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86
3부 4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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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두 접종 덕분인지 그랑 도팽 루이는 천연두로 죽지 않고 무사히 루이 15세로 즉위했다. 다만 그랑 도팽 루이의 세 아들 중 맏아들인 프티 도팽 루이는 병사했다. 종두는 맞았는데, 그만 홍역에 걸려 치료의 일환으로 피를 뽑다가 죽었다. 향년 30세, 1712년의 일이다.
프티 도팽 루이의 아내도 홍역에 걸려 며칠 먼저 죽었기에, 이들 부부의 아들인 브르타뉴 공작 루이와 앙주 공작 루이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사실 이들도 전부 홍역에 감염됐으나 다행히 살아남았다. 루이 14세의 직계가 단절되는 건 면한 셈이다.
“어린아이라 병을 견디는 힘이 강했던 것인가?”
“듣기로는, 평소 증조부가 홍삼을 장복시켜서 몸을 보해두었던 효과를 본 데다 피를 빼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합니다.”
유럽에 수출되는 홍삼은 여전히 비싸다. 같은 무게의 금에 해당하는 비싼 약재다. 당연히 아무나 복용할 수 없지만, 프랑스 왕실쯤 되면 왕위를 계승할 증손자에게 매일같이 홍삼을 먹이는 정도 씀씀이도 가능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홍삼을 먹여 놓았어도 프티 도팽 루이처럼 과다출혈로 환자를 죽여버리면 소용이 없다. 익문사장 조하제가 내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프랑스 궁정에서도 그 문제로 인한 충돌이 만만찮았던 듯하다.
“부친처럼 사혈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원들과 병세가 별로 심하지 않으니 피를 뺄 필요는 없다는 의원들이 무리를 나누어 대립하던 중에, 왕태손의 가정교사가 두 아이 모두 골방에 숨겨버려서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혈(瀉血)은 ‘나쁜 피’를 빼내서 병을 치료하는 요법이다. 안 그래도 몸이 힘든 환자한테 피를 빼서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드는 막장 요법이라고 보지만, 아직 18세기인지라 당당하게 의서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마찬가지다.
그나마 동양에서는 ‘기혈의 흐름이 막힌 것을 풀기 위해’ 약간 빼는 정도지만 서양에서는 ‘신체에 있는 네 가지 체액(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라는 명목으로 무지막지하게 대량으로 뽑는다. 당장 프티 도팽이 과다출혈로 죽지 않았는가.
어쨌든 이 홍역 유행 탓에 그랑 도팽…아니, 이제 루이 15세는 졸지에 장남 부부를 모두 잃었다. 차남 앙주 공작은 양 시칠리아 왕국 국왕으로 나폴리에 가 있으니 무사했고, 삼남 베리 공작 샤를은 프랑스에 있었으나 다행히 병마를 피했다.
“짐이 파락호 시절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는 데는 불랑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바를 보고 교훈을 얻은 바가 컸다. 내 스승을 잃었다 할 수 있으니, 오늘 하루는 국사를 쉬겠다.”
갑자기 60년도 더 넘어 가물가물해진 옛날 일 하나가 생각난다. 처음 무종으로 각성했던 그때, 성종의 장례를 다 치르기 전이었던가? 하여튼 그때 폐비 윤씨의 일이 조정에서 처음 거론됐다.
그때는 아직 조정 일에 적응도 안 되고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마침 폐비 윤씨 이야기가 나오자 옳다구나 하고 그날 업무를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혀 술잔을 기울이며 혼자 자체 휴가를 보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일이 참 엉뚱한 의미로 알려지긴 했더라만.
하지만 오늘 정사를 돌보지 않고 쉬겠다는 건 그때와 달리 정말로 애도하는 뜻에서 쉬는 거다. 내가 일을 쉬고 싶으면 쉬겠다고 말하고 그냥 쉬면 되는데 뭐하러 거짓 핑계를 대고 출근을 안 하겠나.
폐비 윤씨는 나에게는 정말 남이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한동안 함께 지내면서 친분을 쌓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마땅히 혼자서 술 한잔 올리며 보내줄 가치가 있지 않은가.
내가 30년 전부터 열심히 상황을 조작해서 퍼뜨린 덕분에 루이 14세와 나 사이의 관계는 실제보다 훨씬 깊고 가까운 것으로 되어있다. 내가 ‘개과천선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사람 중 하나가 루이 14세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다른 하나? 그야 당연히 올렝카지.
다만 루이 14세에 대한 국내에서의 평가가 호평 일변도는 아니다. 프랑스를 유럽 제일의 대국으로 끌어올린 거야 칭찬을 받는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잦은 전쟁을 벌이고 대규모 궁궐 건축으로 백성들에게 부담을 준 건 악평을 받는 부분이다.
“그렇다 하여도 불랑국 선왕이 폐하께 스승과도 같다 하시는 말씀은 틀리지 않사옵니다. 스승의 가는 길을 애도한다는 것은 마땅히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이니, 폐하께서는 뜻대로 하시옵소서.”
예무대신 남형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간언했다. 전임자인 이정현의 과격한 태도에 학을 뗀 나머지 내가 고르고 고른 예법에 밝으며 ‘점잖은’ 사대부다. 근본적으로 사대부들이 전부 이정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애초에 이정현은 예무대신으로 앉히려고 뽑은 사람이 아니었다. 봉상시 도제조로 있다가 6부가 12부로 확대되면서 새로 생긴 빈자리에 자동승진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원하는 예무부 대신으로서의 모습과는 차이가 컸다. 무엇보다 그 과격한 성정이 참….
‘거리만 좀 더 가까웠으면 군사를 내서 무도한 무굴인들에게 성현의 도리를 전파하였을 것’이라고? ‘유자의 짐’이라는 개념 자체야 뭐 나쁘지 않다고 치자. 하지만 그걸 현실화하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좋은 말로 달래자는 것도 아니고, 대뜸 원정하자고?
이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을 계속 조정에 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과연 후송이, 서나라가 제위 계승 과정에 말썽이 일어나면 개입하자고 하지 않을까?
이정현 같은 사람의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는 무조건 적통 황실의 편을 들어서 개입해야 한다. 출병 비용 문제나 어느 쪽을 지지해야 우리한테 실제로 이익이 되는지 같은 고려는 전부 제쳐놓고 어느 쪽이 적통인지나 따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며칠 고심하다가 이정현이 이미 만으로 74세라는 점을 들어 예무부 대신 자리를 내려놓게 하고 기로소로 보내버렸다. 물론 중추원에 한 자리 챙겨주기는 했다.
‘중추원에서 자기를 따르는 여론을 조성하고도 남을 양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정에서, 내 코앞에서 같은 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 조정 내부에서는 최대한 선비질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이정현의 후임자로는 최대한 얌전한 이를 골랐고, 남형준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선을 불러 마포성당에 사람을 보내게 했다.
“주교에게 죽은 불랑국왕을 위한 위령미사를 올려 달라고 하라. 예물은 내수사에서 따로 보낼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얼마면 될까. 은 천 냥쯤이면 딱히 쩨쩨하다는 소리는 안 듣겠지.
그러고 보니 요즘 교황청에서 슬슬 안 좋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 참. 그쪽에 관해서 쐐기를 박아야겠다.
“그리고 주교에게 짐이 할 말이 있으니 며칠 안에 입궐하라고 전하여라. 로마에 전하라고 명할 말이 있다.”
“예,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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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에서 도미니코회가 우리 동방의 제사 관습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던데.”
“그렇…습니다, 폐하.”
지금 조선교구 주교를 맡은 성직자는 장 폴 드 동데르라고 하는 프랑스인 성직자다. 이제 11대째 주교로, 앙투안 토마스가 선종한 이후로 두 번째로 건너온 후임자다.
그동안 조선교구에 부임한 주교 중에는 유럽을 떠나지도 않았던 사람도 있고, 배를 타고 건너오는 중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예수회 계열이었던 건 같다.
“도미니코회가 우리에게 앙심을 품은 건 필리핀에서 쫓겨난 건 때문이오?”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필리핀을 점령한 뒤, 도미니코회 소속 성직자는 모두 스페인령 아메리카로 추방해 버렸다. 2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기반을 다져온 필리핀에서 쫓겨난 도미니코회는 당연히 격노했고, 교황청에 항의를 넣었다. 목표는 ‘대한의 이교도들과 결탁한’ 예수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선교구는 예수회가 장악하고 있는데, 여기 속한 대한이 군대를 보내 도미니코회를 비롯한 다른 수도회가 주도하던 마닐라 대교구를 함락하고 도미니코회 세력을 추방했다. 이는 예수회가 꾸민 일이니 예수회를 제재함으로써 이를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제재’ 방안에는 예수회가 계속 차지해 온 조선교구 주교직을 도미니코회로 넘기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수회가 나선 탓에 허용한 대한에서의 제사를 다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가 찬 이야기다.
“현 교황 클레멘스 11세께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소명을 요구한 상황이십니다. 그래서 지난번 전쟁의 원인은 스페인 정부의 과오에 있었고, 저희가 조장한 게 아니라는 해명을 한 상태입니다.”
“천주교를 믿기로 한 우리 백성들이 제사를 계속 지내도 좋다고 허락한 교황은 클레멘스 8세였소. 그런데 그와 같은 이름을 쓰는 교황이 제사를 금지할 생각을 하고 있다니, 기가 찬 일이군.”
두 클레멘스 교황은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고 어느 수도회 출신도 아니며, 교황청에 속한 성직자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도 상황에 따라 내리는 결론은 다를 수 있나 보다.
“로마에 보내는 서한에다가 이 점을 명확히 적도록 하시오. 천주교를 믿는 우리 백성들이 지내는 제사는 모두 교회의 승인을 받은 형식에 따르고 있으니 공연히 금지하거나 추가적인 제한을 가하여 우리 대한의 풍속을 해치려고 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천주교도들이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향도 피우고 음식도 차리지만, 신주는 놓지 않는다. 위패는 놓을 수 있고, 어느 정도 부유한 집안에서는 초상화를 올리기도 한다. 유럽인들처럼 초상화를 그리는 습관이 퍼지고 난 뒤에 나온 변화다. 다만 꼭 서양식 초상화는 아니다.
위패를 놓는다고 해서 그 앞에서 엎드려 절하지도 않는다. 서서 허리를 숙여 조상님에게 예를 표하고, 기도와 찬송으로 그 덕을 찬미하며 천당에서의 행복을 기원한다. 그리고 다시 절을 하여 재차 예를 표하고 차린 음식을 나눠 먹으며 고인을 추억한다.
“이 정도 예식도 치르지 못하게 한다면 이 대한이라는 나라를 4천 년의 오랜 문화를 지닌 대국이 아니라 다스려 교화해야 할 야만인의 나라로 취급한다는 뜻이 될 거요. 그렇게 되면 필시 이 나라의 모든 대중이 분개할 터이니, 그 뜻을 꼭 로마에 전하시오.”
이제는 굳이 교황청을 통하지 않더라도 유럽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 고로 장조 시절만큼 교황청과의 외교 관계 유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상업 루트를 통해서 얼마든지 유럽과 왕래할 수 있고, 이제 교황의 권위는 별 필요 없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모두 자기 이익 앞에서는 교황 따위는 개뼈다귀만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러시아야 말할 것도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인정은 하되, 혹시 자기네 국익과 충돌하면 서슴없이 밀어버릴 수 있다는 정도가 맞겠다.
만에 하나라도 교황청이 원래 역사에서처럼 전례 문제를 트집 잡아서 제사 금지령이라도 내린다면, 그날로 교황청과의 협력 관계는 끝장이다. 클레멘스 11세도 80만 신도 ? 30만은 일본인이지만 ? 가 있는 동양 최강국인 우리 대한을 쉽게 버리진 못할 게다.
물론 천주교의 사회적 위상이야 천주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후금에서 훨씬 높기는 하다. 후금은 신자 수도 2백만은 된다. 남방에서 끌려온 한족들에게 양자택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고 농노가 될 테냐, 세례를 안 받고 노예가 될 테냐?’
개종한 한족들은 후금 각 교구에 배당되어 교적에 오르고 교회의 통제를 받는다. 개종을 거부한 이들은 가장 환경이 좋지 않은 탄광이나 철광에 보내져 광산노예가 된다. 그 환경에 처하면 개종을 거부하던 자들도 제발 개종하게 해달라고 매달려 빌 지경이 된다.
여기에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스스로 이주한 한족들도 있어서, 후금의 한족 인구 150만은 전원 명목상으로는 천주교 신자다. 만주인 중에는 5할, 몽골인 중에는 2할 정도만 천주교 신자인 것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숫자다. 가짜가 많아서 그렇지.
“그나마 세례를 받은 만주나 몽골 귀족들도 상당수는 수도의 교회에서만 미사를 드리고 영지로 돌아가면 불상과 신주 앞에서 절을 하는 사이비 신자지.”
굳이 이 얘기를 꺼내는 건, 혹시라도 교황청이 후금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를 압박한다는 헛된 꿈을 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를 거치지 않고는 교황이 보낸 사자가 상도까지 도달할 수도 없고 ? 비단길을 거치면 가능하려나? 그런데 그 길은 누가 열어줘? ? 도착해도 대한을 견제해 달라는 미친 제안에 응할 만큼 와극달이 머저리도 아니다.
“로마에 분명히 전하겠습니다, 폐하.”
드 동데르 주교는 내 뜻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럼 이 일에서 내 몫은 다한 셈이다. 이제 현임 교황이 복수심에 불타는 도미니코회의 부추김에 넘어가 그만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기만 희망하는 바다.
– 12 –
공식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루이 14세는 내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 부고를 받고 지구 반대편에서 위령미사나 드리고 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조문하는 사절을 보내 불랑국왕이 붕어한 데 대한 조의를 표하고 다음 왕과 우호를 다지고자 한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상을 치른 이를 조문할 때는 아직 빈소가 유지되는 동안에 방문하는 것이 상례입니다만, 우리와 불랑국 사이 거리가 워낙 머니 지금 조문 사절을 보낸다고 해도 비례(非禮)는 아닐 것입니다.”
남형준이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이정도가 내가 예무대신에게 바라는 역할이다.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무굴 놈들을 정벌하자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를 여기 편전에서 듣고 싶지는 않다.
“유주에 사자로 보내자면 유주의 관습과 예의를 잘 아는 사람이 좋을 것이다. 장조께서는 과거 견서사를 보내실 때 그 점을 고려하여 인원을 정하셨으나, 지금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구나.”
아, 유럽에 3번이나 다녀온 이덕형이 생각나는구나. 이덕형은 출사한 뒤에 국내에 머무른 기간보다 유럽을 오가면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지, 아마? 그래도 그 덕분에 롤리타를 만나 대한 상류층에서 처음 국제결혼을 했다는 기록도 세웠으니 나름대로 보상이 되지 않았나.
“가장 최근에 유주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이 바로 짐이니, 조정에서는 보낼 사람이 없다. 그대들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
이형준은 노환으로 죽었다. 홍상훈도 죽었다. 김종건은 계미남변 중에 필리핀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진원도 죽었다. 다들 나이가 나이라 하나씩 눈을 감는 것도 당연하다.
하인들도 다 죽었다. 박종선이야 한참 전에 갔고, 한동안 소식 파악이 안 됐던 지말복과 오돌천도 수소문해서 찾고 보니 이미 죽었더라. 우리 8차 견서사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정호찬과 이홍석 둘뿐이다. 심지어 둘 다 67세 노인이다.
이들은 프랑스에 알고 지내던 사람도 많으니 사자로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홍석은 혹시 몰라도 정호찬은 절대 안 된다. 오군대총관을 맡은 내 최측근을 몇 년 일정으로 내보낸다면 도성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신하들은 일단 자기는 가기 싫으니 서로 눈치를 살폈다. 유럽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3년은 잡아야 하고, 도중에 질병이나 사고를 겪을 위험성도 얼마간은 있다. 그렇다 보니 자원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종친 중에 정사를 뽑고, 적당한 관원을 부사로 하시옵소서.”
이번에도 남형준이 물꼬를 텄다. 그러자 다른 대신들도 하나씩 입을 열었다. 부사라면 그 직위가 상당히 낮을 터, 대신인 자기들은 나가지 않아도 되리라고 판단했으리라.
대신들이 추천한 정사 후보는 참 다양했다. 강녕왕을 제외한 현왕의 다섯 아들 ? 그동안 상경을 거부하던 세 서자도 올해 봄에 드디어 도성에 올라왔다 ? 이 모두 추천을 받았고, 내 두 매형과 오직 하나 있는 조카사위도 거명됐다. 더 먼 종친들도 여럿 나왔다.
하지만 내겐 다들 내키지 않았다. 자격은 될지언정 유럽 언어와 풍습에 익숙하지도 않고, ‘꼭 이 녀석을’ 보내야 한다는 그런 이유가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적임자는 딱 하나였다.
“짐은 술루국왕을 보내 조문했으면 한다. 혹시 반대하는 이가 있는가?”
술루국왕 디에고야말로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조문 사절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