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53
3부 4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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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3일째.
지난 이틀간 그랬듯이, 당연히 파포태 측이 선공을 걸어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투 태세를 갖춘 부수군 병사들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우야! 말로 하든 창으로 하든 우리 두 사람이 이 앞에서 결판을 내자! 우리 둘이서만 싸우면 되지, 수천이나 되는 군사들을 헛되이 죽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파포태 본인이 진두에 나와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대는 게 아닌가. 부수를 부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를 설복하고 싶다면 나한테 할 말을 네 입으로 건네어라! 나를 쳐 죽이고 싶다면 네가 직접 창을 들고 나서라! 이 싸움은 우리 형제간의 싸움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 두 형제의 손으로 끝장을 보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파포태는 1각 가까이 고함을 쳐댔다. 나오지 않는 부수에게 겁쟁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수는 그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깃대 아래에 서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예 고삐에서 두 손을 놓고 그대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침내 파포태가 부수를 불러내기를 포기하고 말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오른팔을 들어서 손짓하자 파포태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이렇게 해서 셋째 날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포태군의 병력 배치는 어제와 달랐다. 파포태는 어제처럼 선두에 부수파 병력을 세우는 대신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대칸 직속 만주인 부대와 전부터 자기를 지지한 몽골 왕공들의 부대를 선봉으로 투입했다.
부수는 여기 맞춰서 자기도 자기 최측근인 동백기를 투입했다. 그리고 정예 팔기가 함께 나서서 분투했다. 치열한 격전에 숱한 목숨이 스러져 갔다.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두 배인 파포태는 한바탕 싸운 부대를 뒤로 빼내서 기력이 왕성한 새 말로 바꿔타고 잠시 숨을 돌리게 한 후에 다시 내보냈다. 부수도 똑같이 했지만, 병력이 열세다 보니 훨씬 여유가 없었다.
“피곤하더라도 버텨라! 천주께서 그대들의 팔에 힘을 주시리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간밤에 박문수가 보낸 사자가 도착했다. 파포태군의 눈을 피해서 오르혼강을 따라 올라온 사자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원군에 관한 소식을 가져왔다. 그 도착은 정녕 구원의 소식을 가져온 천사나 마찬가지였다.
부수 휘하에 있는 군사들이 러시아인을 경계할까 봐 러시아인이 아닌 한인을 사자로 보낸 것도 고마웠다. 박문수의 배려는 참으로 속이 깊었다.
『러시아 황태자가 지휘하는 기병과 보병 1만 4천, 제가 거느린 기병 1천여 기가 패륵께 도움이 되고자 국경을 넘어 목적지에 거의 당도하였음을 알려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7월 27일 오후까지는 전장에 당도할 테니, 부디 그때까지만 버텨 주십시오.』
27일이면 바로 오늘이다. 며칠 더 버텨야 할 줄 알았는데 오늘 하루만 더 버티면 된다니 이처럼 기쁜 소식이 또 없다.
병사들만 오는 것도 아니다. 오르혼강에 거룻배를 띄워서 30문에 달하는 중포도 운반하고 있다고 했다. 포병이 없어서 공성전도 제대로 못 치렀는데, 그게 보충되는 거다.
이렇게 원군이 오는 게 확실해졌는데 왜 파포태의 도발 따위에 넘어가 패배할 게 분명한 단기접전(單騎接戰) 따위를 해야 한단 말인가. 자기를 말로 설득하라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지금 파포태는 부수가 말로 해서 통할 사람이 아니다.
“대패륵도 러시아군이 온다는 소식을 분명히 접했겠지?”
“물론입니다. 대패륵이 미리 대비했든 안 했든, 소식이 전해졌을 건 분명합니다.”
만 명이 넘는 외병이 국경을 넘어 침입했다. 파포태가 국경을 어떤 꼴로 만들어놨는지는 모르지만, 연락하러 올 전령 하나 남지도 않고 괴멸되지는 않았을 거다.
“오늘 공세가 갑자기 격해진 이유도 거기 있을 겁니다. 여유를 잡고 느긋하게 공격하려다 갑자기 상황이 뒤바뀌니 조바심이 생긴 게지요.”
1만에 달하는 나십의 병력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고 뒤에 놓아두는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됐다. 필시 러시아군이 나타났을 때 바로 대처하기 위한 예비대로 상정했으리라. 전 병력을 투입해서 부수를 공격하다가 러시아군에게 배후를 공격당하면 끝장일 테니까.
지금 파포태는 러시아군이 나타나기 전에 결판을 내려고 서두르고 있다. 부수만 그렇게 판단하는 게 아니고, 옆에 있는 장수들도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파포태에게 맞서는 부수 측이 취할 태도는 하나뿐이다. 부수가 지시를 내렸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라!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이름으로 적에게 맞서라!”
주군이 외치는 소리를 듣자 군사들도 입을 모아 외쳤다.
“Deus Vult! Deus Vult!”
부수군 전체가 부수만큼, 그리고 부수의 친위대만큼 독실한 신자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 구호, ‘Deus Vult!’는 모두가 일제히 외쳤다. 이 구호는 부수를 위해서 외치는 거라고 다들 인식했기 때문이다.
파포태군 진영에서는 부수군만큼 신을 찾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필시 파포태가 그다지 교회에 충실하지 않은 엉터리 신자라 그러하리라.
싸움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화살과 총탄이 바람을 가르고 창은 몸을 찔렀으며 만곡도는 목과 사지를 잘랐다. 말과 사람이 무기에 맞아서 쓰러지고 피와 비명이 초원에 흩뿌려졌다. 땅에 떨어진 부상자는 말발굽에 짓밟혀 으스러지며 신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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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은 앞에 나서는 병력을 교체해 가면서 온종일 싸웠다. 정면 돌파에 실패한 파포태가 우익부대를 빠르게 움직여 부수의 좌익을 포위하려고 시도했으나, 부수는 예비대를 움직여 그 기도를 막아냈다. 결국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후금군 최고의 정예는 분명 대칸이 직할하는 만주인 부대일 터였다. 그런데 그 병사들이 부수의 진형을 돌파하지 못했다. 몽골인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연이은 공세를 격퇴한 부수 측 진영에서는 승리를 주신 천주를 찬양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디, 끝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
희롱하는 듯한 함성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파포태가 뒤로 빼놨던 부수파 군대와 다이제 계열 부대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러시아군이 다가오고 있다. 그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기 전에 마지막 공격을 시도할 참이었다.
“그대들이 그놈들에게 공 세울 기회를 달라고 하였지! 좋다. 내가 기회를 줄 테니 공적을 세워보아라!”
이번에는 친위대를 거느린 파포태 자신이 함께 돌입한다. 측근들은 당연히 사색이 되어서 뜯어말렸지만, 파포태는 단단히 결심했다. 지금 이 꽉 막힌 상황을 뚫으려면 자기가 나서서 적진을 짓밟고 부수를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부수 놈의 목만 따면 끝이다! 그러면 반군 놈들은 산산이 흩어져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부수를 끌어내려고 시도해보았다. 순순히 앞으로 나왔으면 단박에 사로잡거나 쳐 죽여서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건만, 부수는 고개를 내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파포태의 수를 읽었는지, 겁쟁이라서인지.
하여튼 부수가 쓰러지면 반군 측에는 그 자리를 이어받을 자가 없다. 와극달의 오랜 와병 때문에 웬만한 황족들은 모두 상도에 와있었고, 이들은 고스란히 파포태의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 부수 진영에 황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거다.
물론 부수에게도 파이도(巴爾圖)라는 아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대한에 숨어있을 그 아이는 이제 겨우 4세, 파포태의 아들 연태보다도 훨씬 어리다. 부수의 후계자로 나설 명분은 몰라도 능력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간다!”
이번에는 파포태도 자기가 선두에서 달려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믿기 힘든 다이제 계열과 부수 계열 군을 먼저 돌입시키고, 그 혼란을 틈타 자기 친위대와 함께 뛰어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파포태가 직접 수만 대군 사이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말리는 신하들을 윽박지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존재였던 두 집단은 어제보다 오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태도도 소극적이고 파포태의 명령도 잘 따르려 하지 않았다.
분노가 치민 파포태가 그대로 몇 명을 끌어내 본보기로 베어버렸다. 하지만 이 병사들의 반항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파포태도 당황했다.
생각 같아서야 이놈들도 반군으로 취급해서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부수가 보는 앞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는 없다. 적을 앞에 두고 자기 부하들부터 죽일 수도 없으니, 뒤에 예비대로 두었던 나십의 부대를 불러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에 갑자기 비명이 울렸다.
“대칸! 러시아군입니다!”
“무엇이라고!”
저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했는데 늦고 말았다. 이를 악문 파포태가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대비한 대로 움직인다! 후진에 있는 삼패륵에게 군을 움직여 러시아군을 막으라 명하라! 그사이 본진은 역괴를 쳐서 멸한다!”
어제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약 1만 5천이다. 나십이 거느린 1만 기라면 싸워 이기기는 어렵지만 붙잡아둘 수는 있다. 그동안 파포태가 이끄는 본진이 부수군을 격파하고 다시 방향을 돌려 나십과 합세하면 러시아군도 충분히 짓뭉갤 수 있으리라.
파포태는 나십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각개격파 계획만 성공한다면 승리할 가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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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는 먼지를 한껏 뒤집어쓴 상태로 눈에 천리경을 갖다댔다.
“꽤 치열하게 치고받았군.”
평원에는 여기저기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시체를 뜯는 독수리와 까마귀가 구름처럼 모여 날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싸움이 그치고 양쪽 군사들이 본진으로 물러나면 땅에 내려앉아 쓰러진 사람과 말의 고기를 뜯으려는 거다.
“고령위 나리, 당장 대열을 재편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제가 싸우자고 말씀드릴 때까지 싸움을 시작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예, 나리.”
바이칼호 남쪽에서 여기 카라코룸까지, 정말 미친 듯이 달려서 이레가 걸렸다. 하루라도
빨리 카라코룸에 도착해야 부수가 먼저 각개격파당하고 연합군 단독으로 파포태와 결전을 벌이는 참극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야 한가운데서.
하지만 대가는 컸다. 부수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곧 전군이 도착할 것처럼 허풍을 쳤지만, 상당한 병력이 강행군에 지쳐서 도중에 낙오해버렸다. 그래서 일단 떼어놓고 기운을 차려서 뒤따라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온 병사들도 죄다 물먹은 솜처럼 지쳐 있다. 알렉세이가 최정예라고 아끼는 한인 보병대대도 마찬가지다. 한숨을 쉰 박문수가 알렉세이에게 제안했다.
“전하. 의병(疑兵)으로 우리 수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처럼 위장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야만 저 어리석은 자가 자기가 열세인 줄 알고 싸움을 망설일 테니까요.”
“고령위의 생각이 옳소. 여기 브루스 장군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는구려.”
지금 한러 연합군과 부수군, 파포태군은 거의 삼각형의 세 꼭짓점 위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장애물도 없는 평원이다 보니 어느 하나가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다른 두 세력의 눈에 곧바로 포착된다.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태다.
“후금군이 다가옵니다!”
외치는 소리를 들은 박문수가 앞을 보니, 과연 1만 기에 달하는 후금군이 이쪽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전투를 아직 한 번도 치르지 않은 듯, 행색이 무척 깔끔하고 기세도 왕성해 보였다. 연합군의 추격을 대비해 파포태가 남겨둔 예비대였던 모양이다.
“전투준비!”
연합군 대열 여기저기서 구령이 터져 나오고, 야포와 소총이 발사 준비를 마쳤다. 양익의 기병들은 진형 좌우로 대열을 뻗으며 응전할 준비를 했다. 지난 사흘 동안은 제대로 자지도 못한 강행군 때문에 다들 심하게 지쳤지만, 그래도 싸울 태세를 갖췄다.
박문수 자신도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백위영 군사들 선두에 서지는 않았지만, 대열 사이에 서서 적을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칼을 뽑아 그 광채를 잠시 살폈다.
“이상합니다. 저놈들, 돌격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걷고만 있습니다만….”
옆에서 박문수의 부관 노릇을 하던 드미트리 ? 보리스의 아들 ? 가 상당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기병전에서는 천천히 움직이다가도 적과 가까워지면 속도를 내서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후금군 예비대는 그저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마침내 야포 사거리까지 근접하자 후금군 본진은 이동을 멈췄다. 대신 선두에 선 장수 한 사람만 앞으로 나서서 계속 다가왔다. 그리고 연합군 대열 2백 보쯤 앞에서 말을 세운 후금 장수가 소리쳐 이쪽을 불렀다. 뭔가 교섭을 시도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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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포태는 정말로 눈앞에 나타난 러시아군을 통해 부수의 매국 행위에 관한 자신의 선전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저 침략자들을 물리치려면 저놈들과 손을 잡은 장본인인 부수를 먼저 쳐야 한다고 남아 있는 군사들을 독려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일거에 역도의 목을 베고, 이 난을 끝내도록 하자!”
파포태는 러시아군은 나십이 맡아줄 테니까 본진에 남은 군사들은 부수를 상대할 생각만 하라고 몇 번이나 호통을 쳤다. 사흘 동안 죽거나 다친 병사를 빼도 파포태에게는 아직 2만 5천 기가 남아 있고, 이는 남은 부수군 1만 8천 기보다 훨씬 많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병력이 많아도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파포태의 군사들은 막 돌격하려는 참에 러시아군이 나타나자 또 기세가 흐트러진 상태였다. 이를 독려하여 다시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나십의 후군은 이러지 않았건만….”
사흘 동안 충분히 쉰 나십의 군사와 계속 싸움에 나선 본진을 비교하는 게 잘못이라는 건 파포태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군사들을 다시 다그치는 일도 마침내 끝났다. 칼을 뽑아 든 파포태가 전군에 돌격하라고 명령할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또 비명이 울렸다.
“후군이 적에게 합세했습니다!”
“뭐, 뭐라고?”
이번에야말로 파포태에게 결정적인 충격이 닥쳤다. 나십이? 남들보다 앞서서 파포태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 나십이? 이르쿠츠크에서 물러날 때 최선을 다해 후위를 지키며 본대의 피해를 줄이고, 여기 와서도 예비대를 탈 없이 간수한 막냇동생이 배반했다고?
급히 고개를 돌려 북쪽을 봤다. 그러자 정말로 나십이 이끌던 후위 1만기가 러시아군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본진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적과 손을 잡은 게 분명했다.
“이, 이럴 수가…!”
나십은 막냇동생이다. 대한이나 러시아와 혼맥으로 얽히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히 큰형에게 충성했을 막냇동생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반기를 들었단 말인가!
이제 파포태군은 두 방향에서 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면의 부수군, 그리고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러시아군과 배반한 나십군이다. 병력은 이제 적이 훨씬 더 많다.
“대칸, 이제라도 상도로 철수를….”
파배가 주저하는 태도로 진언했다. 하지만 파포태는 그 제안을 거부하면서 포효했다.
“아니야! 우리는 아직 2만 5천의 병사가 있지 않으냐! 지금 있는 병력으로 단숨에 부수를 치면 일거에 역전할 수 있단 말이다!”
파배가 보기에 그 계획은 어거지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아직 퇴로가 있는 동안 빠져나가 훗날을 노리자고 다시 권하려는데, 그 순간 그 ‘퇴로’가 닫히기 시작했다.
“카라코룸의 성문이 열렸습니다!”
나이포가 뒤늦게라도 합세하는 줄로 안 파포태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바로 절망으로 바뀌었다. 성문을 열고 나온 나이포의 군대는 부수를 공격하지 않았다. 얼굴이 사색이 된 전령이 달려와 알렸다.
“대, 대칸! 카라코룸에서 나온 아군이 적 본진에 합세했습니다! 전혀 싸우지 않고 그대로 합, 합세했습니다!”
“나이포, 이 개만도 못한 놈이!”
러시아군이 나타나는 광경까지 본 나이포가 마침내 줄타기를 끝낸 것이다. 휘하에 거느린 병력과 함께 부수에게 귀순했으니, 이제 나이포는 적이 되었다. 그리고 나이포가 거느리고 있던 병사들도 모조리 적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카라코룸 성벽 앞에 남아 나이포를 견제하던 부수군 병력까지 합세하니 순식간에 정면에 포진한 부수군은 3만 명 가까운 숫자가 되었다. 파포태군이 돌격을 시도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당연히 급전직하했다. 절망한 파포태가 신음을 토했다.
이 두 차례 충격만 해도 파포태를 쓰러트리기에는 충분했을 것이지만, 곧 세 번째 타격이 가해졌다.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적 본진에 돌입할 선봉에서 빼내 우익에다 배치했던 다이제 계열 군사들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더니 뒤에 있는 본진으로 달려갔다.
“저놈들 도망가는…아차!”
잠시 멍해 있던 파포태의 뇌리에 곧 저들의 행동에 관한 답이 떠올랐다. 본진에는 죄수를 가둬두는 감옥이 있다. 그 안에는 파포태가 가둬놓은 다이제의 친족들이 있다. 군사들이 제 상전을 구하러 간 거다.
“인질…!”
본영에는 지금 남은 병력이 거의 없다. 남겨둔 경비대는 다이제 군이 주먹을 보여주기만 해도 무너질 소규모 병력일 뿐이다.
“대칸, 이제라도….”
“조용히 하시오!”
이제는 파포태라고 해도 계속 싸우겠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도로 철수하라고 명령할 수도 없었다. 연이어 네 번째 타격이 닥쳤기 때문이다.
“대칸을 참칭한 찬탈자를 죽여라!”
“이패륵 전하 만세!”
부수 계열 귀족들의 군대는 가주의 안위 때문에 이제껏 억지로 파포태 밑에서 싸워왔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이들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파포태를 잡아버리면, 상도에 있는 인질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좌익에 있던 친부수 성향 군대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면서 파포태는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파포태가 있는 주변까지 총탄과 화살이 날아들었고 함성과 비명이 주위를 채웠다.
“개자식들, 개자식들…!”
파포태는 그저 이를 악물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의 성품으로 보건대 당장 활을 잡고 반적들을 직접 쳐 죽이겠다며 달려들 법도 하건만, 고삐를 잡은 채 그저 부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끝까지 파포태 곁에 남아 있던 파배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나십이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렸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도에 있는 형으로부터 확실하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결정을 미뤘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그도 움직여야 할 때인 듯했다.
“여봐라.”
파배가 자신을 따르는 호위병들에게 손짓했다. 이들은 주인이 내리는 지시라면 그게 어떤 내용이라도 곧바로 실행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설령 그게 대칸을 공격하라는 명령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