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9
1부 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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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올해도 좀 위태위태하다? 5월 들어오면서 햇무리가 끼더니, 경기도 일대에 비가 제때 오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또 가뭄인가?
경기도는 도성에 가까워서 운반이 쉬운데다가, 관리들이 급료로 지급받은 과전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농지다. 경기도가 또 흉년이라면 문제가 좀 곤란해진다.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에는 비가 적절히 오고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오냐, 알았다.”
하긴 다른 지역에서 비가 적절히 온다면, 경기도 지역에서 비가 좀 안 오는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조세 금납화가 되면 이런 문제가 좀 더 쉽게 처리될 수 있을 텐데….
바로 이 문제가 대동법 논쟁에서 본격적인 제2라운드가 되었다.
“수일 전 파평부원군 윤필상이 대동법 시행이 불가한 까닭을 여러 조목에 걸쳐 지적하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정에 몸을 바친 노신이니만큼 논거도 자세하였고, 듣는 이가 되새겨야 할 점도 많았다. 허나 과인은 대동법이 꼭 필요하다 여기기에 반론을 준비해 보았다.”
일방적인 명령으로 대동법을 시행해 보아야 될 턱이 없다. 내가 위에서 명령만 내린다고 딱 하고 마법을 부리듯 행정적인 준비가 되는 게 아니니까.
쌀이든, 돈이든 무엇을 어떻게 걷을 것인지 확정하고 그에 맞춘 준비를 하는 데만 몇 년은 걸린다. 배를 짓든, 창고를 짓든, 화폐를 발행하든…그 뒤에야 비로소 제도를 바꿀 수 있다.
지금 하는 건 바로 그 ‘정책 확정’ 단계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조정 여론을 통일시켜야 그 다음 수순으로 대동법 시행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파평부원군이 지적한 사안들은 과인도 이미 생각해 본 문제다. 그리고 전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노라. 그대들도 듣고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잠시 말을 끊고 분위기를 살폈다. 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한 마디라도 놓칠 새라 바짝 긴장들 한 태도였다.
“비록 전세가 80두로 오른다 한들, 공납과 잡세를 부담하느라 지는 부담이 없어진다면 여러 백성들이 겪는 수고는 도리어 가벼워지리라는 사실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윤필상은 70두를 말했지만 슬쩍 수치를 조금 더 올렸다. 최종적으로 얼마로 정할지는 한참 더 논의를 해야 할 테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액수가 깎일 테니 일단 높게 불러놓았다.
“또한 파평부원군은 모든 호구(戶口)가 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가난한 자들만 면해준다면 공평치 못한 일이라 하였다. 하지만 공물을 면해준다 해서 군역과 부역까지 면제되느냐? 국역을 바치면 충분하다. 공물 부담 때문에 군역을 수행할 이가 없어진다면 이는 어찌 메꾸겠느냐?”
세금은 필요하면 더 걷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필요하다고 제꺽 만들어낼 수가 없다. 공납은 사람 머릿수에 따라 부담되는 인두세나 마찬가지고, 부담이 심하면 백성들이 도망쳐서 호구에서 사라진다. 공물은 이웃이나 친족에게 떠넘길 수도 있지만 역은 그럴 수도 없다.
어차피 내기 힘든 세금을 줄여주면, 도망도 안 갈뿐더러 자식도 더 많이 낳을 것이다. 다만 세금 부담이 좀 준다고 가난한 이들이 부자가 되지는 않을 터, 그 다음 세대에서는 부양하기 힘들어진 인구압이 커진다. 그러면 이제 그 잉여인구를 자유롭게 활용할 길이 열린다.
화전금지법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전을 하는 이들은 자기 토지가 없다. 화전을 금지하면 이들은 굶어죽든가 유랑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산업노동자와 대외이주민이 확보되니까.
비록 지금은 범죄자 색출 및 추방으로 북방에 사민할 이들을 충당하고 있지만, 이건 절대 제대로 된 인력 공급원이 아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서 스스로 이주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쓸모가 있다. 구한말에 간도 개척에 나섰던 이들이 모두 스스로 건너갔듯이 말이다.
조정 중신들 중에서도 내가 선왕의 유지 때문에 화전금지법을 강력하게 지킨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미 밝혔듯이 노동력 확보를 위한 유랑민 양산이다. 저런 순진한 신하들은 하루빨리 조정에서 쫓아내야 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수령이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곱 가지 사안 중 두 번째가 인구를 늘리는 것 아니냐? 이미 부유한 이들은 전세를 더 낸다 해도 자식을 줄이기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나, 가난한 백성들이 세금을 덜 내면 자연히 자식을 더 키울 것이다. 이로써 군정이 늘어나리라.”
수령칠사(守令七事)는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서 수령이 지킬 주의사항으로, 인구를 늘리며 학문을 권장하고 고을을 풍요롭게 할 것이 권장되고 있다. 경국대전에도 규정된 내용이다.
여기서 세금은 언급이 되지 않는다. 부역을 공정하게 나누라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파평부원군은 세로 거둔 곡식과 포목을 운반하고 정리하는데 큰 부담이 있다 하였다. 허나 이는 도성으로 보내는 상납미를 곡식이 아니라 은과 저화로 대체한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로다! 어찌 굳이 무겁고 불편한 미곡과 포목으로 계속 세금을 걷어야 하는가?”
물론 현재의 쌀본위제 체제에서는 원활한 태환을 위해서는 준비미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적어도 도성으로 운반하기 편한 경기도 및 황해도, 충청도 일대에서는 계속 세금을 쌀로 내도록 해야 하리라. 일단 당분간은.
“전하! 외람되오나 한 말씀 드리겠사옵니다. 저화는 도성에서는 비교적 원활하게 통용되고 있사오나, 지방 각 고을에서는 아직까지 많이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화를 대량으로 구한다면 저화 가격이 폭등하고, 모리배들만 이득을 챙길 것입니다.”
윤필상은 여전히 굳센 태도로 대동법 도입을 반대했다. 무오사화 이후로 내게 반항하려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던 그 윤필상이 아닌 것 같았다.
“은은 우리가 가진 것이 없으니 더더욱 논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땅에서는 금은이 나지 않고, 중국이나 왜에서 들어오는 은은 모두 전하께서 가져다가 군비 조달에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형편이 이런데 어찌 백성들이 은을 구해 전세 대신 바치겠습니까?”
“우리가 은이 없음은 과인도 알고 있다. 은으로 바치는 것은 만약 장래 은이 풍족해진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으냐고 예로 들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은광을 다시 열어 은을 캔다느니, 중국에 총과 고래기름을 팔아서 돈을 벌어오겠다느니 하는 계획은 거론하는 편이 도리어 손해다. 허황된 욕심이라고 욕이나 먹을 테니까.
“저화를 충분히 찍어 유통시켜 지방에서 세곡 대신 저화를 납부하게 만들면 된다. 관청에서 세곡을 걷은 뒤 이를 상인에게 넘겨 한꺼번에 저화를 얻고, 이를 상납케 하면 어찌 백성들이 손해를 보겠느냐? 비록 상인들이 이문을 챙기기는 하겠으나, 충분히 시행할만한 정책이다.”
쌀 한 말짜리 저화를 쌀 한 말에 내줄 상인은 절대로 없겠지. 게다가 운반비도 들여야 하니 각 지방 관청이 액면가보다 비싸게 저화를 사게 될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상인들과 결탁해서 치부하는 향리나 지방관들도 분명히 나타날 테고.
헌데 지금이라고 그런 부정행위가 없나? 관청에서 걷는 그 많은 잡세는 뭐지?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점점 상황이 변할 거다. 전국에 걸쳐서 곡물을 매집하는 사업은 그 규모상 특정인이 독점하기 불가능하며,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수수료도 적정한 선에서 안정되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는 쌀본위제로 발행한 저화보다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 은화나 동전, 신용지폐가 세금 납부에 쓰일 수 있어야 하리라. 언젠가는.
“지방 고을들이 저화를 얻지 못했다는 핑계로 제때 조세를 상납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으면 재정을 어찌 집행하시려 하시옵니까?”
“조정에서 새로 찍은 저화를 사용하고, 늦게라도 상납분이 올라오면 메꾸면 된다. 아니면 호조에서 시전의 큰 장사치들에게 저화나 물품을 매입하면서 어느 고을의 상납미 얼마를 대가로 지불하니 알아서 수령하라는 증서를 내주어도 될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어음을 발행해서 비용을 조달하겠다는 이야기다. 기한을 두고 이자를 붙여 상환하는 게 아니니까 국채라기엔 좀 그렇고.
자칫하면 독점자본에 세수가 종속될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인 거 안다. 프랑스 구체제가 이 비슷한 방식으로 징세권을 팔아먹었다가 아주 국가재정을 빚더미 위에 올려놨으니까. 하지만 이는 발행 규모 및 기간에 법적으로 제한을 두면 방지할 수 있으리라.
내가 마지막 말을 던지자 신하들은 또 두 패거리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아직 이들 앞에서 언급해야 할 화두가 더 남아있지만 오늘은 그만두는 게 나을 듯하다. 한 가지 논제가 마무리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한꺼번에 몇 개씩 풀어서 뭐하겠는가?
– 8 –
정유지는 박헌으로부터 제출된 보고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 훈구 공신들이 따로 가지던 모임이 싹 멈췄다고?”
“그렇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박헌도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포도청은 금위사처럼 주요 인물들 집에 끄나풀을 심어놓는 게 아니라 직접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체포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성부 내에서만 활동하는 만큼 그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사림에 속한 대간이나 하급 신료들은 지금도 활발하게 잘 모이고, 조정 시책에 대해 격한 논의도 하는 모양입니다. 다만 공신들은 뭔가 의도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두문불출, 일체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종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 도대체 무슨 영문이지.”
정유지는 본래 무관 출신으로, 도적이나 때려잡으면 모를까 고관들의 뒤를 캐는 일 따위는 생각만 해도 골머리가 아팠다. 어찌하여 이 험한 일을 그만둘 수 없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2년이 넘었건만 전하께서는 어이하여 날 계속 이 자리에 두시는지….”
“예?”
“아, 아닐세. 그보다, 혹시 금위사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기미는 없는가? 자네가 전에 그리 보고하지 않았나.”
잠시 고심하던 박헌이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한 달쯤 전에 동대문 안에 사는 백성 하나를 금위사에서 잡아넣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딱히 대갓집을 드나든다는 이야기도 없었던 자라 별개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자가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유지가 매우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며 지시했다.
“그자 주변을 철저히 뒤져 보고, 연관성을 한번 알아보게. 한 달이나 되었는데 금위사가 별 말이 없다면 이번 일과 상관이 없거나, 아니면 아직 그놈들이 실마리를 캐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전자라면 할 수 없지만 후자라면 우리가 공을 세울 기회가 있을 것이야.”
“소인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한번 철저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러게. 본관은 전하께 올릴 장계를 준비해야겠네.”
– 9 –
“아직도 불지 않았다고?”
좀처럼 놀라지 않는 정호찬이건만 이번 일에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오을은 잡아올 때도 별로 저항하지 못하는 약골이었기에 그리 대가 센 놈이리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시중에 흔한 장삼이사 주제에 손발톱을 다 뽑히고도 버틴다고?
“내일은 이를 뽑겠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형리들이 질릴 정도입니다. 나리, 정말로 그놈의 이를 뽑으시겠습니까?”
최신우도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의금부에 끌려와서 형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버티는 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탓이다.
“하루에 손톱 하나씩 뽑은 게 너무 약했나? 전하께서 하셨듯이 그 자리에서 발톱을 몽땅 뽑아버리는 정도는 했어야 했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정호찬이 팔짱을 끼며 인상을 굳혔다. 가급적이면 잡아온 죄인의 몸을 상하지 않게 하고 싶었지만, 이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나리, 일전에 놈에게 장을 친 자리는 이제 다 나았습니다. 다시 장형을 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리를 틀거나, 압슬이라도…역모 혐의이니 단근질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최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정호찬은 잠자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놈을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형문(刑問)을 가할 수는 없네. 아직까지는 확실한 증좌(證左)가 없고, 혹시 혐의를 밝히지 못하고 결국 풀어줄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까. 어명이 있지 않았는가.”
상감은 정호찬에게 금위사를 맡기면서 확고한 지침을 주었다. 죄인을 형문해도 좋지만, 그 경우는 분명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자복하지 않는 경우에 한한다고. 단순 심증만 있는 경우 매를 쳐서 자백을 끌어내고 그로써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호찬으로서는 상감의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물론 무고한 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어서야 안 되겠지만, 역모란 본래 싹이 돋자마자 밟아버려야 하는 법이다. 실제적인 행동 없이 대략적인 모의만 한 자들이라고 해도 엄벌하여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요즘 훈구 대신들은 예전처럼 회합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대화 내용은 여전히 손에 넣지 못했지만, 정호찬은 모임 자체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야말로 이오을이 훈구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상감도 벌써 네 번째, 솔직히 말하자면 세 번째 역모인 이번 사건을 겪고 나면 생각이 바뀌리라. 분명 역심을 품었으면서도 오리발을 내미는 놈들을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뀌시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미 내려온 어명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버틴 놈이 매를 몇 대 더 맞는 정도로 입을 열리가 없네. 그보다는 주상전하께 글을 올려 유배지에 있는 완원군을, 여차하면 회산군도 도성으로 압송하여 국문토록 윤허하여 주십사 청할밖에. 이오을이 완원군을 만나고 왔음은 확실하니 분명 허락하실 걸세.”
“예, 나리.”
정호찬이 붓을 잡았다. 두 왕자들을 도로 끌어오게 해달라는 상신서를 쓰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