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70
3부 3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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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루국을 번국으로 받아들인다면 세 번째가 된다. 두 번째는 이번에 받아들인 조홀국이고 첫 번째는 당연히 대한 최초의 번국, 하와국이다.
마우이가 창시한 하씨 왕가는 대한 황실의 지원을 받아 20년 가까이 하와이를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 세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색적인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는 걸 보면 올해는 정말 뭔가 이번 생에서 대대적인 전환기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하와국왕이 명을 다했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태풍철인데도 불구하고 하와이에서 바다를 건너 본국으로 온 사신은 카우이의 맏아들로, 이름은 하상운이라고 했다. 병자년(1696)생으로 나이는 열여섯인데 체구는 부친만큼 크다. 하와이 전통식 이름은 듣기는 했는데 발음해보려니 혀가 꼬인다.
“이에 신의 부친이 새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폐하께 책봉을 청하고자 이 비천한 몸이 태풍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대는 일국의 왕자가 아닌가. 굳이 이런 위험을 직접 무릅쓸 필요는 없을 텐데.”
우리와 하와국 사이에는 사신의 격을 딱히 규정하지 않았다. 지난번 홍역이 퍼졌을 때는 가우성이 왔지만, 그냥 관원 중에 적당한 이를 보내도 된다. 그런데 하가위는 굳이 아들을 보냈다. 그 이유에 관해 하상운이 열심히 설명했다.
“용맹하고 지혜로우며 자비심이 넘치시는 군주이신 대한 태황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덕과 자애로움을 느껴보라는 게 소인의 부친이 내린 명이었습니다.”
하상운은 하가위를 ‘부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친이 아직 내게 정식으로 하와국왕으로 책봉을 받지 않았으니, 부왕이라고 하면 도리에 어긋나는 무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알겠다. 지금 바로 하가위를 새 하와국왕으로 책봉하는 조서를 내려 그대가 귀국하면서 가져가게 하겠으니, 이제부터 부왕으로 칭해도 좋다.”
이로써 하가위의 책봉 문제는 간단히 결론이 났다. 어차피 다른 유력 후보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내릴 결정이라면 시간을 끌지 않고 빨리 끝내는 게 낫다. 무종 때, 장조 때 명나라 책봉 때문에 내가 하던 마음고생을 떠올리면 그따위 일로 번국에다 갑질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대의 조부는 어떤 연유로 훙거(薨去)하였는가?”
“별다른 병은 없었사옵니다. 그저 워낙 연로한 탓에 노환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도승지를 부르자 마우이는 을미년(1655)에 태어나서 올해 쉰여덟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만하면 별로 많은 나이도 아닌 것 같은데…하와이 평균수명으로는 그것도 장수한 사례에 속하는 모양이다.
하상운이 돌아갈 때 우리 조문 사절도 함께 보내야겠다. 음, 현왕네 세 형제 중에서 그간 외국에 사신으로 나간 적이 없는 둘째 강녕공을 보내면 괜찮으려나.
아, 보내는 김에 하상운을 세자로 책봉하는 조서도 같이 보내야겠다. 얘가 맏아들이기도 하고, 세자로 앉히면 안 될 만큼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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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대로였다면 경회루에서 하상운을 환영하는 연회를 열었으리라. 하지만 조부의 부고를 가지고 온 상황이다 보니 풍악을 울리고 미녀를 늘어세워 환영하기는 좀 난감했다. 그래서 비교적 작은 장소에서 간소한 연회를 베풀어 환영했다.
“폐하께서 친히 잔을 채워주시니 대를 물려 가며 자랑할 영광입니다.”
“그대의 아비에게도 숱하게 잔을 채워주었느니라. 놀랄 것 없다.”
하와이인들은 독한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하상운도 대한인 독선생에게 학문과 예법을 배워 상당히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술 좋아하는 건 부친과 똑같았다.
하상운은 내가 따라주는 잔을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열일곱 잔을 마셨다. 그리고 벌겋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소인은 그때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폐하께서 직접 하와국에 오셨을 때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지금도 하와국 사람이라면 입에 올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부왕은 지금도 폐하를 처음 뵌 이야기를 하면서 ‘진실로 빛의 신 카네가 강림한 줄 알았노라’라고 할 정도지요.”
아아, 그때. 동현 갑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하와이 원주민이었던 카우이와 시종 두 명, 그 셋은 전신에 윙드 후사르용 갑주를 걸친 나를 보고 부들부들 떨면서 ‘카네’를 연호했다. 카네가 빛의 신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 줄사닥다리를 타고 내 배에 올라와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 애송이가 이제 서른일곱 살이라는 장년이 되어 하와이 국왕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여기서도 세월이 지난 걸 절감했다.
역병이 유행하고 내란이 일어나는 등 환란도 수차 있었지만, 이제 하와국은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됐다. 몇 차례 일어난 피보라로 반대 세력이 몽땅 쓸려나간 덕분이다.
마우이가 뒤통수를 친 옛 주군의 잔당들은 내란 중에 전멸했다. 야심만만한 아들들도 그 와중에 대부분 제거되었다. 본섬 외에 각 섬을 지배하는 제후들은 자기 영지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데 만족하고, 반기를 들어 왕위를 노리지는 않았다.
“그게 모두 폐하 덕분입니다. 폐하께서 보내주신 군사가 진주만에 진을 치고서 하와국을 수호하고 있는데 외적(外敵)이든 내적(內賊)이든 누가 감히 왕위를 넘보겠습니까?”
우리 주둔군이 제공하는 정치적 균형에다 철제 농기구와 가축, 작물 등을 넘겨주며 생긴 경제력 신장 역시 하와국이 안정을 누리는 요인 중 하나다. 요즘 오아후에서는 물소로 땅을 갈아 논을 일구면서 벼농사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이득이 있으니까 카우이는 자기 수도를 아예 진주만이 있는 오아후로 이전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아후는 엄연히 오아공의 영지이니 카우이가 원한다고 간단히 수도로 정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그저 내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 같다.
“새 객사까지 내려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부왕을 대신하여 먼저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대들이 신속한지 20년인데, 그 정도는 있어야지.”
주로 찾아오는 외국 사신들은 제각기 숙소가 있다. 가장 오래된 곳이 일본 사신이 머무는 동평관이고, 그 외에는 건주 사신이 쓰는 서평관, 유구 사신이 쓰는 유구관, 유럽인 공용인 남평관, 러시아 전용인 북평관이 있다.
하지만 하와국은 1년 1공을 하는 번국이지만 전용 객관이 없었다. 카우이가 도성에 4년 동안 볼모로 머무를 동안 기식한 인연으로, 민성윤의 집에 머무르는 게 그동안 관례였다.
“올해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조홀국에서 오는 사신들과 함께 사용할 객관을 마련해 놓았으니 도성을 방문할 때마다 편히 쓰도록 하라.”
앞으로 번국이 더 늘어날지 아닐지는 모르나, 이들이 머물도록 할 공용 객사가 필요한 건 분명하다. 자기네 돈으로 전용 객사를 마련한다면 그건 선택이고.
“폐하, 저는 매년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게 즐겁습니다. 하와국 사신에게 계속 신의 집에 머물라 하소서.”
이제 여든이 넘어 수염에 눈썹까지 하얗게 센 민성윤이 웃으며 받았다. 대한의 중신이자 외척으로서 그 정도 봉사는 기꺼이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해지, 평생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하상운도 웃으며 내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부왕께서는 양화후의 저택에 머물던 4년을 매우 즐겁게 회상하곤 하셨습니다. 친조부를 상대하는 듯하였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매년 큰 부담을 드릴 수는 없으니, 기꺼이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양화후께 방문하는 건 괜찮겠지요?”
“물론이오. 언제든 오시구려. 기꺼이 환영할 테니.”
민성윤은 본래 양화백이었다. 친왕의 장인으로서 받은 작위다. 그 이후에 내가 황태제가 되고 태황으로 즉위하면서 황태자의 장인과 같은 예를 적용받아 후작으로 올라갔다.
그 뒤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하와이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게 생겨 질문을 건넸다.
“나이가 열여섯이라 했는데, 그대의 아비는 어찌 아직 혼인을 시키지 않았는가?”
“안 그래도 그 문제로 폐하께 청을 드리려는 참이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는데 하상운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더니 내게 고개를 푹 숙였다.
“폐하! 부디 소인에게 종실(宗室)의 딸을 허락하시어 좋은 아내를 내려주소서. 부왕께서 그동안 저를 혼인시키지 않은 건 조부와 의견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상운의 주장에 따르면 마우이는 하와이 내에 있는 공작가 중 하나에 그를 장가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우이는 대한 황실과 혼맥을 맺는 게 더 좋다고 반대했고, 그 문제로 부자간에 갈등이 벌어지면서 하상운은 이제껏 혼인을 못 했다고 했다.
“폐하의 딸을 달라는 건방진 요구는 하지 않사옵니다. 소인의 격으로 어찌 그렇게 방자한 소망을 품겠습니까? 단지 종실에 속한 처녀이기만 하면 됩니다. 부디 굽어살펴 주소서.”
“알겠다. 생각해 보마.”
하상운이 품에서 혼인을 청하는 카우이의 친서를 꺼내 바쳤다. 이런 서한은 잔치 자리가 아니라 처음 접견할 때 내놓는 거라고 타이른 뒤 펼쳐 읽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는 아니니, 조정이나 중추원에서 반대만 안 한다면 들어줄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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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중신들도 하와국과의 혼사에 관해서 퍽 호의적이었다. 명백하게 우리가 우위에 서서 공주를 ‘하사’하는 형태고, 이는 옛 중원 왕조들이 주변 이민족에게 화번공주를 보내던 것과 똑같았다. 더구나 저쪽에서 보내 달라고 먼저 청하지 않는가.
“하와국이 더 빨리 왕화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갸륵한 뜻을 품고 있으니 이런 요구가 나온 것입니다. 그 기특한 마음을 받아들이시고 적당한 종실의 처녀를 골라 보내시옵소서.”
예무대신 이정현은 싱글벙글하며 이 혼담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동등한 다른 나라와의 국혼은 ‘외교’지만, 번국인 하와국과의 국혼은 ‘내정’이므로 예무부 관할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정현은 하와국에 예를 전할 기회라고 쌍수를 들어 지지했다.
“하와국 세자빈이라면 종친 중에 적당한 공작이나 후작가 적녀를 뽑아서 공주로 봉하시면 충분할 겁니다. 굳이 황녀를 보내실 필요도 없습니다.”
디에고를 술루국왕으로 봉하자고 했던 좌찬성 윤시현은 이 문제에서도 적극적이었다. 뭐, 내 딸을 보내자고 해도 적절한 황녀도 없다. 고작 열 살인 의선옹주를 그 곰 같은 놈한테 시집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과거 원나라가 종실의 딸을 공주로 봉한 뒤 전조(前朝, 고려) 임금들에게 하사함으로써 전조를 자기네 영향 아래 두고 휘두른 전례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할 수 있을 겁니다.”
윤시현은 왕비를 책봉해 보냄으로써 하와국을 확실하게 우리 속국으로 바꿔놓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려에서 충자 돌림 왕들이 사실상 몽골인이나 마찬가지였던 전례를 상기하자며 말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폐하, 하와국에만 왕비를 보내지 말고 조홀국왕에게도 왕비를 내리소서. 지금 조홀국왕은 상처(喪妻)한 지 십여 년이나 되었는데, 전란을 치르느라 혼사를 다시 맺지 못하였습니다. 늦기 전에 얼른 왕비를 하사하시면 조홀국왕의 충성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명완에게는 원래 중국인 아내가 있었다. 숙부들과 싸움이 붙어 적두도에서 도망칠 때도 함께 따라나설 정도로 남편에게 충직했으나, 본거지를 떠나 떠도는 동안 병을 얻어 쓸쓸히 죽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딸 하나밖에 없었다.
“하와국과 조홀국, 두 나라에 화번공주를 보내시면서 술루국을 비수후에게 맡기신다면 세 번국이 모두 핏줄로 얽히면서 변방이 더욱 안정될 것입니다. 비수후는 제위를 계승할 수도 없으니, 딱히 위험할 것도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처음에 디에고만 왕으로 봉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보이던 중신들도 다른 번국 둘을 사위로 들이면서 디에고도 번왕으로 봉하자고 하니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상황을 보니 정말 디에고를 왕으로 봉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능력과 공적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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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싸움이다. 술루 술탄국의 모든 성채가 함락되었고 이제 여기 하나만 남았다. 말에 탄 디에고가 주변을 돌며 공격하기 좋은 취약한 부분을 찾았다.
“적은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전멸하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스페인인 부대를 지휘하는 고메스 대위가 차렷 자세로 보고했다. 고개를 끄덕인 디에고가 지시를 내렸다.
“일본군에게 사격 준비 명령을 전하게. 항복 권고를 하고, 저들이 응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소총 사격을 퍼붓게 한 뒤에 스페인인 부대로 돌입한다.”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고메스 대위는 필리핀을 떠나 누에바 에스파냐로 가기를 거부한 잔류 인원 중 하나였다. 그는 필리핀에 남기로 한 스페인인들을 보호하는 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전쟁을 시작한 사람 중 하나로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본 동포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다만 항병(降兵) 출신이다 보니 정식 한군 계급은 아직 받지 못했다. 그래서 스페인인들 사이에서만 대위로 불리고 있다.
3백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 소총수들이 방아쇠를 당기자 뿌연 초연이 사방을 덮었다. 술루 술탄이 숨어 있는 성채 안쪽에서 비명이 일었다. 안에서도 응사하면서 이쪽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 잘 훈련된 일본군 병사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재장전, 발사를 반복했다.
“돌입한다!”
남은 적이 웬만큼 제압되자 장검을 뽑아 든 디에고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척탄과 도끼로 무장하고 가죽 앞치마를 두른 스페인인 척탄병 70명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고 고함쳤다.
“임금 폐하 만세! 산 호르헤의 가호가 우리에게 있기를!”
스페인군에서는 ‘국왕 폐하 만세! 스페인이여, 산티아고와 함께 돌격하라!’라고 외쳤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한의 백성이 되기로 했으니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산티아고(성 야고보)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군인과 기사의 수호성인이면서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산 호르헤(성 게오르기우스)를 수호성인으로 받들게 되었다.
“돌격! 나를 따르라!”
해자를 뛰어넘고 목책을 기어올랐다. 날아드는 탄환과 화살에 일부 병사들이 쓰러졌지만 남은 이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도끼가 벽을 부수며 틈을 만들고, 그 틈에다 욱여넣은 척탄이 굉음과 함께 터지며 벽에다 구멍을 뚫었다.
척탄 몇 개가 연기를 끌며 구멍 안으로 날아가 터졌다. 안에서 비명이 울리자 도끼를 든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앞을 막아선 술루 병사들을 맹렬하게 내리찍었다. 사기가 떨어진 적은 형편없이 도망쳤다.
디에고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물러나는 적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간혹 도망치지 않고 달려드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가 휘두르는 강철검에 맞아 토막 난 시체가 될 뿐이었다.
“술탄은 어서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
선두에서 돌입한 스페인인 부대를 따라 일본군까지 돌입하자 성채 다른 쪽에 남은 술루 병사들의 저항도 무너졌다. 디에고는 투항하는 적은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고 어딘가에 있을 술탄을 찾았다. 분명히 도망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잡았습니다, 후작 각하!”
도성에서 함께 온 스페인계 한인 장교, 서인혁 참령이 어린애 하나를 끌고 나와 바닥에 팽개쳤다. 부친인 전임 술탄이 해전 중에 전사하자 급히 술탄으로 즉위한 꼬마였다.
“주, 죽여라!”
열 살 남짓밖에 안 된 주제에 술탄이랍시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모습이 귀여웠다. 주변을 둘러싼 대한군 군사들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트렸다. 디에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 참령, 잘 묶어서 도성에 보내도록 합시다. 도중에 별일 없도록 잘 부탁하오.”
“예, 알겠습니다.”
이제 술루국 정벌은 끝났다. 흩어진 잔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놈들은 이제 말 그대로 도적에 불과하다. 태세를 정비하면서 토벌해 나가면 그만이다.
디에고는 그 작업을 부황이 자신에게 계속 맡겨 주었으면 싶었다. 권력을 갖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