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74
3부 4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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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인선 문제와 공주 동반 문제로 시끌벅적했던 표트르를 위한 진위사 파견이 드디어 끝났다. 지난번 디에고에 이어 이번에 박문수까지 아내를 동반했으니, 어쩌면 앞으로 사신 파견 때는 부부 동반이 관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유럽행 사절단 정사는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폐하. 그러면 저도 당당하게 외가에 가볼 수 있을 테니까요.”
권훤의 며느리, 바실공주 이사벨라가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10여 년 전, 루이 14세를 조문하러 유럽에 간 자기 부모가 자기를 떼어놓고 둘이서만 다녀온 데 대한 아쉬움이 아직 남아있는 탓이다.
“네 남편이 유럽에 갈 정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 않으냐?”
“노력하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명문가의 후예로서 그 혈통에 부끄럽지 않도록 품행을 올바르게 하고, 능력을 갖춰 적절한 지위에 오른다면 뽑힐 수 있을 겁니다.”
이사벨라의 남편 권창은 권율의 후예에다 내 총신인 권훤의 아들이니, 어느 정도 기본만 한다면 출세하기 어렵지는 않다. 아비와는 달리 문과에 응시해서 지금은 사헌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주변에서의 평도 나쁘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 확실히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장래에는 사절이 되어 유럽에 갈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네가 함께 유럽에 가는 것도 꿈은 아니겠지.”
사실, 가려고만 하면 이사벨라는 지금도 유럽에 갈 수 있다. 제물포 상관에 가서 돈 내고 배표를 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유롭게 유럽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다.
현재 민간인의 출국을 규제하는 법은 그렇게 빡빡하지 않다. 출국을 원하는 이는 목적을 명시한 출국 신청서를 외무부에 제출하고, 출국 허가증인 집조(執照)를 받는다. 외부에서는 혹시 신청자가 수배 중인 죄인이 아닌지 의금부와 법무부에 조회한 뒤 집조를 내준다.
집조가 없으면 합법적으로 출국할 수 없다. 집조 없이 출국하려다가 세관에서 잡히면 그 즉시 강제로 하선, 투옥되고 해당 선박은 과징금을 부과받게 된다. 이런 벌칙에도 불구하고 밀항을 시도하는 자들은 늘 있지만….
하지만 이사벨라에게는 집조도 필요 없다. 이 아이는 술루국 공주니, 자기 신분을 증명할 문서만 있으면 자유롭게 배를 탈 수 있다. 그리고 유럽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원하는 건 그저 여행객으로 유럽에 가는 게 아니다. 자기 부모가 가서 받은 것처럼 동방에서 온 귀인으로 대접받고 싶은 거다. 그러자면 사신을 보내는 제도가 이 형태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렇게 당당한 포부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이 애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건 이름만이 아닌 것 같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배짱도 참으로 두둑하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대단한 손녀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네가 이제껏 한 일에 대해 상을 주어야지. 너도 그동안 공주를 가르치느라 참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폐하. 소녀도 즐거웠습니다.”
야니나와 다른 백면나인 상궁들만 연주에게 달라붙어서 예절 교사 노릇을 한 건 아니다. 연주의 실질적인 조카 ? 그래봐야 연주보다 한 살밖에는 안 어리다 ? 인 이사벨라도 공주 저택까지 가서 이것저것 도왔다. 이 아이도 부모에게 배운 바가 약간은 있었기 때문이다.
술루국은 분명 우리 번국이다. 하지만 국왕과 왕비가 모두 스페인계고 보니 궁정 내에서 통용되는 예법은 한국식이 아니라 스페인식, 즉 유럽식이 많다. 어린 시절을 술루 왕궁에서 보낸 이사벨라는 유럽식 예절에 익숙했고, 기쁘게 그것들을 ‘고모’에게 가르쳐주었다.
“네 수고는 내가 보상해주마. 그런데 공주가 러시아에 가버렸으니, 한동안 합주할 사람이 없어서 아쉽겠구나.”
국내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던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떠났다. 둘은 저세상으로, 하나는 러시아로. 남은 사람은 이사벨라뿐이다.
지금 상희와 올렝카의 바이올린은 교태전에서 보관만 하고 있다. 상희 것은 그렇다 치고 올렝카의 바이올린은 루시아나 율리아에게 보내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긴 한데, 이 물건들이 300년 뒤에 가질 가치를 생각하니 나라 밖으로 보내기가 아까웠다.
‘걔들이 딱히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내가 그동안 연주를 가르친 ‘과외비’로 내준 루비 목걸이를 ? 상희가 가지고 있던 여러 패물 중 하나다 ? 받은 이사벨라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자기 주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사람을 찾아냈다는 거였다!
“의현군주와 의진군주께서 하가한 뒤로 저와 자주 오가며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혹시 함께 양제금(洋提琴, 바이올린)을 연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더니, 두 분 모두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오호, 그러냐! 정말 잘 되었다. 그럼 중전과 순비가 쓰던 양제금을 그 둘에게 빌려주어도 되겠구나.”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해서, 상희가 거의 10년 가까이 바이올린을 가까이한 보람이 있구나. 그때만 해도 악기는 기생 따위나 다루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보편적이었는데, 우리 대한 최고의 신분이라 할 수 있는 태자의 딸들이 악기에 관심을 보이다니.
물론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하는 건 아직 어렵다. 상희도 딸과 며느리, 손녀들 앞에서나 잠깐씩 바이올린을 들었지, 남들 앞에서는 악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니 내 손녀들이 개인적인 자리에서라도 연주하고 즐거움을 느끼려고 한다면, 그것만 해도 충분한 발전이다.
“중궁전 상궁에게 일러둘 테니, 네가 나가면서 가져가서 전하도록 하여라. 관리하는 법과 연주하는 법도 잘 가르치고.”
“예, 폐하.”
악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바이올린 말고 첼로와 비올라는 장악원에 내려 그쪽에서 연주하게 하고 있다. 책도 사람이 읽어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악기도 누군가 들고 연주해야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처음에는 나와 상희도 주변에서 연주할 사람을 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할 사람도 다 구하지 못한 황실에서, 비올라와 첼로 주자까지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이 대물(大物)들은 ? 콘트라베이스나 하프 같은 거에 비하면 하나도 안 크지만 ? 전부 장악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거기서 남자 악공들이 연주하고 있다.
그게 언제쯤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장악원에도 우리 전통 악기를 쓰는 아악부(雅樂部)와 서양 악기를 쓰는 양악부(洋樂部)가 공존하겠지. 지금 내가 보내둔 첼로 1개, 비올라 2개는 그 씨앗인 셈이다.
– 9 –
상희를 보낸 슬픔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며 보낸 지난 2년, 국내외적으로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야 내가 일으킨 게 아니지만, 국내에서 나온 변화 양상은 내 영향이 컸다.
먼저, 지방 행정에 변화가 있었다. 옛날보다 훨씬 넓어진 영토를 더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지방 행정 중심지를 더 늘렸다. 동경 대구부, 서경 요양부, 남경 전주부, 북경 함흥부, 상경 평양부를 5경이라 해서 황도 한성부 외에 추가로 행정 중심지로 삼았다.
국가의 핵심인 경기도에는 개성?강화?광주?수원?인천 5개 유수부가 있어서 통제를 확실하게 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방의 5경을 장악하고, 그 5경을 발판으로 해서 한반도와 만주의 각 지역을 제어하는 거다.
“북방 6주를 도로 편제하는 문제도 어서 끝마치도록 하라.”
“나중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꼼꼼히 하느라 시간이 다소 걸리고 있사옵니다. 지나친 조급함은 도리어 사고를 부를 수 있사오니, 조금만 참아주소서.”
“알겠다. 내무대신의 말이 옳다.”
내 처남 민지원은 현직 내무대신으로서 이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 가장 발을 깊게 들이민 관계자다. 삼군부 도총사인 둘째 형 민지상도 느긋하게 퇴직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셋이 과거에 붙은 시기는 비슷한데 자기만 끝까지 일한다고 툴툴거리는 건 좀 우습지만 말이다.
지금 구상으로는 북방 6주도 양강(兩江) 이남 본국처럼 13도로 나누면 적당하지 않을까 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대한 본국은 26도로 구성되고, 속령으로 북변?대남주?북구주?누손주 네 지방을 거느리게 된다.
“미주도 계속 본국에서 직할하는 속령으로 거느릴 수 있겠는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왕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워낙 길어 웬만한 일은 현지에서 전결(專決)로 처리하면서 결과만 보고하고 있사온데, 장차 인구가 더 늘고 사무가 많아지면 결과도 다 보고하기 힘들 수도 있사옵니다.”
5년 전, 신축년(1721)에 시행한 인구조사에서 미주 인구가 230만이었다. 당시 대남도의 인구가 260만. 올해 인구조사에서는 미주 인구가 드디어 대남도를 추월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주 인구가 늘면 늘수록 북태평양이 든든한 대한의 호수가 된다. 하지만 미주 백성들이 독립한다고 들고 일어설 가능성도 커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신이 미주에 오래 머무르면서 체감한 바지만…미주에서는 역시 각 주에 거주하는 백성들 스스로 정사를 돌보게 하고 본국에서는 이를 감독하도록 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대동양 건너에 사는 수백만 백성을 모두 조정에서 관리하기는 너무 힘듭니다.”
김성권이 뼈에 새긴 교훈을 절절하게 토로했다. 조정에서 20년이나 미주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은 그 하나뿐이었던지라 모두가 유념해서 들었다.
“지금도 미주에서는 본국에서 보낸 대총관과 주지사가 향회(鄕會)와 토인 출신 향관들의 보좌를 받아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선황께서는 장차 미주에서도 북도에서 하듯 현감 이상의 모든 관리를 본국에서 임명해 보내려고 하셨으나, 실현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부황인 연가제는 미주를 확실한 우리 영토로 만들겠다면서 그런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형황은 너무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조정에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즉위한 뒤에야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봐도 비현실적인 건 마찬가지다. 그냥 미주에서 향시를 치러서 지방관이 될 인재를 채용하고, 대총관과 주지사 자리만 본국에서 보내는 편이 현실적이다. 그다음에는 미주를 자치령으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괜한 걱정은 마시옵소서, 폐하. 천하 어디에 있더라도 폐하의 백성은 폐하의 백성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폐하께 받은 황은이 있는데 감히 누가 무도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미주에서 사는 백성들도 언제까지나 폐하께 충성할 터이니, 염려하지 마소서.”
내가 인상을 찌푸리니까, 조진경이 골수 유학자답게 아주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보고를 했다. 하지만 그 보고를 듣고도 나는 당연히 안심이 안 됐다. 원래 역사를 알뿐더러, 인간의 욕심이란 걸 신뢰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황은을 알고 깨닫는 것도 부단한 가르침 속에서만 가능하다. 학무부는 미주에 있는 여러 향교와 학당에 책과 문방구를 내리고 교수를 파견하는 일에 모자람이 없도록 하라.”
“예, 폐하.”
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미주에서도 향교는 학비가 공짜다. 미주에서 교수와 훈도 일을 하겠다고 자원하는 이들에게는 본래 품계에 3단계를 가증(加增)해서 녹봉을 지급한다. 이게 다 미주 백성들이 성리학에 따른 충효 관념을 더 깊게 익히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관념적인 충성만으로는 미주를 끝까지 우리 손에 쥐고 있을 수가 없다. 미국은 뭐 왕당파가 하나도 없어서 독립했나? 독립선언할 때 미국 인구의 20%가 왕당파였는데.
전에도 언급한 것 같지만, 미주가 독립하지 못하게 하려면 미주가 아무리 풍요로운 땅이 되더라도 일부 분야에서는 본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과 자본, 군사력과 같은 결정적인 면에서 본국이 끝까지 우위를 쥐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하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는 없지….’
은이에게는 가르쳤다. 옛날 성이에게 했던 것처럼, 둘이 마주 앉아서 대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온갖 교훈과 주의사항을 익히게 했다. 경연에서 배우는 책에는 절대 안 나오는 것들을 말이다.
은이가 어떤 임금이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 하는 모습을 보면 나처럼 할 것 같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은이가 원해서든, 원하지 않아서든 국정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게 옳은 방향일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었던 미래 지식은 이제 그 효용을 많이 상실했다. 전생 1회차에서 한국사가 바뀌고, 2회차에서 동양사가 바뀌고, 이번 3회차에서는 서양사까지 바뀌었다. 그러니 내가 알던 지식에 기반을 둔 판단과 결정은 앞으로 살아갈 은이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신홀란도에 이주한 잉글인들의 상황은 어떤가.”
“계속 그 수가 늘고, 해안을 따라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일어난 변화로,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사건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영국 정부는 인도에 이어 세력을 확장할 구역으로 호주를 택했다. 그래서 수도인 조지타운(Georgetown) ? 원래 역사에서는 그 위치에 있던 도시가 이름이 다윈(Darwin)이었던 것 같은데 ? 을 중심으로 해안을 탐사하며 꾸준히 세력권을 넓히고 있다.
뉴홀랜드 개척 책임자는 여전히 코밤 자작 리처드 템플이다. 자작이 조지 왕한테 실력을 인정받아서 그 자리에 붙박이로 있는 건지, 김성권처럼 뭔가 찍혀 말뚝 근무를 서는 건지는 모르겠다. 뭐, 아예 무능하면 그만한 자리에 두지도 않을 테니 능력은 있다는 말이겠지.
뉴홀랜드가 한동안 자코바이트들을 보내는 추방지로 기능하기는 했었지만, 그만한 개척이 자코바이트만으로 가능할 리는 없다. 자코바이트들만 한동안 실려 온 뒤에는 일반 죄수들도 실려 오기 시작했다. 찰스 왕자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여전히 추방지이기는 한 셈이다.
‘일찌감치 단념하긴 했지만, 그래도 배는 좀 아프군.’
본국에서 가까운 미주, 필리핀, 동남아를 우선 챙겨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 주변도 제대로 평정하지 못한 상태로 호주에 손을 뻗고 영국과의 충돌까지 감수하기는 부담이 너무 컸다. 원래 계획대로, 북태평양을 우리 호수로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북쪽에서 파발이 달려왔다. 연주 일행이 도성을 출발한 지 대략 50일 가까이 된 지라, 심양쯤에 도착했다는 전갈이겠지 하고 받았다. 그런데 받고 보니 후금 조정에서 보낸 국서였고, 정말 뜻밖의 소식이 실려 있었다.
“어허, 후금의 태화제가 드디어 숨을 거두었구나. 예무부에서는 바로 진위사로 보낼 이를 뽑도록 하라. 허어, 올해는 부고가 연이어 들어오니 대체 어떤 해인고.”
태화제 와극달이 병으로 쓰러져 누워 지낸 지 거의 4년 반, 만으로 향년 58세다. 이렇게 나와 같은 세대인 인물이 또 하나 쓰러졌구나. 지금쯤 심양에 가 있을 연주 일행과 별개로 본국에서도 어서 진위사를 보내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직 감옥에 갇혀 있을 파포태 녀석도 드디어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 부친이 죽었으니까 살려둘 명분이 없지. 부디 죽을 때 비굴하게 굴지나 않기를.
이번에 데려가는 폴란드 출신 상궁은 야니나가 맞습니다. 저번에 헬렌이라고 적은 건 제 실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