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23
3부 4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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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서방 회사’로 사명을 바꾼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가 여전히 폭등하고 있다. 주가 폭등에 힘입어 막대한 자본력을 손에 쥔 존 로는 서인도 제도와 북아메리카에서 25년 기한의 독점 무역권도 손에 넣었고, 동인도회사를 비롯한 모든 기타 무역회사도 합병했다.
‘인도 회사’라고 이름이 붙은 새 회사의 출범과 무역권 획득 등이 프랑스 정부의 협력을 받아 진행됐음은 물론이다. 대신 프랑스 정부는 20억 리브르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 부채를 모조리 인도 회사에 떠넘겼고, 이를 자산으로 인수한 인도 회사는 규모가 더 커졌다.
인도 회사의 주가 대폭등은 스페인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다. 다만 스페인 귀족들은 상업 따위에 투자하는 일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원체 강하다. 그래서 이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 회사 주식을 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로 여길 뿐이다.
“그 인도 회사에서 배를 한 척 용선해서 보낸다고…?”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서 보낸 편지에 따르면, 자기들은 로마에서 맺어진 합의안에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대한 본국에 파견할 선교사들을 따로 파견하는 대신에 안남국에서 이미 선교에 종사하는 인원을 보낸다는 부분이었다.
「안남은 아직 선교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땅입니다. 현지에서 성직자를 직접 양성할 상황이 안 되어 아직 인원이 부족하고, 이미 사목에 종사하는 선교사를 빼기도 어렵습니다.
이에 우리 본부에서는 로마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관해 의논한바, 조선에서 선교에 종사할 인원을 새로 파송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만약 조선 본국에서 합의에 따라서 이들을 조선에 입국시키기를 거부한다면, 필리핀으로 보내 사목에 임하게 해주십시오.
필리핀에 있는 마닐라교구에서는 도미니코회를 제외한 모든 수도회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으니 우리 파리 외방전교회도 활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관대하신 조선 임금께서 우리의 활동을 허락하실 때까지 기꺼이 필리핀과 술루에서 주님의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부디 현명하신 대공 전하께서 우리의 동행을 불쾌하게 여기시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필리핀에서는 활동하기 어려울 텐데….”
분명 대한에서는 필리핀에 있는 여러 기존 수도회와 선교단체에 필리핀 내에서의 활동은 제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죄다 스페인인들이었다. 필리핀 내 성직자들의 향방을 좌우하는 프란시스코 데 라 쿠에스타 마닐라 대주교조차 마드리드 태생 스페인인이 아닌가.
루이 14세가 스페인 왕좌를 뺏으려 한 지난번 전쟁 이후로 스페인인들은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게다가 자기들이 이미 기반을 다져 놓은 필리핀에 들어와 선교하려 한다면, 현지 스페인인 성직자들은 자기 구역을 넘보는 침입으로 여길 게 뻔하다.
“뭘 고민해요, 디에고? 뭣하면 술루에서 지내게 해도 되잖아요. 그 사람들은 선교만 할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을 텐데.”
“그건 맞는 말이군.”
하긴 그렇다. 선교사로 가득 채운 배를 끌고 간다면 조정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편지에 적혀 있듯이 6~7명 정도라면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터였다. 지금 본국에 들어와 있는 예수회 선교사만 해도 쉰 명은 족히 될 텐데 그 정도가 대수겠는가.
“그런데 그 배에 선교사들만 타고 가는 건가요? 그건 아니겠지요?”
“당연히 아니오. 우리가 바친 선물에 대한 답례품에 더해서 대한에 건너갈 자연학자들도 함께 타고 온다는구려. 남는 공간에는 인도 회사가 동방에서 판매할 교역품을 싣고 있겠지.”
그 배에 공간이 얼마나 남을지 모를 일이다. 말라가에서 외숙부들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동방에 가보겠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고 했다.
장교급으로 기용할 수 있는 귀족들만 지원한 것도 아니다. 일반 병사들도 있고 문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자나 하급 성직자들도 있었다. 여기에 이들이 데려갈 하인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은 된다는 연락이었다.
“국왕 폐하께는 술루 개척에 필요한 인력이 있다면 필요한 만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두기는 했소. 다만 나서는 이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 몰라서 배를 따로 준비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배를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겠소.”
운임은 지금 디에고가 가진 돈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에 필요한 인력을 데려가는 길이므로 귀국한 뒤에 본국 재무부에서 치르게 하겠다고 합의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문제는 얼마 안 가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보내겠다던 배가 오기 전에, 루이 15세의 부고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다. 향년 6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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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얼른 다녀올 테니.”
“무사히 다녀오세요.”
본국에 알려서 정식으로 조문 사절을 보내도록 한다면 또 4년이 걸린다. 그러느니 유럽에 와 있는 디에고가 한 번 더 프랑스에 가는 편이 낫다. 준비가 부족한 것 정도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디에고는 마드리드에 데려온 백여 명 중 젊고 건장한 인원 스무 명만 추렸다. 마드리드에 남는 인원은 이이명에게 통솔하게 하고, 선발한 스무 명만 데리고 파리에 다녀올 셈이었다. 물론 도로테아도 칼레하 후작가에 두고 간다.
“저도 함께 가고 싶은데….”
“이번에 프랑스에 가는 길은 유람이 아니니 말이오. 게다가 모처럼 만난 어머님과 이대로 헤어지기도 싫지 않소? 그러니 어머님과 함께 지내고 있으시구려.”
스페인 정부에서도 조문 사절로 누구를 보낼지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가 끝나기 전에 디에고가 먼저 안장에 올랐다. 이익, 이기지, 이사정 등 함께 데려갈 젊은 측근들이 그 주변을 에워쌌다.
“그럼 다녀오리다. 곧 돌아오겠소.”
인사를 남긴 디에고가 준마에 박차를 가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가도 저편으로 달려가는 기마대를 보며, 도로테아는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디에고 일행은 거의 1년 만에 파리에 다시 왔다. 마드리드에서 여기까지, 나바라 출신인 안내인을 앞세워서 2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말에 채찍을 가한 결과였다. 이런 강행군을 위해 도로테아를 놓고 왔고 젊고 튼튼한 수행원들만 가려 뽑았다.
‘꽃의 도시’ 파리는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자애롭고 온화한 성격의 국왕이 병을 앓다가 사망했다고 하니, 귀족이든 평민이든 상복을 입고 애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시오, 대공,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소.”
“아닙니다. 급하게 찾아뵙느라 준비가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작년에 디에고가 있을 때는 유유히 한량으로 지내던 베리 공작은 이제 정식으로 프랑스 왕국 섭정이 되었다. 이제 겨우 13세밖에 되지 않은 조카 루이 16세 ? 전 부르고뉴 공작 ? 를 도와 국정을 책임져야 하건만, 그 역시 아직 연륜이 부족한 34세 청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왕 곁에 있으면서 섭정이 해야 할 일은 익혔다. 조문하러 온 손님을 보고 예물 탓을 하지 않을 만큼은 말이다.
“스페인에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저희 본국 조선에서 말하기를, 길사(吉事)에는 가지 않더라도 흉사(凶事)에는 찾아가서 위문해야 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베리 공작은 씁쓸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부왕 루이 15세의 병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시의가 말하기를, 연로하신 데다가 형님을 잃은 데서 오는 마음의 충격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신 탓이 크다고 하오. 시신을 부검해 보니 간과 비장이 크게 부어 있었다고 하더구려.”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라지만 군주의 유체(遺體)에 칼을 대다니, 대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디에고를 수행하던 이익과 이기지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귀국 일정이 있으실 테니 여기 오래 머무실 수는 없겠지만, 편히 쉬다가 피로가 풀리면 돌아가시오. 가실 때는 꼭 배를 타시고.”
오는 길에 배를 타지 않고 말만 달린 건 급하게 배를 구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파리 외방전교회 사람들을 태우고 갈 인도 회사 소속 배가 있으니, 그 배에 편승하면 된다.
“그런데 섭정께 하나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런던에 체류할 때 처음 그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 인도 회사가 저희 본국과 루이지애나를 경유하는 직접 교역과 조선인 이주 및 정착 계약을 맺었는지요?”
진위사가 본국을 출발할 때까지는 분명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그 뒤에 새로이 정한 시책일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베리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오. 인도 회사 측에서 그리 주장하고 있기는 하나, 내가 계약서를 직접 확인한 건 아니오. 다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하는 모든 교역이 인도 회사에서 독점적으로 갖는 권리이니만큼 그 회사가 조선과 교역권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소.”
“알겠습니다.”
디에고는 이 문제에 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인, 영국인들이 잘못된 정보 때문에 폭등한 주식에 돈을 넣었다가 신세를 망치고 센강과 템스강에 뛰어든다고 해도 그건 저들의 선택일 뿐, 자신이 책임질 일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래도 풋내기가 나라를 망가뜨리는 꼴을 보게 될 것 같소.”
국왕이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지라 모든 사교 행사가 멈췄다. 당연히 예전과 같은 초대도 없었다. 하지만 국왕의 재종조부(再從祖父, 조부의 사촌)인 오를레앙 공작은 별 설명 없이 디에고에게 하인을 보내 저택으로 초대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부르셨습니까?”
“겸사겸사.”
오를레앙 공작은 그동안 어떻게든 섭정 자리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공작보다 13살 위인 선왕 루이 15세는 사촌 동생의 끈질긴 요구를 끝내 물리치고 자기 아들인 베리 공작을 섭정으로 지명했다. 공작으로서는 닭 쫓던 개가 된 셈이다.
“지금 인도 회사 주식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폭등하도록 놓아둔다는 것부터…현재 섭정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나타내는 증거요. 내가 보기에는 인도 회사가 분명히 사기를 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투자자들이 덮어쓰게 될 거요.”
“그걸 들여다보고 계신다면 나라에서 나서서 인도 회사를 제재하도록 손을 쓰시고 사태를 수습하게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디에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일개 군인일 뿐이오. 인도 회사가 획책한 범죄를 수습해야 할 권한도, 책임도 없소. 그런 문제는 정권을 잡은 섭정께서 해결하셔야지. 하지만 섭정께서는 주가를 더 띄워 정부 채무를 인도 회사로 떠넘길 계획만 짜고 있으니, 아마 그럴 생각이 없을 거요.”
냉소 섞인 비아냥에 디에고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는 손을 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오를레앙 공작도 그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대뜸 다른 이야기를 했다.
“본래는 그대를 통해서 조선 임금께 친구이신 선왕 폐하께 말씀 좀 넣어주십사고 부탁할 생각이었지만…이제는 의미가 없어졌구려. 그래도 우리를 위해 두 번이나 조문하러 와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문단을 보내고 싶으니, 함께 데려가시오.”
지난번 전쟁에서 프랑스는 10년에 걸쳐 유럽 전체를 상대로 싸웠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많은 전훈을 쌓았다. 오를레앙 공작 본인도 이탈리아 전선, 스페인 전선에서 종군하며 상당한 전공을 세운 바 있었다.
“내 휘하에서 활약한 유능한 장교를 열댓 명쯤 보내주리다. 그들이 쌓은 경험을 조선군에 전수하면 큰 도움이 될 거요.”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오를레앙 공작이 자기 휘하에 있던 장교들을 군사고문단으로 보내준다는 건 국정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상태에서 자기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본국 조정에서는 이들과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단, 양쪽을 모두 프랑스 왕실이 보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이를 통해 오를레앙 공작은 대한이 순순히 파리 외방전교회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베리 공작이 인도 회사 문제로 내정에서 거대한 실정을 저지르는 동안, 외정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거다. 그러면 섭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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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전에 선 디에고가 한숨을 쉬었다. 카디스 항구, 자신이 태어나 자란 어머니의 나라를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디에고는 파리에서 2주 남짓 머물렀다. 그리고 르아브르로 갔다. 오를레앙 공작이 선발해준 고문단 열네 명,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여섯 명과 함께 동방으로 떠날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배에는 프랑스 왕실에서 보내는 답례품과 일반 교역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래도 배에 남는 공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변재천과 이 배에 나눠서 태우면 디에고를 따라 동방으로 가겠다는 스페인인들을 비교적 무리 없이 다 태울 수 있을 듯했다.
“그대를 따라간다는 이가 하인과 시종을 합쳐 백 명이나 된다고.”
타고 온 프랑스 상선이 카디스에 닻을 내리자마자 디에고는 또 마드리드로 말을 달렸다. 마드리드에 남은 일행을 수습하고, 국왕 호세 페르난도 1세에게 고별인사를 하려고 말이다.
국왕은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디에고의 인사를 받았다. 디에고도 국왕이 그동안 베푼 호의를 생각하며 부드럽게 그 질문에 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그들을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드리드에 있는 멘도사 백작가에서 참가하는 인원이 스무 명, 칼레하 후작가에서 다섯 명, 세 외숙부가 여기저기에서 모은 사람이 근 여든 명이다. 이미 언급했듯, 귀족 외에 일반 병사와 성직자, 학자도 있다. 대부분은 이미 카디스에 가서 배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별연을 거하게 열어야겠구려. 그대가 떠나는 길이 서운하지 않도록.”
“황공합니다.”
송별연은 왕궁에서만 열린 게 아니었다. 수도에 있는 유력 귀족들이 앞다투어 디에고에게 마지막 연회를 열어주려고 애썼다. 덕분에 디에고는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한 주일 가까이 마드리드에 더 머물러야 했다.
“내일이 출항이지.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어머니 이사벨이 갑판에 올라왔다. 언제나 당차던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본 디에고가 조용히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셔츠 가슴팍이 천천히 젖어 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언제나 씩씩하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20년 전에는…네가 떠나는 줄도 몰랐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구나. 내 눈앞에서 네 출항을 보아야 하는구나.”
“손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씀드려도 가지 않으시겠지요?”
디에고가 농담조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사벨도 붉게 충혈된 눈으로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손자들은 이쪽에도 있단다. 게다가 동방에는 내 과거의 사내가 있을 뿐이지만, 여기 스페인에는 내 현재의 사내와 미래의 사내가 있다. 2:1이니 어찌 동방으로 가는 배가 내 마음을 끌겠니?”
조선 임금의 지금 모습을 혹시 보고 싶지 않으냐고 디에고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웃으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옛일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네 누이들도 셋이나 있지. 프란치스코와 루이스도 아직은 동방에 정착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니고. 그러니까 나는 여기 있겠다. 너는 네가 선택한 땅에서 네가 선택한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도록 하렴.”
“네, 어머니.”
모자는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 그때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나더니 두 청년이 심통을 부리며 달려왔다.
“어머니! 대공 전하만 어머니 아들인가요. 저희도 아들이라고요.”
“그래, 이 둔한 녀석들아. 모두 이리 오너라. 오늘 밤새도록이라도 안아줄 테니.”
건장한 세 아들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다독거리는 이사벨을 보며 도로테아가 조용히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이미 마드리드에서 칼레하 후작부인과 이별하고 왔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벨은 밤새도록 아들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 그 눈으로 부두에 섰다. 선미갑판에서 손을 흔드는 아들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떠나가는 배 두 척을 자기 두 눈 속에 담아놓겠다는 태도였다.
마침내 아들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사벨의 두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했던, 다른 자식들보다 한참 더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아이가 그녀의 손을 완전히 떠나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