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75
3부 4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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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포태가 살아날 방법은 없을 거다. 탈옥해서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쳤다면야 혹시 모를까, 상도 황궁 지하에 있는 뇌옥에서 4년이 넘게 꼼짝도 못하고 갇혀 있는데 무슨 수로 살아나겠는가.
그냥 곱게만 죽어도 다행이겠지만, 어떻게 처형될지는 솔직히 별로 관심 없다. 그놈이 내 나라 반역자도 아닌데 괜히 관심을 가져서 뭘 하겠냐는 말이지.
다만 선례를 살피자면 처형 방법이 짐작이 아니 가는 바는 아니다. 후금의 4대 대칸이던 석새는 대패륵 자리를 노리고 자기 형을 죽인 아들을 몽골식으로 처형했다. 피가 땅바닥에 흐르지 않게, 양탄자로 잘 싸서 말들이 떼로 짓밟아 죽이는 거 말이다.
후금은 분명 만주족이 주도하는 나라지만, 인구는 몽골인이 더 많고 문화적으로도 몽골의 영향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신분 높은 이를 처형할 때도 몽골 관습을 따른다.
“다만 새 대칸은 학문과 예의를 익혔고 형제간의 정이 깊으니, 폐패륵을 처형하는데 그런 무도한 방식을 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이제는 우리 조정에서도 부수를 상도위라고 부르지 않는다. 와극달이 생전에 대칸 지위를 정식으로 물려주었으니까 부수가 후금의 진짜 대칸이다. 타국 군주를 그보다 낮은 작호로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다.
“허나 후금 조정에서도 여론이 있을 것이고, 신하들이 청하는 바가 있으리라. 그러니 대칸 쪽에서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기 신하들의 청에 따라 극형에 처할 수도 있다. 무릇 군주라 하면 주변의 충언을 들어야 하는 법이 아니더냐.”
현재 후금 조정에는 파포태 편에 붙었던 귀족 다수가 여전히 남아있다. 보르지긴 씨족만 해도 파포태의 심복이었건만 부수에게 용서받아 지금도 대칸의 측근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위치를 바꾼 자들일수록 자기 과거를 씻으려고 더 강경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패아지근은 여전히 황실과 사돈을 맺기도 하지 않았사옵니까.”
“음, 그렇지.”
부수가 혼인을 또 할 수는 없다. 대신 부수의 장남, 파이도가 보르지긴 씨족에서 아내를 얻기로 혼약을 맺었다. 파이도가 아직 만으로 9살밖에 안 되어 정식으로 혼인하는 건 3년쯤 지난 뒤가 될 거라고는 했지만 말이다.
후금 황실이 만주인보다 훨씬 수가 많은 몽골인을 적절히 통제하려면 보르지긴 씨족과의 결혼 동맹은 필수이기는 하다. 내 외손자가 처가 식구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줏대를 지키는 대칸으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폐패륵의 처형 문제야 대칸이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진위사로 누구를 보낼지나 빨리 결정하여 보내도록 하라.”
조정에서의 논의는 곧 끝났다. 이미 후금에 다녀온 적이 있으며 후금 고위층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고 신분도 적절히 높은 사람, 그런 적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해공 이철을 진위사로 하여 금국에 보내고, 서찰을 준비하여 대칸을 위문하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본래 이런 사절로는 신분이 높고 실권이 없는 사람이 제격이다. 내 조카인 영해공은 이런 일을 맡기에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영해공도 벌써 환갑이 다 되어가는구나.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니까 경술년(1670)생…만으로 쉰여섯이다. 내가 갓 귀국했을 때 같이 사냥이나 한번 나가자고 보채던 그 젊은이가 어느새 후손을 십여 명이나 거느린 할아버지가 되었다.
지난번 국상 ? 상희의 장례 ? 때도 영해공은 후금 사신들을 여럿 만났다. 후금의 처지를 대변해줄 사람으로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후금 사신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해공만 그런 방문을 받은 건 아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주변국과 번국에서 온 사신들은 자기네한테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 열심히 이 사람 저 사람을 방문하고 다녔다. 그 양상을 살피는 것도 볼만한 일이었다.
– 11 –
후금 사신들은 영해공을 먼저 찾았다. 아우인 삼성공은 청나라 사신들이 가장 공을 들인 상대였다. 이들이 그 나라들을 사신으로 찾아가 인연을 많이 만든 덕분이다.
물론 이들 한 사람만 만난 건 아니다. 청이나 후금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도 안 빼고 부지런히들 만나고 다녔다. 다른 나라 사신들도 다를 건 없었다.
국상 중이니만큼 도성의 유흥가는 반촌다점까지 포함해서 죄다 영업을 중단한지라, 이런 ‘로비’가 이뤄진 장소는 대개 청탁을 받는 당사자의 집이었다. 평소 쌓은 연분 때문에, 또는 소개를 받아 인사를 드리러 방문했다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딱히 역모가 될 만한 모의는 없었습니다. 조정에서 자기들 문제를 두고 논의가 있을 때 자기들 쪽에 유리하게 결정이 나도록 폐하께 좀 아뢰어 달라는 정도였습니다. 선물을 약간 건네는 경우는 꽤 있었습니다만.”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이 기회에 우리나라 종친이나 고관들과 연줄을 강화하러 다니는 건 당연한 거다. 우리 사신들도 외국에 갈 때마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원래 역사에서 중국에 간 고려나 조선 사신들도 현지에서 중국인이나 또 다른 외국인들을 열심히 만났었다.
원래 역사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나부터도 유럽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일단 외국에 나간 이상, 들인 돈만큼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 구하러 다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넘길 수는 없다. 아무리 그 상대가 내가 신뢰하는 조카며 중신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온 사신들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정도는 파악해놓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국상을 치르는 중에는 내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국상 절차가 다 끝나고 나서 금위사에 그동안 작성한 보고서를 올리라고 했다. 죽 읽어보니 역시나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그걸 보니 비로소 마음이 안정됐다.
“몇 푼 안 되는 사소한 물건을 받은 정도는 눈감아주도록 하여라. 다음에 관직을 조정할 때 그 점을 고려하면 그만이니.”
종친들은 어차피 실권이 없으니 뇌물을 좀 받아도 의미가 없다. 고관 중에 심하게 뇌물을 챙긴 놈들은 다음 인사이동 때 조용히 자르거나 한직으로 보내면 된다. 상희 무덤에다 심은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작 뇌물 혐의 따위로 조정을 뒤엎기도 싫었다.
“그런데 광동국 사절이 누구를 만나고 다녔다고?”
“예무대신과 외무대신, 해군대신, 수군통제사 등 우리 조정에서 외교 및 해군과 관계되는 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특이한 것이, 서나라 황제 승평제가 보낸 공식 사신보다 그 밑에 거느린 번왕인 광동왕이 별도로 보낸 조문 사신이 한 달이나 먼저 도착했다. 우리 외무부는 처음에 이들을 광동왕이 아니라 서나라 황제가 보낸 사신인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
‘폐하께서 이리도 슬픈 일을 겪으셨는데, 우리 광동국은 대한의 인방(隣邦)으로서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부왕께서 특별히 저를 보내셨으니, 예에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부디 용서하소서.’
광동국왕 장원소는 둘째 아들 장장헌을 조문 사절로 보냈다. 이놈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조정에서 다툼이 일었고, 일단 조문객임은 분명하니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놈들이 자기들이 정식 사절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뒤에 서나라가 보낸 정식 조문 사절이 도착하자 난리가 났다. 두 사절단은 내 눈앞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번국인 광동국이 멋대로 외국에 사신을 보낼 수 있느냐는 문제는 따지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맞다. 서나라 본국에서 온 사신들은 광동왕이 월권을 범했으며, 이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황제의 권위를 넘본 역적들입니다! 임금께서는 저들을 당장 추방하시옵소서!’
광동국 측에서도 순순히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런 논리를 내놓아 맞섰다.
‘과거 대명의 번국이던 조선도 대명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일본, 유구, 섬라 등 외국에 사신을 보내 교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광동이라고 이웃의 상사(喪事)에 조문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양쪽 모두 서로를 설득하기보다는 우리 조정에 호소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로서도 서나라 조정이 자기네 산하에 거느린 번국에 어느 정도 자율권을 주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뭐라고 끼어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저건 궤변일 뿐입니다! 조선은 엄연히 대명과 그 기원이 다르고 풍속 또한 다른 나라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대명에 신속하되 그 국사의 대부분은 스스로 결행함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광동국은 영창제께서 분봉하신 번국이니, 어찌 그 상황이 같겠습니까?’
서나라 사신이 시뻘건 얼굴을 하고 격하게 소리쳤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장장헌은 유들유들한 태도로 받아쳤다.
‘대인께서 말씀 한번 잘하셨소. 사천과 광동이 기원이 같소? 풍속이 같소? 어문(語文)이 같소?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당연히 별개의 나라로서 신속하는 게 맞지 않소?’
광동국의 독립성을 놓고 벌어진 이 논전은 격렬하기가 우리 조정에서 근래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 역관들이 알아듣기도 힘든 사천 방언을 쓰면서 맹렬히 싸워대니, 근정전에 모인 우리 신하들은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지쳐 떨어졌다.
‘짐은 대전으로 돌아가야겠다. 외무대신은 저 소동이 끝나면 저들을 숙소로 돌려보내도록 하여라.’
‘예, 폐하.’
그 논쟁은 결국 승부가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승부가 날 수 없었던 논쟁이었다는 게 맞다. 녀석들은 귀국하는 배도 따로 타고 갔는데, 과연 귀국한 뒤에 성도에서 어떤 소동이 벌어졌으려나 모르겠다. 우리 익문사 관원들도 그것까지는 못 캐냈다.
다른 나라들은 서나라처럼 소동을 일으키진 않았다. 가장 약삭빠르게 행동한 자들은 역시 유구 사신들이었다. 유구에서 조문 사절로 온 유구국 황제 상경의 동생 상철(?徹)은 우리 종친이나 현직 고관들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고 중추원에 있는 퇴직 고관들만 찾아다녔다.
이런 식으로 움직인 나라는 유구 하나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죄다 현직 관료를 찾아가 뭔가 이득을 얻을 궁리를 꾸몄지만, 현직 관리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백수가 된다. 그러면 그쪽에 한 로비도 몽땅 허사가 된다.
유구인들은 이를 잘 알았다. 그래서 현직 관리는 아니면서도 국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인 중추원을 파고들었다. 이미 관직에서 물러난 이들에게는 굳이 비싼 뇌물을 제공하지 않고 찾아가 존중하는 모습만 보여도 점수를 딸 수 있으니, 경제적이기도 했다.
“역시 그놈들은 타고난….”
아무리 내 측근 신하들 앞이라고 해도 대놓고 타국을 비하하기는 좀 그래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계속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확인했다.
유구가 약삭빨랐다면, 일본은 느긋했다. 일본에서는 예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히로시마번 번주 요시노부가 또 왔다. 다만 예전에는 쇼군의 동생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지위가 쇼군의 숙부로 바뀌었다.
요시노부는 나를 알현한 뒤에는 별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청나라나 후금에서 온 사신들처럼 우리 종친들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중추원 원로들이나 실무 관료들을 만나서 연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요시노부 일행은 도성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매일 원각사에 가 상희의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을 올린다는 정말로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물론 원각사에서도 이미 자체적으로 법회를 올리고 있었지만, 요시노부도 거기 가서 절을 하고 예물을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본국에서 상희의 쾌유를 비는 불공과 제사를 올린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는데, 정식 조문 사절도 이렇게 행동하니 조야에서 일본에 대한 인상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나도 저놈들이 무슨 의도로 저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맙기는 정말 고마웠다.
주요 주변국 중 마지막 하나…후송 사신들의 로비 방식은 완전 돌직구였다. 문병 사절로 와서 한양에 터를 잡은 대명세가 파악해 둔 명단에 따라 힘이 있다고 판단되는 주요 종친과 대신들의 집을 그대로 찾았다. 선물은 금은이 아니라 귀한 서화류가 주를 이뤘고 말이다.
후송은 자기네를 어떻게든 중원의 정통 후예로 자리 잡게 하느라 필사적이다. 그래서인지 사절단도 가장 대규모였고 상주를 방문하는 격식도 가장 나무랄 데 없이 챙겼다. 그리고 그 많은 인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니 선물 좀 받았다고 모조리 털어낼 수가 없지….”
후송 사신단이 방문하고 선물을 준 사람을 몽땅 조정에서 쫓아내면 조정이 텅텅 빌 거다. 비변사에도 자리를 지킬 사람이 반의반도 안 남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다 터나. ‘너무 많이’ 받은 자들만 다음 인사 때 밀어내면 족하지.
그리고 또 애매한 존재. 안남에서는 황제인 여씨를 대신해서 광남국주 완복주가 사절단을 보내왔다. 이쪽에서는 자기가 황제에게 정식으로 위임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서한을 같이 보냈고 황제의 사자가 아예 안 온지라 서나라 같은 소란은 딱히 없었다.
그 덕에 안남에서 온 사자들은 얌전히 조문만 하고 돌아갔다. 과거 모후의 상을 치를 때 서나라가 그랬듯 말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육개장만 먹고 그냥 갔다고 해야 하려나.
그 외에 번국인 조홀국이나 술루국도 평범한 조문을 했다. 이쪽이야 평소에도 필요하면 수시로 특사를 보내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면서 요청하니까 굳이 이쪽이 심기가 많이 불편한 국상 때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러니 친분을 다지기 위한 방문 약간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 평소에도 배가 오가려면 여러 달 걸리는 데다 주변에 딱히 위협이 될 적도 없어서 자기들끼리 속 편히 살아가는 하와국만은 달랐다. 배가 오가는 시간 때문에 하와국 사신들은 5개월이 걸친 국장이 다 끝난 뒤에야 도착했는데, 문제는 도착한 뒤였다.
하와국에서 온 사신들은 별도로 마련한 처소가 없기도 해서 국왕의 사돈인 강녕왕의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 사절단 중에는 여자가 여럿 섞여 있었다. 이 여자들이 문제였다.
“그 여자들이 강녕왕이 하와국에서 끼고 살던 애첩들이었다지.”
“예, 폐하.”
국상 기간도 끝났겠다, 강녕왕은 신나게 옛 여인들과 뒹굴었다. 참다못한 왕비가 ‘당장에 이 시커먼 년들을 다 내쫓지 않으면 내가 목을 매고 죽어버리겠다!’라고 포달을 부리고 난 뒤에야 하와국 사신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강녕왕의 호색한 기질은 정말 끝을 모르는구나.”
차마 그런 건 죽어야 낫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조카들 아닌가. 삼형제가 전부 말이다.
무인지변 때, 이 삼형제가 족친위 거의 전체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웠고 내 뒤를 따라 적진으로 돌입했던 일은 죽을 때까지도 잊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들이 지나치게 해 먹지만 않으면 웬만한 비리는 봐줄 용의도 있다. 그저 정도만 지켜다오.
2년 전에 확인했던 외교 상황은 이토록 볼만했다. 이번에 영해공을 후금에 파견하는 것도 그때 각국이 보인 모습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번에 한 번 더 수고해 주기 바라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후금 선황은 제게도 무척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었습니다. 마땅히 찾아가서 예를 표해야 할 텐데, 신을 진위사로 뽑아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다행히 영해공은 기꺼운 얼굴로 북쪽으로 떠났다. 영해공도 이제 적잖은 나이인데, 부디 건강하게 별일 없이 돌아오기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