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49
3부 367화
그 문제로 처음 조정에서 논의가 오갈 때, 공부대신 권기선은 준이가 분가할 때 하사해준 2만 석에 달하는 토지를 심양 일대로 모아주자고 했다. 그러면 심왕부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입일 테고, 심왕이라는 작위에 어울리는 봉지가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의견은 조정에서도 별 동의를 얻지 못했고, 중추원에서는 대놓고 반발을 샀다. 중추원에 있는 노신들은 자주 얼굴 볼 일도 없는 까마득한 후배라고 그러는지 아주 대놓고 권기선의 제안을 깠다.
‘심양은 요동주의 중심으로, 군사와 정치의 요지입니다. 이 중요한 고을과 막대한 그 주변 토지를 심왕부에 봉지로 내리신다면 이는 우리 조정에서 요동주를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어 장차 요동주는 물론이고 그 너머에 있는 요서주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심양 주변의 토지는 북방군에서 필요한 군량을 조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를 심왕의 봉지로 내리신다면, 만약에 불순한 마음을 품은 자가 장차 심왕 자리에 올랐을 때 차마 말로 하기 망측한 사태가 닥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나 역시 처음 임금 자리에 올랐을 때부터 그런 사태를 걱정했기에 절대 분봉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아무리 총애하고 충성스러운 자식이라도 몇 대 내려가다 보면 그런 마음 따위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테니까.
애초에 우리 땅이 아니었고, 변방의 요지이기는 해도 대한의 안위에 필수적인 땅이 아닌 하와이나 조홀국 같은 곳이라면 번국으로 두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미주왕이나 만주왕 같은 건 절대로 안 된다. 그 일부라도 안 된다.
심왕은 장조와 연관된 세 나라의 계승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정치적 독자성을 갖는다. 그 지위를 활용해서 독립왕국을 가지고 싶어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 정도면 약과고, 어쩌면 처가나 외가의 영향으로 청나라나 후금 쪽으로 돌아서 버릴 위험도 있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심왕도 전주 이씨이므로 우리와는 이제 혼인할 수 없다. 격을 생각하면 심왕부의 혼인 상대는 계속 건주 황실 양쪽 중 하나일 테고, 후대로 갈수록 우리 황실과는 유대감이 더 멀어질 위험이 있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심양 주변에 봉지를 몰아주는 건 악수 중에서도 악수가 될 수 있다. 장래 심왕 자리에 오른 자가 봉지를 기반으로 자기 군대를 양성해 위세를 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처치하기 곤란해진다.
중추원의 지지도 있어서, 준이에게 내린 토지는 전국에 흩어진 채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심왕부에는 은행을 통해 돈이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고로 우리가 처리할 일은 제법 오래 빈집이었던 탓에 좀 퇴락한 심양행궁을 수리하는 정도만 남았다.
다만 우리 처지에서는 심왕 책봉이 그리 서둘러서 처리해야 할 일도 아니고, 내가 남순을 나갔던 데다 올해 가뭄도 들고 해서 느긋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파사합 쪽에서는 몸이 달아서 아달례를 보내 나를 재촉하려는 모양이다.
‘혹시 이 건을 이용해서 콜레라로 나빠진 자국 민심을 진정시키고 자기 위신을 세우려는 의도인가.’
작년에 후송을 통해 전파된 콜레라는 북경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송과 접경한 남부 일대에서 확산하면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집계가 조금 미진한 탓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감염자 수십만에 사망자는 십만 정도 나왔다.
우리가 보내준 경구수액 처방전 덕분에 그나마 피해가 많이 줄었다지만, 그만하면 상당한 손실이다. 돌림병도 군주의 부덕 탓으로 치부되는 게 중원과 대한의 전통이다 보니, 아무리 건주 출신이라고 해도 파사합이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내정에서 깎아 먹은 점수는 외정에서 메워야 한다. 하지만 콜레라로 큰 피해를 낸 형국에 후송 원정을 시도할 수도 없으니, 심왕부 개설과 대한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얻은 외교적인 성과를 백성들에게 자랑할 심산인 모양이다. 어디, 물어나 볼까?
“그런데 중통제(파사합)는 어떤 연유로 심왕의 책봉을 서두르는가? 세 황가 모두 자손이 번성하니, 당장 후사를 걱정할 상황도 아닌데.”
“후사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므로 서로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급하게 후사를 정해야 할 때가 오면 다들 눈이 뒤집혀서 의논이고 뭐고 나눌 수도 없을 겁니다.”
“저도 회친왕의 의견이 옳다고 봅니다. 이런 일은 여유가 있을 때 매듭을 지어야지요.”
악이박이 아달례 편을 들었다. 회친왕(匯親王)은 아달례의 작호다.
“심왕부를 일찌감치 만들어서 그 위치를 확고하게 해 두어야 필요할 때 바로 데려와도 그 권위가 설 겁니다. 갑자기 만들어서 전통도, 역사도 없는 심왕의 후손을 옥좌에 앉힌다면 누가 그 뒤를 따르겠습니까?”
“그대들이 하는 말이 틀리지는 않는군.”
이들은 그 뒤에도 심왕 책봉을 미룰 수 없는 사정에 관해 주거니 받거니 하고 돌아가면서 내게 설명했다. 자기네끼리 꽤 여러 번 사자를 주고받았다더니, 이걸 하자는 데는 확실히 합의를 본 모양이다.
하지만 승계의 기준이 되는 그 ‘대가 끊어진’ 상태가 정확하게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는 여전히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이걸 보면 역시 우리 세 나라 간 우호동맹의 상징으로서 심왕을 세우려는 게 진짜 속뜻 맞는 듯하다.
“알겠네. 그동안 우리 사정으로 미루었던 심양행궁의 수리를 서둘러서 완친왕이 하루빨리 심왕으로서 착좌할 수 있도록 하지.”
“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논의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달례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제안을 또 내놓았다.
“대한 황실에서 봉하는 심왕 지위는 존귀하고도 존귀한 지위가 맞습니다. 하지만 세 나라 황위를 모두 계승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를, 그저 폐하께서 문서 한 장으로 임명하시는 건 좀 앞뒤가 안 맞는 구석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통제가 그대를 통해 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바로 하도록 하게. 공연히 말을 돌려서 시간만 허비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폐하. 저희 황제께서 제안하시기를, 이런 중요한 일은 마땅히 세 나라 군주 모두가 모여서 함께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천하에 공언함으로써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놀라서 답을 하기도 전에 악이박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대칸께서도 그 말이 옳다고 동의하셨습니다.”
뭐야, 그러니까 대한 태황과 청나라 황제와 후금 대칸이 모두 심양에 모여서 회맹을 맺고 세 황가를 모두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로 심왕을 뽑아 공동으로 책봉하는 의식을 치르자는 말인가? 그런 게 전례가 있기는 한 행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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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이 한곳에 모여 특정 직위를 계승할 후계자를 선정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신성로마제국이나 폴란드가 하는 선거군주제도 있고, 신라의 화백회의나 바티칸에서 하는 콘클라베, 몽골에서 여는 쿠릴타이 등이 모두 그런 사례다.
심왕부 개설에 참여하는 다른 두 나라인 후금과 청의 혈통에 보르지긴 씨족의 피가 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이건 그중 쿠릴타이에 가장 가깝다고 하겠다. 여기서 뽑는 직위가 우리를 모두 지배할 대칸이 아니라 공동 계승권을 갖는 세습 친왕가라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다.
“알겠다. 조정에서 논의해 보겠다.”
당연하지만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가부를 답할 수가 없다. 어차피 혼례 때문에 온 이들은 내년 봄까지 반년은 도성에 머물 것이기에 논의할 시간은 충분했다. 내가 신뢰하는 신하들 및 종친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의할 시간도 말이다.
“도리를 따지자면 저들의 요구가 그른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 황제와 후금 대칸이 심왕을 양자로 들이는 셈이니, 우리가 심왕을 보내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도 양자를 들여서 승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좌승상 김회정은 묵직한 얼굴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좌승상은 외교를 담당하지만 정작 김회정이 육부에 있을 때는 형부대신으로 꽤 오래 재직했다. 그 탓인지 외교에 관해서도 꼭 법을 다룰 때처럼 조문과 도리를 철저하게 따졌다.
“그런 책봉 절차는 각자 본국에서 하고 심양에는 서면을 휴대한 대관만 보내도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수고와 위험을 무릅쓰면서 세 나라 군주가 모두 심양에 모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인데.”
“이 일만 놓고 보면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습니다만, 지금 건주 양국은 우리 대한이 자기들과 도저히 뗄 수 없는 깊은 사이가 되었음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되물리지 못하게, 심왕부 설치에 관해 완전히 동의를 받은 뒤에야 제안한 것이지요.”
“신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저들이 이리 나오리라고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신들의 죄가 실로 큽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성시균을 필두로 한 조정 대신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런 꼴도 ‘이게 다 폐하께서 부덕하신 탓이옵니다!’라는 원망만큼이나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라, 그냥 손을 저으며 다들 일어나라고 했다.
“되었으니 일어나라. 저들이 이런 제안을 해오리라고는 지난 1년 동안 짐도 전혀 생각을 못 하지 않았느냐. 짐도 떠올리지 못한 일을, 그대들이 떠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다들 일어나서 앞으로 어찌 대하면 좋을지나 논하여라.”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북쪽인 심양에 세 나라 군주들이 모인 사이에 남방에서 변란이라도 터진다면 큰일이니 안 된다는 소리도 있고, 이참에 건주 양국을 아예 우리 밑에 집어넣자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의견도 나왔다. 하도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지만, 이건 좀 심하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번에 남순을 나가서 일본국 대군을 만나고 왔듯이, 북순을 간 김에 청제와 대칸을 가볍게 만나고 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
묘당에서는 며칠을 두고 세 나라 군주가 만나는 자리의 정치적 의미와 그로 인한 영향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참고 듣다 보니 이게 자꾸 뭔가 필요 없는 이야기로 번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떠올린 생각을 밀어붙였다.
“우리 세 나라는 모두 장조께서 남기신 피를 받은 후예로 형제와 같으니, 복잡하게 따질 것 없다. 청제와 대칸도 모두 태자 시절에 도성을 찾아와 장조께 제사를 올리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우리 강역인 심양에서 짐이 저들을 한 번 더 보는 게 뭐 대수겠느냐?”
심양행궁 이외에 심양 일대 토지는 심왕부에 속한 봉지로 하지 않기로 했다. 심양 자체는 계속 우리 대한의 영토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로 순행을 나갔다가 파사합과 와극달을 만나 심왕부를 개설하는 용무를 처리하면 일이 훨씬 단순해진다. 이번에 다녀온 남순과 똑같다.
“확실히 그리하시면 훨씬 부담이 덜하긴 합니다.”
“신들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폐하께서 이미 배를 타고 수천 리 남순을 다녀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순행을 나가시라고 권하기는 너무 불경한 듯해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당장 순행을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 마침 올해 닥친 가뭄이 북도에도 꽤 피해를 주었으니, 그 피해를 살필 겸 내려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 피로도 피로지만, 남순에 쓴 막대한 경비도 중신들 눈에는 달갑지 않을 거다. 남순에 나가서 쓴 돈이 한두 푼이었어야 말이지. 북순을 나가면 또 얼마나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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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흉년이 든 뒤에 순행을 나가신다면 백성들이 어가를 모시느라 큰 부담을 치러야만 하옵니다. 북순을 결정하시더라도 그 실행은 잠시 미루소서.”
역시나 모두가 북순에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전임자 신용헌이 좌참찬으로 올라가고 새로 취임한 호부대신 홍정원은 북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홍정원은 호부 업무라면 마치 컴퓨터와 같은 사람이다. 어떤 수치나 자료든 묻기만 하면 5초 안에 답이 나왔다. 지난번 남순에 관한 자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하께서 남순에 동원하신 배 13척이 구주까지 왕복하는 항해 비용, 아산부터 시작하여 삼남 각 고을과 제주도?북구주?일기도?대마도 등 기항하는 곳마다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푼 비용, 하사품 준비에 들어간 비용, 대군에게 거저 넘겨주신 운구선 값….”
잠자코 듣고 있으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점만 간략히 말하라고 했다.
“알겠다. 그래서 이번 남순 경비 총액이 얼마였지?”
“11만 7922냥입니다. 남순 기간이 72일이셨으니 하루에 1천 6백 냥씩 쓰신 셈입니다. 그나마 수로로 움직이셨기에 돈이 덜 들었지, 육로로 가셨으면 30만 냥은 너끈히 들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각 고을에서 들이는 비용을 포함해서 말이옵니다.”
2등 대선 한 척을 건조할 수 있는 액수를 여행 경비로 썼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다 필요해서 쓴 통치비용이다.
협상 파트너인 요시무네가 나보다 훨씬 돈을 덜 들인 건 조금 배가 아프다. 함대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도 전국에 있는 영주들이 절반을 분담했고, 여행 경비도 도중에 있는 각 번이 알아서 맡았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게 다 지금 일본이 봉건제 국가라서 그렇다.
“대군은 모든 영주를 지배하는 주군이라, 각 분국을 다스리는 신하들이 주군을 위해 여행 경비를 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원래 세계에서 조선 통신사를 대접하는 비용을 통신사가 지나가는 각 번에서 부담한 것과 마찬가지다. 막부의 지출을 절약하면서 각 번의 재정은 악화시키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술책이다. 하기야 우리도 숙식비 정도는 지방 관아에서 부담하긴 했다.
“폐하께서 혹시 북순을 나가려 하신다면 내년 작황을 살펴 풍흉이 닥치는지를 꼭 확인한 뒤에 나가소서. 오늘이 벌써 9월 10일, 상강이 이미 아흐레 전이었으니 올해는 나가시기에 늦었고, 봄에 나갔는데 혹 흉년이 된다면 실로 엄한 결과가 나오리라 사료되옵니다.”
상강(霜降)은 24절기 중 18번째 날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이다. 추수를 끝내고 겨울맞이를 시작하는 때라, 무종 때 순행처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건 몰라도 북방으로 올라가는 건 어렵다. 게다가 건주 양국과 언제 어떻게 만나자는 협의도 안 되었다.
참, 여기서 9월 10일은 당연히 음력이다. 오늘은 양력으로는 10월 31일이다.
“봄에 공주께서 후금으로 떠나실 때 폐하와 완친왕 전하께서도 동행하시면 되지 않겠소? 심양까지 가는 길에 도중에 있는 각 고을 형편을 돌보시고, 심양에서 건주 양국과 회맹하신 뒤 수로로 도성까지 돌아오신다면 시간과 비용을 가장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오만.”
“공주께서 신행하시는 행렬에 폐하와 완친왕 전하까지 동행하신다면 그 규모가 얼마나 더 커지겠습니까? 내년 농사가 흉작일지 아닐지 알 수 없는데, 그런 대규모 행렬을 움직인다면 필시 백성들이 좋지 않게 볼 것입니다. 부디 북순은 내년 가을로 미루소서.”
아무 말 없이 곰곰이 앉아서 듣기만 하던 성시균이 홍정원 편을 들었다.
“호부대신의 말이 옳사옵니다. 공주께서 북으로 가시는 일은 피할 수 없으니 예정한 대로 봄에 시행함이 옳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북순하심은 굳이 봄에 나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 수행원 규모를 줄이고 줄이더라도 천 명 이하는 어렵다. 여기에 심왕부 개부(開府)를 위해 동반할 인원과 부수를 수행하는 후금인들과 율리아의 시종들까지 합치면 적어도 3천 명이다. 이만하면 도중에 있는 여러 고을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줄 만한 규모이긴 하다.
일본이야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용 부담을 중앙정부에서 각 번으로 떠넘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다 내 땅이고 그 위에 사는 이들은 모두 내 백성이니까.
“알겠다. 건주 양국에는 내년 가을로 회동을 미루자고 하겠다.”
성시균의 말마따나, 급한 건 우리가 아니다. 느긋하게 시간을 갖고, 심왕부의 지위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조건을 확립한 뒤에 회동하는 자리를 갖는 편이 낫겠다. 내년에 혹시 또 심한 가뭄이 닥치면…내후년에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