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04
3부 4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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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 일각에서는 대한이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뺏은 수법 그대로 루이지애나를 꿀꺽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관료들과의 실무 협상을 맡은 진위사 부사 이이명은 끙끙거리며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장관 이익과 이이명의 아들인 종사관 이기지는 그런 복잡한 일은 맡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스와 대한의 학문 교류를 더 증진하기 위해 루브르 궁전에서 열리는 아카데미를 방문하고 있었다.
“36년 전, 조선 임금께서도 여기 출석하셨었지요. 무척 성실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셨던 것으로 평판이 자자하셨습니다.”
베르나르 르 부예 드 퐁트넬(Bernard Le Bouyer de Fontenelle)이라는 노학자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맞이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카데미 종신 서기관을 맡고 있다는 소개를 받으니, 이익과 이기지 두 사람은 무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솟았다.
“우리 임금께서 학습하는 태도는 성실하셨다고 해도, 단상에서 오가는 토의 내용까지 다 이해하셨습니까? 그건 좀 어려우셨겠지요?”
금상은 친왕 시절부터 공부를 안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이들 두 사람이 금상보다 한참 어린 연배이기는 하지만, 금상이 친왕 시절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야기해줄 선배는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그게 누구든 임금의 흉을 보는 것은 큰 죄다. 대역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경죄에는 해당한다. 하지만 금상의 옛날 모습에 관해서는 좀 이야기하더라도 꼭 불경으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바뀌신 지금의 모습’을 덧붙인다면 말이다.
유주 여행 이후 달라진 금상의 모습은 도성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태황 자리에 오르고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조야의 감동은 커져만 갔다. 그러니 옛날의 그 망나니 같은 모습이 거론된다고 해도 이는 그만큼 변했다고 상찬하는 의미였다.
“어떻습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으셨겠지요?”
듣기로는 프랑스에서부터 임금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고는 했다. 하지만 이형준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유학이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 공부하는 서학을 제대로 익혔을 리가 없다. 필시 자리에 멍하니 앉아나 있었으리라.
금상께서 만드셨다는 용어집 제작만 해도 그렇다. 필시 프랑스 학자들이 주요 작업은 다 해주었을 것이다. 금상은 거기에 찻숟가락이나 얹었으리라.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이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드 퐁트넬이 웃으면서 답하길, 금상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학생 축에 들었다고 알고 있다는 게 아닌가.
“낯선 이국의 말로 진행되는 토론이니 가끔 전달이 잘 안 되는 부분도 물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귀국 임금께서는 여러 학문에 두루 지식이 풍부하셨고, 이해도도 상당히 높으셨다고 합니다. 도저히 처음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더군요.”
드 퐁트넬은 금상이 방문했을 때는 아직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타국 왕족이 토의에 참석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회원들 사이에서 그 뒤로도 한참 회자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먼저 입회한 선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말이다.
“임금께서 학회 분위기를 망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신 콜베르 각하의 엄명 때문에 발표 중에 자유롭게 질문하지는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토론 종료 후에 서면으로 제출하는 질문은 매우 수준이 높았다지요. 종두법 문제로 증언을 요청했을 때도 훌륭히 발표하셨답니다.”
금상이 과거 프랑스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상세하게 접한 사람은 지금 이 두 사람이 최초다. 이형준이나 정호찬도 금상이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이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 금상과 가까운 측근 중의 측근이다 보니 사람들이 곧이듣지 않았었다.
하지만 드 퐁트넬은 본래 극작가에 문학가였지만, 대중적인 과학 문헌 집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 능력으로 아카데미에 초빙되었고, 입회 8년이 지난 1699년부터는 종신 서기관에 취임하여 아카데미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런 사람의 말이 가볍게 들릴 수 있겠는가.
드 퐁트넬은 혹시 더 상세한 증언이 듣고 싶다면 36년 전에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원로 회원들을 불러주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람은 급히 손을 저어 거절하고 여기에 온 본래 사명을 떠올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익이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 대한 국립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논문입니다. 각 분야를 합쳐 11편입니다.”
‘대한 국립 아카데미’란 서학당을 말한다. 그동안 서학당에서 진행한 교육 형태는 프랑스 교수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한인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식이 주였다. 그래서 국제 학계에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논문을 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해년(1707)부터 서학당 제조를 맡은 윤두서가 서학당 체제를 바꾸면서 학계에 자신 있게 제출할 논문 분야가 생겼다. 이건 아카데미 측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다. 봉투를 받아든 드 퐁트넬이 웃으며 설명했다.
“조선에서 학계가 인정할 만한 화학이나 물리학 논문을 내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어려울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죄송하지만, 귀국 임금께서 데려가신 우리 학자들 수준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드 퐁트넬은 유럽에서 인정받을 만큼 실력을 갖춘 학자들이 굳이 세상 저편에서 일자리를 찾았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기도 했고, 진짜 유럽의 일류 서학자를 본 적이 없는 이익과 이기지로서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의학은 다릅니다. 일전에 조선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종두와 세균에 관한 논문은 아카데미에서 꽤 호평이었습니다. 현미경은 우리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이용해서 미생물을 탐구하는 이들이 무척 늘었지요.”
대한 의학계는 자기들끼리 워낙 치열하게 치고받는 데다, 군역을 면하려고 의과로 빠지는 종친이나 양반가 자식들이 많아진 탓에 토론 수준이 여간 높지 않다. 한문과 라틴어로 쓰는 논문도 유럽 학자들 못지않을 정도다. 평이 높은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조선에는 유럽과 다른 그 지역 특유의 동식물이 살고 있지요. 인삼과 같은 약초 역시 그런 사례입니다. 그래서 저는 화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고 조선으로 건너간 프랑스인 교수들보다는 새로 임용된 조선인 교수들이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동물학, 식물학, 어류학과 같은 학문은 대한의 풍토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대한의 강역은 열대의 필리핀 ? 유럽인들은 누손주를 여전히 필리핀으로 부른다 ? 에서부터 한대인 빙주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니, 실로 연구할 대상은 많고도 많다.
“이번에 가져오신 논문도 충분히 검토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귀국하실 때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두어 명쯤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시아의 동물과 식물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조선인 교수들에게 논문 쓰는 법을 지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저희가 청하고 싶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학당의 프랑스인 교수진이 자기들과 분야와 출신이 다른 한인 교수들을 천박한 촌놈들이라고 무시하는 통에 학문적 협력이고 뭐고 안 되던 참이다. 격식 갖춰 논문 쓰는 방법조차 가르쳐주지 않아 엉망진창이 되었을 정도니,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같은 계통의 공부를 하던 이들이라면 출신으로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을 테고, 제대로 된 학문 체계에 맞춰 해당 분야를 정리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다음 세대 학자들은 체계적인 학습을 받은 생물학자로 성장할 수 있을 터였다.
– 6 –
부사 이이명은 루이지애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서장관 이익은 아카데미에서 환대받는 동안 정사인 디에고는 사교 행사를 순회하느라 바빴다. 베르사유에서는 스페인 왕위를 놓고 벌어진 지난번 전쟁이 끝난 뒤로 다시 온갖 연회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반갑소. 그대가 술루 대공이군.”
“오를레앙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지금의 오를레앙 공작 가문은 루이 13세의 막내아들인 필리프 1세로부터 시작한다. 현재 공작인 필리프 2세는 건흥제와 만났던 필리프 1세의 차남으로, 부친과 마찬가지로 군인으로 용명을 떨치고 있었다. 나이는 44세로 아직 한창때다.
“선대 공작께서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제대로 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저희 임금께서 꼭 인사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괜찮소. 워낙 멀었어야 말이지.”
필리프 1세는 17년 전 병으로 죽었다. 왕제(王弟)의 죽음 따위를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익문사 주재원들이 늦게 소식을 전하는 바람에 계미남변이 끝난 뒤에나 임금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다. 초상이 난 지 10년 뒤에 조문할 수도 없으니 어영부영 넘어가고 말았다.
“세월이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 부친께서 귀국 임금을 사위로 맞았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하신 적이 있다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임금께서는 ‘유럽에 있는 동안 그 누구도 나를 사윗감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라며 좀 아쉬워하는 언급을 하셨었습니다만….”
깜짝 놀란 디에고가 반문했다. 옆에 있던 도로테아도 눈을 빛냈다. 오를레앙 공작은 피식 웃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추방된 왕자라는 거야 괜찮지만, 이교도에다 너무 먼 나라 출신이라는 점이 걸렸으니까 말이오. 게다가 본국에 이미 혼인한 아내가 있었다는 문제도 있었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본처는 그때 이미 명을 달리 했다더구려. 좀 기다렸으면 되었다는 문제지.”
공작에 따르면, 선대 공작은 임금이 빈 포위전에서 용명을 떨쳤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성친 대공을 잡았어야 했다’라고 좀 아쉬워했다고 했다. 만약 거기서 프랑스로 돌아왔으면 혹시 내 사위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텐데, 러시아로 가버려서 마음을 접었다나.
“어차피 본국에서 밀려난 처지이니, 개종하고 프랑스에 눌러앉으라고 권유했으면 들었지 않았겠냐고 하시더군. 그렇게 해서 귀국 임금이 로렌 공작에게 시집간 내 누이 엘리자베트 샤를로트와 혼인했으면 우리 왕국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하나 얻었을 거요.”
“저희 대한으로서는 엄청난 손실이었을 겁니다. 임금께서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러시아로 가셔서 천만다행이군요.”
다만 디에고로서는 그다지 현실적인 가정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만약에 부친이 폴란드나 러시아처럼 먼 나라로 떠나는 대신 바로 옆 나라인 프랑스에서 국왕의 조카사위가 되었다? 과연 어머니 이사벨이 가만히 있었을까?
‘당장 달려가셨겠지.’
이사벨이 멘도사 백작과 결혼하기 전이냐 후냐에 따라 반응이 크게 달라지기는 했으리라. 하지만 달려갔을 건 분명하다. 그리고 디에고 자신을 내밀면서 ‘당신 아들이니 책임져!’라고 외쳤을 것도. 그랬으면…디에고는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해서 뭐 하겠나.
디에고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옛일을 들려준 오를레앙 공작 덕에 불편한 마음만 실컷 들었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은 디에고의 기분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귀공도 보셨다시피 국왕께서는 건강이 퍽 좋지 않으시오. 걱정되는 문제는 후계자가 될 도팽이 이제 겨우 11세라는 점이지.”
원래 도팽이던 부르고뉴 공작은 홍역에 걸려 아내 사보이의 마리 아델레이드와 함께 6년 전에 죽었다. 함께 홍역에 걸렸다가 살아난 도팽의 차남 브르타뉴 공작이 아버지를 대신해 부르고뉴 공작에 임명되어 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되었다.
“왕비께서 섭정에 나서셔야겠군요. 조선에서는 그런 경우를 ‘발을 드리우고 살피는 정사’라고 합니다. 프랑스에도 선례가 이미 있지 않습니까?”
“있지. 루이 13세께서 즉위하셨을 때 모후인 마리 드 메디시스께서 정사를 돌보셨고 루이 14세께서 즉위하셨을 때는 안 도트리슈께서 정사를 돌보셨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도팽을 돌볼 모후가 안 계신다는 게 문제요. 도핀느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루이 15세에게 재혼한 아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왕과 마담 쇼앵(Mademe Choin)의 결혼은 단 한 번도 공인받지 못했다. 선왕인 루이 14세가 그녀를 정말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제 왕은 루이 15세지만, 심신이 지친 왕에게는 자기 결혼을 밀어붙일 힘이 없었다.
“지금 프랑스 왕실에는 다음 왕을 위해 뒷배가 되어줄 대비가 없소. 고로 든든한 왕족이 나서서 그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데, 그러자면 당연히 연륜과 경력을 갖춘 인사가 그 자리에 앉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오를레앙 공작은 루이 15세의 사촌이다. 고로 지금 왕실에서 제일가는 어른인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주변에 열심히 설파하고 있었다. 앙리 4세의 피를 받은 적법한 왕손 중 최연장자로서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이제 왕실에 남은 남자는 나와 베리 공작 둘뿐이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섭정이 되는 게 옳잖소. 국왕 폐하의 친우이신 조선 임금께서도 내 견해에 동의해 주신다면 좋겠소.”
“…제가 끼어들 문제는 아닙니다만, 도팽 전하께는 친숙부인 베리 공작께서 좀 더 가깝지 않으십니까?”
“베리 공작은 사람은 좋지. 내가 대부를 서서 잘 아오. 하지만 그는 사냥과 사교나 즐기는 젊은이일 뿐, 무능하오. 섭정의 자리에서 프랑스를 통치할 자격이 없소. 게다가 너무 가까운 친척은 도리어 위험하오. 혹시 욕심을 부려 왕좌를 넘보기라도 하면 어쩌겠소?”
아직 국왕이 살아있는데 이런 논의를 해도 되느냐고 ? 디에고가 대한에서 오래 지냈다는 증거이리라 ? 물어보았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은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미리 대비하는 게 훨씬 낫다고 대답했다.
“저는 프랑스 사정을 잘 모르는지라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돌아가거든 임금께 말씀드리기는 하겠습니다.”
“잘 부탁하겠소.”
어려서부터 사교적인 행사와는 인연이 없었던 디에고로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자리가 거북하기만 했다. 하지만 피할 도리도 없었다. 그게 임무였으니까.
그렇게 고단한 나날을 보내면서 베르사유에 머문 지도 거의 두 달, 새해가 되면서 마침내 스페인에 있는 외숙부에게서 답장이 왔다. 외조부인 빌라다리아스 후작은 2년 전 침대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쳤고, 부고를 알리는 편지를 그때 바로 조선으로 보냈다면서 말이다.
“역시 우리가 오는 길에 엇갈린 거로군….”
이로써 서둘러서 스페인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모친과 외숙부가 있으니 가기는 갈 테지만,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사라졌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당신이 술루 대공으로 봉해졌다는 소식은 받고 돌아가셨다니까요.”
“그러게나 말이오. 기뻐하셨다니 다행이지.”
빌라다리아스 후작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외손자가 아버지를 찾아가 백작 작위를 받고, 연이어 공적을 세워 작위가 올랐다는 소식을 받으면서 무척 기뻐했다고 했다. 마지막 날도 편안하게 눈을 감았고 말이다.
“봄이 되면 영국으로 건너가도록 합시다. 안전하게 가야지.”
도버 해협은 겨울에 거칠기로 악명이 높다. 이곳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선원들에게 괜히 위험을 무릅쓰게 할 필요가 없다.
남은 겨울 동안은 그동안 처리한 사안들을 정리했다. 아카데미 쪽이야 딱히 크게 볼일이 없지만, 루이지애나 쪽은 문제였다. 법리적으로 따지면 프랑스 쪽 주장이 옳기에, 앞으로는 밀무역과 불법 이주를 더 엄중히 단속하겠다고 약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법으로는 불법인 게 맞긴 하니.”
디에고도 잠시지만 미주를 방문한 적은 있다. 태황에게 미주 정책에 관한 설명도 들은 바 있다. 본국에서 프랑스와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굳이 여기서 프랑스인들과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프랑스에서의 일정을 끝마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손님이 파리에 나타났다. 디에고가 도저히 무시하고 떠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랑스 여러분! 오, 자네가 내 친구인 조선 임금의 아들, 술루 대공인가?”
러시아 차르, 표트르가 파리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