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53
3부 371화
물론 후송제 철갑선을 보고 감탄만 하고 논의를 끝낼 수는 없다. 그놈들의 위협에 대처할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어떤가, 해군대신. 후송 철갑선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겠는가?”
“저들이 선체에 붙인 철판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기갑선보다 두껍지는 않겠지요. 18근 포 이상 가는 중포로 두들기면 어렵지 않게 부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약점도 있다. 후송 놈들이 선체를 너무 크게 만든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선체 측면과 달리 갑판에는 철판을 붙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소이탄두를 장착한 대신기전을 쏴서 갑판에 불을 지르면 철갑선이라 해도 곧바로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싸우게 되면 상대할 방법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후송에서 만든 어설픈 철갑선 따위야 몇 척을 끌고 나온들 우리 해군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송재권에 이어서 육군대신이 된 양대헌도 문관 출신이다. 내가 전부터 장수보다 행정관을 대신으로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군대신인 이세진은 이들과 달리 대한수군통제사까지 지낸 노련한 장수다. 당연히 직접적인 해군 전술에도 밝다.
“혹시 급습당해 밀린다 해도, 주산진에는 우리 수군이 구축한 진보 20여 개가 있습니다. 작은 보루를 제외하고 규모 있는 성채만 따져도 4개나 되지요. 그 성들은 구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능히 버틸 것이니, 설사 저들이 기습에 성공한다 해도 곧 격퇴할 수 있습니다.”
주산진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남도 주둔 함대와 제주도 주둔 함대가 바로 나서게 되어있다. 필요하면 본국에 있던 함대도 증원에 나서지만, 과거 후송이 주산진을 공격했을 때의 기록을 보면 본국 주둔 함대까지 나서야 했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알겠다. 그럼 후송 측이 이번 시위를 통해 내비친 밀의(密意)에 우리가 어떤 답을 보내 답할지만 남았구나.”
후송에서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대답이야 심왕 책봉을 취소하고 후송과 깊은 인연을 맺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후송과 깊은 사이가 되는 건 궁극적으로는 후송의 북벌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로 빠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형서는 우리는 물론 서나라와도 관계를 개선했다. 하지만 청나라를 대상으로는 관계를 회복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조승복으로부터 내려온, 화북을 탈환하여 중원일통을 이루겠다는 숙명적인 소망 때문이다.
“이제는 후송 조신(朝臣)들도 다들 강남에 있는 자기 기반을 지키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북벌에 소극적인 자들이 대부분이건만, 황제는 여전히 북벌을 기치로 삼는구나.”
“신하들도 명목상으로는 다들 북벌에 찬동합니다. 그저 이런저런 핑계를 붙이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꽁무니를 뺄 뿐이지요. 중원의 정통 천자를 자처하는 후송으로서는 북벌을 포기하는 건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쉽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대한이 원래 세계 조선처럼 복명(復明)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냥 후송과 협력해서 청을 치면 된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중국을 갈라놓아야 한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편도 대놓고 들지 않는다. 이건 내 후계자들에게도 DNA 레벨로 각인해놔야 한다.
“우리는 후송과 힘을 합쳐 건주를 치지 않을 것이지만, 건주와 힘을 합쳐 후송을 치지도 않을 것이다. 계속 지금처럼 지낸다고 하면 저들도 만족할 터인데, 문제는 그 뜻을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거다. 그대들은 어떤 방법이 좋을 듯한가?”
철갑선까지 동원한 무력시위에 우리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놈들은 우리가 뭔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강도를 올리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버려 두다가 저들이 너무 심하게 도발하면 적절히 응징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필요 없는 싸움은 안 하는 편이 좋지 않으냐.”
전열함이 일제사격 한 번씩 할 때마다 돈 보따리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해군 확충에 철도 부설, 밀리고 밀린 용산별궁 건축 등 돈 들여서 할 일이 사방에 쌓여 있는데 안 해도 되는 전쟁으로 헛돈을 쓰고 싶지 않다.
“폐하께서 친서를 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신은 반대입니다. 겨우 저들이 전선 한 번 움직였다고 친서를 보내신다면 우리가 저들의 움직임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후송 측이 착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차후에 더 곤란한 상황에 몰릴 수 있으니, 절대 그리해서는 안 되리라고 봅니다.”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제시되는 안마다 반대가 빠지지 않고 붙었다.
“저들이 배를 내보내 시위를 벌였으니, 우리도 전선을 장강에 넣어서 저들에게 시위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대는 폐하께서 필요 없는 싸움은 피하자고 하신 말씀을 벌써 잊었소? 장강은 입구부터 후송의 권역인데, 그 안에 우리 전선을 넣는다면 이는 곧 싸움을 거는 일이오.”
신하들이 열심히 논의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옛날에는 저런 과정 없이 내가 전부 결정하고 다들 따라오기만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것도 기운이 넘치던 시절 이야기다. 이젠 굳이 내가 안 해도 되는 것까지 하고 싶지 않다.
“폐하, 그냥 특별한 것 없이 하던 대로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상해에서 사들이는 목화와 쌀, 견사의 양을 줄이지 말라고 외수사에 명하시고, 그 매매계약을 올해 한 해만 유지할 게 아니라 3년이나 5년에 걸친 장기로 하여 송주가 안도감을 느끼게 하라 하소서.”
“음, 재무대신의 의견이 괜찮은 듯하다.”
재무대신 홍정원의 제안은 ‘협력은 이익을 공유할 때만 가능하다’라는 내 신조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외수사가 맺은 거래계약은 전쟁이 터지면 휴지가 되니, 장기에 걸친 물품공급 계약을 맺는다는 건 전쟁을 벌일 의사가 없다는 확실한 표지다.
“우리야 딱히 후송과 싸울 뜻이 없지만, 반대편에 있는 서나라 쪽은 어떠냐? 그쪽에서도 지금까지처럼 평화를 유지할 의사가 있느냐?”
“연로한 황제에게 자리를 물려받은 후계자가 권좌를 안정시킬 때까지, 한동안은 서나라도 별다른 소란 없이 조용할 것 같습니다.”
외무대신 유명홍이 고개를 조아렸다. 윤시현이 예부대신으로 있던 시절에 밑에 두고 외교 업무를 함께 진행하던 인재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들어 서나라 영창제가 기력이 쇠하여 드러눕는 날이 많다 하옵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씩이나마 실권이 태자에게로 넘어가고 있는데, 태자가 그동안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장차 나라를 어찌 끌고 갈지 잘 모르겠사옵니다.”
그래, 그럴 때가 되기는 했지. 같이 시작한 후송은 군주가 벌써 4대, 건주 양국은 5대를 내려왔는데 서나라 혼자 2대 아닌가. 그쪽도 세대교체를 할 때가 됐다.
– 8 –
서나라 황제 장형운은 1641년생으로, 겨우 15세인 1656년에 반정을 일으켜 이복형들을 제거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군사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밑바탕 삼아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55년을 통치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나라에서 장형운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70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고 지도력도 쇠했다. 그러자 후계자 지위를 놓고 노골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영창제는 환갑을 지낸 뒤에야 장자를 황태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황자들 사이에서 황태자의 권위가 그리 강하지 못하고, 경쟁이 심합니다.”
서나라 후계 문제에 관한 윤시현의 설명을 듣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아니, 40년이 넘게 나라에 황태자를 두지 않았다는 말이냐? 자기가 갑자기 횡액을 당해 요절하기라도 하면 후계는 어쩌려고? 실로 무책임한 처사로다.”
서나라 궁중비사 따위 그동안 별 관심 없었다. 코앞에 있는 후송과 건주 양국 일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서나라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그놈들과 싸우는 사이도 아닌데.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고 보니 이쪽도 웬만한 막장드라마 못지않았다.
장형운이 태자 책봉을 계속 미룬 건 자기 권력을 넘겨주기 싫어서였다는 게 우리 조정의 중론이다. 그 자신이 스스로 제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선대의 결정에 따라 지존 자리에 오른 보통 군주들보다 그 자리에 대한 집착도 훨씬 강하다고 말이다.
태자 책봉만 미룬 게 아니다. 황자들에게 어떤 직책도, 실권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지금 생존한 일곱 황자 모두 누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하나도 검증이 안 된 상태다. 우리도 모르지만 서나라 조정에서도 잘 모를 거다.
“남은 황자 여섯 중에서 확실한 태자 편은 동복동생인 여섯째 황자 청왕(靑王)뿐입니다.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외가와 처가의 손을 잡고 자기 세력을 넓히는 데 골몰하고 있어서, 부황이 죽는 즉시 황자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난이 일어날 공산이 큽니다.”
장형운은 자기 권좌가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판단하자 정치적 동맹을 얻기 위해 황후부터 들였다. 사천 출신 황후 덕분에 쉽게 수도 인근의 민심을 얻자, 후궁도 서나라를 구성하는 여러 민족으로부터 골고루 들였다. 호족 출신 아내를 29명이나 둔 왕건처럼 말이다.
장형운이 권력을 확고하게 잡았을 때야 이것도 나쁠 게 없었다. 서나라 모든 주요 세력이 장형운을 지지했으니까. 하지만 황제가 늙으면서 후계자 지위를 놓고 벌어지는 아들들 간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각 민족이 자기네 피를 받은 황자를 도와 으르렁거리게 되었다.
황태자는 황후 소생이다. 하지만 황후가 혼인하고 낳은 첫아들은 어려서 죽고, 딸만 둘을 낳은 뒤에 다시 낳은 아들인지라 실질적인 적장자지만 아들 일곱 명 중에는 셋째다.
“서장자인 백왕(白王)은 외가가 옛 대리국 왕족인 백족(바이족)이고 차자인 적왕(赤王)은 외가가 광동에서 세력을 잡은 객가입니다. 그 아래 황자들도 다들 만만찮은 외가를 배후에 두고 있으니, 사천 세력이 태자를 지원해도 제압하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형운은 그 자신이 서자였기 때문에 적서를 구분하는 데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태자는 적자를 우선하기는 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황자들을 출생에 따라 차별하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 정치적 권한은 아무에게도 안 주고, 재물은 모두에게 풍요롭게 지낼 만큼 주었다.
“태자가 정사를 일부 돌본다고 하나, 정식으로 대리청정을 하라는 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부황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 잠시 도장이나 찍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다음날 부황이 정사를 돌보러 나오면 바로 뒤집히기 일쑤지요. 그런데 어찌 태자의 영이 서겠습니까.”
“그것참, 영창제가 자기가 재위하는 당대는 태평성대로 유지했을지 몰라도 후대는 완전히 망쳐놓았구나.”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장형운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했는데, 후계를 그따위로 망쳐놓다니.
“청나라나 후송은 모두 별 내분 없이 제위가 태자에게 넘어갔건만, 유독 서나라만 난리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지금 서나라가 적이 없으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 배가 부르고 여유가 있으니 황제 자리를 두고 내분이나 벌이는 것이지.”
가장 큰 잠재적국이라고 할 후송은 건주 세력과 싸우느라 서나라 쪽에는 뇌물까지 주면서 충돌을 막고 있다. 배후에 있는 준가르는 사방이 적국이다 보니 서나라만 딱히 적대하지는 않고, 그나마 요즘은 준가르부와 코슈트부가 내란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다.
“청나라 역시 유사시에 서나라가 후송의 배후를 찔러 주기를 바라는 탓에 서나라를 직접 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청서 국경은 온통 통행이 힘든 산악지대가 아니냐. 짐이 청제라고 해도 군사들을 산귀신에게 제물로 바쳐 가면서 서나라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서나라가 우리하고 좀 떨어져 있어서 그쪽에 난리가 나도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하지만 후송이 서나라를 삼키고 덩치를 더 키우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놈들이 계속 안정을 유지해 주기는 해야 한다.
“정가군이 아직 서나라 안에 남아있었으면 그놈들을 움직여서 황자 중 하나를 지원할 수 있었겠다만….”
정가군이 내분으로 몰락한 뒤 서나라 해안 대부분은 왕가군 세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왕가군은 계미남변에 말려들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놈들의 뒤통수를 치고 영란 해군과 합동으로 2년에 걸친 토벌전을 벌이며 치명타를 입었다.
장형운은 왕가군이 세력을 잃자 곧바로 태도를 뒤집었다. 왕가군에 내렸던 직책과 권한을 모두 회수하고 관군으로 그 본거지를 토벌, 광동 및 광서 일대 해안을 황제가 직접 통제할 기미를 보였다. 수군 역시 새롭게 창설했다.
“허나 황제의 와병으로 본격적인 진전은 멈추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영국 동인도회사와 협력하여 수군 재건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장형운이 노환으로 앓아눕기 시작했다. 그러니 사업도 진전이 멈출 수밖에. 서나라 수군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앞으로 누가 제위에 올라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
“황자들이 처가나 외가의 힘을 빌리는 외에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보위를 손에 넣으려는 기색은 없는가?”
“아직 부황이 살아있어서인지, 대놓고 외부와 연계하는 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제위에 오르기 위해 형제들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제거한 장형운의 성격이라면 외세를 끌어들여 ‘반역’을 도모한 아들 정도는 서슴없이 처단할 수 있을 거다. 아마 뒤에서 뭔가 꾸미는 놈이 있더라도, 외부자인 우리가 알아챌 정도 수준이 아니겠지.
“폐하. 누가 제위를 잇건 그건 서나라 내정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괜히 개입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예무대신 이정현이 진언했다. 국가 제례를 담당하는 관청인 봉상시 도제조를 맡던 관리로 말 그대로 예법 전문가다.
“혹시 돕는다면 마땅히 정식으로 책봉된 태자를 돕는 것이 도리입니다. 눈앞의 짧은 이득 때문에 눈이 멀어 역적을 도와서는 아니 됩니다.”
“알겠다. 그대의 말을 새겨들으마.”
예가 어쩌고 도리가 어쩌고 하는 간언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이런 성향이 강한 양반들은 국가 시책에 직접 영향을 못 미치는 봉상시 같은 곳에 집어넣어서 그동안 만나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예무부 창설 덕분에 대신 감투를 쓰고 어전회의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서나라 쪽도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끼어들어서 뭔가 하고 싶어도 그쪽 사정을 아는 게 있어야 끼어들지 않겠는가. 당장 황자들 능력이나 성향 같은 것도 하나도 모르니까 말이다.
“권력욕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야. 언젠가 내려놓을 때가 온다는 걸 뻔히 알 텐데, 그러면 나처럼 적당히 내려놓고 후계자한테 넘겨줘 가면서 승계할 준비를 해야지. 죽기 직전까지 태자도 책봉 안 하고 혼자 다 쥐고 있으면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상희밖에 없다. 향원정 수면에 잔뜩 핀 연꽃을 바라보면서 장형운을 비난하고 있으려니, 상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욕심만 버리면 누구든지 할 수 있어. 안정적인 후계 구도를 만들어서 후대에 평화를 누리게 하는 건 군주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야.”
“그래, 그 욕심을 버리는 게 너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 표정에 떠오른 의문을 깨달았는지 상희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이야. 옥좌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기회도 단 한 번이지. 그러니까 그걸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당연해. 아들이라고 해도 다 경쟁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너는 이미 해 봤고, 또 할 거잖아. 그러니까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지.”
“어…그건 그렇긴 하지.”
이번이 세 번째 왕생이다. 이 윤회가 어떻게 해야 끝날지 모르니, 후계자 구도를 망쳐서 나라가 흔들리면 아마 또 있을 가능성이 큰 네 번째 왕생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맞게 된다. 그러니 나로서는 당장 권세를 누리기보다 안정된 후계 쪽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해해. 그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는 한 번뿐인 인생을 실컷 잘살아보겠다고 그러는 거니까.”
바로 대답하지는 않고 입을 다문 채 콧바람을 크게 내쉬었다. 확실히 내가 이 대한이라는 나라를 나와 하나처럼 여기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이 윤회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어떻게 빠져나갈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내가 대범한 태도를 보이는 편이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좋은 건 사실 아닌가 싶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벌인 것 같은 황실 내 갈등은 없는 편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