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34
3부 4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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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회맹을 맺은 세 나라, 아니 증인으로 참석한 유구까지 네 나라는 서로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법도를 따져 볼 때 다른 나라에 간섭할 정당성을 가진 나라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군사력이나 경제력과는 별개 이야기다.
그래서 자기 땅 안에서 와극달이나 파사합이 무슨 짓을 벌이건 그동안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후금이 천주교로 개종하기 거부하는 포로들을 상대로 수레바퀴를 돌리든, 청나라가 후송 포로를 노예로 팔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후금에서 벌어진 사태는 평소처럼 신경을 안 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래서 비변사를 소집했지만, 이 자리에서 대뜸 이렇게 외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비가 병으로 쓰러진 사이에 칼을 뽑아 동생을 치다니, 이는 천륜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당장 군사를 내어 대패륵을 징벌하소서! 그냥 넘어가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당장 군사를 일으켜 파포태를 때려잡으러 가자고 앞다투어 외쳐야 하리라. 하지만 비변사에 모인 중신들은 대뜸 후금에 대한 강경론을 내세우는 대신 곤혹스러워하며 발언을 삼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이라는 나라가 가진 근본적인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 트라우마는 무려 3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국 7년,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 막내아들인 소도군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이에 분개한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이 모의한 끝에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 소생 두 왕자를 죽였다. 무인정사(戊寅定社), 즉 1차 왕자의 난이다.
이 사건은 태조를 미혹하게 한 신덕왕후 강씨와 몇몇 간신배로 인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태종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구국의 결단’을 벌인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감히 이 공식적인 결론에 이견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역적이다.
하지만 무슨 말로 포장해도 태종이 동생들을 죽이고 집권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성리학 사회인 대한에서 이게 공공연하게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일인 것도 맞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가 그 사건을 소재로 직접 쓴 대본이 백 년째 집현전 서고에서 썩고 있겠는가.
조카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계유정난과 더불어 절대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황실의 두 가지 금기 중 하나가 무인정사다. 지금 중신들로서는 파포태가 일으킨 정변을 어느 정도는 무인정사와 겹쳐서 볼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쉽게 입을 열기 곤란했다.
“선전관 김춘호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는 참으로 무도한 일입니다. 자칫 공주께서 화를 당하실 뻔하였으니 폐하께서 무척 분격하셨을 줄을 신도 잘 아옵니다. 하지만 과연 보고가 얼마나 정확한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만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외무대신 이기현이 당혹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4년 전에 사망한 윤시현이 그랬듯이 그도 건주 양국에서 재임한 바가 있으며 외교 경력도 풍부하다. 예전에 후금 황실에서 피가 튀는 광경을 못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소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신이 이런 말씀을 드렸을 때 폐하께서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 무척 송구하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만에 하나 대패륵의 고발이 옳다면, 혹시 상도위가 정말로 동서인 루스 황태자와 손을 잡고 제위를 노렸다면 이는 합당한 토벌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형편없는 군주라도 군주는 군주다. 그 군주를 몰아내려고 획책하는 건 반역이다. 이긴 놈이 장땡이네 뭐네 하는 것도 결국은 싸움에 이겼으니까 할 수 있는 합리화다. 혹시 무인지변에서 내가 예왕에게 졌다면 역적은 내가 되었을 게 아닌가.
만약 실제로 부수가 뭔가 일을 꾸몄다면 ? 만 리 밖에서 벌어진 일이니, 아무리 익문사가 기를 써도 탐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 우리가 부수를 돕는 건 후금의 내정에 개입하는 부당한 행동이 된다. 이기현이 우려하는 바도 그 부분이었다.
“그대의 말이 그르지는 않다.”
내가 마지못해 한마디 하자 이기현이 용기를 얻은 듯 말을 이어갔다.
“공주께서도 상도위와 함께 무사히 심양으로 피하셨사오니, 일단은 대패륵에게 해를 당할 염려는 없으십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일단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파악한 뒤에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보이니, 청컨대 선전관 김춘호를 불러 사정을 청취하게 하여주소서.”
“그대의 말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선전관 김가는 혼절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당장 불러올 수는 없다.”
김춘호는 심양에서 한양까지 거의 2천 리에 달하는 길을 단 닷새 만에 달려왔다. 파발을 띄웠으면 중간에 파발꾼이 스무 번은 교대했을 거리를, 말만 바꿔 가면서 단신으로 달려온 거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알리려면 자기가 직접 와야 한다는 이유였다.
미친 짓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런 짓을 해치울 수 있었던 건 김춘호가 미주 야인 ? 본명은 봄을 좋아하는 금빛 호랑이 ? 이었던 덕분이다. 김춘호는 김주마의 손자로, 미억족 최고의 용맹을 자랑하던 전사추장의 후손답게 말 타는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미주 야인이라고 해서 과거에 붙은 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문과 급제는 무리지만 무과 급제자는 간혹 나온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하면 공연히 본국 출신 병사들을 지휘하게 해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보다 내 곁에 두는 게 좋기도 하다.
고로 김춘호를 내 곁에 두었던 건 미주에서의 추억을 되살릴 겸, 소수민족을 내 측근으로 두어 이들이 능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드러낼 겸 해서였다. 그런데 가볍게 여기고 곁에 두었던 김춘호가 심양에서 겨우 닷새 만에 한양까지 달려올 줄이야.
하지만 무리한 시도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랐다. 닷새 동안 말 위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고 말 위에서 건량을 씹으면서 달려온 김춘호는 내게 보고를 마치자마자 사정전 앞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어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선전관 처소에서 시체처럼 자고 있다.
“허나 김가가 진술한 바는 모두 기록하였으니 다들 다시 한번 읽도록 하라. 또한 김가가 올라오며 받아온 북도 일대 지방관들의 장계도 읽어보고 상황을 살피라.”
김춘호가 직접 구술한 보고는 비변사 회의를 시작하면서 참석자 전원에게 사본을 한 부씩 돌렸다. 비변사에 속한 구성원의 숫자는 나를 제외하고 정확히 11명이다.
옛날 장조 시절에는 웬만한 정승과 판서는 다 비변사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의정부와 뭐가 다른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제가 개편되면서 비변사 구성도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정말 꼭 필요한 일부 관원들만 비변사에 들어온다.
현재 비변사 멤버는 국상(국무총리대신), 좌상(좌참정대신), 우상(우참정대신), 내무대신, 재무대신, 외무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 육군 제조, 해군 제조, 내직사 판내직부사까지 딱 11명이다. 행정수반:행정부:군부가 대략 1:1:1로 자리를 차지하는 셈이다.
여기에 내가 들어오고, 덤으로 태자 은이도 들어와서 지금은 총 13명이 있다. 계미남변이 종료된 뒤로 비변사가 열린 적이 없으니, 은이에게 비변사 운영 경험을 전수하려면 지금이 마침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폐하. 일단 상황을 살피자는 외무대신의 말은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정에서는 그 조사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합당하게 대처할 준비를 해두어야 하겠습니다.”
“국상의 말이 옳다.”
노구를 끌고 등청한 국상 최석정은 단호하게 논의가 나갈 방향을 잡았다. 그 발언은 백번 지당한 말이었으므로 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신하들도 하나씩 입을 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조심스러웠다. 출병은 보통 일이 아니므로, 곧바로 군사를 내어 상도로 진군하기보다는 역시 상황부터 살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재무대신 김여홍이 그 의견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공주께서 위험에 빠지셨다면 당장 나서서 구출해야 하겠으나, 이미 안전한 곳에 계시니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군대를 움직이면 막대한 돈이 든다. 하지만 2년 연속으로 가뭄이 들었는데 올해도 날씨가 좋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게다가 경인선 철도가 올해 드디어 개통이다. 아직 남은 작업이 있으니,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김여홍은 출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인선 부설이 끝난다고 돈 들어갈 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용산에 짓고 있는 경희궁 건축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것도 가뭄 때문에 완공이 밀렸다.
조사 결과 만약 부수가 정말 파포태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면 어떻게 할지는 바로 의견이 모였다. 부수를 제주도로 옮겨 정착시키고 북방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게 서로 좋다.
“대패륵이 역도를 처형한다면서 돌려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도위는 내 사위다. 어찌 사위가 죽는 꼴을 보기만 하라는 말인가.”
여기서 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심왕부다. 심왕부에서 부수 일가를 대한으로 망명하게 해달라고 내게 요청했다는 형식을 취하면 된다. ‘심왕부는 세 나라 모두와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라는 게 심양 회맹에서 규정한 결과니까.
문제는 부수가 무고하다는 결론이 나왔을 때의 대처방안이다. 출병할 것인가?
“대패륵이 부당하게 아우를 핍박했다면, 심왕부를 내세워서 그 잘못을 꾸짖고 아우에게도 사죄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우리만 나설 게 아니라 청나라에서도 동참하도록 하면 대패륵도 계속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북경에서도 한참 이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건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논의가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파사합과 파포태, 부수는 사촌지간이니까 기본적인 유대관계는 있을 거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별로 친하지는 않을 것 같다만.
“상도위가 천하에 무고함을 호소하며 대패륵에 맞서는 군사를 일으켰다면 우리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전관 김춘호가 보고하기를, 상도위는 급히 처자를 데리고 심왕부로 피했을 뿐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도울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야 아직 맞서겠다는 결심을 못 해서일 수도 있다.”
2차 왕자의 난 때 태종도 회안군 방간에게 반격을 가할지 말지 망설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태종의 연기였겠지만, 명분이 생겼다고 해서 대뜸 친형제를 쳐죽인다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나타내는 방증은 된다.
그런데 신하들이 제안한 조사 방법 중에는 기꺼이 동의하기 힘든 수단이 있었다. 심양에 있는 부수에게 조사관을 파견할 뿐만 아니라, 사태를 공정하게 파악하기 위해 파포태에게도 조사관을 보내 해명을 듣자고 하는 소리가 나온 거다.
‘아니, 이 자식들이 율리아가 안전하다니까 여유를 부리고 앉았네?’
율리아가 파포태 손에 들어갔다면 나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기는 했을 거다. 파포태한테 난행(亂行)을 당했고 안 당했고를 떠나서 인질이 되니까 말이다. 현대에서 읽은 어느 만화 주인공이 인질에 관해 언급한 대사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인질이란 한 명이면 충분하다. 손가락, 귀, 눈, 조금씩 떼서 사용하면 되니까.’
물론 파포태가 그런 짓을 했다면 후금 영토 전체를 불태워버렸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율리아는 탈출했고, 파포태의 손에 다시 들어갈 염려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신하들이 너무 여유를 부리는 건 마음에 안 든다.
“허나 선전관 김가가 말하기를, 상도위는 천주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신은 대패륵에게 역적으로 몰릴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언명했다 하였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상도위가 신의 이름을 걸고 거짓 맹세를 하겠는가?”
파포태 따위한테 조사관을 보낼 필요 없다, 부수 한 사람한테만 상황을 확인하고 조사를 끝내겠다는 내 의사를 확실히 드러내자 신하들이 긴장했다. 하지만 좌참정대신 송재원만은 낯빛이 창백해져서도 출병을 피하고 싶다는 의견을 확실히 표명했다.
“혹시 무고하게 누명을 썼다고 해도, 상도위 본인이 형과 끝까지 다툴 뜻이 없다면 그냥 한양에 와서 살게 하고 그대로 사태를 마무리해도 좋을 듯합니다. 대패륵에게는 심왕부를 통해서 크게 꾸짖는 글만 보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송재원은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자기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한마디 덧붙였다.
“심양에서 회맹을 맺음은 세 나라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 협력하자는 의도였습니다. 이는 작금의 사태에서 우리가 독단으로 움직일 게 아니라 청제(淸帝)와도 의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북경에 사자를 보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정론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옆에 있던 우참정대신 김성권이 짧게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어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폐하, 상도위가 정녕 싸움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우 글 하나로 이 일을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무고한 아우를 모함한 큰 죄를 어찌 그 정도로 덮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대패륵의 직위를 버리고 절에 들어가라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절에 들어간다는 말은 수도사가 된다는 뜻이다. 대한에서도 그렇듯이, 후금에서도 교회에서 쓰는 말 중에 불교 용어가 상당수다.
“대패륵이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우리는 대패륵을 벌할 합당한 권한이 없지 않은가?”
“그럴 때 심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왕부에서 무도한 대패륵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청하면, 우리가 기꺼이 그 요청에 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파포태가 이성을 상실하고 부수를 잡겠다며 심양으로 쳐들어온다면 그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전쟁이 벌어질 뿐이다.
“좋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든 움직이도록 하자. 하지만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니, 육군대신은 삼군부를 통해 북병사에게 명을 내려 북병을 움직일 준비를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바마마, 분명 대패륵은 큰 잘못을 저질렀사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건주의 내정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심왕부를 활용한다면 훗날 우리에게 똑같이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은이는 비변사 회의 내내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와 함께 대전으로 돌아와서는 회의장에서 느낀 자기 감상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지금은 심왕이 아직 아바마마와 저에게 부자지간의 정과 형제지간의 정을 느끼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전례로 삼아서 훗날의 심왕이 외부의 군사로 흉측한 짓을 도모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나도 그 문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심왕부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군사를 내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구나.”
심왕부에 관해 은이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은근히 기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임금 자리를 물려줘도 나처럼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니까.
“네 생각에는 대패륵을 어찌 처분함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수도승이 되면 족하겠느냐?”
은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눈빛을 보니, 차갑고 냉정한 기백이 엿보였다. 심판자가 보일 법한 태도다. 음, 내가 저런 눈빛을 한 적이 있었던가.
“대패륵이 누이를 잡아 흉한 짓을 했다면야 당연히 찢어 죽여야겠습니다만…실제로 그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으니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를 물을 수는 없겠지요. 순순히 칼을 놓고 갑옷을 벗는다면 우상이 제안한 대로 절에 넣는 정도로 그쳐도 되겠습니다.”
파포태가 자기 궁전을 아방궁으로 만들고 있음은 우리 귀에도 익히 들어온 바다. 그러니 은이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만, 율리아를 잡았을 때 그놈이 그 애를 난행했을지 그저 우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인질로 썼을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파포태가 순순히 손을 든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사태를 끝낼 수 있다. 정말이지 올렝카가 죽자마자 자식들을 놓고 빌었던 올렝카의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꿈★은 이루어지는 건가.
어제 연재분에서 부수의 작위를 ‘건주위’라고 했는데, ‘상도위’가 맞습니다. 혼동을 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