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38
3부 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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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국 문제는 이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다. 일본이 대놓고 조약을 어긴 것도 아닌 이상, 우리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답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놈의 섬은 일본에 너무 가깝다. 당근을 계속 쥐여주어서 우리 편에 붙들어놓는 데도 한계가 있으리라.
요시무네 쪽에서는 아모국에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구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임을 분명히 했다.
“에조치 역시 유구국처럼 일본 66주에 속하지 않는 땅입니다. 유구는 그나마 말과 풍습이 비슷하기라도 하지, 에조는 우리 일본과 말도 풍습도 전혀 다른 이족(夷族)입니다. 조약을 어겨 가면서 탐을 낼 이유가 전혀 없는 땅이지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모국에 욕심이 없다고 확언했다. 이 정도 발언이면 적어도 요시무네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모국을 두고 헛수작을 벌이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바로 그 ‘일본 66주’에 들어가는 다른 영토에 관해서는 공식적으로 포기할 생각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이건 나도 예상하던 바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이곳 기타큐슈(북구주) 3개국은 역대 임금들께서 베푸시는 선정으로 안정과 평화를 누렸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노부나가 공께서 조선 임금께 관리를 부탁하신 바가 있으며, 을미조약에서도 조선 임금께서 다스리시도록 합의가 된 곳이지요.”
지금 우리가 차지한 북구주 3주는 부젠, 치쿠젠, 히젠이다. 하지만 본래 노부나가가 내게 ? 엄밀히는 장조한테 ? 넘겨주겠다고 했던 ‘히데요시의 영지 4개국’은 치쿠젠, 치쿠고, 히젠, 히고 4곳이었다. 이게 협상을 거쳐 히고를 아소 씨에게, 치쿠고를 타치바나에게 주고 대신 부젠을 받는 쪽으로 조정이 이루어진 거다. 덤으로 사나다가 분고를 받았고.
완전히 우리 영토로 넘어온 일기도와 대마도는 일본 66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풍요롭지도 않고 인구도 적은 작은 섬이라 그렇다. 그렇다 보니 아예 우리한테 양도한다고 해도 그다지 문제가 될 구석이 없다.
그러나 본토인 규슈에 있는 북구주 3주를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을 거다. 일본의 ‘천하’에 명백하게 포함되는 땅을 외국에 대놓고 넘길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우리 대한에서도 그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요시무네가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런 짓을 하면 당장 사방에서 역적을 토벌하라면서 반기를 드는 자들이 줄을 잇겠지요. 하지만 임금께서도 아시듯이 그건 형식일 뿐입니다. 실질적인 가치 쪽이 형식보다는 훨씬 쓸모가 있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오.”
요시무네는 북구주 3주의 지위에 관한 처분은 현재 상태대로 유지하자는 내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지금 북구주에 거주하는 주민 중 4할 이상이 한인이고, 나머지 일인 중에 절반 이상도 금교령을 피해 도망간 천주교 신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을미조약에서 규정했듯이, 대한 임금께 북구주 3주를 맡겨 다스리시게 하자는 건 일본과 대한 두 나라가 존속하는 한 이어지는 약속입니다. 우리 막부는 진서장군부가 가지고 있던 권한과 의무를 모두 승계하였으며, 앞으로도 이를 충실하게 지킬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요시무네의 약속을 새로 맺을 조약에 명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셈이지만, 쇼군이라고 해도 영토를 외국에 내줄 권한은 없다. 지금 천황이 막부와 사이가 좋다고는 하지만, 그런 칙령을 내려줄 리는 만무하다.
“일황이 그런 명을 내린다면, 분명 주변에서 ‘폐하께서 제정신이 아니시다’라고 주장하며 폐위하고 새 일황을 옹립하겠지요.”
이종덕이 내 옆에서 슬며시 속삭였다. 나도 동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나지도 않고, 기회를 노리던 반막부파나 존황파가 ‘막부가 조정을 억압하여 천하를 대한에 넘겼다’라면서 반란을 일으킬 명분만 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문제도 별 충돌 없이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리에게는 북구주가 일본 본국과는 동떨어진 북구주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도록 계속 지원함으로써 북구주 주민들이 계속 구주 총관부에 속한 대한의 백성으로 남기를 스스로 원하도록 만드는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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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존하면서 번영하자면 전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교류,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교역을 통해서 서로 이익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양국이 정식으로 개설했던 개항장은 해삼위, 동래, 하카타, 오사카, 센다이 총 5개소였소. 하지만 센다이는 이미 개항장 노릇을 하지 않은지 오래이니, 지금 운영하는 개항장은 실질적으로 4개소요.”
여기서 센다이는 애초에 개항장으로서 큰 의미가 없었다. 센다이를 개항장에 포함했던 건 우리한테 열성적으로 협력했던 다테 마사무네한테 떡 한 조각 던져줄 겸 해서였을 뿐이다. 우리 배들은 굳이 북쪽 항로를 통해 센다이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테도 그 과실을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막부가 다테가 건설한 선단을 뺏어가면서 개항장을 운영할 권리도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의 수군과 더불어 개항장 역시 막부가 독점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달(다테) 가문은 역시 이재에 밝습니다. 선단과 교역권을 잃었다고 해도 다른 수단으로 그 손실을 모조리 벌충했으니 말입니다. 마치 무열공과 같았습니다.’
무열공(武烈公)은 박원종이 받은 시호다. 워낙 공과가 분명한 사람이라, 비록 무묘까지는 가지 못했어도 죽은 뒤에 시호는 받았다. 전임 호부대신 황재선은 다테의 돈 모으는 재주를 이야기하며 다테를 박원종에 비유했다.
‘이달은 연해주에서 벼를 재배하고 담저로 술을 빚으며, 모피와 인삼, 기름과 그릇을 잔뜩 사들여 관선에 실어 일본에 가져다 팔아 크게 돈을 벌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재주입니다.’
원래 역사에서 20세기에나 가능했던 벼농사를 연해주에서 해내다니, 다테 가문의 재물에 대한 집념은 정말 끝이 없는 모양이다. 다테 가문의 재산을 갈취하는 일에 열중하던 막부도 해외자산까지는 손대지 않아서, 이 농장은 지금도 번성하고 있다.
물론 이 농장이라고 하는 게 일본에서 보유하는 영지 같은 땅은 아니다. 우리 조정에서 보기에는 그저 ‘이달(다테)씨 집안이 개간해 경작하는 사전(私田)’일 뿐이다. 당연히 세금도 꼬박꼬박 걷는다. 그래도 수입은 막대하다. 세금을 내고도 10만 석을 번다던가.
이외에 비공식적인 개항장 3개소가 있다. 동해 항로 대신 태평양 항로를 이용하는 미주행 배들이 보급항으로 사용하는 요코하마, 대동양을 건너온 일본 상선이 상품을 싣고 찾아오는 지선성과 덕진성 두 곳이다. 여기에 주산진과 대남도, 필리핀에도 일본 배들이 기항한다.
주산진은 일단은 형식상은 ‘명나라 영토’니까 뺀다고 치더라도 다른 항구는 법적으로 그 지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의 목표 중 하나가 그거고, 요시무네도 개항장을 더 늘리자는 제안에 이의가 없었다.
“이미 실질적으로 개항한 항구 셋을 정식 개항장으로 규정하고, 히로시마와 소창, 장기를 추가로 개항하자고 합의했지요. 대군께서는 혹시 추가하고 싶은 고을이 있으시오?”
사실 개항장을 어디에, 몇 개나 만들면 좋을까 하는 문제는 사전에 민지원과 신정이 이미 협의를 마친 상태다. 나와 요시무네가 할 일은 그 목록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추가 의견을 밝히는 정도다.
장기는 내가 오는 도중에 들렀던 장기도호부, 즉 나가사키를 말한다. 소창은 소창만호부(小倉萬戶府), 즉 고쿠라를 말한다. 간몬해협 바로 남쪽에 있는 도시다.
“저는 제물포에 저희 상선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한에서도 오사카나 요코하마까지 배를 보내는데, 호혜적인 입장에서 저희도 제물포는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15년 동안 전쟁도 왜구도 없었으니, 그 정도는 허락하실 때도 되었지요.”
을미조약에서 우리가 동래 이외에 우리 영역에서 개항장을 하나도 열지 않았던 건 당연히 일본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였다. 그 이유야 굳이 여기서 언급할 것도 없겠고.
하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신뢰를 생각하면 제물포를 개항해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유구나 청나라, 유럽 선박들은 이미 제물포에 들어오고 있고, 일본 배들도 ‘외교 임무 차’ 방문했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드나들었다. 고로 정식으로 개항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
“더 많은 항구에 더 많은 상선이 왕래할수록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우호도 한층 더 깊어질 겁니다. 오가는 재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누구도 그 이득을 버리려 하지 않겠지요.”
요시무네는 생각 외로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속셈이야 어떻든, 겉으로라도 ‘이익의 공유를 통한 평화공존’을 주창한다는 게 평범한 지금 시대 사람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런 요시무네의 태도는 내 지론과도 일치한다. 애초에 계약이란 이익을 서로 교환하면서 단단히 맺어지는 거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호의만으로는 안정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대군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소. 우리가 서로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교환할수록 두 나라 모두 풍요로워지지 않겠소. 그리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렀다. 경인왜란 발발 직전, 조선과 일본이 얼마나 교역을 늘리려고 기를 썼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인왜란 당시의 전례를 상고해보면…우리는 귀국에서 구리와 황을 한 근이라도 더 많이 수입하려고 열을 올렸소. 귀국은 면포와 우피, 철괴를 조금이라도 더 들여가려고 뻔질나게 배를 띄웠고. 우리 두 나라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도 상대의 물산이 필요했다는 말이오.”
지금이야 그때 같지는 않다. 무역로가 다변화된 데다 구리광산이 풍부한 필리핀을 획득한 만큼 일본산 황과 구리가 옛날처럼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다. 물론 구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귀한 물품이니 거부할 건 없지만 말이다.
일본 역시 대외교역이 원래보다 더 활성화되었으니 굳이 우리가 아니어도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왕 수입할 거라면 코앞에 있는 우리한테 수입하는 편이 가장 좋지 않은가.
다만 그 외에 남쪽으로 내려가는 항구들은 추가로 개항하지 않았다. 주산진이야 사실상의 자유무역항이다 보니 놓아두고, 대남도와 필리핀에 있는 항구들에는 비상시에 기항은 할 수 있되 교역은 할 수 없는 것으로 했다.
“이 정도면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사전회담에서 대부분 합의가 된 부분인지라 논의가 길 필요는 없었다. 서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나머지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협의는 금방 끝났다. 이번 회의에서 실질적으로는 2번째, 형식적으로는 3번째로 중요한 안건이 마무리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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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의에서 다룬 주제 중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안건은 당연히 북구주 3주의 지위에 관한 협의다. 유구가 칭제한 이야기 같은 건 실질 순위나 형식 순위나 모두 4순위에 불과했다. 아모국도 공동 4순위쯤 되겠다.
이제 실질 3순위, 형식 1순위에 해당하는 안건이 남았다. 내가 요시무네의 설복에 넘어가 이번 회담을 열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라고 해도 좋을 문제, 경인왜란과 을미동정에서 잡혀 처형됐거나 전사한 노부나가를 비롯한 왜장들의 유골과 유품 반환이다.
“대군께서 들으신 우리 함대 숫자는 13척이었을 거요. 그런데 여기에 정박한 배는 13척이 아니라 14척이지요. 이상하지 않으셨소?”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합니다. 1척은 다른 13척에 비해 유독 작은 것도 좀 어색하긴 하군요.”
동현은 1천 2백 톤, 호위함인 1등 중선과 2등 중선은 각기 1천 톤?8백 톤이다. 호위대를 싣고 온 수송선도 5백 톤은 된다. 그런데 하카타에서 추가한 이 14번째 배는 3백 톤 정도 나가는 플류트라 유독 작은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배에만 하얀 백기를 게양해두었다.
“이번에 반환할 일본 장수들의 유골과 유품은 모두 저 운구선(運柩船)에 실려 있소이다. 저 배와 싣고 있는 짐을 통째로 대군께 넘겨드릴 터이니, 굳이 옮겨 싣는 수고를 하실 필요 없이 그대로 몰고 가시면 되오.”
“이렇게 감사할 데가!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요시무네는 얼굴에 떠오르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하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때는 그렇게 진지하고 냉철하더니, 자기가 요청한 유골을 내가 가져왔다니까 보이는 반응은 꼭 깜짝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소년 같았다.
요시무네는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라도 숙일 기세였다. 양옆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기겁하면서 소리쳐 제지할 정도였다.
“우에사마!”
‘우에사마(上?)’는 쇼군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일본에서 ‘폐하’라는 호칭은 교토에 머무는 천황에게만 쓴다. ‘전하’도 친왕급 황족과 천황이 걸맞는 관위를 내린 고관들만 쓸 수 있다. 무가정권인 막부와 그 수장인 쇼군은 조정과 아예 다른 용어를 쓰는 거다.
“그대들은 이 좋은 날에 갑자기 왜 소리를 치는가? 노부나가 공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내가 너무도 기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대들은 그게 그렇게 불만인가?”
요시무네가 나한테 절을 올렸다면 정치적으로 엄청난 사태가 몰아쳤으리라. 대한 임금이 쇼군보다 지위가 높다고 만천하에 선포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역정을 내는 걸 보니, 요시무네한테 내게 절할 생각 같은 건 없었던 모양이다.
도리어 주군을 제지하려던 신하들이 실컷 꾸중을 들었다. 요시무네는 빠른 히로시마 방언 ? 우리가 데려온 통변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 으로 한참 동안 잔소리를 퍼붓고 헛기침을 잠시 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에도 방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조상의 유골이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너무도 기쁩니다. 마침 논의할 바도 다 끝났고, 저녁 연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여유도 좀 있으니 그 배에 올라 직접 예를 올리고 싶습니다.”
“대군께서는 참으로 효심이 깊으시구려. 당장 준비하라 명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반환할 유골과 유품을 실은 운구선은 회견이 끝난 뒤 정식으로 양도할 때까지는 우리가 관리한다. 고로 요시무네가 그 배에 오르고 싶다면 내게 허락을 구하는 게 맞다.
물론 이런 일을 놓고 요시무네에게 갑질할 생각은 없다. 선뜻 허락한 뒤 선전관을 보내서 거룻배를 두 척 준비하라고 명했다. 우리 두 사람이 각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올라타려면 두 척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요시무네가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자꾸 커진다. 우리한테 있는 노부나가 유골은 가짜니까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서린 미안한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머지 유골 188개는 다 확실한 진짜다. 189개 중에서 가짜가 하나 섞인 정도는 용납될 수 있겠지. 애초에 내가 요시무네에게 사기를 치려고 가짜를 만들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