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85
3부 4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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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먼저 짚고 넘어갈 사항은 이제 증기기관은 우리가 독점한 물건이 아니라는 거다. 드디어 영국제 증기기관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 신묘년(1711)에 ‘누코맨’이라는 잉글국 장인이 잉글국에서 최초로 제대로 돌아가는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하였습니다. 잉글국에서도 우리처럼 광산에서 고이는 물을 퍼내는 데 쓰기 시작했는데, 그 성능을 보면 과거 무종께서 처음 만드셨던 기관 정도라고 합니다.”
‘누코맨’이 아니라 아마 뉴커먼이겠지. 그건 기술 개발 극초기에 나온 물건이라 효율성이 와트식 기관보다 낮았다고 기억하는데 이쪽 세상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우리가 쓰는 데서 기술적 자극을 받아서 조금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증기기관 실물이나 설계도면이 유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국에 퍼진 기관이 이미 천여 대를 넘어가고 지난 백 년 동안 대한에 다녀간 유럽인이 수천 명이 넘는다. 그럼 기관 내부를 들여다보지는 않더라도 돌아가는 모습을 한 번쯤 구경한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은 겉모양만 봐도 뭔가 힌트를 얻을 테니….’
내가 봐서 모른다고 남도 모르라는 법은 없다. 쓰레기통에서도 뭔가 주워내는 사람이 꼭 있듯이, 우리 증기기관을 겉만 보고도 뭔가 깨달음을 얻은 유럽인도 있을지 모른다. 머리가 좋은 놈들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외국의 사정과는 별개로, 우리 내부에서의 증기기관 보급 확대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다. 열기창 지소들도 예정대로 하나씩 문을 열었다. 계사년(1713)에 평양지소, 갑오년(1714)에 대구지소, 마지막으로 을미년(1715)에 해삼위 지소가 차례로 가동에 들어갔다.
열기창이 증설되면서 증기기관 보급이 대폭 늘었고 이미 보급한 기관을 유지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더불어서 서학당에서 기계를 공부한 학생들이 취업할 진로도 넓어졌다. 열기창이 기존에 자체적으로 양성하던 공장(工匠) 숫자로는 도저히 일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생 배출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서학당에 들어오는 입학생 수도 늘었다는 이야기다. 서학당 총장 윤두서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보고했다.
“요즘은 입학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도가 매년 오백여 명이 넘습니다.”
서학당을 담당한 책임자의 직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관청처럼 도제조, 제조였다. 하지만 관료 냄새가 너무 풍기는 이름이라서 이래저래 관제를 손보면서 이것도 바꿔버렸다. 대학교를 책임질 사람이라면 역시 총장 아닌가.
“이게 다 과학보를 열심히 찍어 배포한 덕에 얻은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8년 동안 꾸준히 학보를 만들어 배포했더니, 이를 읽고 호기심을 품은 이들이 새 학문을 연구해보고 싶다면서 줄줄이 찾아듭니다.”
사람이란 궁금한 게 생겨야 공부에 재미가 붙는 법이다. 그래서 윤두서는 과학보에 그저 딱딱한 연구 기사만 싣는 게 아니라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연재하는가 하면 상금을 걸고 과학 퀴즈를 내기도 했다. 물론 ‘퀴즈’라고 칭하지는 않고, 설문(說問)이라고 부른다.
더불어서 학과도 더 늘렸다. 기존에는 프랑스에서 데려온 교수들이 진행하는 기계, 물리, 화학, 토목, 천문 분야의 수업만 있었다. 하지만 윤두서는 여기에 큰 변화를 주었다. 동물학, 어류학, 식물학, 광물학 수업이 추가되었다. 이 학과들은 국내에서 교수를 구했다.
동물학 교수는 숙련된 사냥꾼과 목부(牧夫)가 맡았다. 어류학 수업은 어부와 고래잡이를 데려다 시켰다. 식물학은 약초꾼과 목수들에게 맡겼다. 광물학은 공무부 광산국에서 일하는 체코계 탐광 전문가들을 교수로 데려왔다.
프랑스에서 온 기존 교수진은 이런 ‘비천한 막노동꾼’들을 선뜻 동료 교수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윤두서는 자신이 원하는 학과 확대를 계속 진행하면서 이들의 불만도 잘 달래야만 했다. 정말 대단한 추진력이었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학문을 장려하는 건 내가 먼저 해야 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관심사가 정치와 군사에 주로 쏠리다 보니 이런 쪽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이런 문제에 관심도 있고 추진력도 있는 윤두서를 이 자리에 앉힌 건 정말 내 신의 한 수였다.
대신 나는 윤두서가 올린 기획안을 받고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반대 의견을 돌파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학무부에서 예산을 넉넉하게 편성하도록 했다. 급하면 내탕금도 내렸다. 그 결과 서학당은 예전보다 훨씬 융성하게 되었다.
학과 숫자가 늘어나면서 과학보에 글을 싣는 필진도 많아졌다. 고로 실리는 기사 내용이 다양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용이 풍부해진 과학보는 더 많은 입학 희망자를 서학당으로 불러들였다.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합격한 학생들은 이 다양한 학과 중에서 원하는 수업을 얼마든지 골라서 들을 수 있다. 학위는 어떤 분야를 주력으로 해서 논문을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발급하지만, 수업은 어떤 수업을 골라서 듣건 자유다.
“세상 만물은 모두 정해진 쓸모가 있으니 잘 익혀 두면 어디든 쓸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당장 적당한 용처가 없는 무용지물이라 하여도, 어딘가에는 분명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순전히 알아가는 즐거움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모두 옳다. 국상이 수학을 연구하는 게 어디 당장 훈장이라도 받을 셈으로 하는 공부이겠느냐? 그저 자신이 즐거우니 하는 것 아니냐.”
최석정은 사직에 실패하자 작심했는지 일과 취미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조금 미안한 구석이 있으니 최석정에게 두 달에 열흘 정도는 사가독서(賜暇讀書)로 집에서 쉬도록 했다. 즉, 정기적으로 유급휴가를 줬다는 소리다.
최석정은 이 짬을 이용해서 미친 듯이 수학 연구를 했다. 그래서 올해 초에는 《수학소론(數學小論)》이라는 책까지 냈다. 나한테도 한 권 진상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상희는 재미있게 읽더라만, 나는 영 손이 안 가더라.
“신이 살피니 수학의 각 분야가 무척 정리가 잘 되어있었습니다. 제목만 소론(小論)이지, 그 심오함이 가히 달인의 경지에 달하였다고 할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수학 교습에서 사용할 교본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나온 수학에 관한 책은 이름 있는 것만 해도 서른 권은 된다. 그중에 가장 권위 있는 책은 상희(상빈 이씨) 이름으로 발간한 《수학대전(數學大典)》이다. 다만 상희가 직접 저술한 건 아니고, 상희가 남긴 이런저런 원고를 상희 사후에 편집한 책이다.
상희 외에도 여러 수학자가 책을 집필했고, 서학당을 비롯해서 수학을 가르치는 학교들은 그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서 교재로 쓴다. 이제 최석정이 쓴 책도 그 반열에 오르는 셈이다.
“수학은 육예에 속하니 학문을 익히는 자라면 의당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라틴어는 서학을 할 자들만 익히면 되지만, 수학은 학자라면 모두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서학당에 입학할 때 치르는 필기시험 과목이 수학과 라틴어다. 성적이 우수하면 좋지만, 필기시험 성적이 나빠도 면접 결과가 좋으면 통과할 수 있다. 입학한 뒤에 수학과 라틴어가 필요한 수준에 오를 때까지 계속 학습해야 할 뿐이다.
국문과 한문 시험은 따로 보지 않는다. 국문, 한문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다면 면접에서 이미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서학당에 들어올 수 있다.
“이제는 수업도 전처럼 불랑국어나 라틴어로만 계속 진행하지 않고 우리말을 많이 쓴다고 하였던가?”
“신이 새로 설치한 학과는 그렇사오나, 선황께서 설치하신 학과는 그동안 내려온 관습이 아직 깨지지 않아 여전히 불랑국어나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사옵니다. 아직 불랑인 교수들이 많이 있는 데다 학생들도 다들 그것을 당연히 여기다 보니….”
하기야 30년 동안 내려오던 관습이 당장 바뀌기는 어렵다. 이제는 프랑스인이 아닌 한인 교수도 여럿 배출했지만, 이들도 30년 동안 학교 안에서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들이다 보니 수업에서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 말들을 모르는 학생들이야 배우면 되니까 상관없다. 문제는 윤두서가 새로 채용해서 프랑스어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신입 교수들을 깎아내리고 멸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거다. 그게 하도 심해서, 아예 건물을 따로 쓰고 서로 상종하지 않게 할 정도다.
심지어 프랑스파 출신 한인 교수들이 외부 학교에 출강을 나가서도 당연하게 프랑스어를 섞어 가며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이 망할 자식들, 내가 30년 전에 과학용어 같은 거 전부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집 만들어줬잖아?!
“사학당에서 학업을 쌓은 박사로서 본교에서 강의하는 이가 여섯이옵고, 12개 사학당 중 8개소에 기계와 화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있사옵니다. 새 학문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옵니까?”
한인 교수들이 약진하는 만큼 형황 때 건너온 프랑스인 교수들은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기 시작했다. 하는 짓이 꼴사납긴 해도, 이는 학계의 세대교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서학당 출신 교수들은 자기들을 가르친 프랑스인 교수들과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프랑스인 교수들은 학생 숫자가 얼마든 눈앞에 배우러 온 학생들만 가르치면 만족했지만, 한인 교수들은 더 많은 학생, 더 많은 제자를 원했다. 이유야 뭐 뻔하다.
“학당을 이루려는 게 아니냐.”
“사실 그렇기는 하옵니다. 후일 분란의 소지가 될 공산이 큽니다만….”
“괜찮다, 놔둬라. 그래야 서로 경쟁도 하고 토론도 하며 연구에 매진한 끝에 훨씬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테니. 충돌이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
학당(學黨)은 쉽게 말해 학파다. 성리학에서도 학파는 있고 현대에서도 학계에는 학파가 있었다. 그것이 서학당에서는 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났을 뿐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패가 갈려 다투고 정치질을 벌이기 마련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다만 학당(學堂) 안에서 학당(學黨)을 이루니 뭔가 혼동이 있을 법도 하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지 잘만 구분해서 쓰고 있다. 그럼 됐지 뭐.
어쨌든 이들이 세를 과시하러 나서는 도전은 이미 도움이 되고 있다. 기계과에서는 더욱 강하고 안전한 증기기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토목과는 철도 부설을 놓고 공무부와 경쟁이 붙었다. 현장에서 뼈가 굵은 이들과 학교에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이들의 대결이다.
그중에서 세간의 시선을 모으는 데 가장 크게 성공한 학과는 뜻밖에 화학과였다. 교수들 사이에 벌어진 명성 쌓기 경쟁이, ‘과연 누가 가장 순도 높은 금을 정련해내는가’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생각도 못 한 전개였다.
“재물은 세상 만민의 욕심을 불러내는 미끼입니다. 그러니 금은을 다루는 일에는 세상이 모두 흥미를 갖지요. 어찌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다만 수은은 지나치게 독이 강하니, 광석을 수은으로 제련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앞으로도 꼭 지키게 하여라.”
수은중독 환자를 양산하고 환경을 파괴할 게 뻔해서 미주에 있는 은광에서도 아말감법은 쓰지 못하게 했었다. 우리가 쓰는 회취법에도 납중독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수은중독이 납중독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차라리 좀 덜 벌고 말지, 쓰지 말아야 할 나쁜 채취법이다.
이런 제한은 광산 현장뿐 아니라 서학당에 있는 연구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금은을 고순도로 정련하려던 서학당 화학과의 교수와 학생 전원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빤히 보이는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들이 고민한 끝에 대신 고안한 방법이 수은 대신 염산, 질산, 황산, 심지어 왕수를 써서 금을 정련하는 거였다. 그 결과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순도 높은 금을 얻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진짜 소득은 금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순금을 정련하는 기술은 비용이 너무 많이 먹혀서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는 이런 산 종류를 제조하고 보관하는 기술이 생겼다는 거야말로 진짜 보물이다.
그동안 화학과를 맡은 프랑스인 교수는 이런 산 종류 약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프랑스에 주문해서 썼다. 나는 그놈이 산을 제조할 줄 몰라서 그러는 줄만 알았는데, 녀석이 은퇴한 뒤에 보니 그냥 귀찮아서 그런 거였다. 기껏 준 연구비로 그런 돈지랄을 하다니!
이런 산 종류가 갖는 산업적인 가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금 순도 올리기 경쟁 덕분에 정말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수은중독자 안 내려고 아말감법 사용을 금지한 조치가 이런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앞으로는 불랑국에서 오는 배를 기다리지 않고 얼마든지 각종 산수(酸水)를 만들어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황만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으면 됩니다.”
“서학당에 황 공급이 끊어질 염려는 없으니 마음을 놓아라.”
황산은 황을 태워서 만든다. 질산은 황산과 초석, 염산은 황산과 소금을 반응시켜 만드니 황산이야말로 화학의 근본이다. 어차피 화약 제조에 쓰는 황의 양만 해도 엄청나므로, 좀 덜어서 황산 제조에 쓴다고 해도 티도 안 난다. 초석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저들의 학식을 이어받은 덕분에 우리가 많은 득을 보았으니, 퇴임한 불랑국인 교수들이 살 집과 살림은 부족하지 않도록 챙겨주어라. 스승을 부모처럼 봉양함도 사대부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퇴임한 프랑스인 교수들에게는 현임일 때와 같은 녹봉을 지급하고, 주택과 시종도 학교가 부담해서 그대로 유지해주고 있다. 수입과 재산에 대한 면세 조치도 여전히 유효하다. 혹시 프랑스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도와주고 있다.
“가고 싶다면 보내줘야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지 않더냐.”
내 절친이었던 다토스와 드 포르토도 고향에서 생을 마치겠다고 귀향했는데 학자들이라고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갈 사람은 가고, 여기에 묻힐 사람은 여기 묻히면 되는 거다. 벌써 여러 사람이 대한에서 얻은 처자와 함께 배를 타고 제물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을 내게 보내준 루이 14세가 떠오르는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 신세 많이 졌다. 지금 거의 80세가 다 되었을 텐데, 건강은 좀 어떠려나. 살아는 있을까?
루이 14세의 건강에 대한 내 궁금증은 몇 주 안 가서 풀렸다. 제물포에서 급히 달려와서 입궐한 프랑스 상관장 지베르가 새하얗게 변한 얼굴로 내게 서한을 올렸다.
“본국에서 이번에 들어온 배가 알리기를…베르사유에 계시던 국왕 폐하께서 재작년 9월 1일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루이 14세께서 돌아가셨다고?”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과거 베르사유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그 당당한 사람이 이제 생을 마쳤구나. 드디어 한 시대가 막을 내렸구나. 그래도 향년 76세면 오래 살았다. 지금 시대가 시대 아닌가.
과연 앞으로 프랑스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려나. 그건 아마도 새 국왕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겠다고 결심했느냐에 달려 있으리라.
새 국왕은 예상대로의 인물이었다. 루이 14세의 장남, 내 친구였던 그랑 도팽 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