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40
3부 3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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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밝혔듯이 이번 조약 서문은 을미조약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다. 조약 본문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쟁점이 되는 현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용이 단출하다.
『…하여, 대한국 태황과 대일본국 대군은 하기한 바와 같이 합의하였다.
1. 을미조약에 의거하여 대한 태황이 통치를 위임받은 북구주 3주는 을미조약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서 기한 없이 현재의 위임 상태를 유지함을 대군의 이름으로 인정한다. 대마도와 일기도 두 섬은 적법하게 대한 태황에게 양도, 승계된 대한령임을 인정한다.
2. 을미조약에 의거하여 개설한 개항장 5개소 중 센다이의 개항장 지위를 철폐하며, 대신 제물포?지선성?덕진성?장기(나가사키)?소창(고쿠라)?히로시마 6개소를 추가로 개항한다. 각 항구에서 드나드는 배와 사람이 지켜야 할 법규는 기존의 것을 준용한다.
3. 을미조약에 의거하여 한일 양국이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기로 결의한 유구국의 지위는 현재와 같은 상태로 둔다. 다만 대한이 유구에 주둔한 군사와 배의 수를 증감하고자 계획할 때는 일본 측에 사전에 통보하도록 한다.
4. 을미조약에 의거하여 한일 양국이 임의로 점거하지 않기로 결의한 아모국 또는 에조치땅의 지위는 현재와 같이 한일 양국 관헌이 개입하지 않는 형태로 둔다. 한일 양국 백성은 자유롭게 이 나라에 이주하거나 교역에 종사할 수 있다.
5. 을미조약의 예를 따라, 이 조약에서 명시하지 않은 부분에서 양국 간에 협의가 필요할 경우 상대국 조정에 서한을 보내 협의를 요청한다. 한일 양국은 갈등이 있을 때는 무력으로 해결하려 시도하지 않고 대화로 논의하도록 한다.
또한 대한국 태황이 아무 조건 없이 만력 18년과 만력 23년에 벌어진 전란에서 전사하여 귀환하지 못한 일본 측 장수들의 유골과 유품을 반환한 데 대하여 대일본국 대군은 진실로 깊은 감사의 염을 표하였음을 명확히 적는다. 두 나라가 교류하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천여 년이 넘건만, 이만큼 자비로운 조치는 전례가 없음이라….』
이 뒤에 이어지는 결문(結文)까지 굳이 전부 전재할 필요는 없으리라. 서문과 마찬가지로 꼭 필요하지는 않은 미사여구가 대부분이니까.
조문 중에서 1조와 2조 내용에 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요시무네와 내가 논의하면서 그 개요에 관해 이미 다 밝혔으니 말이다.
3조의 핵심은 유구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일본이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데 있다. 다만 우리가 유구를 완전히 병합하거나 번속국으로 들인다면 우리가 일본을 포위하는 형태가 이루어질 수 있기에, 그것만은 경계하고자 하는 조치가 포함되었다.
이에 반해 4조에서 다루는 아모국에서는 일본이 좀 더 유리한 처지에 있다. 조약에서는 양측에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공정한 조건을 부여했는데, 그러면 당연히 일본에서 더 많은 이주민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일본 본토랑 가까워도 너무 가까우니.
유구의 칭제는 놀라운 소식이기는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말 그대로 지나가는 가십에 불과한 이야기인지라 이번 조약에서는 따로 언급도 되지 않았다. 3조에서 ‘유구국의 지위는 현재와 같은 상태로 둔다’라는 한 줄이 우리가 유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냈다.
뒷부분에서 언급한 만력 18년은 경인왜란이 터진 해, 만력 23년은 을미동정이 있던 해를 말한다. 이미 환갑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 그냥 간지만으로는 정확하게 그 해를 지칭할 수가 없어서 명나라 연호로 지칭했다.
서양이라면 서기 몇 년이라고 쓰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동양에서는 아직 그렇게 공통으로 사용할 기년(紀年)이 없고, 연호를 쓰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가 칭제건원하기 전이었고, 일본도 명나라 책봉을 받아들였으니 명나라 연호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표준’이라고 할 명나라 연호가 없다. 그래서 조약문서 최하단에 기재하는 오늘 날짜를 적는 칸에는 한일 양국의 연호를 함께 적어서 ‘건흥 11년, 보영(寶永) 7년 4월 9일’이라고 적었다. 물론 이 날짜는 음력이고 양력으로 하면 1710년 5월 7일이다.
참, 대한에서는 일본처럼 즉위한 해를 1년으로 삼지 않고 중국과 같이 즉위한 다음 해를 1년으로 한다. 내가 즉위한 해가 기묘년(1699년)이니까 올해가 건흥 11년이다.
“폐하, 이쪽에 국새를 찍으시면 되옵니다.”
“음, 알겠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조인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이 도장을 가지고 나오기는 했지만, 내가 쓰는 국새가 이 ‘대한태황지보’ 하나뿐인 건 아니다. 용도에 따라서 찍는 도장이 다른 탓에, 국새의 개수는 총 24개에 달한다. 의례용으로 쓰는 어보는 또 별개다.
내가 문서에 도장을 찍자 본 조약과 별개로 추가된 다음 문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맺는 조약에 덤으로 붙은 부속협정인 셈인데, 의례적인 서문과 결문 사이에 낀 본문은 무척 짧으나 그 내용은 무척 중요했다.
『대일본국 대군은 대한 태황에게 5년 동안 정병 2만 명을 제공한다. 이들은 막부 측에서 피복과 장비를 갖춘 상태로 제공하며, 5년간의 급양과 급여는 대한 병부가 책임진다. 복무 중에 죽거나 다치는 자에 대한 보상은 막부가 맡는다.
다만 약정한 복무 기한 5년이 지나면 잔여 병력은 일본으로 귀환한다. 개중에서 잔류하여 한군(韓軍)에 전속하고 싶어 하는 자가 혹시 있다면 일단 귀국하여 막부에 문서로 신청하여 허가를 취득한 뒤에 비로소 전속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정예 용병 2만 명을 5년 기한으로 거저 빌려주는 계약이다. 이 용병들이야말로 요시무네가 189명분의 유골과 유품을 받는 대신에 내게 직접 지불하는 대가다. 백 년 전에 죽은 사람들의 뼛값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내는 격이다.
물론 지금 내가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다. 계미남변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앞으로 먼저 공격을 받지 않는 한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지 오래다. 병력 제공 제안을 받아들인 건 따로 쓸 데가 있어서다.
이들은 필리핀과 조홀국에 보낸다. 필리핀 남부에서 아직 설치는 이슬람 해적들을 완전히 소탕하고 아직 확실히 결판이 나지 않은 조홀국 내전에 투입하기 딱 좋은 원군이다.
조홀국에 있는 정명완은 지금은 군사 약 6천을 거느리고 있다. 조홀국 왕궁을 차지하면서 승기를 잡기 직전까지 갔으나, 쫓겨났던 전 술탄이 ‘부기스’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쪽 원주민 놈들을 비롯한 주변 이슬람 세력에 죄다 원병을 청하면서 상황이 또 뒤집혔다.
정명완이 상황을 호전시키려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파견할 병력을 본국에서 뽑아내기도 어렵고, 그나마 있는 여력은 필리핀 제압에 써야 하는 참에 요시무네가 이번에 돌려받는 왜장들의 유골 값으로 병력을 빌려준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계약이 내게만 이익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전경험이 없는 막부군에게 실전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요시무네 측의 계산이 바닥에 깔려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용병 송출 계약과 달리 귀국을 금지하지 않고 5년 뒤에 일본으로 귀국시킨다고 못을 박은 거다.
이 부속협정에도 도장을 찍어 넘기자 이번에는 요시무네가 날인한 문서가 내게 넘어왔다. 앞서 도장을 찍은 문서와 내용이 일치함을 확인한 뒤에 두 장 모두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을미조약을 갱신한 ‘경인우호조약’의 조인이 끝났다.
“이로써 우리 두 나라의 우호가 더 깊어지게 되었소. 참으로 다행한 일이오.”
안도하는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요시무네도 활짝 웃으며 나를 추켜세웠다.
“모두 폐하께서 아량을 베풀어주신 덕분입니다. 폐하께서 저희 조상들의 유골을 돌려주러 규슈까지 직접 오신다는 결단을 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오늘 같은 날이 있었겠습니까.”
요시무네는 본회담 중에는 무섭게 차갑고 진지했지만 이런 인사치레를 나눌 때는 정말로 푸근한 동네 동생 같은 인상이었다. 거참, 이것도 개성이라고 봐줘야 하려나.
어쨌든 회담은 다 끝났다. 이제 계획대로 식후행사로 여흥을 즐길 차례다. 식후(食後)가 아니라 식후(式後)행사다.
“자, 그럼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배에 오르도록 합시다. 오늘도 냉면 어떠시오?”
“음. 그보다는 흑장면이 좋겠습니다. 흑장면에다 무종계와 기름에 튀긴 군만두를 곁들이면 더 좋겠군요.”
선전관을 시켜 바로 주방에다 지시를 전하게 했다. 그리고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은 내일 진행할 사냥에 관해 요시무네와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요시무네가 뜬금없는 제안을 건넸다.
“내일 사냥에서 어느 쪽 군사들이 사냥감을 더 많이 잡는지 내기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내기하는 거야 좋은데, 대군께서는 무엇을 거시겠소? 금은이나 비단을 걸고 하는 시합은 너무 식상한데.”
요시무네가 씩 웃었다. 시시하게 돈 따위를 걸고 내기를 할 리가 있겠냐는 태도였다.
“그저께 잔치 때 임금께서 말씀하셨지요. 황금보다 귀한 것은 명마, 명마보다 귀한 것은 미녀라고 말입니다. 저희가 진다면 제가 에도에서 데려온 무희 열두 명을 드리지요. 대신에 대한이 진다면 그 루스인 무희 세 명을 제게 넘겨주십시오.”
…요시무네도 은근히 미녀를 밝히나 보다. 자기 어립선에서 개최한 어제 연회에서도 뭔가 불만이 있는 얼굴이더니, 그게 자기한테는 백인 무희가 없다는 데서 온 불평이었던 건가. 그런데 교환비가 1:4? 이거 진심인가?
“으음…그런데 우리 백면나인 무희 3명에 대해 일본 무희 12명을 걸겠다고 하셨소? 그건 귀측이 너무 불리한 조건 아니오?”
“일본 천하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이국의 미희 아닙니까. 일본 여인 4명으로 외인 1명을 바꿀 수 있다면 도리어 값이 싼 겁니다.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니, 꼭 좀 부탁드립니다.”
백면나인들은 표트르에게 받은 내 사노비나 마찬가지지만, 사람을 상품으로 거는 내기에 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니, 대한 태황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설마 내기에 질까 봐 두려워하시는 건 아니겠지요?’라고까지 나오니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좋다, 어디 해 보자. 설마 내 최정예 친위대가 요시무네의 부하들보다 못하지는 않겠지.
– 27 –
3천 명이 넘는 양편 군사들이 아침 일찍부터 몰이꾼으로 나섰다. 모지반도 남쪽에서부터 포위선을 설정한 군사들이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산에 있는 짐승들을 계속 북쪽으로 몰아붙인다. 소창만호부에서 동원한 군사 2천도 몰이꾼으로 합세했다.
지금 나와 요시무네가 있는 곳은 모지반도 북쪽 끝, 바다를 등진 해변이다. 여기 있으면 남쪽에서 몰고 올라오는 짐승들이 더 빠져나갈 길이 없을뿐더러, 혹시 요시무네에게 원한을 품은 기독교도 테러리스트가 이 지역에 숨어들었다고 해도 해를 끼치러 접근할 수 없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회담 한 달 전부터 소창만호부에서 모지반도 전체를 철저히 수색해 회담이 끝날 때까지라는 조건부로 천주교도들을 찾아 하카타에 머물게 하긴 했다. 그래도 만사 모르는 법이므로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남쪽에서 은은히 철포 소리가 들리는군요. 짐승들을 계속 몰고 있는 모양입니다.”
“새 같은 것들은 몰이를 피해 도망가니 쉬우니 저쪽에서 잡아야 하지 않겠소. 산짐승들을 여기까지 몰아오려면 아직 여러 시간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활이나 퉁겨보면서 기다리도록 합시다.”
나와 요시무네, 근위병들까지 활을 쓰기로 한 건 오늘 사냥이 ‘친선 행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일 양국에서 총은 아무래도 사냥에 쓰는 도구보다는 전쟁에 쓰는 무기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게다가 마상에서 다루기에는 역시 활이 더 낫다.
남쪽에서 울리는 총성이 드러내듯, 몰이꾼을 맡은 군사들은 일부가 총을 들었다. 짐승을 모는 데 총성이 유용하기도 하고, 몰이꾼들을 피해 날아가는 새를 쏘거나 갑자기 달려드는 맹수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사흘 동안 입고 있던 갑갑한 곤룡포는 벗어 던졌다. 활을 당기기 편하도록 홀가분한 철릭 차림으로 나섰다. 요시무네 역시 예복을 겹겹이 껴입는 대신에 훨씬 간편해 보이는 일본식 사냥복을 입고 나타났다. 허리에 두른 한국산 표범 가죽이 눈에 띄었다.
모지로 배를 타고 온 건 어제 오후였다. 호위병을 빼고 몰이꾼 노릇을 할 군사들은 모두 남쪽으로 보내고, 속을 비우느라 조촐한 저녁을 먹은 뒤 오늘을 위해서 일찍 잤다.
당연히 몰이꾼으로 뛸 군사들도 어제 저녁밥은 간소하게 먹었다. 하지만 이미 이틀 동안 연회가 열릴 때마다 군사들도 술과 음식을 포식했고, 사냥이 끝나면 분명히 연회가 또 있을 것이기에 하루쯤 간소하게 먹는다고 해서 불평하지는 않았다.
“폐하와 함께 사냥을 나오다니, 생각도 못 한 일입니다. 에도에 놓고 온 로주 마쓰다이라 공이 이 일을 알면 무슨 말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요.”
로주(老中)는 가장 권위 있는 원로 가신 집단을 가리키는 일본식 칭호다. 지금 말이 나온 마쓰다이라 히데모리는 요시무네의 외조부인 군마 마쓰다이라 씨다. 즉, 아민의 4대손이다.
“과거에 한때 건주는 우리 대한을 상전으로 모시기도 했었소. 어쩌면 귀 대군의 외조부도 그 옛날을 생각하며 영광스러워 할 수도 있소.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민이 내게 원한을 품을 일은 없었으리라. 내가 그 녀석을 누르하치의 추격에서 보호해줬고, 일본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었는데 나한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비록 히데모리 본인은 여기 오지 않았지만, 요시무네를 경호하는 친위대 안에는 군마에서 보낸 도이병 ? 일본에서는 군마에서 양성한 건주 씨의 군대도 도이병이라고 부른다 ? 출신 기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보내준 말을 타고, 유럽식 흉갑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 옆에 역시 유럽식 흉갑을 착용한 우리 오도리 기병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려니 미묘하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핏줄도 비슷하고 무장도 흡사하지만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져 이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완전한 남이 되었다.
“대군께 제안할 바가 있소이다. 아직 몰이꾼들이 짐승을 몰아 올리려면 시간이 더 소요될듯하니 잠시 다른 여흥을 즐겨보면 어떻겠소?”
‘체호프의 총’이라고 했던가? 작가가 특별히 묘사한 장치가 있으면 전개 과정에서 분명히 사용해야만 한다. 아주 중요한 것처럼 시간을 들여 묘사해 놓고 써먹지 않으면 그건 노력의 낭비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내 노력과 준비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여흥이라고요?”
요시무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자 재미있겠다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해 보지요.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