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90
3부 4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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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를 떠나보낼 준비는 빠르게 진행했다. 함께 떠날 인원에 대한 인선도 거의 끝났다.
부사는 이미 밝혔듯이 이이명이다. 그리고 이이명의 아들 이기지가 종사관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이런 먼 여행에 부자를 함께 보내도 되는지 좀 망설여졌지만, 이기지 본인이 가고 싶다고 나서니 딱히 불허할 이유도 없었다.
“신이 서학을 익힌 세월이 10년이옵니다. 비록 아직은 집현전 학사에 불과하오나, 견문을 넓혀 세상을 익히고 싶으니 부디 부친과 가도록 해주시옵소서. 신은 이미 후사도 보았기에 혹 불상사가 있어도 대가 끊길 염려도 없사옵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되느니라.”
천녀가 내 삶을 몽땅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이런 식의 발언이 잦아졌다. 내 불평을 그년이 듣고 무슨 짓으로 나를 엿 먹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탓이다.
“원한다면 가도 좋다. 하지만 그대는 이제껏 배를 타고 제주도도 가본 적이 없을 터인데,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서양을 건너보고 태평양을 건너본 사람으로서…이기지의 만용이 참으로 가상할 뿐이다. 태워는 주되, 혹시 배멀미를 도저히 견디지 못해 죽을 것 같다고 하면 해사도나 탕골라에서 하선시켜버리라고 선장에게 귀띔을 해둬야겠다.
이기지 외에도 여러 인재가 진위사 구성원으로 뽑혔다. 규장각에서 학문 연구에 매진하던 이익도 그 하나다. 성호사설을 쓴 그 이익이 맞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는데, 머리도 좋고 실력도 뛰어난 건 분명하다. 그래서 서장관으로 뽑았다.
이렇게 사람을 신나게 뽑은 건 처음 세운 계획이 어그러진 탓이 컸다. 쉽게 말해서 타고 가려고 한 프랑스 배를 못 타게 됐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폐하. 저희는 폐하께서 사절 10여 명만 보내시는 줄 알고 기꺼이 승객으로 받겠다고 말씀드렸사온데, 사람만 80명에다 짐이 네 수레라니요. 그렇게는 도저히 실을 수 없습니다. 저희 상품을 실을 자리가 없어집니다.”
경복궁을 찾아온 지베르가 매우 난처한 얼굴로 승선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배에 탈 우리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중간에 전달이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이해해주십시오, 폐하. 폐하께 받는 운임은 둘째 치더라도, 이미 2년 전에 선금을 받고 예약한 상품을 실어다 주지 않는다면 저희 회사가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지베르가 연신 굽실거렸다. 나도 마음이 약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대들이 손해를 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 배를 유럽까지 직접 보내게 되었다. 외수사에서 보유한 배 중 마침 항구에서 쉬고 있던 8백 톤급 상선 한 척을 골라 프랑스 동인도회사 상선과 선단을 이루어 움직이게 하기로 했다. 덕분에 공간에 여유가 생겨서 더 많은 인원과 짐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전함이 아니라 상선을 보내는 건 적재공간 문제도 있지만 외수사 선원들이 해군 수졸보다 경험도 훨씬 많고 솜씨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미남변 때도 급하게 해군을 확충하면서 외수사에서 선원을 징발해다가 해군에 넣었었다. 일종의 예비역 동원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군으로 들어간 외수사 인원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외수사로 돌아갔다. 외수사도 배를 움직여야 하고, 선원들 자신도 해군에 계속 복무하기보다는 외수사에 돌아가 상선을 타고 싶어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외수사 배를 보내기로 했다.
“흠, 배를 따로 보내게 되었으니까 짐을 더 실어도 되겠구나. 기왕 이렇게 된 것, 내 친우 루이에게 즉위 축하 선물로 호랑이를 한 쌍 보내줄까 싶구나.”
진위사가 조문 사절이라고 하지만, 이미 2년 전에 죽었고 도착할 때쯤에는 그게 3년 전이 될 사람을 위해 우중충한 분위기만 유지할 필요는 없다. 루이 15세에게도 즉위를 축하하는 성의 표시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겠는가.
“표범은 불랑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응방에 잡아둔 호랑이를 한 쌍 배에 실어서 보내주어라.”
“예, 폐하.”
홍제원이 생기면서 전시용으로 사육하던 동물들은 모두 그쪽으로 보내지긴 했다. 하지만 응방을 동물원으로 쓰던 시절의 우리들을 일부러 부수진 않았다. 그게 다 쓸모가 있어서다. 지금은 사냥에서 생포한 짐승을 임시로 가둬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즉, 응방은 옛날 무종 때처럼 돌아가는 셈이다. 짐승들이 여기에서 길이 들면 홍제원으로 가고, 아니면 여기서 그냥 약재와 고기, 모피가 된다.
응방 생각을 했더니 성친왕의 악행이 또 떠오른다. 아오, 활쏘기 연습한다고 우리에 갇힌 사슴을 상대로 활을 난사하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 쏴서 애를 고슴도치로 만들었지. 자기가 제대로 못 쏜 주제에 안 맞는다고 지 혼자서 화내고.
호랑이까지 싣게 됐으니 당연히 사육사도 따라간다. 루이 15세에게 주고 싶은 즉위선물도 처음 계획한 품목보다 이것저것 늘어나고, 배는 곧 선창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자 가는 길이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도중에 해적을 만날 일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만에 하나, 해적이 덮치더라도 버텨낼 수 있도록 수군에서 정예 등선군 20명을 선발해서 태워라.”
분명히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배를 따로 안 보내고 프랑스 배에 태워서 보내려고 했는데…결국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뭐, 어쩌겠는가. 일이 이렇게 돼서 도리어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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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디에고가 오기 전에 웬만한 준비는 전부 끝내두었기에, 배가 출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늘은 6월 8일, 양력으로는 7월 16일이다. 디에고가 도성에 들어온 지 16일 만이다. 다만 제물포가 아니라 벽란도에서 출발한다.
벽란도는 제물포가 주요 항구로 떠오르면서 세가 상당히 위축되기는 했다. 하지만 송방에 속한 10개 상단이 여전히 개성에다가 본거지를 두고 있고, 장조 때 건설한 대규모 조선소도 순조롭게 가동하고 있다.
벽란도는 항구로서도 장점이 있다. 북한 지역으로 짐을 보내기에는 벽란도가 제물포보다 낫다는 점이다.
제물포, 즉 인천항은 지독한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아주 불편한 항구다. 도성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니까 쓰기는 하지만, 불편한 건 분명하다. 이건 훗날 인천항에 현대식으로 갑문을 만들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문제다.
게다가 제물포에 내린 상품을 한강 이북으로 운반하려면 이걸 다른 배에 또 옮겨 실어야 한다. 하지만 벽란도에서 내리면 바로 수레에 실어 개성 이북 각지로 보낼 수 있다. 그러니 벽란도가 여전히 교역항으로도 존속할 수 있는 거다.
이번에 진위사가 타고 갈 배의 이름은 변재천(辨財天)이다. 변재천은 불교 신화에 나오는 여신인데 음악과 지혜, 재복(財福)을 관장한다. 장삿배 이름으로는 썩 괜찮다고 하겠다.
연복사가 번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개성에서는 여전히 불교가 번창한다. 그래서 개성에다 기반을 둔 송방 소속 상인 중에도 불교 신자가 많고, 이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수사 상선이 불교 여신의 이름을 달고 바다를 누빌 수 있다.
“출발지를 제물포로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만, 떠나기 전에 너희와 함께 나들이를 한번 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진심이다. 자식이지만 자식이 아닌 디에고 일가, 그동안 열심히 해준 일이 고마워서 짧은 여행이라도 같이하고 싶었지만 틈을 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장조를 기리느니 어쩌니 하면서 진위사 출발지를 옛날 장조 때처럼 벽란도로 했다. 그러면 항구까지 함께 가니까.
그것 말고도 아이들에게 개성을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개성에 있는 연복사와 수창궁을 보면 우리 대한의 오랜 역사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될 테니까. 그러면 자기가 그런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 황실의 일원이라는 데 더 긍지를 가질 수 있겠지.
“그래, 이제 가는구나. 스페인을 맨 마지막에 들르게 해서 미안하다. 대신 그대가 원하는 만큼 여유 있게 머무르다가 와도 좋다.”
“감사합니다, 폐하.”
디에고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옆에 선 도로테아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것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고국에 돌아가게 되어 느끼는 기쁨과 자식들을 놓고 가는 데서 오는 슬픔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그대의 외조부와 어미가 지금도 짐을 미워할지 모르겠다. 가거든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금은 무척 미안해하더라고 꼭 전해다오. 왕비는 그대의 친정에 가서 이렇게 말해주거라. ‘내가 선택한 사람과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다’라고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사벨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 같은 건 쓰지 않았다. 내가 저지른 것도 아니고 ‘성친왕’이 저지른 잘못을 두고 내가 나서서 사과하기도 싫었고, 혹시 이사벨에게 미련을 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 상희가 기분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어차피 이사벨도 나한테 별다른 원한 같은 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말로 하는 사과면 충분하다.
“그대들도 무사히 잘 다녀오거라.”
“예, 폐하. 저희가 다녀올 동안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이이명을 비롯한 사절단 인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잡다한 수행원들은 모조리 먼저 승선했고, 여기서 내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이들은 전부 상당한 직책에 있는 이들뿐이다.
“항구에 들를 때마다 장계를 보내도록 하라. 그대들이 무사히 유럽으로 가고 있는지 무척 궁금할 테니 말이다. 어쩌다 보니 하필이면 태풍이 부는 시기에 떠나게 되어서 짐이 걱정이 크다.”
이건 내가 옛날에 이덕형을 보냈을 때도 꼭 당부했던 조치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편지, 그것 하나만이 신하들의 소식을 내게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니까 말이다.
인사를 나눈 뒤 신하들이 거룻배에 올라 변재천을 향했다. 이제 3년 뒤에 돌아오겠구나. 부디 다들 무사하고 건강하기를.
– 24 –
손자들과 개성에 머물며 보내는 휴가는 무척 즐거웠다. 프란치스코, 알레한드로 두 녀석 다 경기장에서 온종일 보내면서도 전혀 심심해하지 않았다.
“저런, 무능한 놈 같으니! 저걸 공을 못 넣나!”
“아니에요, 형님! 문지기가 잘 막은 거죠!”
지난 5년 동안 나타난 변화 중 하나가 스포츠 리그의 등장이다. 기존에 대한에서 스포츠 대항전이라고 하면 군영에서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말타기나 축구 시합뿐이었다. 순수하게 민간에서 즐기는 단체 스포츠라면 석전밖에 없었다.
그런데 송방을 이루는 10개 상단이 새로운 사업 거리를 찾다가 여기 착안했다. 군영에서 여는 축구시합과 씨름, 경마에 그토록 구경꾼이 모인다면, 아예 ‘구경꾼을 잔뜩 모아 장사를 하고 물품을 광고할 목적’으로 운동 시합을 열면 안 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송방의 10개 상단, 그리고 제안을 받고 뒤늦게 동참한 내달상단까지 11개 상단은 축구와 씨름, 경마, 석전 네 가지 종목을 겨루는 체육단을 조직하기로 했다. 선수 충원은 본국 13도를 각 상단이 하나씩 나눠 갖고 그 도에서 배출하는 선수를 독점할 권한을 갖기로 했다.
다만 한성부와 경기도, 황해도는 공유지로 해서 어느 상단이든 선수를 물색하러 다닐 수 있다. 그리고 내지가 아닌 외지 영토는 제한을 두지 않고 각 상단이 재주껏 인재를 구할 수 있다.
몇 년의 준비 끝에 이 체제가 시작된 게 작년 가을부터다. 아직은 경기장을 제대로 갖춘 곳이 개성뿐이라 개성에서만 경기를 열고 그 결과는 상단들이 스포츠 전문으로 새로 창간한 시보를 통해 알리고 있는데, 벌써 인기가 만만찮다.
“차! 차라고! 아이고!”
축구 정도는 술루에도 퍼져 있다. 고병 출신 군사들이 군영에서 차던 걸 그대로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 두 아이도 군사들이 적당히 땅에 금 긋고 차는 광경은 자주 봤지만, 지금처럼 양쪽 선수들 기량이 뛰어나고 단복(團服)까지 챙겨 입고 뛰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경마도 즐거웠지만, 축구 쪽이 구경하기에는 더 즐거운 듯합니다.”
“짐도 그러하다. 구경하기에는 경주로를 따라 달리기만 하는 경마보다는 축구 쪽이 훨씬 더 재미있지.”
그리고 이 모든 시합에는 당연히 내기가 걸려 있다. 경마장에서는 마권을 팔고 축구장은 현장에서 토토를 하는 셈이다. 송방에서는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낼 전망이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인간들이 아니기에 일단은 내버려 두고 세금이나 왕창 걷기로 했다. 송방이 주최하는 이런 시합에서 돈을 따면 도박으로 간주해서 당첨금의 40%는 도박세로 징수한다. 뭐, 60%만 해도 충분히 횡재니까.
다만 이런 스포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두 사내아이뿐이었다. 이사벨라는 상희와 함께 수창궁에서 바이올린에 빠져 있었다.
“이런 악기는 처음 봅니다, 황후마마.”
“열심히 연습해 보거라. 무척 아름다운 소리가 난단다.”
상희가 이탈리아에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주문했을 때가 경인년(1710)이었다. 한꺼번에 한 100개쯤 주문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만한 재고가 없을 게 뻔하기에 바이올린 5개, 비올라 3개, 첼로 2개만 주문했다. 그만한 재고는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재고가 넉넉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저 배가 늦어진 건지 몰라도 우리가 주문한 악기들이 도착한 건 4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주문한 것보다 수량이 적었다.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까지 전부 하나씩 적게 왔다. 첨부된 편지를 보니 재고가 없었다고 했다.
상희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을 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희와 함께 활을 잡은 사람은 올렝카뿐이었다.
‘어마마마, 저는 이런 거 해보고 싶지 않사옵니다. 제가 할 일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연주의 태도가 다른 이들의 반응을 대변했다. 사실 보통 여인들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 대한(조선) 사회에서 여자가 악기를 연주한다고 하면 자칫하면 예기(藝妓)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반가에서는 딸에게 악기를 가르치지도 않고 배울 생각도 없다.
유럽계 가문에서는 딸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경우가 없지 않고, 상희도 7년 전부터 조금씩 바이올린 연습을 했으나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 딸, 연주조차도 그 손에 활을 들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싫어했으니 말이다.
혜련이도 마찬가지였다. 상희 본인이나 연주야 주변에서 조금 수군거리다 그칠지 몰라도, 궁녀가 악기를 배운다면 그건 꼼짝없이 장악원 행이라는 소리다. 상희도 그걸 알아서 차마 혜련이에게 악기를 잡으라고 시키지는 못했다.
“얼마 전에 혼인한 공주…네게는 고모가 되는 그 아이는 이 악기를 익힐 만한 참을성도 없었단다. 그런데 이사벨라 너는 참 잘하는구나. 도성에 돌아가면 너도 나와 함께 신부님께 바이올린을 배우자꾸나.”
상희도 바이올린이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아서 제대로 가르치기는 어려웠다. 그저 연습을 함께 하는 정도랄까. 그래도 이사벨라는 ‘새할머니’가 자기를 좋게 보고 있다는 점은 아는지 꽤 열심히 따라 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개성에서 며칠 휴가를 즐기다가 은이에게 대리청정을 맡겨둔 도성으로 돌아왔다. 다시 정사에 복귀해서 늘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스페인에서 디에고한테 보내는 우편물이 도착했다. 빌라다리아스 후작가에서 온 편지였다.
“이건 뭐지?”
외부에서 오는 모든 공식적인 연락은 조정을 거쳐서 술루국으로 가게 돼 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스페인에 있는 디에고의 외가에서 무슨 연락을 했을까?
뜯어보니, 뜻밖의 비보가 적혀 있었다. 디에고의 외조부 빌라다리아스 후작의 부고(訃告)였다. 어허, 소식이 엇갈리고 말았구나. 쫓아가서 알려주기에는 이미 늦었는데 어쩌지.
※작가의 말: 금요일 연재분에 올가가 바실리의 딸이라고 했는데, 올가는 안드레이의 딸입니다.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