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45
3부 363화
– 9 –
“이런, 다른 녀석들은 오늘도 다 뒤처져 버렸군.”
태자 이은이 승마를 나올 때면 늘 카자크 친구 한 무리와 익위사 소속 기병 십여 기가 그 뒤를 따른다. 익위사는 다른 사람도 아닌 태자를 호위하는 관청이라, 내금위와 겸사복에서 집안이 좋고 품행이 바르며 나이가 지긋한 자들을 선발해서 배치한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태자로서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카자크 친구들 쪽이 아버지뻘인 익위사 관원들보다는 당연히 훨씬 대하기 편했다. 그래서 승마를 나올 때면 종종 익위사는 따돌리고 친구들하고만 질주하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실패하는 날이 태반이다.
오늘은 익위사 관원들을 성공적으로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다만 카자크 친구들도 하나만 빼고는 다 따로 떨어져 버렸다.
“전하께서 익위사 관원들을 따돌리는 미끼로 써먹으셨으니 그렇죠.”
혼자 태자를 따라온 카자크 처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편하게 말을 타느라 치마가 아니라 통이 넓은 바지인 말군(襪裙)을 입었다. 여자들이 무용복이나 승마복으로 입는 옷이다.
“일부러 전하랑 비슷한 옷을 입게 하고, 네 패로 갈라져서 숲으로 들어가게 했으니 다들 헤어질 수밖에요. 익위사 관원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했다지만 꼭 그러셔야 했나요.”
“그래야 했지. 아냐 너하고 둘이서만 있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니까.”
“네?”
아냐(안나의 애칭)라고 불린 카자크 처녀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태자는 그녀가 보인 반응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에서 내렸다.
“우연히 여기로 오긴 했다만,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
“무종대왕을 시해하려던 자객이 숨어 있던 나무 아닌가요? 전에 얘기해주셨잖아요.”
이 길은 무종이 자주 승마를 즐기던 길이기도 하다. 바로 저 커다란 소나무 위에 미륵교 교주가 보낸 자객이 매복하고 있다가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그 자객을 일격에 사살한 이가 바로 무열공 박원종이다. 박원종의 출세는 그 사건이 시발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자객이 숨었던 나무라고 해서 베어버려야 한다고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무종은 자객이 죄인이지 나무가 무슨 죄냐며 굳이 베려 하지 않았고, 박원종도 임금의 뜻을 따라 극력 반대했다. 당연히 세간에서는 뒷공론이 돌았다.
“자신이 세운 공을 드러내는 나무라서 그랬으리라고 다들 수군거렸다지. 어쨌든 그 덕에 이 나무는 임금이 될 사람은 신변을 주의해야 한다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너도 알다시피.”
부황은 이것도 역사라고 하며 이 나무를 보존하는 조치는 폐지하지 않았다. 그래도 절대 이곳 근처에는 오려고 하지 않았다. 꼭 와야 할 필요가 있는 자리도 아니긴 하지만, 임금을 노리고 자객이 숨었던 곳에 가까이 오는 일 자체를 꺼리는 듯했다.
“당연하죠. 2백 년 동안 나무가 더 자라서 이제는 저 가지 사이에 사격수가 열두 명은 더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폐하께서 불안하게 여기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네요. 혹시 저 가지 사이에 누가 숨어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어차피 여기에 자객 따위는 없다. 혹시 있어도 시복에 화살이 열 개 있으니, 열 명까지는 간단히 처치할 수 있을 거다. 만약에 내가 놓치는 놈이 있으면 네가 처리해 주려무나. 혹시 네 화살도 빗나가면 그때는 내가 검으로 처리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어려서부터 워낙 우수한 스승에게 배운 덕분에, 태자의 말과 무기 다루는 솜씨는 익위사 무관들도 감탄할 정도다. 태자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어쩌다가 지금처럼 호위가 없는 상황이 와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위험이 있더라도 이 자리는 만들어야 했다. 너와 단둘이서 할 말이 있으니 말이다. 이리 와보거라.”
잠시 머뭇거리던 안나가 말고삐를 나뭇가지에 묶고 소나무 밑에 있는 태자 옆으로 갔다. 그러자 태자가 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솔직히 말하마. 아냐, 나는 네가 좋다. 동궁에 들어와 내 후궁이 되지 않겠느냐?”
깜짝 놀란 안나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태자 전하, 진심이세요? 저는 양반도 아니고 귀족도 아닙니다. 제 아버지는 루스에서 온 카자크예요. 대한인도 아니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저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안나가 고개를 저어 세차게 부정했다. 그녀는 황실에서 얼마나 격이 높은 상대를 배필로 택하는지 분명히 보았다. 둘째 황자 이준은 청나라 공주, 첫째 황녀 루시아는 루스 황태자, 둘째 황녀 율리아는 후금 황자를 짝으로 맞았다.
일찌감치 혼인한 태자비 한씨는 그들만큼 신분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수위를 다툴 만큼 명문가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어차피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여섯 카자크는 30년 가까이 태황 곁을 지켜온 측근들이다. 그 자녀들은 태자와 함께 자란 형제자매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정도만으로 이들이 대한에서 명문가로 대우받을 수는 없었다. 안나는 불가능한 일로 헛된 기대를 품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내게 서먹하게 대했느냐? 네 신분 때문에?”
안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 태자가 다소 흥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너희가 대한인이 아니긴 뭐가 아니냐? 네 아비 이영선은 무인지변에서 대공을 세워 2등 공신을 제수받았고, 지금은 당당한 종4품 부령이 아니냐. 네 말대로 문벌 있는 양반은 분명 아니겠으나, 태자비를 뽑는 것도 아니고 후궁이라면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나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냉소하는 표정을 지은 태자가 입을 열어 차마 그녀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내놓았다.
“요즘 들어온 혼담 때문이냐? 너도 세묜을 좋아하느냐?”
“…세묜은 성실한 친구예요.”
안나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나지막하게 답했다.
“그리고 저를 정식 아내로 맞을 수 있고요.”
“그게 문제였느냐.”
카자크들은 모두 독실한 정교회 신자들이다. 당연히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며 첩을 두지 않는다. 그 정도는 태자도 알고 있다.
“순비께서도 천주교도지만 후궁으로서 만족하며 살고 계신다.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일이야. 이곳은 대한이고 대한의 예법이 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태자비 자리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후궁이라면 태자가 선택할 수 있다. 금상이 이미 그 전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네가 정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너를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알아주었으면 한다. 평생 나와 함께 말을 달리고 활을 당길 수 있는 반려로는 너 이외에 다른 여인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래도 안나는 머뭇거릴 뿐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자는 과감하게 두 팔을 내밀어 상대의 어깨를 꽉 잡더니 거대한 소나무 쪽으로 밀어붙였다. 깜짝 놀란 안나가 고개를 들자 그대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웃! 으음, 음….”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뜬 안나는 처음에는 태자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태자의 강철과 같은 두 팔은 그녀를 소나무 둥치에 밀어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맞닿은 입술은 마치 숯덩어리를 댄 것처럼 뜨거웠다. 몸부림은 차츰 가라앉았고 두 눈은 천천히 감겼다.
안나가 반항을 그치자 태자는 어깨를 잡고 있던 두 팔을 풀어 그녀의 등과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던 여인을 부드럽게 포옹하는 그 모습을, 양소목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핫핫핫! 어찌 그 자리에 양소목이 있었느냐?”
폭소를 터트리는 내 앞에서 은이가 겸연쩍은 모습으로 얼굴을 붉혔다.
“양소목이 추적에는 귀신이라는 사실을 소자가 그만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다른 익위사 관원들이 눈으로 저희를 찾는 사이, 말발굽 자국을 읽으면서 뒤를 쫓았지 뭐겠습니까.”
미주에서부터 은이를 돌본 양소목은 본래 사냥꾼 출신이다. 땅에 찍힌 말 발자국을 보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 사람이 타고 어느 정도 속도로 달렸는지까지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몰라도, 양소목이 따라간 이상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럼 입만 맞추고 끝났겠구나.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아쉬웠겠도다.”
“양소목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해도 뭔가 더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소자가 도덕을 배우지 못한 것도 아닌데 어찌 잉화도에 사는 천것들처럼 들판에서 여인과 야합하겠습니까.”
잉화도(仍火島)는 현대에 말하는 여의도다. 잉화도에는 황실에서 필요한 고기를 공급하는 목장이 있는데, 그곳 관리를 맡은 관노비들은 풍기가 문란하기로 악명이 높다. 일반 사회와 떨어진 섬에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 살다 보니 도덕 관념이 옅어진 탓이다.
“그래, 알겠다. 안나 그 아이는 마음을 허락했다는 말이지. 그럼 그 아비인 이영선과 이미 안나와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는 세묜은 어쩔 생각이냐. 혹시 짐이 없는 동안 그 둘과 이미 결착을 보았느냐?”
세묜은 탈라스의 아들이다. 성격이 단순한 편이라, 도리어 사고를 칠 위험성은 더 크다. 원래 단순한 애들이 화나면 더 무서운 법 아니던가.
“이런 일은 아바마마께 허락부터 받는 것이 순리겠기에 이영선에게는 아직 직접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세묜은 따로 만나 제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부디 양보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뭐라 하더냐?”
“아냐에게 ‘너는 누구와 혼인하고 싶으냐? 진심을 말해달라’고 묻더니, 아냐가 ‘나는 수년 전부터 태자 전하를 연모했었다’라고 답하자 알겠다고 하며 자기는 물러나겠다 하였습니다.”
“그놈 진정 사내로구나.”
물론 세묜이 안나를 놓고 은이와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칼을 들고 결투를 할 수도 없을 테고, 혼담이 오가는 관계였을 뿐이지 정식으로 혼약을 맺은 것도 아니니 선약을 주장할 수도 없다. 이고르가 다음 황제의 ‘장인’이 될 기회를 버릴 사람도 아니다.
여기에다 안나의 마음까지 은이 편으로 갔으니, 모든 면에서 불리한 세묜으로서는 안나를 포기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세묜은 그렇게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는 대신 그저 안나의 마음을 한 번 확인하고 미련 없이 물러섰다. 이게 어찌 사나이가 아니겠는가.
“알겠다. 너희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라 하니 이 아비도 말리지 않으마. 하지만 너희도 명심해야 할 원칙이 있다. 네가 보위를 물려받을 태자인 이상, 꼭 지켜야 할 조건이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아바마마.”
“첫째, 네가 아무리 후궁을 총애한다 해도 정처인 태자비를 존중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자비는 장차 이 나라를 안에서 지탱할 중전이 될 테고, 네 후계자를 낳을 사람이다. 마땅히 너는 네 아내를 존중하고 그 지위를 지켜주어야 한다.”
숙종이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를 오가며 벌인 비극은 이쪽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된 거지, 똑같은 참극이 내 자식의 손으로 벌어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네 후계자는 중전이 낳은 적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이 대한이 생겨난 이래 깨지지 않은 법도이며, 국체를 안정되게 유지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다.”
적장자 계승이라는 원칙이 무너진다면 그때부터 닥칠 미래는 사방에서 피가 흐르는 내분, 그것뿐이다. 황자들 간에 세력을 키워 정쟁을 벌이고 군대를 모아 내란까지 벌일지 모른다. 이 나라에서 그런 망국적인 사태가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를 굳게 지킬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꼭 명심하겠습니다.”
태자와 태자비 사이는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 큰 호감은 없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참 남성호르몬이 발달할 시기에 다른 여자에게 잠시 관심이 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고.
시대가 그런 행동을 허용하는 시대이니 은이를 야단치거나 할 생각은 없다. 적절한 선을 지키도록 주의를 환기하고 옆에서 지켜볼 뿐.
“자, 술 한 잔 받거라.”
“아바마마께서도 받으시옵소서.”
부자간에 오가는 약속을 뜻하는 술잔이 쨍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달콤한 술이 기분 좋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 10 –
“태자가 경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고 싶다고 하는데, 이 부령의 의견은 어떤가.”
“어찌 싫다 하겠습니까. 기꺼이 보내겠습니다.”
이고르는 내 질문을 받고 3초도 되지 않아 냉큼 대답했다. 이고르도 한화(韓化)가 제법 된 친구다 보니, 황실과 연을 맺을 기회가 오자 전혀 사양하지 않았다. 탈라스가 똥 씹은 표정을 짓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하오나 폐하, 이 부령의 딸은 제 아들과 혼담이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태자께서 아무리 신분이 높으셔도 어찌 남의 정혼자를 가로채려 하십니까?”
“아닙니다, 폐하. 두 사내가 동시에 구애했을 때, 어느 쪽을 고를지는 여자 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꼭 먼저 이야기가 오간 상대와 혼인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점찍어둔 며느릿감을 빼앗기게 된 탈라스와 더 좋은 혼처를 택하려는 이고르 사이에 터진 언쟁은 꽤 격렬했다. 삼자대면할 장소로 사람이 없는 곳을 고르길 잘했다.
나도 끼어들 수 없었지만, 심판 삼아 데려온 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 그런지, 내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히죽거리며 구경할 뿐이었다. 아니, 도리어 기름을 왕창 들이부었다. 이 자식아, 내가 그러라고 널 데려온 게 아니야!
“안나가 태자 전하를 택했다잖아! 세묜도 군말 없이 물러났는데 당사자도 아니고 애비가 왜 난리야?”
“닥쳐, 보리스 이 자식아!”
“그쯤 해두어라. 이제 서로 더 할 말도 없지 않으냐.”
사태의 근원은 내 자식놈이지만, 정작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건 이 둘이 되었다. 그놈의 아비로서 참으로 미안한 상황이 되기는 했다.
“단 부령 ? 탈라스의 한국 이름이 단나수다 ? 과 그대의 아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 되었다. 대신에 짐이 책임지고 좋은 규슈를 물색해주겠으니, 부디 화를 풀어주기 바란다.”
이들도 30년 가까운 세월을 나와 함께한 친구가 아닌가. 솔직히 내 형제라고 부르기에는 예왕 따위보다는 이 카자크들이 더 어울린다. 그러니만큼 이런 문제로 사이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폐하.”
탈라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는지 고개를 숙였다. 대충 일단락된 듯하여 잠시 한숨을 쉬고 앉아있던 나무둥치에서 일어났다.
“입궁은 가을에 옹주의 혼인이 끝난 뒤가 어떠한가?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준비하겠습니다.”
싱글거리던 이고르가 냉큼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오르는데 문득 은이와 주고받은 대화 한 토막이 생각났다. 그놈이 프로포즈를 하면서 왜 그따위 멘트를 던졌는지 물었었다.
‘정인(情人)에게 건네는 밀어(蜜語)라면 훨씬 달콤하고 정다운 말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함께 말을 달리고 활을 당기자 하였느냐?’
‘미주에 있을 적에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린 마음이지만 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고 부러웠사옵니다. 하지만 태자비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니 어쩌겠습니까.’
나하고 상희가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던가. 하기야 태자비 한씨는 규중에서 곱게만 자란 요조숙녀라 은이가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기는 무리다. 어쩌면 은이에게 있어서 한씨는 올렝카, 안나는 상희와 같은 위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