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59
3부 3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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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은 건주가 입관하기 전에 수도였을 뿐 아니라 옛날 고구려 시대부터 요동을 지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심양을 경주, 평양, 함흥과 더불어 심양부(瀋陽府)로 편제하고 종2품 부윤을 두었다. 본국이라면 13도 관찰사와 동급이다.
옛날 같았으면 요동주 도독이 부윤을 겸임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본국에서도 부윤을 관찰사가 겸임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심양에는 도독과 부윤이 모두 주재한다. 여기에 요동주 병마절도사까지 있으니 심양부는 확실히 중요한 고을이라고 할 수 있다.
병마절도사의 상관은 대한북병사다. 경군을 지휘하는 오군대총관, 본국 13도에 주둔하는 군사를 지휘하는 대한남병사, 수군을 지휘하는 대한수군통제사와 더불어 삼군부를 구성하는 주요 구성원으로, 직급은 정2품 상장이다. 그 윗자리에 있는 장수는 삼군부 도총사뿐이다.
대한북병사는 요동주, 요서주, 연해주, 영락주, 속말주, 부여주에 주둔하는 10만 대군을 지휘할 수 있다. 대한남병사 휘하에 있는 14만 명보다는 적지만, 대신 북병에는 고병이 더 많으므로 전력은 전혀 약하지 않다.
다만 이런 강력한 군권을 쥔 장수를 지방에 보내놓고 조정에서 안심하기는 어렵다. 그런 탓에 정작 북병사 본인은 도성에서 근무하며, 실제로 현지에서 군권을 행사하는 이는 각 주 병력을 직접 지휘하는 병마절도사다. 병마절도사는 종2품 부장으로 각 주 방어사를 겸한다.
병마절도사 휘하에는 산성이나 도시 등에 주둔하면서 직접 군사들을 거느리는 장수들이 있고, 이들의 직급은 참장에서 참령에 이른다. 남변 ? 조만간 그쪽도 ‘모모(某某)주’로 바뀔 예정이기는 하다 ? 에서 용전하고 돌아와 심양에 주재하는 권훤도 그들 중 하나였다.
“폐하께서 곧 도착하신다! 나루를 한 번이라도 더 쓸고 돌멩이 하나라도 더 주워라!”
“예, 참장 나리!”
종3품 참장인 권훤의 직책은 요동주 유군장(遊軍將)이다. 심양에 머무는 유군장의 임무는 요동주 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하는 것도 있지만, 인접한 요서주에 외적이 침범해서 구원을 요청할 때 가장 먼저 지원하러 나가는 것도 있다. 북방을 지키는 막중한 직책이다.
권훤은 계미남변에서 돌아온 뒤 도성에서 한동안 쉬다가 북으로 올라왔다. 본래 대한에서 무장으로 출세하고 싶다면 북방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필수지만, 권훤은 관복을 입은 이래로 북방에서 복무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한 번은 와야만 했다.
“오군대총관 대감처럼 젊을 때 잠깐 왔다 갔으면 좋았으려나….”
권훤이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오군대총관 정호찬은 금상을 모시는 익위사가 되기 전 잠시 북방에 있었는데, 그때 머문 경력만으로 북방에 있었다고 인정받았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총융청 연대장을 거쳐 총융청장, 오군대총관 등으로 순조롭게 승진했다.
오군대총관 휘하 병력은 겨우 6만이다. 하지만 오군영도 병력 절반이 고병이고, 그중에는 전원 고병으로 편성한 최강의 군영인 훈련도감이 있다. 그 중요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권훤 자신은 무관으로서의 역정을 미주 향관으로 시작했으니, 북방에 근무한 적이 없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주에서 복귀하자마자 예왕의 난에 강무관 재학에 계미남변에…북방에 올라올 틈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올라오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여기서는 전공을 세울 기회가 없지 않은가, 쳇.”
처 이씨가 북방은 추워서 싫다고 자식들과 함께 도성에 남은 거야 괜찮다. 지방에 나가는 문무관들이 가족을 도성에 두고 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
아쉬운 건 북방에서는 예전처럼 큰 전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는 점이었다. 피가 섞인 청과 후금 두 나라는 물론이고, 러시아도 이제 국혼을 통해 우호국이 되었다. 국경이 조용해졌다.
이제 북방에서 싸울 상대라고 해 봐야 소소한 도적들 뿐이다. 산과 들을 누비며 도적들을 쫓아 봐야 화려한 전공은 어렵다. 더구나 큰일을 대비해 심양에서 대기해야 하는 유군장이 되어버리고 보니, 그렇게 도적들을 쫓을 기회조차 없다.
이런 와중에도 남변, 필리핀에서는 아직 회교도 해적들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상당히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 전공을 세울 기회도 많다. 종종 조보에 실리는 자응장 수훈자 명단을 보며 한숨이나 쉬어야 하는 권훤으로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남변으로 한 번 더 가는 게 나았을 것 같네.”
권훤은 그새 옆으로 다가온 유군 2연대장 홍진오 부령을 보며 투덜거렸다. 남변에서 함께 싸운 전우인 홍진오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영감, 다른 장수들에게도 공을 세울 기회를 좀 양보하시지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관은 남변을 떠나서 후련합니다. 그놈의 괴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말이지요.”
그는 남변에서 휘하 군사들이 학질을 비롯한 온갖 질병으로 줄줄이 나자빠지던 일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겨울에 좀 춥기는 해도, 병 걸릴 일이 적은 게 훨씬 나았다.
“정 남쪽으로 가고 싶으시면 이번에 폐하께서 오시면 부탁해 보시지요. 이곳 심양에서 별 탈 없이 직무를 수행했으니, 이제 떠나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상황을 봐서 말씀드려 보지.”
권훤이 미주에서 처음 금상을 만나 친분을 쌓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거의 다 됐다. 겨우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았던 홍안의 청년이 이제 마흔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함께한 임금의 성품을 보면, 딱 잘라 거절하지는 않으리라.
“나리! 남쪽에서 연기가 올라옵니다!”
평소에 심수를 운행하는 일반 기선은 한 척씩 다닌다. 저렇게 무리를 지어 강을 올라오는 배들은 어승선을 동반한 함대일 수밖에 없다. 드디어 금상께서 요동을 방문하는 대한의 첫 임금이 되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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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배가 곧 나루에 도착하옵니다.”
선실 밖에 있는 선전관이 소리쳐 알렸다. 잠시 뜸을 들여 호흡을 가다듬은 완친왕 이준이 목청을 크게 돋워 소리쳤다. 이제 목소리도 제법 굵어져서 확실한 사내 티가 난다.
“알겠다. 곧 갑판으로 나가겠다.”
“예, 전하.”
선전관이 멀어졌다. 부황에게 보고하러 가는 길이리라.
“훌륭하십니다, 전하. 앞으로도 그리 당당하게 처신하시면 됩니다.”
왕비 김씨가 웃으며 격려했다. 타고난 성품도 성품인 데다 나이도 다섯 살이나 많은지라 남편보다 확실히 어른스러운 태도다.
“이제 회맹 의식을 치르고 나면 전하께서는 심왕의 자리에 오르십니다. 장조께 피를 받은 대한과 만주 황실의 계승권을 모두 갖는, 아주 중요한 자리지요.”
심왕부 설치가 결정된 이후, 완친왕비 김씨는 전력을 다해서 남편 완친왕에게 만주어와 만주식 예법을 가르쳤다. 심왕부에서는 한어(韓語)를 사용할 테고 예법도 대한 황실에서와 똑같이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주 말이나 예법을 아예 몰라서는 또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왕비, 아바마마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나나 내 자식이 보위를 얻을 가능성은….”
“당연히 폐하께서는 그럴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폐하께서 전하께 ‘너도 보위에 오를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세 황가 중 하나가 당장 대가 끊긴다고 저주하는 말씀을 하시는 거나 같은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친왕비 김씨는 본국을 떠나기 전 부황이 당부한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너를 한의 친왕비로 만들려고 보내는 게 아니라고. 태후께서 심히 반대하시는 바람에 대한의 태자비로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그 이상 가는 자리에 꼭 올려주고 말겠다고 말이다.
“전하께서는 세 나라 황실을 모두 이으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인즉, 전하와 제 후손이 장차 세 나라 옥새를 쥐지는 못하더라도 세 나라의 중심에서 세 나라를 이끄는 영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실권은 없다고 해도 말이지요.”
완친왕 이준은 대한 태황의 아들이자 청나라 황제와 금나라 대칸의 사위다. 심왕 자리에 오르더라도 세 군주보다 한 단계 낮은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가 있는 위치도 바뀐다. 충분히 세 황실의 핵심에 자리를 잡은 어른이 될 수 있다.
“당장 뭔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시어 주변에서 존중받는 심왕이 되도록 하시옵소서. 앞으로도 주독야경을 열심히 하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왕비, 주독야경이 아니라 주경야독…아니오?”
“전하. 전하께서는 낮에는 시강원 스승들과 공부를 하셔야 하지요. 그리고 후사를 얻자면 밤에는 밭을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왕비 김씨가 살짝 몸을 갖다 대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고혹적인 목소리와 김씨의 몸에서 풍기는 알싸한 향내에 아찔해진 이준이 잠시 휘청이다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웠다. 곧 부두에 내릴 참인데 지금 왕비를 품에 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알겠소, 왕비. 다만 홍제원에서 멀어지는 건 아쉽구려. 아무리 심양에다가 새로 하나 만들면 된다지만,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고 당장이라도 눈만 감으면 빤히 떠오르는 그곳에 가지 못한다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오.”
급히 화제를 돌리는 남편을 보며 김씨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혼인할 때만 해도 어린애 같기만 하던 남편 완친왕이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귀여웠다. 태자처럼 남자다운 대장부와 혼인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어린 남편을 사내로 키우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전하께서는 세 나라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홍제원에 가고 싶으시면 가끔 다녀오시면 됩니다.”
심왕은 세 나라 모두에 속하면서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지위다. 여행하고 싶다면 세 나라 어디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고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누구도 그 앞을 막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갑판으로 올라가시지요. 폐하께서 기다리실 겁니다.”
“알겠소, 왕비.”
완친왕을 재촉해서 갑판으로 보낸 친왕비 김씨, 아니 영화고륜공주 애신각라씨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다. 친왕비가 아니라 심왕비가 될 날이.
– 24 –
항해는 순조로웠다. 항해할 거리가 멀지 않았으므로 자주 기항할 필요도 없었다. 도중에 금주에 들러 석탄을 보충했을 뿐이다. 금주는 요동반도 끝자락, 백 년 전 명나라 시절에는 금주위라고 불리던 그곳이다.
석탄을 보충한 우리 함대는 요하 입구에서 미리 보내둔 어도선과 조우한 뒤 곧바로 강을 거슬러 심양을 향했다. 양쪽 강기슭에는 요동주에서 급히 동원한 관군과 속오군이 물샐 틈 없는 경비를 펼쳤고, 강물 위에는 다른 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본의 아니게 요동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구나.”
“아닙니다, 폐하. 무지렁이 백성들이야 임금께서 이 북쪽 땅을 찾아주신 것만도 영광으로 여겨야 하거늘, 어찌 잠시 뱃길을 비킨 일로 원망을 품겠습니까?”
북순에 동행한 대한북병사 박진홍이 급히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내가 총애하는 그룹에 속한 측근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유능하다고 판단해서 발탁한 장수다. 어차피 내 측근들만 가지고 모든 인재풀을 채울 수도 없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심양이 다가온다. 심양은 심수 북쪽 기슭에 자리를 잡은 도시다. 다만 심수가 그렇게 큰 강은 못 되다 보니, 함대는 한 줄로 항행해야 했다.
“곧 도착합니다, 폐하.”
어도선 선장이 와서 보고했다. 처음 와보는 물길이지만, 능숙한 수로 안내인을 태운 덕에 사고 없이 올라왔다. 내가 타지 않긴 하겠지만, 돌아가는 길도 무사하기를.
곧 심양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준이와 몇 차례 나눈 대화가 다시 떠오른다.
‘네가 비록 청나라 공주와 혼인하였고 네 후손은 건주 황실의 피가 섞일 것이라 하나, 네 후손은 모두 전주 이씨 황실에 속한 혈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너는 짐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로서 새 분가를 만드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천손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심왕부가 삼국 공통의 세습 친왕가라 하나 실질적인 성격은 삼국 간에 맺은 동맹의 상징, 그리고 우리 황실의 분가다. 또한 그 소재지인 심양은 완벽한 우리 영토다. 고로 평화롭게 관계를 유지하기만 하면 심왕부는 우리 영향력을 더 키우는 상징이 될 수 있으리라.
“북방 땅은 정말 춥습니다, 폐하. 이 정도일 줄은….”
“상하(常夏)의 나라인 유구와는 다르겠지. 어쩔 수 없다네.”
나와 함께 갑판에 오른 상익은 두꺼운 모피 옷을 걸치고도 추위에 몸을 떨었다. 이러다가 회맹에 참석하기도 전에 얼어 죽는 건 아니겠지. 유구 황제가 내 초대를 받고 대한에 와서 혹시 죽기라도 하면, 바깥에는 내가 유구를 병탄하려고 모살했다고 알려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누명은 절대 사절이다.’
유구를 정복하고 싶으면 그냥 유구첨사진에 문서 하나만 보내면 그만인데, 아니면 해군에 명을 내려 전선 몇 척만 더 보내면 되는데 왜 군주를 속임수로 끌어들여 죽이겠는가. 내가 아무리 할 짓이 없어도 그런 어설픈 모략은 안 한다.
“이제 율리아를 만나겠군요.”
어느새 올렝카가 갑판에 올라왔다. 남순에는 후궁 중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지만, 이번에 올렝카를 데려온 건 특별한 예외다. 율리아를 만나기로 했으니, 당연히 올렝카를 데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올렝카와 함께 율리아 이야기를 하며 배가 기슭에 닿기를 기다리는데 조금 늦게 준이가 갑판으로 올라왔다. 왠지 이놈 몸에서 친왕비가 쓰는 향수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이 자식, 설마 이제 곧 상륙해야 할 판국인데 마누라 끼고 뒹굴다가 올라온 건 아니겠지.
“어서 오시옵소서, 폐하. 1년 만에 용안을 마주하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반갑다. 잘 있었는가?”
권훤이 웃는 낯으로 나를 맞았다. 물론 나루터에는 권훤 말고도 요동주 도독, 병마절도사, 심양부윤까지 요동을 다스리는 모든 주요 벼슬아치들이 몽땅 몰려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와 대화를 나누기보다 권훤 한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인사는 서열에 따라 받았다. 하지만 잡담 정도는 서열을 무시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래, 북방의 추위는 어떤가?”
“아무려면 충장공께서 겨울을 보내신 삼성부만 하겠사옵니까. 이곳의 겨울이 춥기는 하나,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 삼성부. 거기까지 가려면 심양보다 북쪽으로 두 배는 더 올라가야 한다. 위도로 몇 도 차이가 나더라? 기억이 안 나네.
삼성부 포위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격전이었다. 권율, 김시민, 김충선이 활약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한테도 그렇지만, 아마 후세를 살아갈 학생들에게도 그러리라. 그때 정철이 쓴 삼성부 포위전 서사시는 로마제국 멸망기와 더불어 분명 교과서에 실릴 테니 말이지.
“폐하, 모처럼 담소를 나누시는 데 죄송합니다만, 먼저 들어주셔야 할 일이….”
요동주 도독 최기열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딱히 기분이 상할 행동도 아니기에 웃는 낯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청국 황제와 금국 대칸이 이미 도착해서 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딱히 더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그것이, 그 둘이 혼자 찾아온 게 아니옵니다.”
“그야 당연하지 않으냐. 시종과 군사, 종친들을 잔뜩 거느리고 왔겠지.”
회맹은 서로의 세력을 가늠하면서 위세를 부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심양은 우리 영내니까 둘 다 대군을 끌고 오지는 못했겠지만, 분명히 선발한 최정예를 데리고 왔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더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권훤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거다.
그런데 최기열의 보고 내용은 뜻밖이었다.
“황실 종친들만 온 게 아니옵니다. 금국에서는 건주 종친들만이 아니라 몽고인 왕공들을 잔뜩 데리고 왔사옵고, 청국에서는 역시 몽고인 공후들과 더불어서 한인(漢人) 유력자들을 무더기로 끌고 왔사옵니다.”
“무엇이라? 허허, 그렇구나. 그렇게 된 것이야.”
내가 한 생각을 두 놈도 똑같이 한 거다.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이 나자 나도 모르게 그만 너털웃음이 터졌다. 그래, 인정해주마. 하지만 ‘한 표’를 따진다면 너희는 내가 가진 것처럼 확실한 표를 제시하지는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