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71
3부 4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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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무대신 조진경은 박문수가 러시아 귀족 작위를 받는 문제로 나와 드잡이질 ?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고 언어적으로 ? 까지 벌인 과거가 있는 강경한 원칙론자였다. 그런 사람인지라 이 문제에서도 남들 앞에서 의견을 낼 배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박문수 때처럼 언성을 높여 가며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하고 직접 연관된 문제다 보니 나름대로 자제하는 모양이다.
“천하의 기본 질서는 음양의 조화입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천지가 바로 서고 이 세상의 질서가 도를 이루는 것입니다.”
유교 윤리의 기본 원칙인 삼강(三綱), 즉 군신간?부자간?부부간의 사이는 모두 음과 양의 조화에 기반을 둔다. 군주, 아버지, 남편이 양이고 신하, 자식, 아내가 음이다. 양자 간의 이 조화가 깨졌을 때 혼란이 초래될 것은 분명하다.
이것 외에도 다른 근거가 한참이나 나열되었다. 내가 시 한 수쯤은 지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동안 조진경은 내가 계후(繼后)를 들여야 하는 이유에 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조진경이 진언하는 동안, 나는 시선을 돌려 죽 늘어앉은 신하들의 면면을 죽 훑어보았다. 그러자 놀란 기색인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건 신하들 사이에 이 문제를 놓고 이미 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만 놀라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 같은 표정인 건 아니다. 결의를 다진 굳은 표정을 지은 자들은 자기도 동의한다는 뜻이리라. 불안해하는 얼굴을 한 이는 지금 시점에서 내게 국혼 이야기를 꺼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일 거고.
국상 김성권을 보니 아주 못마땅해하는 표정이다. 그럴 법도 하다. 김성권도 우리 부부가 미주에서 처음 만날 때부터 옆에서 봤으니까 말이다. 내게 상희 이상 가는 사람은 없음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마땅찮아 하는 사람은 그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내무대신 자리에 있는 내 막내처남 민지원이 가장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신들 사이에 이런 논의가 있다고 내게 알리지 않은 걸 보면, 민지원이 소식을 들은 건 이 회의 직전이었던 모양이다.
“폐하께서 인현황후를 잃으시고 여태 크게 애달파하신 것은 신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나라의 어버이시니, 어찌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만사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천하의 질서가 조화롭게 움직이려면 중궁전이 필요하니, 부디 새 황후를 맞으소서.”
“신들도 예무대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새로 중전을 들이시어 비어 있는 중궁을 채우소서.”
마침내 조진경의 긴 설명이 끝났다. 조진경과 생각을 같이하는 대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엎드리며 내게 새 황후를 들이라고 간청했다. 대략 편전에 들어온 중신 중 ⅓은 이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듯했다. 나머지는 대부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짐에게 새 중전을 들이라고…?”
이 작자들이 왜 뜬금없이 내 앞에서 재혼 타령을 꺼내는 걸까.
물론 임금이, 군주가 결혼을 꼭 해야 하긴 한다. 음양이 어쩌고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는 제쳐 두고, 통치자가 꼭 결혼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후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명군이라고 해도 후계자가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하는 거다.
그런데 이 문제는 내게 전혀 해당이 없다. 건강한 후계자가 즐비한데 무슨 이유로 후사를 걱정한단 말인가. 심왕이 된 준이를 빼도, 서자와 서손을 포함해서 남은 아들만 다섯에다가 손자가 일곱이다. 계후를 들여 자식을 낳아야 할 이유 따위는 1전만큼도 없다.
내가 쓸쓸한 독신 생활을 보낼까 봐?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나란히 올해 마흔두 살이 된 세 후궁이 있지 않은가.
당연한 소리지만 상희의 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셋 중 누구 침소에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여름부터는 가끔 찾고 있다. 그것도 내가 해야 할 도리 중 하나니까.
나는 상희 한 사람만의 남편이 아니다. 내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세 후궁과도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들에게도 지아비로서 할 도리를 지켜야 한다. 동침도 분명히 지아비가 해야 할 의무 중 하나다.
상희나 올렝카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이들도 나와 20년 이상 살을 맞대고 살면서 정이 든 상대다. 여자의 품에 안겨 위안을 받고 싶다면 이들을 찾으면 되는데 왜 내가 낯선 여자를 새로 데려와서 거기 적응해야 한단 말인가. 음양의 도리 운운하는 이상론 때문에?
“그대가 하는 말은 잘 들었다.”
조진경이 감사를 표하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태도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그 근원이야 내가 자신의 청을 수락할지 안 할지 걱정하는 데서 나왔으리라. 그리고 나는 이미 답을 정해놓았다.
“허나, 짐은 지금 국혼을 할 의사가 없다. 자손이 없는 것도 아니니 계후를 얻을 필요가 없다. 선례도 있지 않으냐.”
과거 전례를 보면, 재위 중에 중전을 잃은 임금들은 많았다. 먼저 태조부터. 태조는 중전 강씨가 죽었을 때 63세였고, 그 뒤로 2년 더 재위했지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다. 태종도 53세에 원경왕후 민씨를 잃었지만, 그 뒤로 2년 동안 살면서 재혼하지 않았다.
세종대왕도 48세에 소헌왕후를 먼저 보내고 4년을 더 살았다. 문종은 젊어서 현덕왕후를 보내고 11년간 중전 없이 지내다 죽었다. 당연히 이들 네 사람 모두 후궁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후계자를 확실히 두어 자식을 더 낳을 필요도 없었다.
“하오나 중전을 새로 들이신 임금도 세 분이나 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분들은 모두 그래야 하는 사정이 있으셨다. 그중에 짐에게 해당이 되는 게 무엇이냐?”
이쪽 세계 대한(조선)에서 재혼한 임금은 셋이다. 맨 먼저 성종이 중전을 셋이나 두었고, 황이의 아들 환이가 첫 중전이 일찍 죽어 중전을 새로 얻었다. 그러고도 자손을 얻지 못해서 경성군을 양자로 들였다. 연이도 칭제 직후에 황후가 죽어서 계후를 들였다.
“앞의 두 분은 후사가 없으셨고, 선조께서는 보령이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이셔서 차마 중궁을 비워둘 수 없으셨다. 하지만 짐은 후사도 있고 나이도 이미 환갑을 넘었다. 그런데 중궁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의진군주만큼 어린 비를 들이다니, 그 무슨 추태란 말이냐.”
의진군주는 은이가 낳은 내 둘째 손녀다. 경인년(1710)생으로 올해 16세, 작년 늦가을에 안동 김씨 집안과 혼인했다. 내가 올해 만으로 61세니 45세 차이다. 원래 역사에서 영조와 정순왕후가 이 정도 나이 차가 났던가?
태황이 과부나 노처녀하고 혼인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니 만약 내가 지금 새 황후를 들인다면 내 손녀딸만큼 어린 처녀를 비로 맞아야 한다는 소리다. 가족 간의 관계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다.
자기 딸보다 어린 애를 보고 어마마마라고 불러야 할 은이나 준이 심정을 생각해도 지금 새로 황후를 들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나이 말고도 명분은 또 있다.
“그대는 중전이 있어야 천하에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질 뿐 아니라, 내명부 내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황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황실에는 태후께서 건재하시다. 그런데 누가 감히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말이냐? 이는 불경한 언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형수인 순현황태후는 만으로 올해 69세다. 이 시대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봐야겠지만, 신체는 정말 튼튼하다. 태의들의 말에 따르자면 40대에 갓 접어든 내 후궁들보다 건강하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젊고 건강한 태자비가 있지 않은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했듯이 태자비가 내명부 수장을 대리하고, 황태후가 그 뒷배를 봐주면 그만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상희 생전에 태자비에게 미리 연습도 시킨 게 아닌가.
솔직히 내가 살날부터가 얼마 안 남았다. 장조 이후에 재위하던 임금들 수명을 보면 50대 중반을 넘긴 사람이 없다. 나도 얼마 안 남았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계후를 들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개가도 못 하는 소녀 과부 하나 만들어서 뭐 하라고.
“하오나 폐하, 그래도 중궁을 비워둘 수는….”
“상관없다, 학무. 중궁전에는 몇 년 안 가서 새 주인이 들어설 테니,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이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 계후가 필요하지 않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내 주장은 내가 얼마 안 가서 죽을 거라는 예측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품은 의도가 어떻건 임금에게 곧 죽을 거라고 말하는 신하가 어디 있겠는가. 입을 찢어도 못 하지.
덕분에 나는 조정 대신 중 ⅓을 상대로 혼자 맞서야 했다. 하지만 이건 원체 답이 확실한 문제인지라 혼자서도 별 상관없었다.
“폐하, 그러시다면 황후를 새로 간택하는 대신에 후궁 중 한 분을 중전으로 올리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 완강한 태도를 본 조진경이 나름대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선례도 제시했다.
“성종께서는 중궁이 비었을 때마다 매번 후궁을 중전으로 승격시켜 중궁을 채우셨습니다. 제헌왕후, 정현왕후 두 분 모두 후궁에서 중궁으로 들어가서 훌륭한 국모가 되셨으니, 어찌 좋은 방안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제헌왕후는 연산군을 낳은 그 폐비 윤씨다. 정현왕후는 진성대군의 친모다. 이쪽 세상의 폐비 윤씨는 ‘무종’ 덕분에 복권되었으므로, 성종에게 벌였던 그 온갖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국모로 존중을 받고 있다.
“세 빈 중에서 정빈은 옹주만 생산하셨을 뿐, 아들을 낳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소신의 생각으로는 정빈을 중전으로 올리신다면 복잡한 문제 없이 중궁에 새 주인을 들여보내실 수 있으시리라고 사료되옵니다.”
“정빈을 중전으로 하자고?”
이미 아들이 있는 후궁을 중전으로 올리면 그 아들을 적자로 규정해야 할지 계속 서자로 규정해야 할지를 놓고 복잡한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예무대신인 조진경은 그 험한 길을 우회할 방법으로 아들이 없는 정빈 김씨를 올리자는 안을 내놓은 거다.
정빈 김씨, 소녀팬의 심정으로 성친왕을 동경하다 꿈을 이룬 사람이다. 성품이 원래 그런 탓인지, 자기가 상희와 올렝카에 이은 3순위라는 잘 알면서도 전혀 불만을 품지 않고 아주 화목하게 잘 지내주었다. 자기 애장품인 로망스 소설들을 연주한테도 빌려주면서 말이다.
다만 정빈이 착한 여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나는 그 방안을 택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 입이 열리기도 전에 민지원이 쌍수를 들고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성종께서 일을 결행하셨을 때는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후궁을 중전으로 승격하는 법도가 뿌리를 내린다면 분명히 크나큰 후환이 나타날 것입니다. 중전의 자리를 노리고 사술(邪術)과 흉계가 난무하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겠습니까?”
판내직부사를 맡아 조정에서 외척 세력을 대표하는 존재였던 큰처남 민지훈은 국상을 다 마치자 사직했다. 나이도 칠순, 이제 늙어서 더 일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자 더 붙들어두지 못하고 사직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역할은 막내 민지원이 이었다.
민지원도 올해 66세라 젊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형보다는 어쨌든 젊다. 이제는 옛날의 그 세상 물정 모르던 학사도 아니고, 세상 물정도 살피고 연륜도 쌓았다. 그래서 조정에서 내 측근 노릇을 든든히 하며 잘 버티고 있다.
“옛날 문종께서 세자로 계실 때, 세자빈이던 휘빈 김씨가 총애를 얻고 싶어서 요사스러운 술법을 쓰다 발각되어 폐출된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총애를 얻으려는 술법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이를 해코지하려는 사술이 난무하리라는 상상만 해도 오금이 떨리옵니다.”
“음, 내무대신의 말이 옳다. 짐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구나.”
장희빈이 인현왕후 상대로 했다는 게 그런 짓이었지. 그 덕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중전 자리를 꿰차는 데도 성공했었고.
사실 저주 정도면 양반이라고 생각한다. 대놓고 자객을 보내서 암살하거나 독살하는 일도 없으란 법이 없다. 원래 조선에서도 독살로 의심되는 사건이 한두 번 터진 게 아니잖은가.
“하오나 폐하, 황실에서 치러야 하는 온갖 의례에서 중전의 자리를 계속 비워두실 생각이십니까? 누군가는 꼭 그 자리에 서야 하는데, 태후마마나 태자비께서 그 자리에 서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난 1년 동안, 임금과 중전이 꼭 동반으로 나가야 하는 행사는 죄다 생략해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은이와 태자비 한씨 보고 대신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양위할 뜻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당장 난리가 날 게 뻔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양위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에 장조 때도 그랬지만, 진심으로 임금의 자리가 힘겹고 지겨워서 벗어버리고 싶더라도 넘겨줄 수가 없다. 그걸 넙죽 받아드는 순간 태자는 역적이 되고 이를 인정한 신하들은 그 일당이 된다.
부황이 정말로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상태라고 해도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는 태자는 그저 태자다. 그 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부디 분부를 내려주시옵소서, 폐하. 신은 예무를 담당한 자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중전으로 올리기가 싫으시다면 귀비나 황귀비로라도 봉하시옵소서.”
혹시 올렝카가 있었으면 올렝카를 중전으로 올리면 되었겠지만, 올렝카는 상희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갔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으냐는 호소가 덧붙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이렇게 조진경은 나름대로 배수진을 치고 버텼다. 하기야 의례에서 중전 대신 그 역할을 할 사람의 문제는 확실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나도 알고는 있었고. 다만 그따위 문제에 노력을 기울이기 귀찮았을 뿐이다.
결국 나도 손을 들었다. 한 가지 타협은 이루기로 했다.
“알겠다. 허면, 세 후궁이 번갈아 의례에 나가면 되겠구나. 세 사람은 입궁한 날짜도 같고 품계도 같으니, 누가 더 높고 낮고를 가릴 것 없이 한 번씩 차례로 의례에 임하도록 하라. 또한 격에 맞도록 봉작도 빈에서 비로 한 단계씩 올리도록 한다.”
의례를 치를 때는 문종 때 선임 후궁으로서 왕비 역할을 수행한 숙빈 홍씨의 전례에 따라 내궁(內宮)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빈(嬪)에서 비(妃)로 올라간다고 해 봐야 여전히 신분은 후궁이다. 중궁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분명 불완전한 타협안이다. 하지만 조진경으로서는 자기가 생각한 ‘의례에서의 중전 자리’를 당장 채울 유일한 방법이다 보니 받아들였다. 내가 완강하니 다른 대안이 없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진경이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적당히 일찍 끝내려던 오후 업무였는데, 어느새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내관들이 여기저기 늘어선 가로등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잠시 잊고 있던 허기가 위장을 엄습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너도 알고 있어라.”
은이를 불러 밥상을 마주하고 함께 저녁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이는 대답하기 곤란한지 내가 하는 설명이 다 끝날 때까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은이가 이런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건 상희가 떠난 이후다. 그날 내가 술김에 양위는 안 한다고, 괜히 역적으로 몰릴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 버럭 질러버린 뒤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전보다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미안하다고 나중에 사과했음에도 말이다.
정사를 논할 때나, 별 부담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의 태도는 여전한 것을 보면 부자간의 간격이 멀어졌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보다는 은이가 좀 더 철이 들었다고 할까, 그런 인상이다.
은이는 자신이 대한의 태자이고 조만간 보위를 물려받을 사람이라는 점을 모친의 죽음과 내 역정을 통해 절감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내 앞에서 언행을 더 조심하는 것 같다. 혹시 나의, 혹은 주변의 오해를 사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태자로서 진중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나쁠 건 없다. 귀엽고 장난스러운 소년을 보고 싶다면 손자들에게 가면 되는 것이고. 이미 30대로 접어들어서 언제 보위에 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이 계속 가볍게 굴어도 곤란하지 않은가.
“네 생각에는 이 문제를 어찌 푸는 게 좋겠느냐?”
“아바마마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신 듯하옵니다. 세 빈은 한날한시에 입궁하였고 그동안 쭉 같은 지위에 있었는데 어찌 한 사람만 품계를 올려 수위에 두겠습니까.”
내 입맛에는 맞는 답이었지만 은이의 솔직한 의견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전술했듯이 요즘 은이는 언행을 조심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내 눈치를 보고 싶으면 술이나 좀 줄일 것이지, 술은 별로 안 줄이고 말이다.
상희가 은이에게 남긴 유언 중에도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게 있었지만, 은이는 음주량을 줄이지 않았다. 국상 중에는 한 번도 마시지 않았지만 국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원래 주량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마셔도 말짱한 게 정말 표트르 같았다.
‘다만, 표트르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감추고 솔직하기는 하지.’
식사를 마치고 은이를 보낸 뒤 잠시 회상에 잠겼다. 상대가 누구든지 돌직구를 날려대는 표트르의 그 솔직한 화법이 좀 그립다. 오랜만에 한 번 만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소망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며칠 뒤, 북쪽에서 알렉세이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표트르의 부고(訃告)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