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35
3부 453화
– 4 –
노호성이 상도 한복판에 있는 황궁을 울렸다. 보고를 듣다 말고 격노한 대패륵의 고함에 시중을 들던 궁인들이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 역적놈이 대한으로 튀었단 말이냐!”
“그, 그렇사옵니다. 대패륵.”
둘째 패륵인 부수가 상도에 있는 저택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지도 벌써 2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파포태는 부수가 나라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잡으려고 철저하게 수색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제기랄! 그놈이 도망칠 거라면 차라리 남조(南朝)로 도망쳤으면 편했을 것을!”
사실 파포태는 부수가 군사를 모아서 반격할 줄 알았다. 상도가 있는 동부에 영지를 가진 만주인과 왜인 귀족 상당수가 부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부수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군사 1만 정도는 모을 수 있을 터였다.
파포태가 굳이 러시아군과 싸운다는 핑계로 병력을 모은 다음에 부수를 잡으려 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소규모 병력으로 어설프게 쳤다가는 곧바로 반격당할 수 있어서였다.
파포태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몽골병 2천으로 부수의 저택을 급습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택은 비어있었다. 부수도, 대복진인 수명공주도, 아이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비밀은 잘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계획이 샜다. 하지만 그 구멍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파포태는 곧바로 휘하 군사를 풀어 주변을 이 잡듯 뒤졌다. 대칸의 이름으로 부수를 반역자로 선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심양보다 북경까지 가는 거리가 더 가까우니까 혹시 도망을 친다면 그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청나라 황제 파사합은 이들 형제의 사촌이다. 살려달라고 찾아가면 분명히 일단은 보호해 줄 터였다. 나중에야 어떻게 처분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수색을 시작하면서 북경에 곧바로 사자를 보내 부수는 역적이며, 북경에 나타나면 잡아서 넘겨달라고 부탁했다. 굳이 송환까지 해주지 않아도 된다. 붙잡았다는 소식만 오면 처형장까지 끌고 오는 건 기꺼이 자기 손으로 할 의사가 있었다.
“역적도 그리 생각하고 더 안전한 쪽으로 간 것 아니겠습니까.”
파포태의 측근 중 한 사람인 몽골 귀족 오양가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반역자로 선포된 이상, 북경으로 도망쳐서 남조에 의탁해도 확실하게 도움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으로 가면 장인인 대한 태황이 확실하게 도와줄 테지요.”
격분한 파포태는 한참을 미쳐 날뛰었다. 부수가 대한으로 넘어갔다면 추격할 수는 없다. 심양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심왕부에 있는 후금군 파견부대를 움직이기도 어려운 게, 그놈들은 죄다 만주 귀족들이다. 부수를 지지하는 놈들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부수는 대한군과 함께 돌아올지도 모른다. 기병은 이쪽이 더 우수하지만, 전쟁은 기병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후금은 대한군의 대규모 보병과 포병을 상대할 수가 없다.
“흥!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만약 한황이 우리 역적을 돕겠다고 군사를 움직인다면 그건 그가 심양 회맹의 정신을 잊고 우리 내정에 간섭한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리하면 천하가 한황의 옹졸함을 비웃을 겁니다.”
심양 회맹은 건주 양국과 대한이 후송을 견제하기 위해 맺은 연맹이다. 후송이 팽창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게 주목적이니만큼 서로 간에는 우호를 유지하며 협력해야 한다.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건 그 기본이다.
“만약 한황이 딸 때문에 역도를 도우면 남조인들 앞으로 대한을 신뢰할까요? 그러면 심양 회맹은 그대로 의미를 잃고 맙니다. 한황은 그런 간단한 이치를 모를 사람이 아닙니다.”
측근 중 한 사람인 과이가 달리선(瓜爾佳 ?理善)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파포태도 그만한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은 화나 내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역적이 대한으로 도주했으니, 그에 맞춰서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정하셔야 할 때입니다.”
달리선은 후금의 개국공신인 과이가 오배(瓜爾佳 鰲拜)의 손자다. 오배는 후금을 개국한 홍타이지의 측근으로, 뛰어난 용사였으나 탐욕스럽기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 후손들도 딱히 조상보다 평판이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달리선은 확실히 파포태 편에 선 몇 안 되는 만주 귀족 중 하나였다. 당연히 다른 부하들보다 훨씬 발언권이 셌다. 그래서 파포태에게도 사정없이 직언을 날리곤 한다.
“그럼, 당장 군사를 보내 역적을 넘겨달라고 하면….”
“당연히 한군(韓軍)과 전투가 벌어지겠지요.”
부수를 편들어 반기를 들지 모르는 만주 팔기와 왜인 팔기를 제압하기 위해 몽골 팔기를 소집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전력을 고려하더라도 대한군과 충돌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달리선이 단언했다. 잠시 인상을 찌푸린 파포태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다. 이렇게 된 이상, 한황 앞으로 편지를 보내 부수 놈은 진짜 반역자이니, 비호해서는 안 된다고 알리자. 그리고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사형 대신 추방형을 언도할 터이니 다시는 막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한에서 지내게 하라고 말이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달리선을 비롯한 신하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파포태의 안정된 권좌를 위해서는 부수를 죽여야만 하지만, 차선책으로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도 감내할만하다. 부수가 대한에서 태평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부수를 지지하던 귀족들도 정나미가 떨어질 테니까.
파포태는 한황에게 국서를 보내야겠으니 당장 주금사(駐金使)를 불러오라고 했다. 상도에 상주하는 대한의 주금사는 그동안 처소인 해동관(海東館)에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었다.
해동관을 포위한 파포태의 부하들은 자기들이 해동관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동관을 막은 진짜 이유는 당연히 부수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대들은 설마 내가 부수 놈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대패륵. 역적이 루스 황태자와 서한을 주고받은 건 명백한 사실 아닙니까.”
신하들이 동조하자 어깨가 으쓱해진 파포태는 그동안 미뤘던 일 하나를 결행하기로 했다. 부친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망설이지 말고 해치웠어야 했는데 미룬 게 후회스러웠다.
“당장 즉위식을 준비하라. 내가 대칸이 되었다고 정식으로 천하에 선포해야 그 역도놈을 처리할 명분이 제대로 설 것이다!”
“새 대칸 만세!”
환호하는 수하들을 보며 파포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질러 버리면 되는 거다.
“대칸께서는 어떠시냐. 말씀은 할 수 있으시냐?”
“전혀 못 하십니다, 대패륵.”
쓰러졌던 전임 대칸 와극달은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식은 돌아왔으나 대화는 하지 못한다. 겨우 눈을 깜박거릴 수 있을 뿐, 대답을 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알 수 없다.
파포태는 침대에 누운 부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태자 자리에 두고도 경쟁자인 동생, 부수가 세력을 키워가는데 방관했던 태만한 부친이다. 죽은 형 상아대(常阿岱) 대신 자신을 대칸으로 세우고자 했다면, 그에 맞는 지원을 계속해줘야 했을 게 아닌가.
대패륵 자리에 계속 앉혀두는 것,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것만 지원이 아니다. 장애물을 없애주는 것도 지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게 가장 중요한 도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친은 앞의 두 가지는 도와줬어도 세 번째는 전혀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하는 겁니다, 대칸.”
부친을 간호하던 궁인들을 내보내고 혼자 부친 옆에 앉은 파포태가 싱긋 웃었다. 아들의 얼굴을 보는 와극달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이제 대금국의 모든 권한은 제 손에 있습니다. 대칸께서 저를 후계자로 정하셨으니까, 그 일을 완료하는 건 제 의무 아니겠습니까?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칸께서는 여생을 편히 지내실 거라고 약속하지요. 저는 천륜을 어기고 아버지를 해칠 불효자는 아니거든요.”
와극달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움직였다. 하지만 파포태는 공포감이 서린 부친의 눈을 보면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수명공주를 붙잡지 못한 건 아쉽습니다. 대칸께서 선대 대칸의 대복진이셨던 어마마마를 대복진으로 맞이하시어 남조와의 동맹을 유지하셨듯이, 저도 수명공주를 두 번째 복진으로 들여 대한과의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형사취수(兄死娶嫂)가 아니라 제사취수(弟死娶嫂)인 셈이다. 교회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회교나 불교로 돌아가면 된다며 파포태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죽은 지 10년 가까이 지난 아내가 언급되자 와극달이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놓쳤으니 그건 어렵게 되었습니다. 뭐, 그래도 대칸께서 물려주신 자리는 열심히 지킬 테니 건강히 지내시면서 잘 봐주십시오.”
파포태가 껄껄 웃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와극달이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 5 –
주변에서는 보통 ‘건주 양국’이라고 하나로 뭉뚱그려 언급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갈라져서 살기 시작한 지 거의 백여 년이 되어가고 보니 ? 홍타이지가 정식으로 후금의 군주가 된 게 이전 병자년(1636)의 일이다 ? 청나라와 후금은 그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황제 파사합의 입에서 지금 나온 한마디가 그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냈다.
“그 야만스러운 놈들이 또 한판 벌이려는 모양이군.”
후금에서는 조상의 관습을 지킨다면서 옛날 건주 시절의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청나라는 완전히 화북 왕조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주된 산업은 농업과 상공업이고, 수렵은 군사훈련에 필요한 수준으로만 한다.
제위 계승 문제도 중원 왕조들이 그렇게 했듯이 무난하게 이어진다. 지난 백여 년에 걸쳐 청나라에서는 군사를 거느린 황자들이 제위를 놓고 싸운다거나, 경쟁자를 암살하는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북조 놈들은 역시 하는 짓이 야만적이로다. 반기를 들지도 않은 아우가 반기를 들었다며 심문도 하지 않고 죽이려 들다니? 그리고 아우라는 놈은 사내답게 맞서는 게 아니라 장인의 뒤에 숨으려고 도망가고? 참으로 한심한 자들이로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신하들이 맞장구를 쳤다. 청나라에서였다면 지금 후금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장남이 자질이 부족하다면 일찌감치 황태자를 차남으로 바꿨을 테니까 말이다. 선제인 순치제 나락혼이 그렇게 제위를 물려받지 않았는가 말이다.
순치제는 만방제 낙명의 4남이었다. 하지만 장남이던 맏형이 요절하고, 둘째?셋째 형들은 너무 호전적이어서 만방제에게 태자로 낙점을 받지 못했다. 전쟁에 지친 청나라에는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방제는 온건한 성향의 순치제를 후계자로 택했다.
“하지만 그때 두 친왕께서는 동생의 신하가 되었음에도 군말 없이 옥좌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서약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송군의 북상을 저지하는 과업에 전력을 다하였으니, 실로 훌륭한 황족이자 신하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만방제가 재위 8년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순치제는 미처 황태자로서 기반을 다질 시간도 부족한 채로 제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두 형은 부황의 뜻을 따라서 동생인 만방제에게 계속 충성을 바쳤다. 유친왕 복전은 자기 형들이기도 한 그 두 친왕을 지극히 칭찬했다.
“북조에서 작금의 사태가 터진 것은 아직도 법도가 제대로 서지 않은 옛 습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후금 천권제 석새의 딸이었던 황태후가 살아있었다면 조정에서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황태후는 5년 전에 향년 65세로 눈을 감았다. 덕분에 청나라 조정에서 후금을 비웃거나 깎아내리는 언급이 나와도 불호령이 떨어질 일은 없다.
당장 황제인 중통제 파사합부터가 기회만 되면 후금을 희생시켜서 청나라의 이득을 챙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영화고륜공주를 대한에 태자비로 보내려 했던 것부터가 후금을 앞서는 든든한 고리를 대한과의 사이에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었던가.
“옳은 말이다. 도리를 따져 해결할 일을 칼과 활로 해결하려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로 작금의 사태에서도 파사합은 파포태와 부수 중 누가 후금의 제위에 앉건 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이긴 자가 제위에 오른 뒤의 행보다.
“그런데 이패륵(二貝勒)이 정말 루스와 결탁하기는 한 것인가?”
“후금 대패륵이 보낸 서한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사실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기는 하겠구나.”
러시아인들이 동쪽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것도 백여 년 전부터다. 하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건주 양국과 러시아가 접할 일은 제한된 교역뿐이었다. 준가르가 양 세력이 만나지 못하게 중간에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4년 전 무술년(1718)에 건주 양국이 협력하여 준가르를 쳐부수고 광대한 영토를 빼앗자 사정이 바뀌었다. 러시아인들이 자기들이 ‘시베리아’라 부르는 북쪽 땅에다 농부들을 이주시켜 새로운 도시와 마을을 건설하고 수비대를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그놈들이 계속 동쪽으로 온다면 우리에게는 확실히 위협이 될 게 아닌가.”
파사합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인들이 동진한다고 해도 대한의 땅을 노릴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대한과 러시아의 국경은 바이칼호 북쪽 래나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는데, 그 얼음덩어리 땅을 굳이 먹으려 들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새로이 취임한 루스의 동방총독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스 황태자라 하였으니, 더더욱 장인의 나라와 충돌할 생각이 없겠지.”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이 욕심을 낼 방향은 대한의 영토가 아닌 바이칼호 남쪽, 준가르한테 빼앗은 서부 몽골 지역이 될 공산이 크다. 아니면 더 서쪽의 준가르 본국을 노리거나.
“어느 쪽이건, 우리가 루스와 국경을 접해서 좋을 건 없습니다. 한황이 자기 사위 나라를 돕겠다고 우리를 협공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의심을 기반으로 하는 편이 안전하다. 파사합을 비롯한 청나라 황족과 대신들은 후금 황족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한다고 비웃었지만, 이들 역시 자신들 외부에 있는 집단은 경계하고 의심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
“이패륵이 혹시 북경으로 도망쳐서 도움이라도 청했으면 모르겠으나, 그러지도 않았으니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혹시 소란이 우리 영토로 번지는 경우를 대비해서 국경 연변에 군사를 대기시키기만 하지요.”
파포태가 체포를 의뢰하기는 했지만, 부수 일가는 청나라로 오지 않았다. 후금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대한으로 갔으리라. 어느 쪽도 가능한 이야기다.
“다만 이패륵이 싸움을 포기하고 대한으로 도망갔다면 이패륵을 따르던 이들도 실망하여 이패륵을 버릴 공산이 큽니다. 그러면 대패륵이 간단히 천하를 얻겠지요. 우리한테야 그런 결말도 나쁠 게 없습니다만.”
“통치 능력이 형편없는 대패륵이 나라를 망쳐놓아도 말인가?”
“그때는 폐하께서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만주를 재통합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지요.”
후금은 불안한 나라다. 몽골인의 인구가 만주인의 세 배에 가깝다. 천주교를 도구로 써서 여러 핏줄을 새롭게 통합한다고는 하지만, 저래서야 만주인의 나라인지 몽골인의 나라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과 후금이 다시 합친다면 만주인 인구가 확실히 몽골인을 능가한다. 후금에서는 인구가 수십 년째 정체 상태지만, 청나라에서는 대폭 증가한 덕분이다.
“그동안 우리는 천도 사업과 변발 확대, 두 가지 당면과제에 열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요청도 없는데 남의 내란에 개입할 여유가 없다고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지금 청나라에서는 수도를 북경에서 개봉으로 옮기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북경은 너무 영토 한쪽에 치우쳐 있어서 수도로 적당하지 않다는 문제 때문이다. 명나라 시절에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북경을 계속 수도로 유지하기는 너무 불편하다.
변발 확대는 한족들도 만주인처럼 변발하게 하되, 그 형태를 다르게 하는 쪽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 관직에 있거나 녹영병으로 등록된 자들은 만주인과 똑같은 금전서미를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앞머리를 밀지 않고 머리 전체를 두껍게 땋아 늘어뜨리는 쪽으로 말이다.
“한인들이 하는 댕기 머리 같습니다만, 머리를 깎지 않는 만큼 반발은 적을 듯합니다.”
“짐의 생각에도 그럴듯하다.”
청나라는 후금의 내란은 자기들끼리 해결하게 놓아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기들도 할 일이 많은 형편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