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298
3부 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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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토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슨 수를 써도 토지 자체가 넓어지게 만들 수는 없다. 한인들이 많이 하듯이 얕은 바다를 메워서 땅을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적절한 지형을 갖춘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숲과 늪을 개간해서 농토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간을 너무 심하게 하면 후회하게 된다. 모든 숲을 베어버렸다가는 목재를 구할 곳이 없어지고, 습지를 전부 메우면 사냥터와 낚시터를 잃게 된다.
원래 가진 것보다 토지를 넓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나라 밖에서 새 땅을 얻으려고 시도했다가 자칫 나라가 망할 뻔했던 기억은 모두에게 선명하다. 일본 땅 절반이 불바다가 되었던 게 겨우 120년 전 일이 아닌가.
“규슈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도깨비는 철갑옷을 입고 날개 달린 말에 올라타서 날아다니는 ‘오도리’지. 주고쿠에서는 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도이’라면 몸서리를 치고. 세토우치에서는 소식도 없이 배가 사라지면 ‘거부기가 잡아갔다’라고 말하지.”
‘거부기’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입에서 불을 뿜는 거대한 거북이다. 배가 지나가면 습격해서 불태우고 사람만 꺼내서 잡아먹는다. 텐쇼-분로쿠의 역(天正文?の役) 당시에 조선 수군이 거북선이라고 하는 철갑선으로 세토우치를 휩쓸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낳은 괴물이다.
“바다에 나가는 이라면 누구나 거부기를 무서워하지요. 그래서 저희 히로시마에서도 선인(船人)들이 배를 몰고 나가기 전에 신사를 찾아가서 ‘도원수’에게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지 않겠습니까.”
히로시마 번주 요시노부가 언급한 ‘도원수’는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그때 일본에 쳐들어온 조선군 총대장이었지만 육군 지휘는 다른 장수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수군을 직접 지휘했다. 그래서 수군을 끌고 일본 해안을 초토화한 장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순신은 일본의 적이었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증오를 품어야겠지만, 그 적이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라면 적대감보다는 경외감이 더 강하게 들기 마련이다. 일본인들이 이순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경외감이다.
“그래. 그 기억 때문에 막부를 다시 여신 이에야스 공 이후로 역대 쇼군들께서 대한과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게 아닌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하고 정식으로 막부를 연 지도 올해로 114년째다. 그 뒤로 다섯 명이 쇼군 자리에 올랐고, 요시무네가 일곱 번째 쇼군이다.
“한이 만만해 보였다면 그동안 한 분쯤은 규슈 북부 3주를 탈환하려고 노력해 보셨겠지. 하지만 분로쿠 연간에 우리가 입은 피해가 너무 혹독했고, 싸움을 걸더라도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으니 누가 그런 위험한 시도를 하겠는가.”
지금 한군에는 그때의 ‘거부기’ 정도는 압도하고도 남는 거함이 즐비하다. 후나지마에 온 한황은 일부러 큰 배들은 끌고 오지 않았었지만, 한 수군이 보유한 전선이 얼마나 많은지는 일본에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육군도 마찬가지다. 수십만 기병과 보병이 수도와 북방에 주둔하고 있고, 여차하면 바로 수백만을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막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한으로 뽑아도 70만이니, 몇 배나 되는 한군을 상대할 재간이 없다.
“3주에 상주하는 한군이 3천 명도 안 된다고 하여 헛된 욕심을 품어서는 안 되는 이유지. 그대들 모두 명심하게. 혹시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무력으로 규슈를 탈환하자고 주장해도 꼭 무시해야 하네.”
요시무네가 쇼군 자리에 오른 지도 벌써 27년째, 이제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6년 전에 후나지마에서 대한 임금을 만나던 때만 해도 펄펄 날아다녔건만, 이제는 외부 활동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천천히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땅은 한밖에 없지. 다른 땅들은 죄다 너무 멀어. 하지만 한을 공격해서 땅을 차지하겠다고 손을 내밀면 그 손목이 부러져 날아갈 걸세. 노부나가 공도 못 한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요시노부를 비롯한 도쿠가와 일족 신판(親藩) 다이묘들과 막부의 중신들이 경건한 자세로 앉아 쇼군 요시무네가 하는 훈계를 들었다. 요시무네는 푹신한 방석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돌려 대답을 재촉하듯이 자기 앞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쇼군.”
요시무네와 마주 앉은 친동생 요시노부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히로시마 번주인 요시노부가 에도에 와 있는 이유는 올해가 그가 산킨코타이(?勤交代) 제도에 따라 에도에 머무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백여 년, 우리 상선들이 남만의 여러 땅에 다녀왔지만, 딱히 우리 땅으로 삼을 곳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상관을 두고 교역 거점으로 삼으면 되었지, 굳이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 해외에 영토를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한과는 다르다. 한인들은 어느 나라에 가서 살든지 자기가 본래 한 임금의 백성이라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 그러니 대한은 외국으로 나간 백성들을 계속 임금의 신하로 두는 데 딱히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자기가 쇼군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사쓰마에서 무츠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 출신들일 뿐이다. 그러니 일단 일본 밖으로 나가 정착하면 쇼군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고 만다. 이들이 쇼군의 백성으로 남게 하려면 군대까지 함께 보내야 한다.
남방에 땅을 얻는 것부터가 막대한 비용이 들 일인데, 그 뒤에도 그렇게 힘들게 유지해야 한다면 땅을 얻어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의미가 없다. 내게 충성하지도 않고 세금도 바치지 않을 자들에게 새롭게 살 땅을 마련해주려고 애를 써야 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이에야스 이래 막부의 제일 목표는 평화와 안정을 통한 현상 유지였다. 이를 달성하려면 무리한 해외 진출 따위는 필요 없다. 그래서 막부는 미쓰이(三井)를 비롯한 몇몇 거상에게 상업 특권을 주어 해외에 상관을 설치하게 하는 정도로 해외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한황과의 우호만 유지한다면 우리는 이대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대들은 앞으로도 이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라.”
“예, 쇼군.”
다이묘와 중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요시무네가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 18 –
미토 번주, 도쿠가와 쓰나에다(?川綱條)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번저로 돌아왔다. 막부를 수호하는 세 가문 중에서 하나인 미토 번은 이에야스의 11남 요리후사(?川?房)의 후예로, 쓰나에다는 요리후사의 손자다. 항렬을 보면 요시무네의 증조부 뻘이 된다.
미토 번에서는 쓰나에다의 숙부이자 양부인 선대 다이묘 미쓰쿠니의 후원 덕분에 유학이 크게 발달했다. 일본 유학이 강항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는 해도 미토 번에서는 그의 나라인 한을 무조건 숭배하지 않고 그저 인접국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천하의 중심은 일본이었다.
‘공자가 원수가 되고 맹자가 부원수가 되어 좌우 양익에 수은과 퇴계를 거느리고 일본에 쳐들어온다면 맞아 싸워 격파해야 한다!’
이는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라는 교토 출신 학자가 60년쯤 전에 남긴 발언이었지만 미토에서는 자명한 진리로 통용되었다. 퇴계는 이황의 호, 수은(睡隱)은 강항의 호다.
쓰나에다는 꽤 오래전부터 이 논리에 따라 을미조약을 폐기하고 규슈를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이 교섭에 응해 순순히 돌려주지 않는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이다.
‘대군을 몰아 기습하면 얼마 안 되는 한군 수비대 정도는 쉽게 압도할 수 있다. 신속하게 제압하면 사상자도 많지 않을 테고, 조기에 북규슈 3주를 제압하고 대한 조정에 협상하자고 제안하면 저들도 사태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은 연이은 기근과 전쟁으로 큰 비용을 치렀다. 일본이 보낸 곡식은 한인들이 기근을 버티는 데 꼭 필요했다. 그런데 저들이 고작 북규슈 3주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본과의 전쟁을 택할까?
미토 번주는 영지가 에도 코앞이라는 이유로 산킨코타이도 하지 않고 에도에서 상주한다. 그러니만큼 쇼군에게 의견을 올릴 기회도 많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요시무네는 쓰나에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기는 했다. 하지만 심사숙고한 끝에 을미조약 파기가 아닌 갱신을 택했다. 요시무네의 본가인 히로시마 번뿐만 아니라 쇼군 자리 계승을 두고 요시무네와 경쟁하던 기슈 도쿠가와 가문의 요시치카조차 쇼군 편을 들었다.
규슈에 관한 쓰나에다의 의견은 모두 각하되었다. 요시무네는 후나지마에서 한황을 만나 을미조약을 갱신하는 경인조약을 체결했다. 그 뒤로 쓰나에다는 외교 문제에 관해 발언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의견은 반영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녀오셨습니까, 나리.”
“음, 오래 기다렸는가.”
오사카와 교토와 에도에 거점을 두는 거상, 미쓰이 가문의 미쓰이 다카하라(三井高平)가 번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카하라는 미쓰이 가문을 일으킨 미쓰이 다카토시(三井高利)의 장남으로, 부친의 뒤를 이어 형제들과 함께 가문을 계속 번창시키고 있다.
쓰나에다가 쇼군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미쓰이는 남만 진출 사업을 맡고 있으니 평소에도 자주 보는 사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용건이 있어서 부른 터였다.
“지금 자네들이 남만에 두고 있는 상관이 여섯 개 맞는가?”
“예, 나리. 누손, 술루, 조홀, 광남, 광주, 해남도까지 여섯 개입니다.”
일본은 은과 구리, 사람을 팔아서 가죽, 주석, 초석 등을 사들인다. 과거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인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데려다 외국에 판다고 해서 맹비난을 퍼부었던 걸 생각하면 스스로 사람을 내다 파는 지금 상황은 참으로 부조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노예라고 하지 않고 ‘색시’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허허.”
다카하라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해외에 파는 여자들을 곧이곧대로 ‘노예’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한어로 ‘색시’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한인 상인들에게 여자들을 넘겼을 때, 일본 측에서는 고민이 컸다. 아무리 농촌에서 남아도는 딸들을 사다가 처분하는 일이라고 해도, 대놓고 백성을 노예로 파는 건 국가적인 자존심 문제였다.
그러던 중에 찾아낸 명분이 ‘배필이 없어 혼인하지 못하는 가엾은 한인 사내들’에게 짝을 보내준다는 거였다. 그래서 외국으로 내보내는 여자들을 뜻하는 통칭이 한어로 ‘아내가 될 사람’을 뜻하는 ‘색시’가 되었다.
혼인할 때 여자 쪽이 신부값으로 예물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돈을 받고 여자들을 넘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한상(韓商)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내다 팔게 된 뒤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육식금지령이 있던 시절에 토끼를 새라고 우기고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주장하면서 먹던 것과 다를 게 없습지요.”
쓰나에다도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토지를 넓히지 못하는 현실에서 남는 입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사람 수출을 막자고 나설 수도 없었다. 과거 농촌에서는 ‘마비키(まびき)’라고 하는 영아살해가 관습화되어 있었는데, 죽이기보다는 파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요? 상관 일을 물으시는 것도 그렇고….”
“에조치 때문이오. 에조치에 이주민을 보내서 그 땅을 개간하고 싶소.”
“그건 제가 아니라 센다이 번에 물어보셔야 할 일이 아닙니까?”
에조치, 아모국은 을미조약과 경인조약에 따라 독립국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막부에서는 에조치와 교역할 수 있는 권한을 3년마다 경매에 부쳐 가장 비싼 값을 낸 이에게 넘겨주고 있다. 일본 상인끼리의 경쟁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동북 지방을 지배하는 다테 가문이 아모국 개척에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쓰나에다 쪽에서도 생각한 바가 있었다.
“다테 가는 지금도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소. 놈들에게 에조치 개척까지 주관하게 하면서 세력을 키울 기회를 줄 수는 없잖소?”
역대 쇼군들이 신경을 쓴 문제 중 하나가 다테 가문의 견제다. 전국시대 시절부터 다테는 전쟁에는 별 재주가 없었지만 재산 불리는 능력에서는 정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지금도 본령 외에 한의 연해주에도 대농장이 있다. 다테가 에조치까지 차지하게 할 수는 없다.
“한황과 맺은 조약을 지켜야 하니 에조치에서 잇키를 일으켜 에조왕을 몰아내거나 하려는 생각은 없소. 그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이들을 에조치에 이주시켜 땅을 개간하고, 거기서 얻은 산물로 더 많은 인구를 부양했으면 하는 거요.”
에조치 인구는 15만 정도밖에 안 된다. 그중에 3만 명가량은 일본인 이주민이다. 그 넓은 땅에 사는 인구가 겨우 15만이라니, 거의 비어있는 땅이나 마찬가지다. 얻기도 유지하기도 힘든 남만 땅보다 이쪽이 훨씬 현실적인 목표다.
이주한 이들은 명목상 에조인이 되겠지만, 에조치라면 본국에서 별로 멀지도 않으니 계속 일본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본을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왕과 영주들만 아이누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 나라를 떠받드는 농민과 상인이 다 일본인이라면 곧 일본이다.
이런 수단으로 아모국을 얻는다면 한황도 뭐라고 할 수 없으리라. 전쟁도 없을 것이다.
– 19 –
“대한과의 전쟁이라…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막부의 로주(老中), 마쓰다이라 히데모리가 자리에 누워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군마 번을 다스리는 군마 마쓰다이라 씨는 일본 최고의 정예 기병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군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님, 지금의 한군은 옛날 이에토시 공께서 상대하셔야 했던 시절의 조선군과 다르지 않습니까? 이에토시 공 시절의 조선군은 수십 년 동안 전장에 나가 싸우면서 경험을 쌓았지만, 지금의 한군은 군영에서 훈련할 뿐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본 적이 없지요.”
히데모리의 삼남인 요시히데가 불만을 표했다. 막부에서도 많은 돈을 들여 육군과 수군을 양성하고 있다. 그래도 이쪽에서 바다를 건너 대한을 공격하는 건 무리겠지만, 쳐들어오는 적을 막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하지만 히데모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경험이 없는 건 우리 군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관군 일부를 남방에 파견해 대한군과 함께 싸우도록 했으나, 그 외에는 전투 경험이 없다. 하지만 대한군은 서반아군과 꽤 험난한 싸움을 치르지 않았나. 청이나 금이 송과 싸울 때 그 전훈을 살필 수도 있고.”
이게 전부가 아니다. 대한 수군은 더 큰 위협이다. 그 수군은 일본 해안 어디든 나타나서 기습을 가할 수 있다. 미토 번주 쓰나에다가 생각하듯이 규슈 북부 해안만 잘 지키면 되는 게 아니다.
“지난번 회담에서 한황을 수행하는 한의 기병들을 잘 보지 않았느냐? 조선해와 동해 연안 각지에 한군 기병 수천이 상륙하여 내륙을 휩쓴다면, 우리 철기 3만으로도 토벌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몰리는 건 사양하겠다.”
‘철기 3만’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 군마 번이 보유한 기병의 수는 1만 기 정도다. 남은 2만은 모두 보병이다. 정예병이므로 철기라고 할 뿐이다.
바다 건너에 있는 건주 씨의 본가, 청과 금을 다스리는 건주 황실이라면 진짜 기병으로만 구성된 철기를 3만이 아니라 30만 기라도 동원할 수 있으리라. 정말이지 일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대군이다.
그런 대군을 거느린 건주 황실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사는 땅이 다르고 여건이 달라서 그리 차이가 벌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아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초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