위영장, 연대장 나리가 되시면서 나름 바쁘셔서 말이다.
“일본에 가거든 혹시 그대가 나설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공연히 무리하지 말고, 푹 쉬고 기력을 유지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장조 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의 전례가 있다. 그때 노부나가는 자기 부하들과 우리 수행원 사이에 조총 사격과 씨름 같은 무술 시합을 주선했었다. 분명 우리 측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때 조총 사격은 서림이 맡아 압승을 거뒀고 씨름은 임꺽정과 야스케가 한 판씩 이겨서 무승부를 냈다. 지금 나한테 그 두 사람만 한 인재는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 김국표를 필두로 해서 총과 활, 말, 칼에 뛰어난 최정예 무사를 몇 명 데려왔다.
임꺽정이나 서림 같은 S급은 지금 없다. 하지만 A+급은 충분히 되는 이들이니, 일본 측이 시합을 제안한다면 충분히 멋진 광경을 보여주리라.
“지금 생각해 보니, 그대 정도면 양무공과 맞붙더라도 이길 수 있지 않은가?”
“이미 백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과 어찌 솜씨를 비교하겠습니까만, 신의 생각에는 일합을 겨루는 순간 제 칼이 산산조각이 날 듯합니다.”
“그건 그렇겠구나.”
두 사람의 검술을 모두 직접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기교는 확실히 김국표가 뛰어나다. 번쩍이는 검날의 광채로 사방을 덮으며 검로(劒路)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을 보는 기분이다.
이에 반해 임꺽정은 검법 자체는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기본기를 철저하게 익혔다. 오죽하면 임꺽정이 정립한 백정검법이 대한군 살수의 표준 검술이 되어 지금도 교범에 실려 있겠는가. 공식 명칭은 ‘양무공검법’이 되었지만, 일선에서는 여전히 백정검법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피지컬이 뒷받침이 되니 앞을 막아서는 적수가 있을 수가 없었다. 남들은 두 손으로 겨우 사용하는 유럽식 양손검을 한 손에 들고 휘두르던 사람한테 도전하는 행동 자체가 미친 짓이긴 했겠다만.
“폐하, 그래도 일본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설마 폐하를 뵙는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무도한 태도를 보이겠습니까?”
이번 회담에 관한 사전 협상 때문에 몇 달간 에도에 체류했던 민지원은 일본이 노부나가 시절과 확실하게 다른 나라가 되었더라고 했다. 더구나 회견 장소가 저들의 영역인 에도도 아니니, 그런 시합을 마음대로 주최할 수도 없으리라면서 말이다.
“모를 일일세, 협판. 말로는 그저 여흥이라면서 한판 벌이자고 하면 거절하기도 간단하지 않네. 준비해 두어서 나쁠 건 없지.”
혹시 무술 시합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호위가 그만큼 든든해졌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 내가 호위대로 거느린 병력은 금군과 경군에서 선발한 최정예 병사 2천 명뿐이지만,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 외에 동현과 호위함 6척, 호위대를 나를 수송선 6척에 탑승한 승무원 숫자가 1천 5백여 명이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요시무네와 논의할 사안에 관해서 민지원과 이야기를 더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제주부 관아 앞에 도착했다. 제주부사 조용원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맞아 안으로 안내했다.
“폐하,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지독한 촌구석이라 차린 것은 없사오나, 부디 정성이라고 생각하여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조용원은 도저히 긴장이 풀리지 않는지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이해는 간다. 이 남쪽에서 임금을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을 터이니까. 석 달쯤 전에 통보하기는 했지만, 조용원이 여전히 저렇게 바짝 얼어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괜찮다. 백성을 돌보는 임금으로서 어찌 백성들의 피땀으로 차린 음식을 두고 좋다 싫다 불평을 하겠느냐? 짐의 입은 별로 까다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지어다.”
조용원을 다독이며 상이 차려진 객사로 향했다. 어디, 편안히 즐겨 보자.
– 2 –
“저희 미천한 제주 백성들은 폐하의 용안을 뵙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였나이다. 너무도 기쁘고 황공한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말씀을 더 드릴 수가 없사오니, 부디 이 늙은 몸이 바치는 이 술 한 잔을 받으시고 제주도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주시옵소서.”
객사에서 열린 환영 연회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들과 행세깨나 하는 유지 50여 명이 모였다. 제주도는 중앙 관직에 출사할 만한 문벌이 있는 집안이 거의 없어 다들 기껏해야 향반에 불과하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기는 도성 양반들 못지않다.
“이 제주도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임금께서 왕림하시어 용안을 보도록 허락하신 전례가 없었습니다. 저희 십만 제주도 백성들은 폐하께서 왕림하신 일을 자손 대대로 전해 기억하게 할 것이며, 오늘의 영광을 잊지 않고 충성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잇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제주도를 찾아준 첫 임금에게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개중에 몇몇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도 사투리로 발언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래도 알아들을 만한 서울말을 구사했다. 조용원이 그 연유를 간략히 설명했다.
“조보 덕분입니다. 조보를 받아 소리 내어 읽으며 장조께서 정립하신 국문을 익히니, 비록 바다 멀리 있는 땅이라 하나 방언이 아닌 경언(京言)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상 회화는 아직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말이 퍼지면 제주어가 좀 더 일찍 소멸할 수는 있으니, 사전청에 일러 그전에 최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라고 해야겠다.
“배우고 익히려는 마음가짐이 실로 가상하도다.”
원래 역사에서 제주도는 유배지로 유명했었다. 물론 이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서, 제주도에 떨어진 고위인사들 덕분에 교육이나 문화 수준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런 거 없다. 북방에 광활한 유배지가 있는데 왜 제주도에 보내겠는가?
무종 이래, 귀양을 가는 죄인 대부분은 북쪽 만주 땅 어딘가로 간다. 그렇다 보니 제주도 백성들이 귀양을 온 고위인사의 덕을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제주도민들 스스로가 자기들 수준을 올릴 기회를 잡았다. 재력 덕분이다.
‘남방으로 가는 상선들은 대부분 제주도에서 물과 술, 식량을 보충합니다. 남방으로 가는 도중에 들르는 마지막 본국 항구이니 여기서 신선한 음식을 실어 선창을 채우는 것이지요. 제주에 있는 수군 전선들이 수졸들을 먹이느라 사들이는 식량의 값도 막대합니다.’
호부대신 신용헌에게 받은 브리핑 문구가 생각난다. 제주도 지주들이 직접 교역에 나서진 않으나 기항하는 상선에 식량을 팔고 또 군납도 하면서 막대한 돈을 번다던 이야기다. 지금 여기 모인 도민 대표들의 휘황찬란한 의상도 거기에 기반을 둔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귤이나 전복 같은 특산물 거래도 막대한 수익이 된다. 이런 물품은 본래 진상품으로 바치는 양이 훨씬 많았지만, 장조 시절에 공납을 폐지하면서 모든 세금이 저화로 바뀌었다. 덕분에 장조는 제주도 역사에 다시는 없을 성군이 되었다.
관에서 강요한 공납을 피하느라 귤나무에 열탕(熱湯)을 부어 죽일 필요가 없어졌다. 관에 바칠 전복을 따느라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말과 사슴을 비롯한 다른 공납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 백성들은 사방에서 천세를 불렀다.
현물을 직접 진상하는 대신 상인에게 판다. 받은 저화 중 정해진 액수만큼 세금으로 내면 나머지는 모두 섬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일해서 거둔 만큼 벌게 되니 자연히 생산품의 양과 질도 상승했다. 저화 대신 은이 유통된 뒤에도 다를 건 없었다.
이제 제주도에서는 돈만 좀 있으면 쌀밥을 먹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벼농사는 여전히 어렵지만 ? 밭벼 재배가 일부 있어서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 후송에서 들어오는 교역선이 강남산 쌀을 부려 놓기 때문이다. 안남미도 들어오지만, 맛이 없으니 안 먹는다.
이런 부를 바탕으로 해서 향교도 운영하고 서원도 여럿 세웠으며 사학당도 하나 지었다. 시보도 발간한다. 하지만 아직은 제주도 출신으로 번듯한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이 제주도 유지들이 한이 맺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보잘것없는 몸이 존귀하신 폐하를 뵈오니 눈물이 앞을 가려 올리려던 말도 다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저 한 마디만 부탁드리오니, 저희 섬사람들도 육지 백성들과 똑같이만 대해주시옵소서. 폐하의 자식으로서 어버이께 드리는 작은 소망이옵니다.”
“알겠다.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변방에 사는 백성들의 말인들 소홀하게 듣겠느냐. 내 그대들에게 들은 말을 잊지 않고 국사를 돌볼 때 유념하겠노라.”
제주도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너무 오래 반복해서 들으니 견디기 힘들어졌다. 저녁 내내 별 차이도 없는 청원이나 듣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조용원에게 눈짓해서 백성들의 발언을 그만 멈추게 했다. 조용원이 나서서 급히 연회장을 조용하게 만들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짧은 연설을 했다.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지 어언 318년이 되었다. 그동안 제주도는 변란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언제나 충성을 다하였다. 이 황실이 그대들의 충성을 어찌 모르겠느냐? 장조께서 섬이 지는 과도한 공납을 폐지하신 것도 다 그대들을 어여삐 여기셨기 때문이니라.”
연설은 길지 않았다. 한 5분 정도? 황실이 너희를 잊지 않은 만큼 너희도 그 은혜를 알고 충성을 다하라는 상투적인 말로 마무리를 짓고 자리에 앉았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악공들과 무희들을 불러들여 흥을 돋우라는 조용원의 말을 들으며 연회장 구석을 보니, 도화서에서 데려온 화원들이 화가(畵架, 이젤)를 놓고 열심히 스케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