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2
1부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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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식 며칠 뒤, 이번에는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또 잔치가 열렸다. 인수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다. 덤으로 증손녀를 혼인시킨 아쉬움을 달래드리는 자리이기도 하고.
“할마마마, 손자에게 한 잔 받으시옵소서.”
“고맙습니다, 주상. 이 할미를 위해 이렇게 또 잔치를 열어주시다니.”
“이 몸을 있게 하여 주신 은혜를 이 정도로 어찌 갚겠습니까? 그저 편히 즐기시옵소서.”
효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서 손해를 볼 건 없다. 사실 그동안 인수대비와 할머니와 손자로서 친근감도 많이 쌓였고.
어느 정도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혼인잔치와 달리 오늘은 그저 즐기는 날로 했다.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장녹수도 불렀는데, 어째 표정에 맥이 없어 보였다. 날 볼 때마다 짓던 눈웃음도 이젠 짓지 않았다. 음, 아마도 날 꼬여서 팔자를 고치겠다는 꿈을 드디어 버렸나 보다.
나야 어차피 처음부터 생각 없었으니 잘 된 일이지. 절대동안이긴 해도 나보다 한참 연상인 거 뻔히 아는 아줌마가 자꾸 뜨거운 눈으로 추파 보내는 게 좀 불편하긴 불편했거든. 아줌마, 댁도 이제 근 40이잖소. 무리한 꿈은 그만 버리시구려.
“전하, 재상들이 한 잔씩 술을 올리고자 하니 부디 받으시옵소서.”
잔치가 길어지자 두 대비들은 대비전으로 돌아갔다. 주빈 두 사람이 자리를 떴으니 원칙대로라면 바로 자리를 파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좋지. 어서 나오라. 다만 하나씩 나와 따를 게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나오면 좋겠다.”
조정에서 재상이라 불리는 이는 정1품 영의정부터 종2품 동지중추부사까지. 외직인 관찰사, 절도사, 부윤을 빼고도 41명이나 된다. 그나마 공석인 자리도 있고 병으로 빠진 이, 지방에 출장을 가고 없는 이도 있어서 32명만 내 앞에 줄을 섰다.
“이건 물만 한 잔씩 받아 마셔도 배가 부르겠구나. 자, 영상부터 적당히 따르도록 하라.”
“예, 전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성준이 늘 그렇듯 조심스럽게 병을 기울여 술을 따랐다. 이런 의례적인 자리에서 내가 술을 받다가 취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신하들이 따르는 술은 가능한 약한 것으로 하고 있다. 사용하는 잔도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잔을 쓴다. 안 그러면 수십 잔을 마실 수가 없으니까.
“과인에게 술을 올린 재상들은 자리로 돌아가지 말고 기다리시오. 마땅히 과인이 회배(回盃)를 내려야 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가 먼저 술을 받았으니 이제 한 잔씩 돌려줘야지. 내가 마신 것과 달리 내리는 잔은 보통 크기 잔, 술은 좀 많이 독한 술이다. 앞에서부터 한 잔씩 어사주를 따라주니 성준 이하 재상들이 순서대로 술을 받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경에게는 술을 좀 많이 주어야 할 것 같다.”
자기 차례가 되어 내 앞에 선 예조판서 이세좌가 내 말을 듣고 멈칫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관을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내관이 다가오자 내가 미리 준비해두라고 한 커다란 주발을 가지고와서 술잔으로 쓰도록 건네게 했다.
“과인이 경을 생각하는 바가 이와 같다. 충분히 마시라.”
“서, 성은이 망극하, 하옵니다.”
무게가 1kg은 나갈, 그리고 내용물이 1L는 충분히 들어갈 큼직한 놋쇠주발이었다. 술잔을 받기 위해 내민 이세좌의 두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내관의 손에서 이세좌에게로 넘어간 ‘술잔’도 위아래로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유독 이세좌에게 이런 큰 그릇을 주자 주변 자리에 있던 이들은 경악과 우려가 가득한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이세좌는 본래 술이 약하고, 지금도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다. 그런 사람을 보고 냉면그릇 같은 주발에다 술을 마시라고 내밀었으니 주변에서 놀랄 밖에.
“과인이 그대를 아낌은 굳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그대는 선대왕 시절 우부승지의 자리에 있을 때 제헌왕후께 약사발을 들고 찾아가지 않았었느냐? 그럼에도 과인은 그대를 재상의 자리에 올려 중용하였다.”
제헌왕후(齊獻王后)는 폐비 윤씨에게 내가 바친 시호다. 3년쯤 전이었나? 자식 된 도리로서 그 정도는 하는 편이 주변에서 보기에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했다. 생각대로 큰 반대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이후로 계모인 정현왕후에게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다.
차근차근, 조용조용히 말하면서도 술을 따르는 내 손은 쉬지 않았다. 술주전자가 점점 더 크게 기울어졌다. 술기운으로 붉어져 있던 이세좌의 얼굴도 점점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이조판서, 예조판서…그만하면 과인이 그대를 섭섭하게 대한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 그대를 아꼈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 어머니께 약사발을 들고 갔던 장본인인데도 말이다.”
내 앞에 있는 이세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다. 이세좌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두 손이 떨리면서 그 움직임에 따라 술이 출렁이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과인이 하려고만 했으면 즉위하자마자 피바다를 만들 수도 있었다. 비록 잘못을 저지른 건 제헌왕후 본인이시라 하나, 폐비시키고 더 나가서 죽게까지 한 자들에 대해 내 어찌 원한이 없었겠느냐? 허나 선왕께서 하신 일이고, 그대들도 마지못해 따랐음을 알기에 놓아두었다.”
주발은 거의 다 차올랐다. 가장자리에 닿으려면 아직 여유가 있건만, 주발을 든 이세좌의 손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다 보니 술이 주변으로 방울져 튀고 있었다.
“저, 전하께서 베풀어 주신…은혜는…신이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세좌가 답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고 작았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내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지 않았는가? 과인이 그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면, 어찌 그런 자들과 어울려 감히 말로 하지 못할 모의를 꾸밀 수 있었는가?”
술이 가득 찬 주발을 든 이세좌가 창백해진 이마에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그 어색한 모습이 수상해 보였는지, 주변에서 나지막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들도록 하라.”
주전자를 세 개째 기울이고서야 이세좌가 손에 든 주발이 다 채워졌다. 두 손으로 주발을 받쳐 든 이세좌가 조심스럽게 뒤로 조금 물러나려고 했다. 술이 가장자리까지 잔뜩 채워져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디를 물러나느냐? 과인에게서 떨어질 생각인가? 그 자리에서 선 채 마시라.”
단호하게 한 마디 하자 이세좌가 마치 발에 못이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애타는 눈길로 손에 든 주발을 들여다보더니 간신히 들어서 입에 갖다 댔다. 막 마시려는 참에 내가 못을 박았다.
“감히 어사주를 한 번에 비우지 않고 내려놓지는 않으렷다?”
이제까지 주고받은 대화는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놓칠 수 없을 만큼 크고 똑똑하게 내질렀다,
“어사주를 끝까지 마시지 않고 중도에 입을 뗀다면 이는 과인이 내린 은총을 거절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역심을 품지 않았다면, 예조판서는 그 잔을 다 비우도록 하라!”
음악이고 노래고 다 멈췄다. 연회장 안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세좌의 뒤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나머지 재상들, 내 뒤편에 서있던 내관이나 호위무사들, 자기 자리에 있던 수많은 신하들까지 모조리 굳었다. 심지어 내 옆에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중전까지.
“전하, 왜 그러시옵니까? 예조판서가 혹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요?”
“이 일은 중전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오.”
약간 매몰차게 들리겠지만, 중전은 정말로 이런 일은 접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세좌를 돌아보니 이세좌는 아직 주발을 입가에 댄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흘러내린 술이 방울져 떨어져 내 곤룡포 끝자락을 적셨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마셔라!”
“며…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세좌는 각오한 듯 주발을 입에 갖다 대고 기울였다. 하지만 굳어있는 손, 그보다 더 굳어있는 입이 주발 가득한 술을 제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입으로 들어간 양보다 더 많은 술이 양 옆으로 넘쳤다. 그리고 내 옷 위로 흘러내렸다.
연회장에 있는 수백 명이 그 광경을 보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이세좌 스스로도 자신이 술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어떻게 하지 못했다. 술이 반나마 흘렀나 하는 시점에 놋쇠 주발이 뗑그렁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주, 죽여주시옵소서!”
무너지듯이 쓰러진 이세좌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이마를 땅바닥에 붙였다. 내장을 쥐어짜는 듯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그 입에서 새어나왔다.
“시…신이 더할 수 없는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신에게 죄에 합당한 벌을 내려주소서….”
내 곤룡포는 이세좌가 흘린 술로 허벅지부터 푹 젖어 있었다. 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큰 죄 ? 불고지죄도 크다면 큰 죈가? – 를 짓지도 않았는데 내 발 앞에 엎드린 이세좌를 보고 있으려니, 미안하다는 감정과 안쓰러운 기분이 동시에 들 뿐이었다.
“도승지.”
“예, 전하.”
역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이 기막힌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던 도승지 김감이 급히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간단히 지시를 내렸다.
“예조 판서 이세좌에게 회배를 내렸는데, 세좌가 반이 넘게 엎질러 내 옷까지 적셨다. 재상은 작은 과실이 있더라도 용서해주지만, 이는 심히 공경스럽지 못한 일이니 버려둘 수 없다. 더구나 자신이 예관(禮官)으로서 이럴 수가 있느냐? 바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도록 하라.”
연회장 안에는 살풍경한 바람이 불었다. 모두 입을 다물고 내 눈치를 살폈다.
임금의 어의(御衣)에 술을 쏟은 일은 분명 죄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술로 인한 실수로 생겨난 일이며, 그 잘못을 질책하여 벌을 줄 수는 있어도 국문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큰 잘못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세좌에게 상례 이상으로 술을 준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닌가.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반대하지 않았다. 이세좌가 저지른 잘못이 워낙 명확한데다가, 지금 내 얼굴에 개기는 놈은 다 죽여 버리겠다는 의사표시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탓이다. 더구나 말리고 나설 만한 놈들은 대부분 이세좌만큼이나 켕기는 게 많을 터이다.
“오늘 잔치는 여기서 끝내겠다. 다들 돌아가라.”
어차피 내가 옷 갈아입으러 간다고 자리를 떴는데 잔치가 계속될 리도 없다. 지금 분위기에 술에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바에야 내 입으로 폐회 선언을 하고 나가는 게 낫다.
자, 이제 무대의 막은 올랐으니, 본편을 시작해 볼까나?
– 16 –
“예조판서 대감, 이제 실토하실 생각이 나셨습니까?”
정호찬은 이세좌에게 최선의 예우를 갖추었다. 완원군이나 금천부정과 달리 뇌옥이 아니라 깔끔한 방에 넣고, 관노들로 하여금 시중도 들게 했다. 식사도 나무랄 데 없게 주었다.
첫날은 아직 술에 취해 있기도 해서 심문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이세좌는 방에 앉아 혼자서 통곡하다가, 상감을 찾으며 자기가 죄인이라고 부르짖다가, 방 한쪽 구석에 토하기까지 하며 난리를 쳤다. 그 광경을 본 정호찬은 쓴웃음만 지었을 뿐이다.
둘쨋날은 대충 술은 깼다. 하지만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심문을 진행하지 않았다. 오직 밥상을 든 관노만 두 번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정호찬은 꼬박 하루를 더 혼자 있게 하고서야 지친 이세좌를 자기 집무실로 불러냈다. 다른 옷이 없어서 얼룩지고 구겨진 조복을 그대로 입은 이세좌는 매우 울적해보였다.
“정 경력, 그대가 무엇을 실토하라 하는지 본관은 모르겠소. 본관이 어사주를 쏟아 어의를 적신 죄는 분명하고, 만조백관이 그 광경을 보았으니 숨길 것이 무어가 있겠소.”
“겨우 어사주를 쏟은 일 정도로 전하께서 국문을 명하시지는 않습니다.”
어제 조정에서는 영의정 이하 신료들이 입을 모아 이세좌를 용서해달라고 청했다고 들었다. 취중에 저지른 실수이니 관대하게 보아달라고.
임금은 절대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정호찬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세좌야말로 금천부정 이변이 죽도록 지키려는 그 비밀을 파낼 고리이기 때문이다.
“대감. 공연히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마시지요. 완원군과 회산군이 왜 귀양지에서 끌려와서 다시 문초를 받고 있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금천부정이 사흘마다 곤장을 맞으며 형문을 받는 이유는요? 참, 이오을이라는 도성 백성은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이세좌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정호찬은 조용히 이세좌의 표정을 살피며 한 마디씩 가슴에 못을 박았다.
“전하께서는 대감의 손으로 천륜을 잃으셨음에도 대감에게 한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크게 쓰셨으니, 어찌 신하로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아니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대감은 간사한 역도들의 모의에 가담하셨으니, 소관도 무척 슬픕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요.”
“나, 나는 아무 모의에도 참여하지 않았소!”
이세좌는 창백해진 얼굴로 반박을 시도했다. 정호찬도 이세좌가 진짜로 반정을 꾸미는 패와 손을 잡았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당 중 그런 패거리가 있는지, 그리고 누구인지 정도는 알 것이다.
“이미 금천부정이 토설했습니다. 주상께서 성 밖으로 승마를 나가시는 틈을 노려 자객들을 배치할 생각이었다고 말입니다. 승마를 나가시는 전하 곁에는 겸사복 수십 명 밖에 없으니, 많은 군사를 쓰지 않아도 결행할 수 있다고 뜻을 모았다고 하더군요.”
“그, 그런 말은 오간 적이 없소! 우리는 그저…!”
“그저, 뭐란 말입니까.”
정호찬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죄인이 죄를 토설하게 하려면 그가 흥분하면 안 됐다.
“대감께서 스스로 결백하다 주장하시려면, 한번 직접 누가 무슨 주장을 펼쳤는지를 모조리 밝혀 보십시오. 금천부정의 진술과 대조해서 누가 사실대로 말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지요.”
정호찬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선반 위에 얹어놓은 두루마리 하나를 내렸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이세좌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자, 이 명단이 금천부정이 진술한 바에 따라 작성한 모의 가담자 명단입니다. 이들이 무슨 주장을 펼쳤는지는 공초에 따로 적어놓았으나, 알려드리면 진술을 대조할 수 없기에 아쉽지만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두루마리에 적힌 이름들은 실제로는 금위사가 탐보꾼들을 동원해 알아낸 명단을 취합해 만들었다. 하지만 이세좌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자, 토설하시지요. 여기 있는 각자가 무슨 주장들을 했는지 말입니다. 힘드시면 여기 있는 의자에 앉으셔도 좋습니다.”
이세좌가 그대로 의자 위에 무너졌다. 안도한 정호찬이 오른손으로 석묵필을 들었다. 빨리 적어야 할 때는 역시 먹물을 찍지 않아도 되는 석묵필이 편하다.
“자, 맨 위에서부터 한 사람씩 말씀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