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39
3부 3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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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네가 데려온 승려들이 아침 일찍부터 낭랑한 목소리로 불경을 외었다. 노부나가를 비롯해서 이번 회담 결과 일본으로 귀환하게 된 여러 장수들의 넋을 환영하며 이들이 모두 극락으로 가기를 비는 약식 법회였다.
요시무네를 비롯한 일본 측 인사들이 줄줄이 불단 앞에 가서 절을 올렸다. 이번에 조상의 유골을 돌려받게 된 이들이다. 어젯밤 요시무네가 마련한 연회에서 이번 송환으로 돌아오는 장수들의 명단을 받고 저들이 흥분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오오, 츠네오키 공께서 돌아오셨다는 말입니까!”
“카츠타카 공께서도 돌아오시다니!”
“야스히데 공께서도!”
여기서 ‘츠네오키’는 논산에서 전사한 노부나가의 젖형제 이케다 츠네오키다. ‘카츠타카’는 단밀현에서 권율과 싸우다가 황진의 칼에 전사한 토다 카츠타카, ‘야스히데’는 히데요시의 배신 때문에 부산포에 고립되어 전사한 노부나가의 사위 가모 야스히데를 말한다.
일본인들이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송환 대상 수급은 노부나가의 것 하나뿐이었다. 다른 왜장들은 죽었다는 것은 알아도 수급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 쪽이 보관하고 있는 수급 목록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수급들은 한꺼번에 공개한 것도 아니었다. 전쟁 기간 내내 모아들인 수급 중에 극히 일부만 개선식에 내보냈고, 공개한 것들도 개선식과 조리돌림까지 마친 뒤에는 강무관 수장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꺼내지 않았다.
무슨 기밀자료 취급한 건 아니다. 전쟁 중에 발간한 조보에서는 전투가 벌어졌을 때마다 ‘오늘은 왜장 아무개의 목을 베었으며…’하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고 경인란록에도 일자별로 수급과 갑주를 거둔 적장의 이름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중에 어떤 것들을 여태껏 전리품으로 보관하고 있는지 정리한 목록은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이번 회담을 준비하다 그 사실을 알고, 왜 그런 걸 숨겼느냐고 병부대신인 양대현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강무관에 있는 머리가 누구누구 것인지 알게 된다면 일인들이 아무개의 목을 돌려달라고 귀찮게 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누구의 수급이 있는지 공개하지 않은 것이냐?’
‘그런 지침이 정식으로 있은 것은 아니나, 백여 년 동안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는 아마 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연회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요시무네에게 건넨 수급 목록을 요시무네의 가신 한 사람이 받아서 큰 소리로 읽자 연회 자리는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자기 조상 이름이 나올 때마다 엎드려 통곡하는가 하면 연회장 밖에 있는 후손을 불러오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임금 폐하.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인들이 몇십 명이나 내게 몰려와 절을 하니 연회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될 지경이었다. 요시무네가 호통을 쳐서 몽땅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나서야 겨우 질서가 잡혔다.
“모두 예의를 지키지 못할까! 에도로 돌아가면 봉환 의식을 정식으로 치를 거고, 그 뒤에 각 가문에다 유골과 유품을 모두 돌려줄 것이다. 그때까지 다들 기다려라!”
쇼군이 일갈하자 감사를 표하던 이들이 황급히 일어나서 잘못을 빌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야 연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요시무네가 대접한 만찬도 우리 못지않았다. 똑같이 일곱 차례 새 밥상이 나왔으며, 매번 상마다 생선, 고기, 채소 요리에 국 하나, 밥 한 그릇이 꼭 첨가되었다. 고기가 있기는 한데 주가 되지는 않고, 짐승고기만 있는 게 아니라 새고기 종류도 여럿이었다.
요시무네가 준비한 연회 음식은 나와는 다르게 일단 대부분이 일본식이었다. 우리는 장조 때부터 외국 음식이 궁궐 주방으로 들어온 데 반해 일본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 탓이 큰 듯하다. 도쿠가와 가문이 본래 좀 질박하게 사는 편이기도 했고.
이에미츠 시절까지만 해도 막부에서 부리는 ‘사치’는 질보다는 양이었다. 막부가 화려함을 찾기 시작한 건 일본 내에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쇼군의 절대적 우위를 확립한 4대 쇼군 이에츠나 시절부터다. 히로시마 출신인 요시무네는 그 흐름을 한층 더 가속했다.
“달구먼.”
역시 일식이라 그런지 상당히 양념이 달았다. 간도 약한 편이어서 우리한테는 대체로 좀 싱거웠지만, 요시무네는 손님 각자에게 곱게 빻은 소금과 간장이 든 병을 얹은 양념 소반을 하나씩 주어 필요한 사람은 간을 더 할 수 있도록 했다. 괜찮은 배려였다.
생선은 굽거나 조린 것 외에 와사비를 곁들인 회와 초밥 ? 현대식인 쥐는 초밥이 아니라 밥과 생선을 모두 발효시키는 진짜 옛날식 초밥 ? 도 나왔다. 배 안에 수조를 싣고 왔는지, 생선회도 아주 신선했다.
밥도 흰밥만 나오는 게 아니라 팥밥을 비롯한 귀한 잡곡과 은행이나 밤 등을 섞은 다양한 밥이 나오고, 면 요리도 소바와 우동 등이 다양하게 나왔다. 전체적으로 일본요리를 최대한 다채롭게 선보인 셈이었다.
물론 술도 전부 일본주였다. 첫날밤 내가 대접한 잔치에서 요시무네가 한국 술이나 서양 술을 가리지 않고 잘 마시던 걸 생각하면 의도적인 상차림이었을 수도 있겠다.
“임금께서 베푸신 후대를 이렇게 일부나마 갚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자주 뵈면서 이렇게 즐거운 자리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여섯 번째 상이 나오고 연회장 한가운데서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을 때, 요시무네가 살짝 벌게진 얼굴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연회 전에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던 모습과는 다르게 또 귀엽고 푸근해진 태도였다.
“내일 조약을 체결하고 나면 두 나라 사이에 또 백 년 동안 평화가 오겠지요. 그 평화를 더 굳게 하자면 국혼으로 관계를 굳히는 것도 좋지만, 그게 어려우니 아쉽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유감이오.”
현재 한일 간에 국제결혼은 가능하긴 하다. 원래 조선은 여자들이 왜관에 드나드는 것도 금지했지만, 지금은 혼인도 허용한다. 다만 중혼 여부를 확인하고 혹 범죄의 여지가 없는지 살피는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일본에 주재하는 우리 측 인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혼인은 어디까지나 평민들 이야기다. 지도층인 양반이나 다이묘가 상대국 출신을 처첩으로 받아들인 사례는 거의 없다. 심지어 대한 황실이 쇼군가와 혼인을 맺을 가능성은 전혀 없고, 요시무네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실질적으로 제가 일본을 다스린다고는 하나, 그 격에서는 엄연히 폐하의 신하지요. 비록 의전은 타국 군주에 맞추어 받더라도 국혼까지 맺는 건 무리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과거에 안 좋았던 전례까지 있으니.”
‘안 좋았던 전례’란 차차를 말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임해군의 반역을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퍼져서 차차는 한국에서 평이 매우 나쁘다. 히데타다와 혼인했을 때도 결말이 안 좋았으니 당연히 일본에서도 평이 좋지 않다.
“다만 제 처조카들은 황족입니다. 고로 격이 낮지 않지요. 올해 새로 즉위하신 천황폐하의 사촌누이로 꽤 괜찮은 아이가 하나 있는데, 혹시 국혼을 맺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건…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려.”
그때까지 기분 좋게 마신 술기운이 확 깨는 이야기였다. 일본하고 국혼을 하자고? 그것도 천황가랑?
허수아비 신세인 일본 황실과의 국혼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건 없다. 황실 혈통보다는 요시무네의 조카라는 쪽에 방점을 찍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거다.
게다가 천황의 딸이 아니고 황실 방계 쪽 아이라면 부담이 더 줄긴 한다. 우리 쪽에서도 내 아들이 아니라 적당한 종친 중에 후보를 고르면 된다는 말이니까.
아무튼, 이것도 귀국한 뒤에 조정과 황실에서 의논해보고서나 정할 일이다. 반응이 별로 안 좋거나 내가 내키지 않으면 적당한 후보가 없다고 거절하면 되는 것이니까. 어차피 정식 제안도 아니고 의사를 타진해보는 정도 아닌가?
생각에 잠긴 사이 법회가 끝났다. 이제 사흘에 걸친 회견을 끝내고 을미조약을 대체할 새 우호조약에 서명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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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간의 첫 조약인 을미조약은 상당히 살벌한 분위기에서 맺어졌다. 아직 총성도 그치지 않은 상태였으니 ? 멍청한 모리 놈들 ?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양쪽 군대 수천이 철저히 중무장하고 조약이 체결되는 회담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기까지 했으니 어땠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니 참으로 좋습니다. 평화란 이런 것이지요.”
요시무네가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께 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눈앞에는 동현과 요시무네의 어립선이 나란히 떠서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주변에 과시했다. 다만 구리 기와와 방패판을 씌우고 비단까지 두른 요시무네의 배 쪽이 좀 더 눈에 띄기는 했다.
조인 장소인 바닷가에는 이들 두 척 외에도 호위함들이 해변을 메우고 있었다.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더 위압감을 주려는 듯 돛은 새하얀 새 마포로 지어 올리고 선체는 빛이 나도록 닦았다. 마치 함대 사열이라도 받는 것처럼 깔끔하게 정비해놓았다.
하지만 한 가지, 서로를 향한 적의는 없었다. 경쟁심을 불태우기는 할지언정 우리 해군과 일본 수군은 서로를 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대한과 일본은 백 년을 넘게 우호를 지켜왔고 여기 있는 장졸들도 이를 잘 알았다.
“지난 며칠이 그 평화를 영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모임이 아니었소? 자, 앉읍시다.”
현대에서 읽은 어떤 일본 소설에 이런 문구가 있었지. 인류 역사에 영원한 평화란 없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의 평화 정도라면 가능하고, 사람들이 자기 세대에서 평화를 추구하면 그걸로 족하다.
‘전쟁은 할 만큼 했다. 이제는 누가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전쟁 따위는 안 해도 돼.’
내가 바라던 만큼의 영토도 얻었다. 땅을 더 넓혀 봐야 지키고 관리하기만 어렵다. 지금 시대의 평화를 만들기 위한 한가지 노력이 이번 조약이다.
조약문은 예비회담에서 작성된 초안에다 이번 회담에서 논의한 내용을 추가한 수정안으로 준비되었다. 물론 문구를 수정하는 실무작업은 이번 회담의 부사 격인 양쪽 신하 네 사람이 맡았다. 정사는 나와 요시무네니까. 우리가 직접 그런 서류작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약문은 당연히 한문이다. 도장을 찍기 전에 다시 한번 죽 읽어보니 확실히 을미조약 때 조문과는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천자의 공덕 어쩌고 하는 쓸데없는 공치사를 서문에서 싹 날려버린 게 가장 마음에 든다.
실무자들의 성향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조약문은 아주 사무적인 문서가 되었다. 조약 내용을 서문부터 여기 옮기면 이렇게 된다.
『대한국과 대일본국은 을미조약 이래 백 년 동안 우호관계를 지키면서 서로를 도왔던바, 앞으로도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오늘 새로이 우호조약을 갱신하기로 하였다. 이에 대한국 태황과 대일본국 대군은 이 자리에 모여 우애를 맹세하고 조약을 맺는 바다….』
에도 막부는 진서장군부가 문을 닫으면서 진서대장군이 명나라로부터 받은 의 인수(印綬)와 칭호를 포함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승계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국왕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조약에서도 일본국 대군의 명의로 조인한다.
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이 문제는 우리 조정에서도 관심을 쏟는 주제 중 하나다. 이번 조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도 민지원이 이 문제로 슬쩍 신정을 떠보기도 했다.
‘과거에 진서대장군께서 일본국왕의 자격으로 체결하셨던 조약을 새로 갱신하는 자리니, 당연히 대군께서 일본국왕의 자격으로 조인하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대군이라는 칭호는 이미 백여 년에 걸쳐 사용했으니, 굳이 낡은 도장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대한 태황께서도 조선국왕지인을 쓰지 않으시는데, 굳이 우리 대군께서 쓰지 않은지 70년이 다 된 일본국왕지인을 사용해서 조인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기야 명나라가 책봉하면서 준 도장을 사용하지 않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명나라에서 받은 은 명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책봉을 받은 임금이던 연이 이후로 아무도 쓰지 않았다. 지금은 종묘 구석에 잘 보관만 하고 있다.
지금 쓰는 는 연이 시절에 금과 구리를 섞어 새로 주조한 물건이다. 무게는 여섯 근(3.6kg). 중국처럼 옥으로 만들지 않았으니 옥새는 아니다. 손잡이 자리에는 하늘 높이 고개를 쳐든 오조룡을 새겼다. 거북이 아니다.
탁자 건너편에 있는 요시무네의 도장을 보니 역시 내 것처럼 용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평소에 멀쩡히 저런 도장을 쓰다가 갑자기 외교문서라면서 명나라가 준 낡은 도장 꺼내다가 찍으라고 하면 나라도 싫기는 하겠지.
대한도, 일본도, 건주도 모두 직접 만든 새 도장을 국새로 쓰고 있다. 오직 유구 하나만 명나라가 책봉할 때 받은 도장을 아직 쓴다. 미주에서 귀환하느라 유구에 들렀을 때 실물을 구경했는데, 조선이 받은 것보다 좀 더 작은 거북이가 붙은 도장이었다.
도장만 낡은 게 아니다. 그동안 유구에서 작성한 공문서에는 작성일자가 늘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태창 XX년’이라고 말이다. 작년에 건너온 사신이 바친 문서에는 무려 ‘태창 89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상익이 칭제를 선언한 이유도 명나라의 제후국이라는 게 어떤 이익도 주지 않는 시대에 그 굴레를 그만 벗고 싶어져서는 아닐까. 유구가 칭제를 선언해 봐야 이는 주변국과 같은 격을 갖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제로 황제국으로서 위세를 부리는 건 아니니까.
‘과거에 함께 명나라를 받들 때도 대한은 우리 유구를 이끄는 형님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이제 함께 칭제한 이후에도 저희 폐하께서는 폐하를 마치 백부님을 대하듯이 하실 것이며, 소국으로서 대국을 대함에 있어서 절대 예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 유구 사신은 ‘대국’과 ‘소국’이라는 표현은 사용해도 ‘상국’이라는 말만은 쓰지 않았다. 정식으로 우리 번국으로 들어오라는 압력을 피하고자 하는 조심스러운 어법을 계속 사용하던 그 모습이었다.
그런 말까지 듣고도 내가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고 훌쩍 남순을 떠났으니, 도성에서 내가 귀환하기만 기다리고 있을 유구 사신은 지금쯤 똥줄이 타들어 가고 있겠지. 슈리성에 앉아서 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상익도 그렇고.
어쨌든 이쪽은 돌아간 뒤에 처리할 일이다. 조약에 도장을 찍기 전에 조약문을 다시 마저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