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69
3부 4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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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에 사신을 파견할 때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파견하는 사유가 무엇인가에 따라 사신이 지참할 문서를 작성하고 적절한 예물을 마련한다. 선발하는 사신의 인선 역시 방문 목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런고로 사정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미 도착한 사절이 본래 부여받은 임무가 아니라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사자가 갑자기 임무를 바꾸어 태후의 죽음을 조문하는 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정이 바뀌면 새 사신이 오는 게 법도다.
“한황께서 무척 슬퍼하고 계시더군요. 역시 30년을 함께 하신, 하늘이 내린 배필이라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청읜 효친왕 다이진이 찻잔을 든 채 고개를 내저었다. 병문안하러 온 사절이 조문 사절로 바뀔 수는 없지만, 기왕 건너왔으면서 조문을 안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니 다이진을 비롯한 각국 사신들은 이미 조문을 마쳤다. 물론 정식 조문 사절은 본국에서 다시 온다.
“귀측에서도 상도에 연락을 보내셨겠지요?”
“그렇소이다. 지금쯤은 대칸께서 상도에 복귀하셨을 테니, 곧 조치가 있으리다.”
후금에서 조금 늦게 문병차 보낸 사절, 예친왕 순영(睿親王 淳潁)이 느긋한 태도로 앉아 다이진의 질문을 받았다. 청과 후금 사신은 같은 서평관을 숙소로 쓰는 만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사안을 논의할 기회도 많다.
순영은 옛날 홍타이지가 다이샨과 떨어져 북방에서 새로이 대업을 일굴 때 그쪽을 택한 예친왕 도르곤의 증손이다. 도르곤은 화북을 평정하고 북방을 정벌하는 양 전선에서 용명을 떨쳤는데, 아들을 얻지 못해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순영은 그 후손이다.
항렬로 따진다면 순영은 다이진의 조부 나락혼과 같은 항렬이다. 그래서 편하게 하대하는 어조를 쓰고 있다. 하지만 다이진은 극존칭을 써 가며 언행에 조심했다. 아무리 국세(國勢)에서 청이 후금보다 우위에 있다지만, 일가인 이상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북조 황실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3천 리는 충분히 되는 그 먼 길을 대칸께서 단독으로 움직이시는 것도 아니고 황실 전체가 매년 왕복하다니 말입니다. 우리 대청에서는 도저히 못 할 겁니다.”
후금 대칸은 양력으로 5월부터 8월까지는 여름 수도인 카라코룸에서, 11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는 겨울 수도이자 주도(主都)인 상도에서 지낸다. 두 수도를 왕복하는 데 2개월씩을 쓴다. 다이진이 벅찬 일정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하려고만 하면 더 빨리 움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이동은 그저 카라코룸에 가서 앉는 게 목적이 아니다. 대칸의 위세를 후금 전역에 드러내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굳이 서둘러 이동하지 않는다.
“영토를 돌며 지배권을 다지는 건 우리 선조들께서 늘 하시던 일이잖소. 새삼스럽게 힘이 들고 말고 운운할 것도 없소. 남조에서도 근래까지 늘 하던 일 아니오?”
물론 청나라도 개봉으로 확실히 천도하기 전에는 북경, 제남, 대명부를 오가기는 했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내전은 북경에 두고 황제와 조정만 비정기적으로 옮겨 다녔다. 그 수고를 후금과 비교할 수는 없다.
대화는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갔다. 순영이 무심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후(韓后)께서 곧 명을 달리하시리라는 전망은 모두가 하고 있던 터…바로 상도로 가는 파발을 띄웠으니 곧 대칸께서 정식 조문 사절을 보내실 거요. 귀측도 마찬가지일 테지.”
“물론입니다. 누가 사자로 올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황실에서 국상을 치르는 건 주변국에서 사신들이 총집결하는 일대 행사이기도 하다. 요즘 세상은 백 년 전 태조 누르하치 때와 달리 평시에도 사신이 각국을 오가면서 연락을 전하는 시대가 되긴 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취하는 태도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한의 태황태후께서 붕어하셨을 때도 남적 놈들이 한황을 알현하며 예를 차려 수작을 부리지 않았소? 아무래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쉬울 듯한데….”
대한의 태황태후 이씨가 붕어한 것도 벌써 13년 전이다. 그때 후송에서 온 조문 사절단은 임금을 만난 자리에서 건주 양국을 비난하며 이간질을 시도했다.
‘일찍이 대명을 배반한 전력이 있는 북적이 어찌 대한이라고 배반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허술한 마음으로 저들을 대하지 마시고, 늘 경계를 철저히 하소서.’
한실에서 새 나온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가 찼던지. 물론 한황은 그 간단한 사탕발림에 넘어가 건주를 적대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 뒤에 심양회맹이 맺어졌고, 상도와 북경과 한양 사이의 친분은 늘 그랬듯이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모를 일입니다. 한의 태황태후는 이미 노인이셨고, 노인이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은 당연하니 모후가 돌아가셨음에도 한황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지요. 하지만 황후는 다르지 않습니까.”
50세라면 그렇게 이른 죽음도 아니다. 하지만 한황보다 연하인 건 맞으니, 한황으로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한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틈을 후송인들이 파고든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요즘 놈들은 서나라 공격에 실패해서 심기가 불편할 거요. 그 대신에 외교적인 성과라도 얻고자 한황께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 좋겠소.”
“물론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한이 입장을 바꿔 후송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면, 건주 양국에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주의를 게을리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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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은 매우 친숙한 사이다. 백여 년 전에 텐쇼?분로쿠노에키(天正?文?の役)라는 대규모 전쟁을 한 차례 치르기는 했지만 ? 노부나가의 조선 원정과 그에 이은 조선의 반격 사이에 5년의 간격이 있기는 하나, 이를 별개의 전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그 뒤로 두 나라 사이는 우호적이기 그지없다.
“한에는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해진다는 속담이 있다고 했지. 마찬가지일세. 그 전쟁은 퍽 큰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 두 나라 사이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든든한 관계가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네.”
한과의 교류는 일본에 더 풍족한 부와 안정을 가져왔다. 그 교류를 이루기 위해서 지난번 전쟁이 필요했다는 게 요시치카의 견해였다.
“하지만 요시치카 님, 전쟁이 없이도 교류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주변에 있는 간신들이 부추긴 탓이었다고 해도, 노부나가 공이 대륙 정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평화적인 교류를 한다는 말인가.”
현재 막부는 이에야스와 더불어 노부나가도 조상으로 두고 있다. 그런 탓에 과거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그 전쟁을 순전히 노부나가 탓으로 할 수가 없었다. 책임을 돌려야 했다.
막부에서는 노부나가가 주변에 있던 간신들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대륙 원정을 결심했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 ‘간신’들의 필두에 있는 존재는 당연히 책임이 가장 큰 자, 히데요시다.
히데요시를 비롯한 간신들은 자기들의 영지를 넓히기 위해 노부나가를 부추겨서 대륙으로 출병하게 했다. 자기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벌인 전쟁 탓에 일본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원정에 나서서 잃은 병력과 물자에다 일본 본토가 절반이나 쑥대밭이 되었다.
“비극이긴 했으나, 그 전쟁으로 인해 이에야스 공께서 쇼군의 직위에 오르시고 천하를 그 발밑에 놓으시게 되었지. 그랬으니 긍정적인 효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
일본인들의 시각으로는 이에야스의 반대파였던 서국 일대 영주들이 조선군에게 박살이 난 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에야스가 지배하게 된 뒤로 그전보다 상황이 나아졌으면 그걸로 된 거다.
“하지만 류큐와 에조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제한하는 건 아쉽습니다.”
하타모토 출신인 한양 주재 대관 미나미(南)는 한과의 관계로 인해 일본의 세력 확장에 제약이 걸린 상황에 유감이 많았다.
“북규슈 3주가 한황의 통치를 받는 거야 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 져서 빼앗긴 땅이니까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그 두 나라는 말 그대로 우리 일본의 앞마당이건만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힘을 기른 자가 약한 자를 공격해서 땅을 뺏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노부나가가 벌인 텐쇼?분로쿠노에키 역시 그 점에서는 완벽하게 정당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상대의 실력’을 잘못 파악한 데 있었을 뿐이다.
지금 막부에서는 일본인들이 해외로 나가 터전을 개척하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해외로 나간 자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구를 일본령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가능했으리라. 유구가 디딤돌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한이 류큐를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는 길이 막혀서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류큐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한황에게 간이라도 내줄 듯이 굴고 있지요.”
미나미는 벌써 10년째 한양에 주재관으로 머물고 있다. 그만큼 대한이 해외에 얻은 숱한 영토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지도 잘 안다. 그래서 일본이 대한과 같은 이득을 얻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을 품고 있다.
“류큐에서는 한후를 문병하는 사자도 보내지 않았잖은가?”
“그건 저들이 보낼 필요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류큐관에 주재하는 책임 관리인 북국봉행(北國奉行)은 우리 품계로 치면 종2위 내대신에 해당하는 고위직입니다. 그런 자가 수시로 대궐을 드나드는데 본국에서 굳이 특사를 보낼 필요가 없지요. 조문 사절은 따로 오겠지만.”
한양 주재 대관은 막부의 일본 내 주요 직할령을 맡아 다스리는 온고쿠부교(遠?奉行)와 같은 등급이다. 절대 낮은 지위가 아니건만, 내대신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무리 소국이라고 해도 유구가 대한과의 외교에 목숨을 걸고 있는 건 여기서도 드러났다.
“흠…자네가 불만을 품는 건 알겠지만, 현실은 인정해야 하네. 류큐도 사실상 백 년 전에 한인들이 덤으로 거둔 전리품이라고 봐야지. 나하에서는 류큐국왕이 스스로 황제입네 하고 있지만, 수도 안에 한군 수천이 주둔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황제국인가. 한의 속국이지.”
일본과 한 사이에서 체결한 두 차례 조약에서 규정한 유구의 실질적인 위치는 분명 한의 속국이다. 요시치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딱히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된 걸세.”
유구는 건드릴 수 없지만 아모국은 미토 번주 쓰나에다의 주도하에 체계적인 이민 계획이 실행되고 있다. 아모국 영주들과의 교섭으로 매년 수백 명은 되는 이주민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저들은 그게 자기들의 세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그렇게 해서 에조치는 차츰차츰 일본으로 만들어 나가고…한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면 그만이지.”
현재, 일본은 대한의 광대한 영역 대부분을 자유롭게 오가며 교역할 수 있다. 미나미처럼 직접 지배하는 영토를 넓힐 수 없어서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한의 강역을 안전하게 왕래할 수 있다는 데서 만족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내가 입궐해서 조문했을 때 분위기를 보니 한황이 진정으로 슬퍼하는 기색이 완연했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정중하게 대해서 한인들이 고마움을 느끼게 해야 하네. 5년 전에 요시무네 공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쪽이 했던 것처럼.”
요시무네가 죽었을 때, 한황은 고인을 조문하면서 신임 쇼군의 즉위까지 축하하는 사절을 보냈다. 정성껏 쓴 친서까지 보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이는 후계자인 이에토시의 권위를 세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안심하고 방비를 풀어서는 안 되겠지. 그대는 늘 하던 대로 쇼군께 정보를 보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게. 그것이 천하의 평안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
“예, 요시치카 님.”
나보다 약해진 상대를 쳐서 멸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역으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일본이 대한과의 우호에 기대어 방심하고 약해진다면 대한도 얼마든지 일본을 향해 칼끝을 돌릴 수 있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언제나 스스로 방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리라.
– 19 –
후송은 아직 한양에 관원을 상주시키지 않고 있다. 필요할 때만 특사를 파견하는 형태로 외교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그래도 파견된 사절단이 머물 수 있는 숙사는 마련해놓았다. 매번 사신이 올 때마다 타국 소유 객사에 신세를 질 수도 없으니, 남촌에 있는 큼직한 집을 하나 사들여 객사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중평관(中平館)이라고 명명했다.
“북적 놈들이 기분 나빠 했지만 제놈들이 어쩌겠습니까.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이미 다른 놈들이 전부 쓰고 있으니 남는 것을 우리가 쓰겠다는데요.”
대한 외무부도 이 핑계를 인정하고 후송이 객사에 중평관이라는 이름을 쓰도록 허용했다. 이는 다른 나라 객사들이 모두 ‘○평관’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한의 관례에 따른 일이면서, 실상은 후송이 진짜 중원을 이은 나라임을 드러낸 쾌거이기도 했다.
지금 이 중평관 안에서는 이번 국상을 기화로 삼아 대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킬지에 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임금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정사 나리.”
“마치 짝을 잃은 기러기와 같으니 그 슬픔이 하늘을 감동하게 하고도 남을 만하였소.”
대명세는 여전히 침착하고 고요한 태도였다. 이곳 한양 땅에 50일 가까이 머물렀지만, 그 차분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사절단에 속한 다른 관원들이 도성 일원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에 관해 놀라워해도 그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 이미 들어서 알던 것들이잖소. 경악할 이유가 없소.”
연기를 뿜으며 오가는 기선과 기차도, 저녁마다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도, 벽돌로 포장된 도로도, 거리에 늘어선 빛나는 유리창도, 그 모든 것들이 이미 글과 소문을 통해 이미 접한 것들이었다. 놀랄 필요가 없었다.
“폐하께서는 신기한 구경이나 하고 오라고 우리를 여기 보내신 게 아니오. 그대들은 이번 국상으로 슬픔에 잠긴 한의 임금을 잘 위로하여 우리 쪽에 호감을 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게 폐하께서 내리신 어명이오.”
후송에서도 정식으로 보낸 조문 사절이 다시 올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미 문병하러 온 대명세를 비롯한 사절들이 예의를 갖추어서 손해가 될 일은 없다. 이들은 애초에 자기들이 체류하던 중에 대한의 황후가 죽을 것을 예상하고 왔으니까 말이다.
“폐하께서는 임금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하시오. 기선도, 기차도, 그리고 가능하면 진실한 우호도. 이를 얻자면 방법은 단 하나요. 오직 성의, 성의밖에 없소.”
대한의 온갖 문물과 우호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벌써 샀을 것이다. 비록 화북을 잃었고 바다가 막혔다지만 후송에는 돈이라면 아직 잔뜩 있었다. 살 수만 있었다면 그 돈으로 기선 따위는 백 척은 사고도 남았으리라. 대한에서 죽어도 팔지 않을 뿐이다.
“나는 한의 임금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소. 그대들도 객사 안팎에서 어떤 작은 소란도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하시오. 알겠소?”
“예, 나리.”
황제는 과거 대한과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누이동생을 대한에 보낼 생각까지 했었다. 그 고충과 대명세에게 보낸 신뢰를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꼭 좋은 결과를 얻어야 했다. 적어도 청과 싸우는 후송의 배후를 치지 않을 정도의 관계는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