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21
3부 4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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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는 파리나 런던, 로마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였다. 거리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용모나 행색도 다르고, 늘어선 건물의 외관도 달랐다. 진위사 일행은 사교에 바쁜 디에고와는 별도로 제각기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구경을 즐겼다.
“흠, 여기가 두 부원군께서 들르신 주막이란 말이지.”
이익은 이덕형과 이항복을 존경했다. 그래서 이덕형이 쓴 《서행일기(西行日記)》를 들고 다니면서 방문하는 도시마다 적어도 한 곳 정도는 두 사람의 족적이 닿았던 곳을 찾았다.
아카데미와 왕립협회, 로마의 여러 궁전과 성당처럼 공적인 일정으로 방문한 곳에만 들른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들른 곳이라면 술집이나 식당도 찾아가서 잠시 앉아 선인들의 기상을 잠시 느껴보곤 했다. 물론 이익이 견문록(見聞錄)을 작성하며 시간을 낼 수 있는 한에서다.
“예, 서장관 나리. 이 주막이 두 부원군께서 세르반테스를 만나 학산공이 집필한 홍희동전 원고를 건네고 출간을 논의하며 술잔을 나누셨다는 곳입니다.”
서행일기를 펼쳐 든 이기지가 연신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주변 풍경과 책에 기록된 술집 주변에 관한 묘사를 비교했다. 확실히 여기 맞았다. 스페인 정부에서 붙여준 안내인이 제대로 안내한 셈이다. 학산(鶴山)은 허균의 호 중 하나다.
“꼭 이런 데서 술을 마셔야 합니까. 껄렁거리는 왈패들이 들러붙기에 딱 좋아 보입니다만. 좀 더 넓고 확 트인 곳으로 가시지요.”
두 사람을 따라온 이사정이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드는 티를 대놓고 냈다.
“어허, 이 정위. 선현이 가신 길을 따라간다는 깊은 의미가 있소. 해군에서도 충무대왕의 행적을 되새긴다며 전적지를 순례하지 않소? 그대의 조상이신 의민공께서도 그렇게 숭앙을 받는 어른이시지 않소.”
“그래도 로마에서 갔던 주막은 이렇게 구석진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이사정은 그동안 주로 디에고의 신변 호위를 맡았다. 물론 디에고는 혼자서도 보통 병사 서너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왕비 도로테아를 비롯해서 함께 다니는 이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호위가 몇 명은 필요했다. 그래도 쉬는 날은 있다.
“이 정위는 서반아어가 능숙하니 통변 삼아 나온 셈 치시구려. 자, 어서 술이나 주문해서 한잔합시다. 그러면서 서반아군 동향이나 좀 들려주시오. 혹시 누가 시비를 걸거든 귀관이 오는 도중에 톨레도에서 새로 산 검으로 퇴치하면 될 게 아니오.”
투덜거리던 이사정이 손짓으로 주인을 불렀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고 곧 포도주병과 잔 네 개, 치즈와 포도를 담은 안주 접시가 날라져 왔다. 잔 하나는 안내인 몫이다.
“불랑국, 잉글국, 로마는 일단 전부 우방이오. 그러니 전하와 그 나라 장수들 사이에 오간 면담은 죄다 순전한 사교모임이었지. 하지만 서반아는 지난번 전쟁에서 적국이었고, 전하의 모국이기도 하오. 그러니 서반아 장수들의 태도는 좀 더 주의해서 볼 수밖에 없지 않겠소.”
굳이 숙소 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숙소에는 귀가 많다. 하인배 중에 누군가가 ‘서반아 장수들과 술루국왕 전하 사이에 뭔가 오간 게 있지 않으냐’라는 이야기를 혹시 엿듣고 멋대로 옮기기라도 한다면, 그 파장이 과연 어디까지 퍼지겠는가?
“그대가 전하를 수행하며 보고 들은 대로 좀 들려주시오. 본관은 알아야 하는 처지니.”
이익이 쓰는 보고서는 공식적으로 조정에 들어가는 견문록만 있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쓰는 일지도 있으나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보고도 있다. 그 문서에 들어갈 내용을 적자면 이사정의 협력이 필요했다.
“서장관께서 무슨 문제를 걱정하시는지는 압니다만…그럴 염려는 놓으셔도 됩니다. 서반아 장수들은 반기를 들어 보위에 오르시라고 전하께 바람을 넣지는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사생아에게 상속권이 없다는 건 유럽에서도 자명한 진리다. 차라리 새 가문을 만들어 그 가주로 앉혀준다면 몰라도 본가를 상속해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디에고는 술루를 봉지로 받으면서 이미 그 최대치를 이루었다. 반란을 일으킬 명분도, 실리도 없다.
“다만, 서반아 장수 중에는 과거 누손주에서 모로족 정벌에 종사했던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는 사람은 간혹 있었습니다.”
과거 장조 시절에는 육군이든 수군이든 스페인어를 능숙히 구사하는 이들이 인재 취급을 받았다. 도감군을 지도하던 남만별기 교관들이 스페인인이었고, 수군에 들어와 잠시 고문관 노릇을 한 성 요한 기사단에도 스페인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인에 이어서 조선(대한)에 들어온 네덜란드인 교관들도 조선인들에게 네덜란드어를 새로 가르치기보다는 자기들이 스페인어로 훈련을 진행하는 편이 더 쉽다고 여겼다. 그래서 조선(대한)에서 무관들이 가장 흔하게 구사하는 유럽 언어가 스페인어였다.
그런데 선황 건복제 시절에 프랑스 고문단이 들어오면서 프랑스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무관들도 아직 상당수다. 등선군에는 특히 많다.
“전하뿐만 아니라 소관도 일전의 해적 토벌 건으로 서반아인들 사이에서 무척 칭찬받고 있습니다. 연회에서 얼굴을 익힌 서반아 군관이 저를 따로 초대한 적도 있을 정도지요. 그 초대는 물론 응하지 않았습니다만.”
스페인에서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디에고만이 아니다. 웬만한 직책을 맡은 사람 전부다. 이이명은 아예 ‘연로해서 여정을 감당하기 힘들다’라는 이유로 사적인 초대는 몽땅 거절하고 숙소에서 책이나 읽으며 휴식을 즐기고 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스페인 측 인사들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것도 스페인과 급한 정치적인 현안이 전혀 없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익도 초대를 전혀 안 받은 건 아니건만, 지금 보듯이 술집과 서점이나 순례하며 느긋하게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아까 들른 서점에서 점주가 말하기를, 홍희동전을 들여다 놓기만 하면 하루 안에 동난다고 하더군요, 서장관 나리.”
“그야 그 주인공을 현실로 끌어내 그대로 구현한 사람이 현실에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종사관도 읽었겠지만, 홍희동의 양명(洋名, 서양식 이름)도 전하와 같으니 말일세.”
맞는 말이다. 세 사람은 안내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편히 대화를 나누며 소설 속 홍희동보다는 디에고가 훨씬 바람직한 결말을 맞았다고 웃었다.
“아니, 딱 한 가지는 홍희동이 전하보다 확실하게 낫지요. 홍희동에게는 자기를 멸시하고 꺼리는 처가가 없지 않습니까.”
이기지가 지적했다. 소설 속에서 홍희동의 배필이 되는 산도발은 본래 양갓집 규수이기는 하나, 본가가 정쟁에 패해 풍비박산이 나는 바람에 남장을 하고 해외로 도피한 처지였다.
고로 산도발, 아니 진짜 이름으로는 클라라가 동양인 혼혈인 홍희동과 연을 맺어도 펄쩍 뛸 장인도 장모도 없었다. 하지만 디에고에게는 둘 다 있다.
“내일 저녁에 방문하신다고 했던가? 별 탈 없이 다녀오시면 좋겠군.”
“별 탈 없어야지요.”
이사정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려 허리에 찬 톨레도산 강도(鋼刀)를 어루만졌다. ‘서반아 칼’이라고 하면 경인왜란 때부터 명도(名刀)로 통한다. 그 당시 무민공 황진도 스페인에서 건너온 대장장이들이 벼려 만든 환도로 숱한 왜적들의 목을 날린 바 있다.
그 위명을 기억했기에 스페인에 와서 톨레도에 들르자 바로 도검상을 찾아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이 장검을 구입했다. 부디 내일 이 칼을 뽑을 일이 없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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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가 탄 마차가 칼레하 후작가에 도착했다. 말을 타고 따르던 이사정이 안장 위에서 주변을 살피니, 딱히 병력이 숨은 것 같은 티는 나지 않았다. 역시나 그렇게까지 무도하게 굴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문을 통과한 마차가 현관 앞에 도착하자 하인들이 늘어서서 맞이했다. 하인들 사이에서 도로테아와 꼭 닮은 여자 한 명이 달려 나왔다.
“돌리!”
마차에서 내려서던 도로테아도 기쁨에 찬 환성을 질렀다.
“다니엘라!”
달려온 여자는 도로테아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사촌이었다. 동갑내기 사촌 자매는 그대로 얼싸안고 기뻐하면서 20년 만의 만남을 축하했다. 눈물이 흘러 화장이 온통 범벅이 됐지만, 둘 다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리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 풍문으로는 조선에 있다고 하는데, 조선 어디인지 대충이라도 알아야 편지를 쓰지. 숙부님은 너한테 편지가 오기만 하면 읽지도 않고 모조리 태워버리셔서 우리는 봉투도 볼 수 없었고….”
다니엘라는 편지를 쓰려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로 써야 도로테아가 받을지를 알 수 없었고, 만약 그 소식이 후작에게 들어가면 후작이 자기 집에 달려와 불호령을 칠까 봐 무서워서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숙부님이 보통 무서운 사람이었어야지. 그래서 네가 마드리드에 올 때까지 기다렸어. 안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거든.”
도로테아는 고명딸이다. 위로 오빠 하나,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다. 도로테아가 이들의 안부를 묻자 다니엘라는 두 동생 중 하나는 지난번 전쟁에서 전사하고, 하나는 도로테아가 스페인을 떠난 지 얼마 안 지나서 병으로 죽었다고 일러주었다.
“혹시…필리핀에서 죽었어?”
“아니. 카를로스가 전사한 데는 바르셀로나야. 프랑스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어. 숙모님이 많이 우셨지.”
다니엘라의 숙모, 즉 도로테아의 어머니는 다니엘라와 함께 마중을 나오고 싶었지만 그만 딸을 만나자마자 현관에서 기절할까 봐 무서워서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니엘라는 어서 방에 가서 어머니를 뵙자며 도로테아를 이끌었다.
“전하, 정말 죄송하지만 먼저 만찬장에 가 계시겠어요? 저는 어머니 방에 잠깐 들렀다가 갈게요.”
“그러시오, 부인. 천천히 오시구려.”
도로테아가 다니엘라의 손을 잡고 후작부인의 방으로 향했다. 시녀들이 짐꾸러미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후작부인에게 줄 선물도 선물이지만, 여주인의 망가진 화장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리라.
“어서 오시오, 대공.”
“안녕하십니까, 후작.”
시종의 안내를 받아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칼레하 후작이 식탁 앞에 앉아있었다. 초대한 손님은 다니엘라 하나뿐인 듯, 후작 외에 식탁에 앉은 사람은 도로테아의 오빠인 펠리페 한 사람뿐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술루 대공.”
“그러게나 말입니다. 돈 펠리페.”
펠리페도 20년 전 디에고에게 칼을 들이댄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디에고는 주변에서 겁쟁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펠리페의 결투 신청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도로테아의 오빠를 실수로라도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 펠리페는 디에고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넨 뒤에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딱히 그에게 말을 건넬 생각이 없는 디에고도 조용히 있었다. 칼레하 후작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세 남자는 여자들이 내려올 때까지 모두 침묵한 채로 기다렸다.
“여보. 늦어서 미안해요. 밀린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칼레하 후작부인 돌로레스가 딸과 조카딸, 며느리를 데리고 연회장에 들어왔다. 며느리란 펠리페의 아내다.
일동이 자리에 앉자 식사가 시작됐다. 하인들이 음식을 가져오자 후작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 의미가 뭔지 디에고와 도로테아가 생각하는데, 디에고의 앞에 그릇을 내려놓은 하인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 절을 하더니 음식을 숟가락으로 덜어냈다.
“자네, 뭐 하는 건가…?”
어리둥절한 디에고가 보는 앞에서 시종은 모든 접시와 그릇에 담긴 음식을 접시 하나에 조금씩 옮겨 담았다. 잔에 따른 포도주도 다른 잔에다 덜었다. 그리고 접시와 술잔을 얹은 쟁반을 칼레하 후작에게 가져갔다.
“아버지, 설마…?”
도로테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디에고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된 탓에 바라보고만 있었다.
후작은 아무 말 없이 하인이 내미는 접시를 받았다. 그리고 디에고의 그릇에서 덜어낸 그 음식들을 자기가 먹기 시작했다. 포크와 숟가락으로 한 점씩, 한 숟가락씩 먹는 그 모습을 식탁 주변에 둘러앉은 이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자, 이제 내가 술루 대공을 독살하지 않는다는 건 입증한 셈인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다 먹은 후작이 입을 닦으며 내뱉은 말에 식사 분위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직 후작의 장남인 펠리페 한 사람만 그런 아버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자기 식사를 했다. 후작 역시 아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디에고에게 눈을 돌렸다.
“술루 대공, 하나 묻고 싶소.”
“물어보시지요.”
주인이 음식을 직접 먹어봄으로써 손님의 경계심을 풀어주는 건 생각보다 흔한 예법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칼레하 후작의 태도는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말은 받았다.
“내 딸이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한양에 놓고 온 세 아이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연회 자리에서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후작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다니엘라의 말과 달리 편지를 태우기 전에 읽었을 수도 있고.
“혼담도 들어왔소?”
“몇 개 들어왔습니다.”
대한 본국에서도 있었고, 이번에 찾은 스페인 귀족 가문 몇 군데에서도 디에고의 딸이나 아들들과 혼사를 맺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와 이사벨라는 이미 부황의 주선에 따라 약혼을 마친 터라, 스페인에서 받은 혼사 제의는 모두 거절해야 했다. 그 사정을 부드럽게 설명했다. 그리고 외손녀의 결혼 문제에 조언이라도 할 생각인가라고 생각한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아이가 천박한 이교도 사내의 신부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것 같소. 그 아이를 내게 보내서 이곳 스페인에서 자라게 하시오.”
“…뭐라고요?”
디에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로테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후작은 개의치 않고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그 아이를 마드리드로 보내면, 바로 펠리페의 아들 페드로와 결혼시켜 칼레하 후작가의 사람으로 만들겠소. 그러면 우리는 잃은 것을 되찾는 셈이니, 과거의 구멍은 메워지고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소.”
디에고는 대체 후작의 발언 중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 침묵을 긍정으로 여겼는지, 후작은 듣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발언을 끝내지 않았다.
“그대가 동방을 주님의 땅, 십자가에 바친 나라로 만들겠다면야 그럴 필요가 없소. 하지만 대공은 장남임을 내세워 이교도를 쓰러트릴 생각도, 필리핀을 이교도의 손에서 도로 빼앗을 생각도 전혀 없잖소. 그렇다면 내 딸, 잃어버린 딸만 한 어린 딸이라도 다시 돌려주시오.”
“술루 공국은 주님의 영토입니다. 아직 반항하는 모로족이 좀 남기는 했으나, 곧 그 땅에 사는 모든 백성이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될 겁니다.”
디에고는 좋게 물리쳤다. 처남 펠리페야 상관없지만, 장모인 후작부인이 눈을 크게 뜨고 보는 앞에서 후작과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요. 술루 같은 작은 땅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노려야지! 하지만 그대는 그럴 능력도, 배짱도 없으니 요구하지 않겠소. 그저 20년 전에 데려간 내 딸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딸이나 돌려주시오.”
외손녀의 혼인 문제를 걱정하는 자상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인 줄 알고 풀어지려던 마음이 다시 단단히 굳어졌다. 디에고는 결심했다. 앞으로 후작과는 확실하게 인연을 끊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