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4
1부 124화
– 11 –
“압록강 너머 야인들이 부리는 간교한 술책이 갈수록 교활해지고 있으니 큰일이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덕을 베풀어 기회를 주었더니, 이토록 악용할 줄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사랑채 안에 모여 앉은 사림 관리들이 개탄했다.
“이게 다 상감께서 부덕하신 탓이오!”
“이런 간교한 놈들이 있나!”
임금은 평안도 관찰사가 보낸 장계를 읽고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관찰사가 보낸 장계에는 야인들이 잡아간 백성들을 자기들끼리 사고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야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 목적과 방법이었다.
“우리 백성을 되찾아 돌려주면 내리는 포상을 노리고 납치한 자들을 사고판다니, 이 어찌 파렴치하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압록강 너머를 대대적으로 휩쓸고 온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야인들은 한동안은 숨죽이고 지냈지만, 흉년을 겪고서 식량이 부족해지자 지금은 그 타고난 거센 성정을 다시 드러내서는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군사를 내어 들이치자니 상황이 좋지 않다. 작년에 든 흉년으로 재정에 여유가 없고, 올해도 가물어서 군사를 낼 여유를 만들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6월이 끝나가는 지금도 비가 내린다는 보고는 들어오지 않고, 각지에서 햇무리가 지는 모습만 계속 보이고 있었다.
때문에 평안도 및 함경도에 있는 여러 고을에서는 야인들이 납치해 간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일부 유화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여진 부족들이 ‘다른 부족이 조선백성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는 것을 찾아왔다’고 하면서 데리고 오면 소와 말, 베로 포상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간악한 도적들이 쇄환 시에 주는 재물을 노리고 일부러 우리 백성을 매매한다니!”
여기서 틈이 있었다. 조선인을 납치한 부락에서는 자기가 노예로 부릴 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른 부족에 넘긴다. 이렇게 거래되던 조선인들 중 일부, 대개는 노동을 계속 시키기 힘든 노인이나 당장 부리기 힘든 어린아이가 쇄환된다. 당연히 그 거래가는 쇄환가보다 싸다.
“하지만 전하, 군사를 낼 형편이 아닌 이상 그렇게라도 백성들을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수밖에 없기는! 다른 수가 있지 않은가!”
임금이 책상을 후려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평안도가 재정 부족으로 대군을 낼 수 없다 하나, 설마 군사 500도 마련할 여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경창에서 곡식을 내고 평안도에 있는 내수사 염전에서 소금을 내어 보태게 할 터이니, 정예기병 500을 마련하여 지난 기미년처럼 적도를 토벌케 하라!”
“전하, 작년 대마도 출병으로 소모한 재정도 아직 다 채워 넣지 못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어찌 새 전단(戰端)을 여신단 말입니까? 명을 거두소서.”
“아니다! 흉년이기 때문에 더더욱 군사를 내어야 한다. 이대로 두면 저들의 약탈이 한층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니, 우리 백성들이 갈수록 크게 해를 입지 않겠느냐? 기필코 저 도적놈들을 뿌리를 뽑아야겠다!”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야인들이 따르리라는 생각부터가 잘못이오. 3년 전 토벌 때 한 번 혼을 내어주었으면 그 뒤에는 따사롭게 덕으로 다스렸어야 할 것을, 힘으로 위압해 뜻을 따르게만 하니 어찌 저들이 반발하지 않겠소?”
이들은 젊었다. 관직에 나선 것도 기껏해야 2대, 아니면 당사자가 처음인 경우도 많았다.
“전하께서 성군이 되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학문을 닦고 덕을 베풀 궁리를 하셔야 하는데, 일단 문제가 생기면 무력을 동원할 생각부터 하시니 참으로 큰일이오. 이러다가 외구(外寇)가 아닌 백성들에게도 덕을 베푸는 대신 힘으로 찍어 누르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소?”
“군사를 일으키자면 생기는 실제적인 문제도 있소. 그렇지 않아도 흉년이라 힘든 백성들을 억지로 동원해야 하는데, 가장이 병정으로 끌려가면 그 가족은 어찌 살라는 말이오?”
젊은 만큼 달성하고 싶은 목표도 많다. 학문을 익히며 생각한 바를 현실에서 적용해 보고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세상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조정 주도권은 나이든 노신들이 잡고 있고, 임금은 툭하면 마치 자기가 법가나 병가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행동했다.
“노신들이야 어차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조정에서 물러갈 자들이오. 하지만 주상께서 어디 그런 노인이오? 주상은 우리보다 젊으시오. 재주도 있으신데 공부는 하지 않고 군무에만 자꾸 집중하려 하시니….”
원자 탄생은 축하할 일이기에 잠시 다른 갈등을 뒤로 미뤘다. 하지만 원자가 태어났다 해서 그동안 쌓인 국정에 대한 불신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이들 중에는 경연관도 있으니만큼 경연 수행에 대한 임금의 태도가 얼마나 불성실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주상은 백성들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별로 고려치 않으시오. 요즘 가뭄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드니 산과 들에 화전을 일구어 연명하는 이들이 많은데, 주상께서는 이들을 구제할 궁리를 하시기는커녕 화전을 절대 금지한다는 교서를 내렸소.”
“화전하는 자는 북방에 사민시키라 하셨지요.”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는 화전(火田)은 국초에는 크게 금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딱 10년 전인 성종 23년에 화전으로 인해 재목이 고갈되고 샘이 마르는 문제가 지적되면서 이제부터 누구도 화전을 경작할 수 없다는 어명이 내렸다.
금상은 즉위 직후부터 성종이 내린 화전금지령을 엄격하게 집행했다. 경작한 자는 장형에 처하고, 수확한 곡식은 전량 몰수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흉년이 심하게 닥치자 금령에도 불구하고 산 속에서 몰래 불을 놓아 땅을 일구는 이들이 늘어났다.
조정에서는 흉년이라 살기 힘든 탓이니 한시적으로 화전금지령을 해제하자고 했다. 하지만 임금은 그러기는커녕 법금을 위반한 자들을 북방에 사민시키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하다못해 구역을 정해 벌금(伐禁)하고 다른 장소는 허용하는 것도 아니고, 팔도 전역에서 화전을 금지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오? 산마다 관원들이 일일이 살피러 다닐 수도 없는데.”
“어차피 잡히는 자들은 운 없는 자들뿐이오. 전하께서 덕도 자비도 없는 탓 아니겠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우리만 전하께 불만을 품은 건 아니오. 훈구대신들 쪽에서도 전하께서 자기들 말도 안 듣는다고 불평이 상당하오.”
“흥! 금상께서 분부하시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는 게 그쪽 양반들 아니오? 그러면서 무슨?”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는 동료를 보면서, 말을 꺼낸 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 그렇지는 않소. 그…내가 친분이 좀 있는 그 대감 있잖소?”
“알고 있소.”
“그 어르신 말이…훈구대신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오. 전하께서 이렇게 계속 멋대로만 나가신다면 뭔가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오.”
순간적으로 방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젊은 대간 한 사람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뭡니까, 그 다른 수단이라는 게…혹시 반정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겁니까?”
이야기를 꺼낸 이가 잠자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다른 수단이라고만 했소. 모두 뜻을 모아 사직하겠다는 소리일지도 모르지요.”
임금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모든 신료들이 일시에 사직하는 일은 일어나기는 힘들지만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대간들은 몇 달에 한 번씩 수시로 전체사직을 하고, 삼정승도 종종 사직을 청한다. 임금이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은 없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지금 잘못된 길을 걷고 계시는 전하께 한번쯤 모든 신하들이 뜻을 보여드릴 필요는 있다고 보오. 부디 덕을 실천하는 정로를 택하십사 하고 말이오. 법가와 병가는 일견 빠른 길 같지만, 진실로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지 못하니 옳지 않소.”
저 늙은 여우들이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계속 해오던 일이다. 이들도 임금이 하려는 일을 그대로 놓아둘 생각은 없었다. 이제까지 해왔듯, 옳다고 생각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맞설 뿐이다.
“상관없소. 우리는 우리대로 선비로서의 도리만 다하면 되는 거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사랑채 밖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나리마님!”
“무슨 일이냐?”
마당쇠의 익숙한 목소리다. 주인이 소리 높여 외치자 대답이 돌아왔다.
“관청에서 ‘국구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요!”
“뭣이? 국구께서?”
“예. 쇤네는 그게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합니다.”
– 12 –
아,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게 뭐람.
다른 건 상관없다. 중전이 원자를 낳은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다. 산후회복도 덜 되어 안정이 필요한데 친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충격을 어이 감당하랴. 4남 4녀에 막내딸이라 가뜩이나 귀여움 받으면서 자랐는데.
“거창부원군의 장례에 필요한 비용은 호조에서 임시로 좀 내주도록 하라. 다른 이도 아니고 국구의 장례인데 초라하게 지낼 수는 없지 않느냐? 나중에 거창부원군의 일가가 갚도록 하고, 일단은 내주어라.”
거창부원군 신승선은 내 즉위 초기에 잠시 영의정에 올랐다. 헌데 정말 무능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외척이라는 점 때문에 의도적으로 정사를 멀리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정치적인 발언은 거의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밑에 있는 관리들과 나를 잇는 연결통로 노릇만 했다.
그랬다 보니 이 양반이 죽었다고 해도 나로서야 슬플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중전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장인이 죽었다고 내가 홀아비가 되고 내 아들 황이가 엄마 없는 아이가 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법도에 상을 치를 때 하루를 한 달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어전회의에서 내가 묻자 예조판서 이세좌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이일역월(以日易月)하여 하루를 한 달로 치고 빨리 탈상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옵니다.”
“그렇다면 중전이 이번 국구의 상을 빨리 벗도록 기년상(1년상)으로 하고, 이일역월을 적용해야겠다. 중전은 원자를 낳은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지났는데, 무리해서 상을 치르다가 몸이 약해져 자칫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 아니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아녀자의 몸으로 무리해서 상을 치르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진짜 연산군이 친엄마 없이 자라면서 얼마나 삐딱해졌는지 생각하면, 절대 내 아들을 엄마 없이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분명 그 애는 내 아들이지만, 그 몸에 있는 DNA는 진짜 연산군의 DNA이니까 말이다.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연산군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대마도주가 답신은 보내왔는가?”
“예, 일개 반도(叛徒)가 벌인 일탈행위라고 하면서, 근래 거느린 군사가 부족하여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데 대해서 사죄했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당장 군사를 내어 토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올해 바칠 세공 일부도 보내왔사옵니다.”
대마도주 놈, 은근히 우리한테 책임전가를 시도하는데? 병사를 천 명이나 보낸 데다 막대한 공물까지 바치느라 지방세력을 단속할 여력이 없다는 말이 하고 싶은 모양이군. 뭐, 그렇다면 내가 도와줘야지.
“필요하다면 우리 군사를 보내 도와주겠다고 답하라. 대군을 보낼 수는 없겠으나, 2백에서 3백 정도는 보낼 수 있으리라. 섬 내에서 반도를 제압하는 데는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
평안도에서 편성할 기병 5백과는 별개로 그 정도는 조달할 수 있다. 서얼들이나 백정들을 대상으로 해서 자원자를 모으고, 내금위와 겸사복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면 된다. 평안도야 평안도 기병이 여진족 상대로는 경험이나 실력이나 최강이니 굳이 경군을 보내지 않는 거고.
“전하, 요즘 군사들이 진법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장차 군사를 일으킬 때 진을 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사옵니다. 진법훈련을 다소 강화함이 어떻겠나이까?”
병조판서 이극돈이 진언했다. 잠시 생각하고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문 데다, 날까지 더우니 진법을 연습하기에는 군사들이 지나치게 고생스럽다. 일단 8월까지는 진법 훈련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어차피 당분간은 진을 짜고 싸움을 벌일 상대도 없다. 올해 수확이 어떨지 보고, 추수 뒤에 훈련을 해도 늦지는 않을 거다. 지금은 그럴 인력으로 저수지 더 파고, 제방이나 보강하도록 하는 게 낫다. 내 뜻을 정확하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극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하.”
“진법 훈련을 하자고 병판이 청을 드렸는데도 안 하신다니, 금상께서 올해에도 군사를 내진 않으실 모양이오.”
“다행 아니겠소? 혹시나 해서 시도해본 건데 확인했으니 다행이오.”
국구의 죽음이란 조금 신경은 쓰되 크게 주의해야 할 일은 없는 행사다. 많은 사람이 한데 모이니만큼, 몇몇이 따로 모여 밀담을 주고받아도 눈에 크게 뜨일 일은 없었다.
“이번에는 흉년 탓이 크겠지요, 아마. 그래도 일단 숨 돌릴 여유는 생기는 셈이니, 전하께서 천천히 생각을 돌리시도록 노력해봅시다. 앞으로라도 외정보다는 내정을 돌보는데 좀 더 주력하시도록 말이오.”
“그럽시다. 나라를 평온히 안정시키는 일이야말로 국정을 돌보는데 있어서 가장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