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55
3부 473화
– 3 –
상도 백성들은 내란이 진행되는 지난 반년 동안 별달리 눈에 띄는 불편을 겪지는 않았다. 대칸을 참칭한 파포태의 성정이 음탕하고 난폭하다고는 하나, 이를 백성들에게 드러내 보일 기회가 없었던 탓이 크다.
파포태는 난을 일으키고 즉위식을 치르기까지, 그리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할 때까지 다섯 달 가까운 시간을 수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동안 부수를 쫓는 일에 전력을 쏟느라고 다른 일은 거의 팽개치다시피 했다.
만약에 부수를 일찌감치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면, 필시 파포태는 자신이 대칸으로 즉위한 기념으로 갖가지 일들을 해치웠으리라. 파포태가 장차 어떤 일을 하겠다고 확실하게 공표한 적은 없지만, 그의 평소 행동거지를 보면 추측할 수는 있다.
심왕부와 교섭하여 코끼리를 열 마리쯤 사들였을지 모른다. 그 코끼리들을 키우려면 황궁 내에 거대한 상사(象舍)를 지어야 했으리라. 성 밖 들판에 그 코끼리들의 놀이터로 심양에 있는 흥재원만큼 큰 정원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기껏 대칸이 되었는데 코끼리만 가지고 놀지는 않았으리라. 어쩌면 상도에 거주하는 모든 젊은 여자를 황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미녀를 골라 시녀로 뽑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금 전역에 명을 내려 더 많은 미녀를 바치게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파포태는 결국 부수를 꺾지 못했으므로, 이러한 파포태 입장에서는 즐겁고 백성들 입장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왔을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도 백성들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며 내란의 향방이 어떻게 결판이 날지만 기다리면 되었다.
그래도 두 사람의 성격 차이는 이미 내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랬으니 백성들로서는 아무래도 부수가 대칸이 되는 것을 더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즉위식이 또 열리겠네?”
“지난번 즉위식은 없는 게 됐으니까. 새 대패륵이 정식으로 대칸 자리에 오르시니 당연히 즉위식이 새로 열려야지.”
당연한 결과지만, ‘다섯 패륵의 전투’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성당에 있던 암브로시오 주교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이 3월 1일에 열린 파포태의 즉위식을 무효라고 선언한 거였다. 그 당시 전임 대칸 요셉 ? 와극달의 세례명 ? 의 적법한 양위 선언도 없었을뿐더러, 파포태 측에서 주교에게 어서 즉위식을 열라고 압박을 가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로써 와극달은 자연스럽게 다시 대칸으로 복위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여전했다. 고로 하루빨리 부수를 대패륵으로 봉하고, 다시 정식 대칸으로 즉위하게 해서 통치권을 물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패륵 전하도 지난번 대패륵처럼 즉위식 잔치를 여실까?”
“예끼, 기대할 걸 기대하게.”
성당 앞 골목길에서 수군거리던 백성들이 낄낄댔다. 품행이 방정하기로 이름 높은 부수가 파포태처럼 상도의 거리를 술통과 고깃덩어리로 채워줄 리는 없다는, 다소 아쉬움이 섞인 농담이었다.
이들이 골목길 안쪽에서 한담을 나누는 와중에 황궁으로 들어가는 대규모 행차가 거리를 지나갔다. 심양에서 돌아와 황궁으로 들어가는 부수의 대복진, 수명공주 일행이었다.
– 4 –
“전하!”
“공주!”
한껏 끌어안은 두 사람은 떨어질 줄 몰랐다. 힘주어 안은 두 팔과 몸으로 상대의 존재를 느끼고 그 기쁨을 만끽했다. 결심을 굳힌 부수가 심양을 떠난 성 발렌티누스 축일 이래로 7개월, 그동안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부수는 초원의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을 보며 율리아를 그렸고, 율리아는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면서 부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고된 대업을 결심한 남편이 무사하도록 돌봐주시기를 성모님께 기도했다. 그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상도에 입성한 부수는 곧바로 심양으로 파발을 띄웠다.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다는 편지를 받은 율리아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귀국길에 올랐고, 부수보다 24일 늦게 상도에 들어왔다. 연락만 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기에 이토록 빨리 올 수 있었다.
“커험, 그대들의 해후를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도 있으니 조금 신경을 써 주시구려.”
“아. 죄송합니다, 심왕 전하. 오신다는 전갈을 받았는데도 제가 그만 감정에 취해 무례를 범했습니다.”
율리아를 떼어놓은 부수가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심왕 이준은 그 격으로만 따지면 주변 삼국 군주보다 확실히 낮지만, 그 미묘한 위치 때문에 황자나 친왕들보다는 격이 좀 높다. 그래서 심왕의 친형인 대한 태자 정도를 빼면 다들 심왕에게 존대를 한다.
“그동안 불청객인 제 처자를 돌봐주셔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진 신세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신세라니! 다 같은 동기간인데 급할 때는 마땅히 도와야지 무슨 말씀이오. 도리어 내가 유감을 표해야 할 판인데.”
심양회맹 때만 해도 두 사람은 허물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건 이미 10년이 넘은 옛날의 일이다.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어른이 되었을뿐더러, 이준은 애초에 부수보다는 파포태와 더 친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예전처럼 편하게 부수를 대할 수 없었다.
“심양에서 상도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차마 누이를 홀로 보낼 수 없어 내가 함께 왔으니 양해를 바라오. 그리고 정빈이 자기도 꼭….”
“오라버니!”
이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심왕부의 정빈 김씨, 즉 부수에게 단 하나뿐인 누이인 수은고륜공주(壽恩固倫公主)가 뛰어왔다. 그리고 오라비의 가슴팍에 매달려서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잖아요! 나하고 율리아 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율리아와 정빈의 사이는 본래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더 가까워졌다. 정빈 김씨가 남편인 이준도 젖혀 놓고 율리아와 침식을 함께하면서 공들여 위로하고 격려한 덕분이다. 지금은 사실상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이들이 가까워진 대신, 졸지에 독수공방 신세가 된 이준만 불쌍해졌다. 봄이 되어 한양에 있던 심왕비가 올 때까지는 말 그대로 끈 떨어진 홀아비 같은 신세였다. 심왕비는 오랜만에 남편을 독차지하게 되어 은근히 좋아한 듯하지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는 혼인한 지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옛날하고 똑같구나. 그만 좀 울어라. 전하, 이만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소. 바깥은 아무래도 아랫것들 눈도 있고 하니….”
네 사람은 내관의 안내를 받으며 동궁으로 향했다. 법도대로 하면 와극달에게 가서 먼저 인사를 올려야겠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와극달은 바깥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고 있었다.
동궁으로 가는 부수의 양옆에 아내와 누이가 바짝 달라붙었다. 자기만 혼자 걷던 이준이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는 정리가 웬만큼 되셨겠구려.”
“예, 전하.”
파포태가 쓰던 동궁에, 책봉식을 마친 부수가 들어온 건 겨우 열흘 전이었다. 대성당에서 열린 책봉식은 파포태 때보다 더 성대했다. 권력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부수의 대패륵 책봉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대한 태황의 사위인 고령위 박문수가 참석했고,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도 있었다. 청나라에서도 황제 파사합의 아우가 찾아와서 참례했다. 내란이 끝났음을 축하하고 수습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온 사자였다.
이제 국사는 부수가 정식으로 섭정이 되어 돌보고 있다. 남은 절차는 공식적인 양위와 그 절차를 확실히 하는 즉위식뿐이다.
“즉위식은 보름 뒤인 이달 23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굳이 서두르고 싶지 않은데, 주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치르게 하려고 난리입니다.”
“어쩔 수 없잖소. 대칸께서 몸이 원체 좋지 않으시니.”
큰 피해를 낸 내란까지 겪은 참이다. 부수 본인이 부친의 자리를 뺏고 싶어 하지 않다고 해도 주변에서 더 서두를 수밖에 없다. 와극달 본인도 어서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싶을 터였다.
이준은 부수에게 주변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권하면서 다른 질문을 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꺼내는, 그가 대한의 친왕이라면 못 했겠지만 심왕이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폐패륵의 처분은 어찌하기로 하였소?”
부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복진인 알렉산드라님은 사면하기로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 목숨을 구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시더군요. 심양에서 탈출하던 날, 도피하라고 알려주신 분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 은혜를 버릴 수는 없지요. 친정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사실 겁니다.”
형은 자기를 죽이려 했는데 형수는 자기 목숨을 구했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부수가 하는 말을 들은 율리아도, 정빈 김씨도 일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은혜를 생각하자면 조카인 바오로도 해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더군요. 형님과 함께 처형하자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수도원에 들어가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연태는 아직 어렸다. 파포태의 음모에는 개입하려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죄를 물어 목숨까지 뺏는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여기까지는 부수도 막히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친형 파포태의 처분에 관해서는 언급을 망설였다. 한참을 망설이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형님은…역시 처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형님의 수하로서 가담 정도가 매우 심한 자 열여섯 명을 골라 참수했는데, 형님은 살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소이까…하지만 대패륵께서는 친형제를 처형하고 싶지는 않으실 거요. 그러니 무리를 좀 해서라도 목숨만은 붙여 주시면 어떨까 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파포태 옆에 있으면서 충실한 참모 노릇을 한 파배가 부수에게 용서받은 비결도 파포태를 살린 데 있었다. 파배는 파포태를 넘기면서 부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패륵을 그냥 둔다면 흥분한 난군에게 참살당할 게 뻔하여, 무사히 패륵께 데려오고자 부득이하게 묶어서 보호하였습니다.’
부수는 그렇게 넘겨받은 파포태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했다. 찬탈자로 규정한 만큼 얼마든지 모욕을 줄 수 있었음에도 어떤 모욕도 가하지 않았다. 황궁 내 뇌옥에 가둬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처분을 고심하고 있고 말이다. 이게 죽이기 싫다는 뜻 아닌가.
“내가 폐패륵과 쌓았던 친분 때문이 아니라, 대패륵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오. 태황께 청하여 머나먼 북방 땅, 빙주로 유배하면 어떻겠소? 워낙 춥고 척박한 곳이라 무척 견디기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대패륵의 손으로 직접 형제의 목숨을 거두기보다는….”
북방에는 빙산도와 빙조도라는 두 섬이 있다. 멀고 먼 북쪽 끝,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먼 땅이다. 죽느니보다 못한 삶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살 수 있다면 살고자 하는 게 사람 아니겠는가. 하지만 부수는 고개를 저었다.
“심왕께서 주신 조언은 감사히 듣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 대금국 내에서 결정할 일이니, 양해해주시지요.”
“알겠소이다. 내가 심왕이라 하나 어찌 강요할 수 있겠소. 그저 한마디 건네 볼 뿐이지…. 다만 처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게 해주시구려.”
귀한 이는 사형에 처하더라도 곱게 죽이는 게 상례다. 부황도 난을 일으킨 이복형을 험한 방법이 아닌 사약으로 보내지 않았던가. 파포태도 그렇게 보내는 편이 좋으리라.
– 5 –
상도에 온 이준은 반가운 얼굴을 여럿 만나게 되었다. 매제인 고령위 박문수와 더불어서 어릴 적 함께 놀던 놀이친구 알렉세이까지 만났다.
“차레비치가 이번 난리를 진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소. 나도 군사가 있었으면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을.”
“과찬이오. 여기 그대의 매제가 보여준 꾀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도 그리 쉽게 진행하지 못했을 거요. 난을 일으킨 폐패륵을 타도한 공의 절반은 고령위의 몫이오.”
이준의 칭찬을 받은 알렉세이는 이번에 자기가 세운 공적은 다 박문수 덕이라며 박문수를 칭찬했다. 박문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기는 한 게 없다고 겸양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 게 없기는. 주님께서 다 보고 계셨소. 그대의 공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오.”
알렉세이가 칭찬하자 회의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알렉세이는 멈추지 않고 박문수가 세운 공에 관해, 그리고 자기가 이번에 겪은 전투에 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문이 활짝 열리면서 청나라 사자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친왕 다탁, 심왕께 인사 올립니다.”
신친왕(愼親王) 다탁(多鐸)은 청나라 황제 파사합의 이복동생으로, 부수에게는 사촌형이 된다. 된다. 청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은 이준에게는 사실 처삼촌이 되는 사람이다.
“반갑소이다,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구려. 황상과 황태자께서는 모두 무탈하시오?”
“예, 건강하십니다. 제게 심왕 전하를 뵙거든 꼭 안부 전하라고 하셨사옵니다.”
청나라 황실에서는 심왕부와의 교류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하기야 자기들이 심왕부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연한 일이리라. 심왕비가 청나라 공주이기도 하고.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는 회의에 심왕께서도 참관하시는지요?”
다탁의 질문을 받은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하오. 이웃의 일이니, 심왕으로서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소.”
“그러면 지금까지 논의하여 정리한 바를 들으셔야 하겠군요.”
다탁은 이번 사건, 파포태의 난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인 이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사건 당사자인 부수, 알렉세이, 박문수 모두 20대인데 그는 46세다. 더구나 이 난리에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으면서 후금 황실과 피로 얽힌 청나라 황족이자 부수의 집안 어른이다.
이런 배경으로 다탁은 자연스럽게 이 ‘강화 회의’의 의장이자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렉세이가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지 못하게 부수의 뒷배 노릇까지 겸하고 말이다. 애초에 파사합이 다탁을 후금으로 파견한 목적부터가 청이 이런 위치를 얻는 데 있었다.
자리에 앉은 다탁이 뒤를 따라온 청나라 관원의 손에서 문서를 받아들여 펼쳤다. 부수와 박문수, 알렉세이는 다탁이 정리한 중재안이 나쁘지 않은 듯, 평온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폐패륵의 난동으로 인하여 두 나라 모두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폐패륵의 난동으로 선제공격을 받았고, 이는 대금국이 보상해야 할 문제가 분명하지요. 이에 새로이 책봉된 대패륵은 섭정으로서 가진 권한으로 적절히 보상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후금은 서부에서 몇몇 분쟁지역을 양보한다. 또한 이르쿠츠크에서 카라코룸으로 들어오는 교역로를 신설하며, 카라코룸과 이르쿠츠크에 서로 주재관을 두어 교역과 외교 교섭을 맡게 한다. 그리고 추후 이르쿠츠크에 위협이 가해지지 않도록, 셀렝가강 좌안의 영토를 넘긴다.
“거저 넘기는 게 아니고 러시아 측이 금화 10만 루블을 내기로 했습니다. 돈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은 주로 부리야트족이 사는 땅이고, 거의 산과 숲이라 대금에는 별로 손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역로도 계속 유지되고요.”
“금국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면, 내가 뭐라고 할 건 없구려.”
카라코룸에서 결전을 치르고, 상도까지 오면서 이미 웬만큼은 교섭이 이루어졌기에 여기 와서 크게 조정할 부분은 없었다. 합의가 되지 않은 몇몇 부분만 다탁이 논의에 개입했다.
“대한에서는 아무 대가도 아니 받는 거요? 군사도 꽤 상했잖소.”
이 질문에는 박문수가 답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소인은 일종의 의군(義軍)으로서 개입한 것입니다. 어명도 없이 싸움을 벌였는데 어찌 이득을 얻자 하겠습니까. 그저 모두 평화로운 모습만 보면 족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러하오….”
박문수가 싸움에 뛰어든 정확한 사연을 모르는 이준으로서야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부수의 대관식을 치른 이후에 이 협약에 도장을 찍으리라 하니, 그때까지는 상도에서 편히 지내리라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