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81
3부 3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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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즉 안남은 장형운의 죽음을 앞두고서 한동안 서나라와 후송 사이에서 간을 봤다. 장형운이 죽으면서 서나라가 내분에 빠져서 혼란스러워지면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챙기면서 후송으로 종주국을 갈아탈 셈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죽었는데도 서나라에서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예전처럼 성도에 머무는 황제가 전국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대신에 각 지역을 황자들에게 분봉하기까지 했다. 안남과 인접한 지역은 운남왕, 광서왕의 영지가 되었다.
이는 안남의 입장에서 보면 서나라 황제보다 더 큰 위협이었다. 멀리 성도에 있는 황제는 그동안 안남에 형식적인 충성을 요구할 뿐 직접 을러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조공을 약간 바치는 것 말고는 부담도 없었고, 그나마 희사품이라는 명목으로 돌려받는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코앞에 있는 서나라의 번왕들은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다. 이들은 뭐든지 꼬투리만 생기면 곧바로 ‘안남왕이 반역을 저질렀다!’라면서 휘하의 군대를 몰아 안남을 침공하고도 남을 자들이다. 익문사 보고가 그 추측을 뒷받침했다.
“광주에서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귀주왕까지 세 왕은 안남에서 불온한 기색이 보이면 그 즉시 출병하여 안남왕을 토벌하고 그 땅을 나눠 갖기로 밀약을 맺었다 합니다.”
새 익문사장 조하제가 보고하는 바를 들으니, 서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세 번이 안남국을 털어 주머니를 채우기로 계획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면 참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겼겠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씨가 후송 쪽으로 돌아서기가 어려웠겠구나.”
서나라 번왕군들이 일제히 남하하고, 완씨까지 여기 동조해서 북상한다면 정씨는 완전히 사면초가에 몰리게 된다. 여기에다 완씨가 동원한 수군과 광주의 황제령에서 출격한 서나라 수군까지 합세한다면 해로까지 막히면서 정말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정씨에게도 수군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씨네 수군은 태반이 서나라에서 쫓겨난 왕가군 잔당이라서 제대로 해전을 벌이게 되면 프랑스인들이 조련한 완씨네 수군이나 영국인들이 조련한 서나라 수군과 상대가 안 된다. 물론 서나라 수군은 아직은 숙련도가 퍽 낮지만.
“일이 그렇게 된다면 후송 수군이 구원하러 나서지 않겠느냐?”
“그랬을 경우 적두도에 있는 잉글인들이 개입할 수도 있는지라, 후송 수군이 잉글인들과 싸울 각오를 하느냐가 관건이리라 보이옵니다.”
계미남변이 끝난 지도 10년이 다 되었다. 후송 수군도 어느 정도 재건되어 대형 갈레온과 프리깃을 합쳐 대략 40척 정도는 보유하고 있다.
이 배들로 상업 항해도 나가고 훈련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마다구와 싸우다 잃은 인력도 어느 정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규모로는 말이다.
문제는 마다구에게 일방적으로 털렸던 기억이 없어진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후송 수군은 그 패배의 기억 때문에 무척 소극적이고 충돌을 피하는 성향을 띠게 되었다. 더구나 그때의 마다구와 같은 ‘서양인’인 영국인들에게 덤비라고 하면….
“정씨도 이를 내다보고 재빠르게 후송과 손을 끊고 성도에 사신을 보내 새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고 충성을 맹세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 남방에 있는 완씨가 우리 책봉을 받아 국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역적이라고 고자질하였습니다.”
내가 완씨에게 책봉 조서를 내린 건 장형운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다. 서나라 내에서 내전이 일어나 안남에 관심을 크게 가지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던데다, 북쪽에 있는 정씨가 같은 기회를 노려 후송 쪽으로 돌아설 게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나라 황자들은 내전을 벌이는 대신 일단 태자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로 뭉쳤다. 정씨도 종주국을 후송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러자 완씨도 눈치를 살피며 움직임을 삼갔다. 책봉 조서는 받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우리가 원한 것도 후송에 기울어진 정씨에 맞서서 안남 남부에 우호세력을 만드는 거였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도리어 저쪽이 찾아와서 조공이라고 바치면 우리도 희사품을 내려야 하는데, 관리비용 안 나가니 좋지 뭐.
안남 정세가 이렇게 바뀌면서 나온 또 한 가지 나비효과는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안남에다 투자한 자본의 성패였다. 후송 기술자를 받아들여 비단과 도자기를 생산하려던 정씨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공장을 파괴했다. 후송에서 온 기술자들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 장인들을 데려오고, 공장을 짓느라 불랑인들이 들인 돈도 모두 날아갔습니다. 정씨는 불랑인들의 항의를 모두 묵살하였고, 보상도 거부하였다 합니다.”
“거참 꼴 좋게 되었구나.”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 한 마디면 충분하지.
“왕 총재, 가배농장은 잘 되고 있는가?”
이번 질문은 익문사장이 아니라 옆에 선 외수사 총재 왕현식을 향했다. 왕현식이 침착한 태도로 답했다.
“종자가 제대로 싹이 텄고, 묘목을 키워 농장을 만드는 작업도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 농장이 일을 시작하면 우리 소득도 더 늘어나리라. 잘해보라.”
프랑스인들이 정씨네 영역에 만들려던 비단과 도자기 공장은 정씨가 태도를 바꾸면서 싹 날아갔다. 완씨네 영역에 만들려던 커피농장은 그런 문제는 없었지만 대신 커피나무 재배에 실패했다. 몇 년 동안 쩔쩔매던 프랑스인들은 결국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랑스인들은 커피 농사에 익숙한 우리 농부들만 고용하고 싶어 했지만, 그래서는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없다. 외수사는 프랑스 동인도회사와 협상 끝에 안남에 있는 커피농장 자체를 아예 우리가 맡아 운영하고 프랑스인들에게는 투자에 따른 수익만 배분하기로 했다.
“수확한 가배 원두를 우리 뜻대로 팔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으니, 저들이 판로를 가지고 농간을 부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도 요즘 커피 소비가 늘고 있으니, 튀르크산 커피와 경쟁하는 상품으로서 안남산 커피가 들어간다면 상당한 수요가 있을 거다. 프랑스 동인도회사 말고도 팔 곳은 얼마든지 있다.
혹시 유럽에 커피를 수출하지 못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 국내에서도 커피 수요는 계속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 줄을 모르니까. 대남도 커피를 수출할 여유가 거의 없을 만큼 국내 소비가 많다.
학생들은 공부하며 마시고 관리들은 근무 중에 피로를 쫓느라 마시고 군인들은 잠을 쫓고 몸을 덥히느라 화주를 타서 마신다. 가격도 처음 들어왔던 장조 때와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되게 싸졌다. 그만큼 재배가 늘어난 덕이다. 덤으로 커피 때문에 설탕 소비도 늘었다.
“폐하, 완씨 쪽에서 신을 통하여 부탁한 바가 있습니다만….”
커피농장에 관한 보고를 마친 왕현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광남에는 아직 개간해야 할 토지가 많으니, 이주할 백성이 있다면 보내주었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 수확한 쌀은 기꺼이 우리와 나누겠다면서요.”
“그건 생각해 볼 문제로다. 인력에 여유가 있다면 안남에 보내기보다는 누손주에 보내는 게 우선 아니겠느냐.”
메콩강 유역, 사이공 일대가 아직 거의 개발되지 않은 늪지대라는 건 나도 들었다. 이쪽 지역은 완씨 세력이 참파와 캄보디아를 밀어내면서 최근에 정복한 땅이다. 하루빨리 농토로 개간해서 국력을 증진하고 싶으리라.
하지만 나로서도 ‘내 땅’부터 개발해야 한다. 새 정복지인 필리핀에는 아직도 미개척지가 사방에 널려 있다. 지금은 소강상태긴 하지만, 전쟁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고 말이다.
– 6 –
『…갈로도에 있는 회회국들은 여전히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갈로도는 워낙 험한 섬이라 일거에 몰아치기도 쉽지 않아서 주변부터 꾸준히 제압하고 있습니다….』
갈로도는 민다나오섬에 붙인 우리식 이름이다. 회회국(回回國)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를 가리키는 통칭이다. 민다나오에는 3~4개쯤 되는 이슬람 술탄국이 있다.
“술루국왕이 표를 올려 원군과 물자를 요청하니, 들어주는 편이 좋을 듯하다.”
“삼군부에 명을 내려 적절한 양을 논의해서 보내게 하소서.”
디에고를 정식으로 술루국왕으로 봉한 건 갑오년(1714) 봄이었다. 계사년 여름에 은이가 미주에서 돌아온 뒤에 그 뒷정리를 마치고, 주변 정세도 충분히 안정됐다고 판단한 뒤다. 도성에 불려온 디에고는 이게 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폐하, 저는 정식으로 황실 가족 명부(황적)에도 들지 못하였사온데…이런 지위에 올라도 되는 것이옵니까?”
책봉식은 근정전 앞에서 열었다. 예법에 따라 국왕의 예복인 구장복(九章服)을 몸에 걸친 디에고와 적의(翟衣)를 입은 도로테아가 나란히 내 앞에 섰다.
디에고는 이게 정말로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인지 실감이 안 나는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도로테아의 얼굴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행복이 피어나 있었다.
‘황후마마, 스페인에서 도망쳐 나올 때는 이런 미래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저 이 나라에서 후작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여겼을 정도였는데….’
책봉식 전날, 교태전에 들었을 때 도로테아는 정말 펑펑 울었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로 집을 뛰쳐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어딘지도 잘 모르는 나라로 떠났다. 아들로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정착해도 좋다는 허락만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받았다.
‘황적에 올라가지 못하는 건 괜찮았어요. 스페인에서도 사생아는 정식으로 가문에 속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두 분 폐하께서는 저희에게 너무도….’
함께 입궐한 권훤의 처 이씨가 달랬지만 도로테아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상희는 그간 맺힌 게 얼마나 많았겠냐며 실컷 울도록 놓아두라고 했다. 도로테아는 그렇게 펑펑 울면서 대한에서 보낸 12년의 세월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감정을 풀어버린 덕분인지 도로테아는 책봉식에서는 기쁘고 행복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하지만 디에고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소환장을 받고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책봉식을 치를 때까지 한 달 내내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 굳은 표정은 경회루에서 치른 축하 연회가 끝날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나와 은이가 직접 축하주를 한 잔씩 따라주자, 그제야 실감이 나는지 비로소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감상을 드러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지 스페인어였다.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출신 때문에 황실 가족 명부에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세습 영지가 딸린 대공이라니요.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번왕은 완전히 독립된 주권을 가지지 못하므로, 유럽식 개념으로 왕이라고 칭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래서 디에고의 직위를 유럽식으로 표현하면 술루 대공이다.
“영지를 내리기는 하였으나, 실권은 없다. 그래도 괜찮은가.”
“대를 물려 이어갈 수 있는 영지를 내리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폐하께서 베푸신 은총을 뼈에 새기고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번왕으로 책봉된 디에고는 그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스페인에 있는 외조부 빌라다리아스 후작과 친모 이사벨에게 알렸다. 그리고 자기 궁궐을 지었는데, 내가 궁궐 건축에 보태라고 내탕금을 넉넉히 내렸는데도 새 건물을 짓지 않고 술루 술탄의 옛 궁궐을 개축했다.
‘모로족을 토벌하는 군비가 한 푼이라도 더 필요한데 궁궐 준비 따위에 비용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디에고는 자기가 지휘하는 병사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했다. 싸움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스페인인이건, 한인이건, 필리핀 토인이건, 중국인이건, 일본인이건 똑같이 상을 주었다.
디에고 휘하 술루군 병사 중에는 심지어 투항한 회교도로 구성한 부대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디에고가 자기 부하들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한다는 의미다. 그런 덕분에 디에고의 부하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면 불 속에도 뛰어들 만큼 충성스러운 정예가 되었다.
다만 디에고 휘하의 주력이던 일본군 지원부대는 5년 계약이 끝나면서 을미년(1715)에서 병신년(1716)에 걸쳐 귀국했다. 디에고는 아쉬웠지만 자기 휘하에 거느린 술루군과 누손주 병마절도사가 보내준 지원군을 합쳐 1만 병력으로 민다나오 제압 작전을 계속했다.
디에고를 번왕으로 봉하고 어느덧 3년, 지금 민다나오 주변에 있는 섬들은 대부분 우리가 손에 넣었다. 해군과 더불어 술루군과 별도로 본국과 대남도, 누손주에서 연평균 2만 명을 계속 투입한 덕분이다. 이제 남은 큰 섬은 민다나오 하나뿐이다.
민다나오 해안에는 거점을 여럿 마련했으나 아직 내륙까지 제압하지는 못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될 일이 아니니, 성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수행하라고 해두었다.
“폐하, 술루왕에게 물자를 넉넉히 내리소서. 술루국은 백성의 수효가 고작 1만 호를 조금 넘을 뿐이니 스스로 거두는 조세만으로는 도저히 전비를 댈 수 없사옵니다. 공연히 액수를 논의한답시고 삼군부에서 시간을 끌기보다 그냥 달라는 대로 주는 편이 낫습니다.”
국무총리대신(국상) 최석정은 체념한 표정으로 디에고를 지원하는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냈다. 좋아하는 수학 연구에 매진하려고 사직을 청한 지도 5년이 넘었지만, 그만두기는커녕 벼슬이 더 올라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기분이 참 착잡하리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성시균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사직하는 바람에 그 자리를 건강한 최석정이 메워야 했으니 말이다. 다만 승상까지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내각승상이라는 벼슬 명칭은 국무총리대신으로 개칭했다. 물론 순전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술루국이 제대로 존속하려면 백성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2만 호는 되어야 하니, 백성을 더 보낼 길을 찾으라 하소서.”
술루국은 처음부터 인구가 10만 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군대와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면서 더 줄어들었다. 지금 술루국 인구는 가서인 3만여 명에 원주민 2만여 명으로 대략 5만 명, 1만 호밖에 되지 않는다. 스페인인 인구는 군인 수백 명뿐이다.
이렇게 인구가 격감한 원인은 우리 쪽 병력 구성에 있었다. 가서인 출신 속오군과 귀화한 스페인인 부대가 많이 동원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인 데다가 과거 전력 때문에 대한 황실에 자신들의 충성심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일부 지역에서 회교도 토인들을 상대로 잔학행위가 심하게 벌어졌다는 데 있었다. 학살을 직접 겪거나 전해 들은 이슬람교도들은 공포에 떨면서 서쪽이나 남쪽의 다른 이슬람 토후국들로 도망갔다.
“신의 생각으로는 구주나 본국에서 천주교도들을 모아서 남으로 보내면 좋을 듯합니다. 천주교도들만 모여 사는 나라라고 하면 이상향이라고 여기며 가려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좌상의 말이 옳은 듯하다. 내무부에서는 각 관청에 글을 내려 천주교도를 대상으로 술루 땅으로 건너갈 이주자를 모아보라고 하라.”
내각승상, 좌승상, 우승상은 이제 없어졌다. 가장 높은 정승 자리는 국무총리대신과 이를 보좌하는 좌우 참정대신이다. 부총리 격인 참정대신은 예전보다 한 품계 낮은 종1품이지만, 줄여서 부를 때는 국상에 이어 여전히 좌상, 우상이라고 부른다. 지금 좌상은 윤시현이다.
“주민이 많이 살고 빈 땅이 없어야 도적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법이다. 내무부에서는 이주자에게는 집과 땅을 거저 주리라고 홍보하며 희망자를 모으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휴우, 영토가 넓어지고 백성이 많아질수록 내 일도 많아진다. 은이한테 대리청정까지 시키지는 않더라도 일부 업무는 좀 분담할까 보다. 슬슬 후계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 은이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훌륭한 후계자다. 은이에게서 아쉬운 점이라면 태자비가 아직도 적자를 낳지 못했다는 거, 그거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