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75
3부 3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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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 별궁의 이름을 정한 김에 용산별궁에도 이름을 정식으로 붙이기로 했다. 그동안은 제대로 건축이 진행되지 않았기에 그냥 용산별궁이나 남궐이라고만 불렀지만, 이제 제대로 공사도 시작했는데 전처럼 대충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남궐이라고 부르는 건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다. 현대의 상명대 자리에 있는 탕춘대 별궁, 아니 홍제궁이야 그 넓이가 경복궁의 ?쯤밖에 되지 않으니 그냥 별궁으로 취급해도 된다. 어차피 모양이나 기능이나 전부 궁궐보다는 요새에 가깝고.
그러고 보니 탕춘대 별궁은 남산에 있었던 중앙정보부보다는 런던탑이나 바스티유와 더 비슷하겠구나. 처음에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요새로 시작했다가 정치범을 가두는 감옥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탕춘대 별궁은 그 규모가 작다. 하지만 용산별궁은 창경궁만큼 크다. 그런 궁궐을 계속 별궁으로 취급하기는 조금 그렇지 않은가. 경복궁이 북궐(北闕), 창덕궁과 창경궁이 동궐(東闕)이니까 용산별궁은 남궐(南闕)로 칭하는 게 타당하다.
“짐이 생각하기에는 용산에 들어설 새 궁궐을 경희궁이라고 명명하면 어떨까 한다. 다른 좋은 이름이 있다면 각자 건의해 보도록 하라.”
경희궁이 원래 역사에서 서궐(西闕)이었지? 새롭게 만들기 어려운 게 있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기존의 것을 베끼는 거다. 궁궐 이름 짓기가 어려우면 역사에 실제로 있었던 궁궐 이름을 따서 쓰면 그만이다.
경희궁이라는 이름이 신하들이 생각하기에도 괜찮은지, 안 된다고 하는 의견은 없었다. 그래서 이건 정리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허나, 궁궐 사방에 설치할 사대문의 명칭은 다른 이들이 짓고 쓰도록 했으면 한다. 과거 태종께서 양녕대군에게 숭례문 현판을 쓰게 하셨듯, 천하의 명필이 새 궁궐의 현판을 쓰면 오죽 좋겠느냐? 이름을 짓는 이와 글을 쓰는 이 모두 짐이 후히 포상하리라.”
장조 때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황성평으로 불리던 고구려 국내성과 국내성을 지키는 요새였던 환도산성에 공모를 받아 선정한 새 이름을 붙였다. 환도산성은 영복성, 국내성은 영락군이 되었다. 영락주 이름도 그 영락군에서 따왔다.
“폐하. 기왕 문명(門名)을 공모하실 거라면 아예 조보에 공고문을 실어 전국에서 응모를 받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시면 더 많은 이들이 이름을 지어 바칠 터이니, 그중에 좋은 것을 골라 쓰시기 더 용이할 것입니다.”
대제학 김창의가 제안했다. 좋은 제안이기는 한데 한 가지 걱정이 되었다. 현직 관리들과 대도시 선비들은 당연히 적극적으로 응하겠지만, 아직도 옛 사고방식을 가지고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는 재야의 선비들이라면 혹시 엉뚱한 짓을 하지 않을까?
“그런 짓을 했다가 민생을 생각하여 궁궐을 짓지 말라는 상소만 더 빗발치는 게 아닌가? 또 괴상한 이름으로 짐을 능멸하는 자가 혹시 하나라도 나오거나,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면 공모를 아니 함만 못하리라.”
새 궁궐 공사는 이미 봄부터 시작했고 조보로도 공표했다. 그런 만큼 이 공사에 관해서는 이미 전국에 다 알려져 있다. 국가 재정을 쏟아서 궁궐을, 그것도 전통 건축양식보다 돈과 시간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서양식 석조-벽돌조로 짓는 데 대한 반발도 당연히 있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 궁궐을 지으며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상소가 이미 올라오고 있다. 이걸 비난할 수는 없다. 사대부가 꼭 지켜야만 하는 덕목 중 하나가 직언이고, 조선(대한)이라는 나라는 사대부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나라니까.
“아닙니다. 용산에 짓는 궁궐은 이미 백 년 전에 장조께서 이 나라의 위엄을 크게 떨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시어 짓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4대를 내려오는 동안 주춧돌도 제대로 놓지 못하였으니, 이를 완료하는 건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장조께서 남기신 유업을 완수하는 일이니 어리석은 몇몇 선비가 뚫린 입이라고 쏟아내는 반대 따위는 무시하라는 게 김창의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황실을 능멸하는 괴상망측한 안을 내는 자는 의금부에서 그 죄를 물어 징치하면 되는 일이 아니냐며 말이다.
“그리고 응모하는 자가 적을 리가 없습니다. 방금 분부하셨듯이 선정된 자에게 후한 상을 약속하시고, 그가 지은 궐문 이름을 길이 남기리라 공언하신다면 필시 공명심에 찬 자들이 수없이 글을 올려서 문전성시를 이룰 것입니다.”
“다른 중신들도 대제학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되는가?”
내 질문을 받은 중신들 의견은 비슷했다.
“어차피 겨울이라 공사를 멈췄으니, 그동안 문명을 공모해도 안 될 건 없어 보입니다. 혹 응모한 이름 중에서 폐하께서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이름이 없다면, 집현전에 명을 내려서 학사들에게 짓게 하소서.”
내각승상 성시균이 대표로 나서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좋다. 벼슬이 없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현직 관리는 1품을 올려 주며 또 은 1천 냥을 별도로 내릴 터이니 조보에 공고를 싣도록 하라.”
혹시 생각보다 응모가 적다면 적당히 부풀리기라도 해야겠지. 들어온 응모가 몇 건인지 사실대로 공표할 의무 같은 건 없으니까.
그나저나 내년 날씨는 또 어떨까. 궁전을 재래식으로 지었다면 3년이면 다 짓고도 남았을 것을, 내가 고집을 부려서 유럽식으로 짓겠다고 10년짜리 대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도중에 기근이나 홍수가 닥쳐 공사를 방해할 위험도 크다.
“그렇다 해도 공사는 중단하지 않는다. 운하 공사도 끝났으니 구휼을 위해서라도 남궐을 신축하는 공사를 계속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로부터 대규모 토목공사는 불경기를 타파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다. 새 궁궐은 도성에 거주하는 빈민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그것 못지않게 괜찮은 일터는 철도를 부설하는 공사장이 되겠고 말이다.
– 34 –
처음 개설할 정식 철도 노선은 당연히 경인선이다. 철로는 복복선으로 부설하겠다고 최종 결정했고, 필요한 부지는 지난 수년 동안 조금씩 사들였다. 경인운하를 파느라 운하도감을 세워 사업을 진행했듯이,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서도 결국 철도도감을 세웠다.
철도도감에서 필요한 자금은 일단 국고에서 내도록 했다. 주권을 발매해서 자금을 모집할 생각도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돈이 모이지 않았던 탓이다.
“무종께서 증기기관을 처음 만드시고 증기선이 나올 때까지 백 년이 걸렸으니, 증기차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역시 백 년은 걸리지 않겠느냐고들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필시 투자를 망설인 일을 후회하게 되리라.”
철도도감 도제조는 우승상 최석정이 겸임하고 있다. 내가 무종 때부터 대신들이 고위직을 겸임하는 제도는 확실히 없애게 했는데 그 전통을 깨고 최석정에게 관직 두 개를 준 건 뭐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최석정이 사직을 청했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에 최석정이 내게 사직 상소를 올리며 청했다.
“폐하, 신은 이미 늙었기에 우승상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 늙은 몸이 조정에서 물러나 편히 쉬게 하여주소서.”
최석정은 지나간 갑자에서 병술년(1646)생이다. 만으로 예순여섯이니 내가 보기엔 아직 한참 더 일해도 될 것 같은데 본인은 지쳤다면서 쉬고 싶다고 했다.
“그대의 조부 문충후는 장조 때 출사하여 일흔넷이 되도록 조정에서 일하면서 무려 다섯 임금을 모시지 않았는가. 그대는 어찌 벌써 그만두려 하는가?”
최석정의 조부는 최명길이다. 장조 때 벼슬길에 올라 성이, 연이, 부황, 형황까지 연이어 모시면서 명신(名臣)으로 이름을 떨쳤다. 형황이 즉위한 다음 해(1660)에 중추원에서 향년 75세로 사망하고 후작으로 추봉됐으니, 후대에 길이 칭송받을 만한 인생이었다.
참고로 정철이 받은 시호인 ‘문청공’은 공작이 아니다. 정철처럼 칭제건원하기 전에 죽은 이들에게는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작위를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철의 시호에 붙은 ‘공’은 작위가 아니라 그저 존칭일 뿐이다.
“신의 조부는 실로 세상의 칭송을 받을 재목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사오나, 신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한 가지 일만 하기도 힘겨운데 우승상은 신경을 써야만 할 일이 너무도 많사오니, 부디 그만두게 하여주소서.”
때가 되면 마땅히 벼슬을 놓고 쉬게 해주겠다만, 지금은 너무 이르다. 겨우 예순여섯 살 아닌가! 게다가 그동안 최석정의 업무 처리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었다. 이놈의 사직서를 어떻게 거절할까 생각하는데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났다.
“좋다. 겨울이 되면 그대가 승상 자리를 내려놓도록 허락하겠다. 다만 철도도감 도제조로전임하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한 가지 일’만 하도록 하라.”
당황한 최석정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상이 빗나가서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서,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업무를 익힐 겸 철도도감 도제조는 당장 취임하라고 했다. 하지만 후임자가 없다고 해서 우승상 일도 계속하게 했으니, 본의 아니게 두 직책을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석정은 두 직책 모두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자기가 제시한 사직 사유가 거짓이었음을 증명했다.
‘거봐, 하니까 되잖아.’
이런 말을 굳이 소리 내서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조용히 운하를 따라 걸으면서 최석정과 열기창 도제조 장성준이 올리는 보고를 들었다.
“제물포 항구에서 노량진까지 가는 경인철도 부지는 이제 얼마쯤 매입했는가?”
“절반 정도입니다. 일전에 아뢰었듯이, 순순히 땅을 내놓지 않는 자들이 아직 많습니다.”
그 보고서 내용은 확실히 기억한다. 철도 예정지에 땅을 가진 이들이 토지를 철도도감에 넘기지 않으려는 이유야 뭐 다양하다.
‘우리 집안이 여기서 살아온 지 3백 년이 넘었소. 죽으면 죽었지 못 떠나오.’
‘겨우 그 정도 푼돈을 받고 집과 땅을 내놓을 수는 없소. 돈을 더 주시오.’
‘조상들의 묘소를 어찌 돈 몇 푼 때문에 파헤치는 불효를 한단 말이오? 그 철도라는 길을 놓겠으면 우리 선산을 돌아서 가시오. 본래 길이란 산이 있으면 돌아서 가는 것 아니오?’
‘그 시끄럽고 요란한 것이 불씨를 뿌려대며 동리를 지나가면 사방에 불이 날지 모르는데 어찌 내 땅을 내놓겠소. 싫소.’
몇 가지만 뽑아도 이런 것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욕심 때문에 거부하는 자들도 있지만, 철도의 특성을 모르는 무지 때문에 거부하는 자들도 있다. 기차가 어떻게 말이나 마차처럼 급하게 커브를 틀면서 움직일 수 있겠는가. 최대한 직선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땅을 내놓도록 회유하느라, 실제로 철도를 부설할 때까지는 지금 그 땅을 쓰는 자들에게 계속 쓰도록 하고, 대신에 세를 조금만 받기로 하였습니다.”
“잘하였구나.”
어차피 실제 부설은 경인선보다 운하선이 먼저다. 경인운하 양편에 선로를 깔고 기관차를 올려서 기존에 쓰던 우마 대신에 운하에 들어선 배를 끌게 하는 게 운하철도, 운하선이다. 우리가 제작한 기관차를 제대로 시험 운행할 구간이다.
“열기창에서는 기관차 6량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예정대로 내년 봄부터 운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경인년에 처음 선보인 기관차는 20톤을 끌고 시속 5km로 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40톤을 끌고 시속 8km로 달릴 수 있다. 이 녀석들로 시험 운행을 진행하며 개선할 부분을 찾아서 반영한다. 그리고 진짜 철도 노선을 운행할 준비를 한다.
“철로는 단단히 만들었는가? 그 노반을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내려앉을 위험이 있다.”
내가 지금 그 위로 걸어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 한 사람과 수십 톤에서 수백 톤짜리 배를 끄는 기관차 무게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신이 열기창 도제조와 함께 직접 현장에서 살피며 시공했습니다. 든든하게 깔았습니다.”
최석정은 열기창 도제조 장성준과 기가 막히게 죽이 잘 맞았다. 일흔한 살 먹은 장성준과 예순일곱 살인 최석정이 신이 나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경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 두 사람은 공돌이 기질이 다분한데다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만약 이 둘이 김지와 같이 일했다면, 어쩌면 경인왜란 때 증기기관을 탑재하고 달리는 귀차를 실전에 투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양 탄광에서 나루터로 석탄을 나르는 철도도 운행 준비를 마쳤으니, 두 곳에서 자료를 모아 보완할 점을 찾겠습니다. 부디 성과가 오르기를 기다려주시옵소서.”
“무리해 가면서 서두르지는 않아도 좋다. 확실하게 앞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다소 천천히 움직여도 괜찮으니라.”
무리하지 말고 이대로 꾸준하게 앞으로 나가자. 퇴보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35 –
신년 하례를 준비할 때가 되어가니 궁중에서도 바빠졌다. 커다란 아들들이 둘이나 없어진 탓에 황실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허전해졌다.
“주상께서는 왜 심왕이 도성에 오겠다는데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까. 그 춥고 쓸쓸한 곳에 있으면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태후마마. 어찌 저라고 해서 심왕이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심왕비가 몸을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 겨울에 그 먼 곳에서 도성까지 오겠습니까. 오지 말라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심양에는 예를 차려 대할 어른도 없다 보니 준이는 마음 놓고 왕비에게 폭 빠져서 산다. 그 덕분인지 혼인하고 쭉 없던 태기가 곧바로 생겼다. 그리고 심왕비가 첫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드디어 왔다. 사자에 따르면 한 달 전, 양력으로 하면 10월 말이라고 했다.
내게는 첫 적통 손자인 셈이라 ? 서손으로는 디에고가 낳은 아들이 있으니까 ? 축하하는 편지와 선물을 잔뜩 보냈는데, 그 직후에 준이한테 두 번째 편지가 왔다. 새해맞이를 함께 하러 도성에 가겠다고 말이다.
“아비에게 손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심왕의 청은 실로 효성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북방의 그 추위를 뚫고서 왕비와 원자를 데리고 도성까지 오겠다니, 그런 험한 일을 어떻게 시키겠사옵니까. 마땅히 말려야지요.”
그 아이는 내 손자이자 파사합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준이가 멍청하게 굴다가 고뿔이라도 들면 심왕비부터가 가만 안 있을 거고, 청나라도 발칵 뒤집힐 거다. 어떻게 만든 심왕분데 첫 왕자가 고뿔에 걸려 죽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주상께서 깊으신 뜻을 품고 하신 일인 줄은 알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봄이 되면 미주에 간 태자가 돌아올 테니, 그때를 맞춰서라도 한번 올라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태후마마.”
전에도 언급했지만 심왕이 된 준이는 세 나라 중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물론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아무 땅이나 들쑤시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아니고, 입국을 청하면 허가가 곧바로 나온다는 정도다. 우리 도성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심왕부에는 다스릴 백성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가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면서 큰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준이가 ‘집’에 오고 싶으면 오는 거다.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신년 하례도 무사히 치렀고, 황실 식구들과 눈싸움과 사냥을 즐기면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은이가 어서 귀국하기를 바라며 봄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미주에서 새해 첫 우편선이 왔다.
“어허, 태자가!”
미주에서 온 편지를 펼쳐 든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이 망할 녀석, 그렇게 몸조심하라고 했는데 함부로 쏘다녀서 이렇게 애비 속을 뒤흔들어 놓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