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66
3부 4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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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렝카도 몇 년을 자리에서 앓았다. 하지만 올렝카를 위해서 주변국에서 공식적으로 문병 사절을 보낸 적은 없었다. 문병은커녕 영원히 눈을 감은 뒤에도 루시아와 율리아가 보낸 걸 빼면 조문하는 편지 한 통 오지 않았다. 아무리 내 총희라도 결국은 후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희는 다르다. 상희는 대한의 중전이다. 그러니만큼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존중받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주변국에서 상희의 병세를 걱정하는 서한과 사신이 몰려올 줄은 몰랐지만.
먼저 연락이 온 건 당연히 건주 양국, 그중에서도 후금이었다. 법도 상으로 상희의 딸인 후금 황후 율리아가 양력 4월에 상도에서 보낸 편지가 주변국에서 날아온 연락 1번이었다.
부수가 아니라 율리아에게서 연락이 온 건 부수가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대칸이 카라코룸에 가 있는 시기고, 부수는 그 전통을 충실히 지켰다. 그래서 상도에는 마침 봄에 셋째를 낳은 율리아와 여전히 병석에 누워서 지내는 와극달만 남아있었다.
2년 전에 벌어진 내란에서 승리한 부수는 파포태 편에 섰던 자들에게 보복을 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라코룸과 상도 두 수도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대칸의 권위를 확고하게 다시 다지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율리아가 혼자 편지를 썼던 거다.
홀로 상도에 남아있던 율리아는 한양에 있던 후금 주재관 ? 우리 조정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재금사(在金使)라고 부른다 ? 으로부터 급보를 받고 대경실색했다. 그리고 곧바로 눈물 젖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자기가 지금 대칸의 아내만 아니었다면 당장 한양으로 달려왔을 거라며, 중전께서 부디 회복하시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구구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청나라 쪽 사절은 후금보다 한 달쯤 늦게 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쪽이 더 먼저 왔겠지만, 수도가 저 멀리 내륙에 있는 개봉부로 바뀐 탓에 오가는 시간이 더 걸렸다.
다만 율리아가 급하게 보내느라 적당한 위치에 있는 관원이 온 후금과 달리 청나라에서는 황족이 사절로 왔다. 중통제 파사합의 셋째 아들, 효친왕(?親王) 다이진(多爾眞)이다. 비록 나이는 부수보다 1살 위지만, 항렬은 한 단계 아래다.
이쪽에서는 파사합이 정성껏 쓴 위로 편지와 함께 골라 모은 귀한 약재까지 잔뜩 가지고 왔다. 나는 이름을 들어도 그게 무슨 약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내의원 태의들은 반색을 했다. 아마 좋은 ‘중국산’ 약재인 모양이다.
“저희 황제께서는 대한 황후께서 중병이시라는 말을 들으시고 즉시 천하의 영약을 모조리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귀국의 호의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지금 상희 상태로는 무슨 영약을 들고 와도 소용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천 년이 아니라 만 년을 묵은 산삼을 달여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약재 선물은 그저 저쪽이 내민 성의를 받아들이는 정도로만 인식해야지.
그래도 이 두 나라에서 사절이 오는 정도까지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율리아는 법적으로 상희의 딸이고, 심왕비인 청나라 공주는 상희의 둘째 며느리니까 말이다. 참, 준이를 비롯한 심왕부 일가족은 심양에 안 가고 한양에 머무르고 있다. 당연히 상희의 병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과 후송에서까지 위문 사절이 오다니, 이건 생각도 안 한 일이다. 25년 전에 형황이 아플 때도 이놈들 위문 사절 같은 거 하나도 안 보냈잖아.
“폐하, 그때는 후송과 화의를 맺기 전인지라 저들도 사절을 보내기 곤란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상을 치를 때는 조문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저들도 사대부로서 차릴 예법은 아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화의를 맺는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병하는 사절이 왔으면 그냥 받아들여서 아량을 보이시면 됩니다. 지금 도성에 들어온 일사(日使)가 동평관에서 초조히 기다리고 있사오니, 불러들여 맞으시고 사의를 표한 뒤에 돌려보내소서.”
예무대신 조진경이 하는 말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조진경과 바로 며칠 전에 드잡이질한 ? 정말로 멱살을 움켜쥐었다는 건 아니다 ? 앙금이 좀 남아있는지, 그가 하는 말이 썩 곱게 들리지를 않았다.
“그대는 일사에게는 참으로 너그럽군.”
내가 예무대신에게 배알이 꼴린 이유는 간단하다. 보름쯤 전에 내 손에 도착한 표트르의 편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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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는 저보다 먼저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이번 사건에서 차레비치는 무척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주변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차레비치 본인의 판단도 괜찮은 결과를 냈지요. 장차 러시아의 황제가 될 자격을 충분히 입증한 셈입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길이 좋아졌는지, 요즘 표트르의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데는 1년 남짓 걸린다. 물론, 이건 차르의 명령을 받고 나르는 특송우편 이야기다. 대상들이 운반하는 일반우편은 여전히 1년 반 이상 걸린다.
알렉세이는 상도에서 부수와 협약을 체결한 후에 ? 우리는 이 협약을 임인약조(壬寅約條)라고 부른다 ? 그 결과를 정리해서 본국에 있는 부황에게 보냈다. 그 보고를 받은 표트르가 아들에게 답을 보내면서 내게도 따로 한 통 보낸 거다.
『프루트강에서도 차레비치는 훌륭한 공적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차레비치는 후군 지휘관으로서 전적인 지휘권을 갖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지난번 이르쿠츠크 공격과 타타르 내전에 임해서는 총사령관으로서 단독 지휘권을 행사하며 아주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표트르는 알렉세이의 전술적인 판단과 그로 인한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파포태를 격퇴한 데 그치지 않고 후금 내부까지 추격해 들어가 부수를 지원함으로써 결정적인 승리에 공헌하고, 교역로 확보를 비롯한 이익을 얻어낸 것도 좋게 보았다.
부수에게 다행스러웠던 건 임인약조에 관한 알렉세이의 보고를 받은 표트르가 그 내용에 만족하고 별다른 요구를 더 내놓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병력 2천을 손실한 데 대해 화가 좀 나긴 했지만, 알렉세이가 동서를 돕는 데 든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다고 말이다.
표트르가 이렇게 관대할 수 있는 건, 사실 표트르가 극동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표트르는 발트해 진출을 자기 일생에 걸친 첫 번째 전략 목표로 삼고 있었고, 그걸 달성한 뒤에는 발칸 정복을 두 번째 전략 목표로 삼았다. 지금도 준비하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극동에서는 별로 말썽만 없으면 된다는 태도였다. 그러니 후금의 새 대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후금과 기존 것보다 더 확실한 교역로를 열었으며, 장차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 양해까지 얻은 협상이 불만스러울 리 있겠는가.
여기까지는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 우리 조정이 발칵 뒤집힌 건 그다음 대목이었다.
『이번에 차레비치가 공적을 세우는 데는 임금 폐하의 막내 사위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스토크(Восто?к) 백작으로 봉하고 연금을 지급해서 보상하려고 하니, 부디 이 기쁜 소식을 백작에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문수를 위해 표트르에게 작위와 포상을 요청하겠다고 알렉세이가 말하더라는 이야기는 분명히 들었다. 하지만 표트르가 과연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기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별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로 일어나버렸다.
“영지는 못 주지만, 대신 연금으로 매년 1만 루블을 주겠다고?”
1루블 은화는 우리 1냥 은화보다 25%쯤 가볍다. 게다가 은 공급이 부족한 탓에 순도도 낮아서 1만 루블은 우리 은화로는 5천 4백 냥 정도다. 아주 많은 돈은 아니나 일반인으로 넉넉하게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안정적인 수입이다.
표트르로서는 유럽에서 흔히 하는 일을 했을 뿐이리라. 하지만 느닷없이 날아든 이 편지 때문에 우리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다.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예무대신 조진경이 있었다.
“폐하! 고령위가 아무리 귀한 신분이라고 해도 이는 그냥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어찌 장수가 외국 군주의 신하가 되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작위를 받는다는 말입니까?”
“예무대신, 그대는 너무 말이 심하다. 고령위가 루스 차르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벼슬을 달라 청하기라도 했는가? 저쪽에서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멋대로 준 것인데, 왜 고령위에게 그 책임을 묻고자 하는가?”
“외방의 군주에게 벼슬과 작위, 재물을 받은 이가 과연 그 외방의 신하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당연히 엄하게 금해야 하는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닥쳐라!”
조진경은 이 문제를 두고 맹렬하게 박문수를 공박했다. 참고 듣던 내가 결국 짜증을 내자 육군대신 장희재가 버럭거리며 내 편을 들었다.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장조께서 다스리시던 시절, 사천에서 난을 일으킨 양적 토벌에 나선 장졸 중에도 당시 대명천자께서 내리시는 벼슬을 받은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령위가 루스 차르에게 봉작과 약간의 재물을 받는 게 무슨 큰 문제입니까?”
양적(楊賊)이란 만력제 때 파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양응룡을 말한다. 당시 나는 이항복을 토적사(討賊使)로 삼아서 대군을 주어 파견했고, 이 원정군은 막대한 전과와 함께 기존의 숭명(崇明) 의식을 타파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대명의 수군 도독으로 제수받으신 충무대왕의 전례도 있습니다. 충무대왕께서 대명 황제께서 내리신 수군 도독의 벼슬을 받으셨다고 해서 임금께 바치던 충성을 버리고 대명의 신하가 되기라도 하셨습니까?”
해군대신 김명진도 박문수를 옹호하는 편에 섰다. 하지만 조정 중신 중에서는 조진경을 편드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아서, 바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그때 대명은 우리 상국이었습니다. 어찌 상국의 황제께서 공적에 대한 포상으로 내리신 벼슬을 우리가 한때 오랑캐라고 부르던 루스의 그것과 비교하겠습니까? 루스가 우리 상국은 아니지 않습니까? 거부하심이 옳습니다.”
박문수가 꼭 내 사위라서 편을 들려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꽉 막히게 굴면 나중에는 우리 관리나 군인들이 외국 정부에서 훈장 하나만 받아도 반역이니 처벌하라는 소리가 나올 거다. 그러니 작위와 연금 정도는 받게 해주겠다는 선례가 필요하다.
우리 신하가 혹시 타국에 매수될 위험? 누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매수를 하나. 매수하려면 비공식적인 뇌물 쪽이 훨씬 효과적이다. 외국 정부에서 무엇을 받았느냐보다는 받고 무엇을 했느냐 쪽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의금부와 금위사, 군기대가 밝혀야 할 부분이다.
며칠을 두고 이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인 끝에 표트르가 내린 작위는 인정하되, 러시아에 갔을 때만 그 작위를 쓸 수 있고 본국에서는 내세울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연금에서는 세금으로 20%를 떼고 말이다. 이는 농토에 매기는 전세와 같은 비율이다.
게다가 포상이란 어느 한쪽에서만 주는 게 아니다. 우리 대한을 위해 공을 세운 타국인도 우리 조정에서 내리는 포상을 받을 수 있고, 공후백의 작위도 포상의 한 형태다. 조진경도 ‘우리를 위해 공을 세운 외국인에게 봉작하는 것도 안 된다’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거의 내 뜻을 반영하는 쪽으로 결론을 짓기는 했지만, 그때 조진경과 하도 치열하게 싸운 앙금이 남아있어서 지금도 그놈을 보는 내 눈이 곱지 못하다. 예무대신으로 뽑은 인간들은 왜 수시로 저런 것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부러 골라 뽑은 것도 아니건만.
“그럼 일사는 내일 대궐로 들도록 하라. 만나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과연 일본에서 온 사절은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나. 설마 문병하러 왔다는 건 핑계고, 그냥 경희궁 구경하러 온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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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실에 들어온 일본 사절단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상희를 문병하러 온 사절단 정사, 즉 대표는 쇼군 이에토시의 6촌 형제인 기슈 도쿠가와가의 요시치카였다.
“황후께서 중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걱정이 많으십니까? 저희 대군께서도 겨우 5년 전에 가친을 병으로 잃으신지라, 폐하의 고충이 실로 이해가 간다고 하시며 크게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인사를 마친 요시치카는 예를 갖춰서 준비해온 쇼군의 친서를 내밀었다. 쇼군 이에토시는 올해 만으로 딱 30세, 이제 집권 5년 차로 들어가는 젊은이지만 통치 능력은 무척 괜찮은 편이라고 들었다.
“대군께서 말씀하시길, 마땅히 천하의 명의를 보내 도와드려야 하나, 우리 천하의 의원을 모두 모아도 대한의 의원보다 그 솜씨가 못하니 보내봐야 의미가 없다며,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고 하셨습니다.”
일본의 의학 수준도 상당하다. 원래 역사에서도 일본 의학은 전통적인 한의학으로 그치지 않고 해부학과 같은 서양 의학을 꽤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대외교류를 진행하는 데다, 우리의 영향도 있어서 의학 수준이 더 높다.
다만 우리 의학계가 중앙 조정의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국가적으로 지원해서 의학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의사들의 개인적인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발전 속도가 우리보다는 약간 뒤처지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쪽으로 의학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도 많다. 쇼군이나 다이묘들이 옆에 데리고 있는 주치의 중에도 왕왕 대한 유학생 출신들이 있다고 들었다.
“말만으로도 고맙다고 돌아가서 전하도록 하라. 굳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아도 되건만….”
굳이 올 필요 없었다는 내 말을 들은 요시치카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들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꼭 와야 했다면서 말이다.
“황후께서는 한후수의 처방을 보내주셔서 우리 일본에서 수많은 인명을 구하게 도와주신 분입니다. 그런 고마우신 분께서 중병을 앓고 계신다는데 어찌 와서 문안을 여쭙고 건강을 빌지 않겠습니까. 본국에서도 황후께서 쾌유하시기를 비는 제를 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후수(韓后水)는 상희가 만든 콜레라 치료용 경구수액을 말한다. 우리는 황후수(皇后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한후수라고 한다. 후송에서만 선후수(鮮后水)라고 부르고.
요시치카에 따르면, 쇼군인 이에토시가 에도에 있는 주요 사찰과 신사에다 ‘대한 황후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리라’라는 명을 내렸다는 거였다. 믿기 힘든 황당한 소리였지만….
“사실입니다. 어찌 소인이 대국의 임금 앞에서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일본에서 건너온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내가 그래도 의문을 표하자 요시치카가 다시 한번 도장을 찍었다.
“말씀드렸지만 황후께서 처방을 알려주신 한후수 덕분에 살아난 인명이 수천을 넘습니다. 당연히 우리 일본에서도 황후님의 쾌유를 빌어야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성당이나 절에서 상희의 쾌유를 비는 미사와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꽤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다들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는 거지, 내가 명령해서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쇼군의 명으로 상희를 위한 기도를 올리게 하다니…당황스럽구나.
아마 후송에서 문병하러 온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수 있겠다. 거기도 황후수 덕분에 숱한 인명이 목숨을 건졌으니까.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일본 쪽과는 자릿수가 다르다.
그런데…잠깐, 일본에서 이 정도로 상희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다면, 혹시 상희 죽은 다음 일본인들이 신사에다가 신이라고 상희를 모시는 거 아닐까? 이거 참 당황스럽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