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76
3부 494화
– 12 –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강녕왕은 하와이에 놓고 온 자식들이 있다. 이건 확실한 이야기인데, 한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5명은 됩니다.”
벌써 5년째 그 자리에 있는 금위사장 이종현이 확실하게 단언했다.
“의순공주를 데리고 하와국에 가 계시는 동안 얻은 자식 중에 지금껏 자라고 있는 숫자가 적어도 넷이요, 국상 때 하와국 조문 사절단에 섞여서 왔다 간 이들 중 적어도 한 명이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와국왕은 여전히 자기가 그 애들을 다 돌본다고 하고 있는가?”
“예, 폐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생아라고 해도 아버지를 확실히 아는 이상 아버지에게 보내는 게 일반적인 행동일 거다. 그런데 하와국왕 카우이는 바깥사돈이 내팽개치고 간 서자들을 배에 태우지 않았고, 강녕왕도 하와이에 있는 서자들을 본국으로 데려오려 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따지기에는 좀 애매한 문제라서 비선으로 문의를 했다.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 아이들은 하와인 모친의 몸에서 태어나 하와인으로 살았으니, 말과 풍토가 모두 다른 본국(대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낯설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곳에서 자라도록 하는 편이 낫다.’
…라고 하는 게 하와국 국사 최지원을 통해 전해진 카우이의 해명이다. ‘귀하신 분이 이런 사소한 걱정거리로 부담을 느끼시면 되겠느냐’라는 부분도 있었다.
하기야 하와이에서 첩과 서자가 무더기로 온다면 강녕왕비가 그만 화병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강녕왕으로서는 안 데려오는 쪽이 편하긴 하리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카우이가 왜 사돈의 서자들을 맡아 키워주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대체 왜?
“그 아이들이 지금 십여 세 남짓이렷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의순공주를 데려갔을 때 태어난 아이들의 나이를 가늠하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카우이 입장에서, 대한 황실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하가위 그놈, 그 아이들을 키워서 팔아먹을 생각 아니냐?”
단순히 노예로 판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 그 자체를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대한 황실의 피가 섞인 아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닐 것 같은가?
하와이에서는 한인의 흰 피부색 ? 이놈들이 처음에 잘못된 표본을 본 게, 이놈들이 처음 목격한 ‘상징적인 한인’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피부가 하얀 나와 상희였다 ? 을 무척 부러워한다. 하와이에서도 흰 피부는 볕을 쬐며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냥과 전쟁을 이끌며 자연스럽게 그을리는 남자 말고 여자만.
하지만 순혈 하와이 원주민이 아무리 하얘져 봐야 한인만큼 하얘질 수는 없다. 그런 탓에 순수한 한인인데다 고귀한 대한 황실의 핏줄이기까지 한 의순공주와 혼인한 세자 하상운은 하와국 전체에서 엄청난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강녕왕의 서자, 서녀들은 그런 공주와 같은 핏줄이다. 게다가 그 부친이 놓아두고 갔으니 오로지 하와국왕의 손에 생사여탈의 전권이 쥐어져 있다. 하와국왕이 나라 안의 호족들에게 혼인을 통해 친분을 다지는 바둑돌로 쓰기에 이토록 좋은 조건이 어디 또 있느냐?”
“실로 폐하의 혜안이 깊고도 깊으시옵니다.”
이종현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하지만 이놈이 정말 내 생각에 감탄한 건지, 자기도 이미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내 비위를 맞추는 건지 모르겠다. 후자라면 이놈은 내게 아첨하는 중이다.
“그러시면, 예무부에 명하여 데려오게 하시겠습니까? 어쨌거나 종친은 종친이니….”
옆에 있던 판의금부사 김원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금위사 내에서 승진한 이종현과 달리 김원필은 수사관이 아니라 내무대신에 법무대신까지 역임한 관료 출신이다. 판의금부사는 종1품이므로 정2품 대신보다 더 높다.
본래 정보기관이란 그냥 놓아두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생존을 위해 활동하는 쪽으로 변하기 쉽다. 그래서 금위사장 자리는 몰라도 금위사 활동을 통제할 상급 기관인 의금부의 장인 판의금부사 직책에는 꼭 외부 출신 인사를 앉힌다.
과거에는 내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정호찬이나 이항복을 우두머리로 두어서 금위사를 통제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조직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고, 성이 이후 금위사는 계속 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강녕왕은 의순공주의 혼인으로 승작되어 왕작을 받기는 하였으나, 본래 공작입니다. 그 서얼들은 정3품 후작과 정3품 현주로 봉해지게 됩니다. 엄연히 종친인데, 하와국 따위에서 멋대로 내돌리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뭐 어떠냐.”
푹신한 등받침에 몸을 기대며 뇌까렸다.
“강녕왕은 본처, 양첩, 천첩에게 얻은 것들을 통틀어서 지금 있는 자식만 열셋이나 된다. 손자, 손녀는 서른 명은 되지. 다섯 명이나 더 데려왔다가는 혼사도 제대로 못 치를 게다.”
무종 시절, 서얼을 낳아놓고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는 양반들에게 ‘서얼을 싸지른 네놈들 X대가리가 서얼보다 더 더럽다!’라고 소리친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낯이 뜨겁지만, 강녕왕의 혼혈 서자들은 하와이에서 그냥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지금도 카우이가 애지중지 잘 살피고 있다. 아버지인 강녕왕도 딱히 데려올 생각이 없다. 서로 원하지 않는데 아버지 곁에 살라고 억지로 끌고 오면 납치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은 누이 ? 법적으로는 사촌누이 ? 인 의순공주가 돌봐주는 셈 치면 그만이다. 다만 그 아이들의 혼사를 치를 때는 꼭 예무부에 보고하여 승인을 얻은 뒤에 치르게 하라고 예무부에 명해두겠다.”
종친들의 혼사 같은 건 옛날에는 종친부에서 다루던 일이다. 지금은 그것도 다 예무부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번국인 하와국이나 술루국, 조홀국과의 교섭도 외무부가 아니라 예무부 소관이다. 그 애들은 하와이에 계속 살게 하고, 예무부가 관리하게 하면 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판의금부사와 금위사장이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한때는 익문사 보고도 같이 받았었지만, 양쪽 기관이 제출하는 첩보 성격이 다르다 보니 언제부턴가 따로 들어오라고 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종친들의 혼인 이야기를 하려니 청나라 쪽에서 국혼 제안이 들어왔을 때 생각이 나는군. 그게 몇 년 전이더라. 한 8년쯤 됐나?
그때 청나라에서는 박화탁의 맏아들과 은이의 장녀인 성연이(의현군주)가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 어떻겠냐고 했었다. 박화탁의 맏아들은 의현군주와 동갑이다.
나중에 들으니, 연주도 후보에 넣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박화탁이 자기 아들보다 나이가 두 살 연상인 연주와 동갑인 성연이 중 누가 자기 아들과 더 어울릴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박문수와의 혼인이 발표가 나는 바람에 포기하고 성연이로 틀었다나.
상황은 심왕비가 혼인할 때와 똑같았다. 우리한테 빠져나갈 구멍을 줬다. 나한테 사신을 보내서 공식적으로 제안하지 않고 박화탁이 은이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우리 의중을 떠보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거절할 수 있었다.
‘태후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손녀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셔서 안 되겠소.’
은이가 이런 답장을 써 보내자 청나라 측에서도 더 조르지 않았다. 막상 또 저쪽이 쉽게 포기하니 뭔가 기분이 좀 애매했지만, 우리 공주를 청나라 황후로 보낼 생각은 없었으니까 다행이다 싶었다.
그 뒤로 은이 딸들은 모두 국내에서 남편감을 찾았다. 청나라 황태손도 만주 귀족 가문과 혼사를 맺었다. 이로써 추가적인 혼인동맹의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우리와 청나라 사이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청국과의 연맹은 심양회맹으로 충분하옵니다. 국혼까지 맺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은이는 청나라 측이 이런 제안을 한 배경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혼인을 빌미로 양국 간의 동맹을 강화하고, 함께 후송을 공격해서 그 땅을 분할하자는 의도 말이다.
‘일찍이 장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원의 땅을 탐내 입관한 이방(異邦) 왕조 중에 그 땅을 영구히 지배하며 영광을 누린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모르지 않는데, 어찌 헛된 욕심을 품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네가 잘 배웠구나.’
은이가 세상을 보는 태도는 아주 만족스럽다. 중원 정벌 같은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이야말로 우리 대한을 적당히 길게 살게 할 옳은 태도가 아니겠는가.
가끔 생각하곤 한다. 나 말고 다른 현대인이었다면 아마 무종 때, 적어도 장조 때쯤에는 전력을 기울인 중원 침공이나 열도 원정 같은 걸 시도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조선제국을 세워 천하를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런 걸 성공할 자신이 없었고, 대신 안정적으로 길게 버티는 쪽을 택했다. 오늘날 펼쳐진 결과를 보면 그런 방식도 나쁘지 않았던 듯하고 말이다.
– 13 –
2년 전 상희의 초상을 치를 때, 내 눈앞에서 벌어진 서나라 사신들 간의 논쟁은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승평제 장원검이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뭐라고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뒤로 성도에 있는 조정과 광동왕부 사이는 점점 험악해졌다.
“광동왕만이 아니라 새 운남왕도 승평제에게 불손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합니다.”
“그놈들이 미친 게 아니냐. 후송에 맞서려면 하나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내가 혀를 차자 외무대신 임규식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승평제의 형제들이 왕위에 있을 때는 그래도 사이가 원만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점차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하여….”
선제 장형운이 너무 오래, 너무 독재적으로 통치한 게 모든 혼란의 근원이었다. 장형운이 태자 책봉도 최대한 미루고, 책봉한 뒤에도 권력을 승계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탈락한 아들들을 억누르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의 혼란이다.
“허허, 그래서 봉건이란 할 게 못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혀를 차는 것밖에 할 게 없다. 본래 주나라 때부터 비롯된 봉건이란 황실 일가 세력을 제후로 봉하여 천자를 지키는 친위세력으로 삼는 것인데, 시간이 흐르고 핏줄이 더 멀어지면 남이나 마찬가지인 관계가 된다.
지금 서나라만 해도 그렇다. 장형운이 권력도 물려주지 않으면서 너무 장수한 탓에, 기껏 분봉을 받은 번왕 중 연장자가 너무 많았다. 황제보다 나이가 많은 운남왕과 광동왕이 바로 그 사례다.
황제보다 12세나 연상이던 서장자, 운남왕 장원교는 상희와 같은 해에 노환으로 죽었다. 향년 64세였으니 그럭저럭 살 만큼은 산 셈이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장남 장장령은 애초에 대놓고 성도로부터 운남을 독립시키려고 하는 반란분자였다. 그나마 부친인 장원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움직임을 자제하더니, 운남왕의 자리에 앉자마자 노골적으로 성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거부하고 영지 확장에 골몰했다.
“광동왕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가?”
“예, 폐하. 자리보전하고 누워있기는 하나, 아직 살아있기는 하다고 하옵니다.”
광동왕 장원소는 왕으로 책봉되자마자 실무는 대부분 세자 장장익에게 위임하고, 자기는 황자 시절처럼 주색을 즐기는 일에만 열중했다. ‘호왈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자기와 잘 맞는 신하들과 함께 황음무도한 나날을 보내면서 진정으로 속세를 벗어난 삶을 누렸다.
이런 방탕한 생활의 대가는 곧 찾아왔다. 왕으로 봉해진 지 8년째가 되던 계묘년(1723), 그때도 장원소는 침실에 누워 궁녀들을 끼고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궁녀의 배 위에서 한참 헉헉거리며 방아를 찧던 중에 갑자기 벌거벗은 채로 풍을 맞았다지 뭔가.
“입을 놀려 말은 할 수 있으나,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죽은 태화제보다는 상황이 나은 셈이지요.”
후금 태화제, 와극달은 인종(仁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참 흔한 묘호라서 그냥 인종이라고 부르면 그게 어느 인종인지가 구분이 잘 안 되므로, 그냥 태화제라고 부를 때가 더 많다. 그쪽이 더 익숙하기도 하고.
와극달이 인종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과연 내 묘호는 뭘지 잠시 생각해봤다. 이번 생에서 내가 한 일이 꽤 많다 보니 ‘조(祖)’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묘호로 조를 받은 임금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선대 임금 17명 중 추존된 사람까지 합쳐서 9명이 조를 받았다.
태조, 세조 뒤에 장조, 선조, 그리고 선조 때 추존한 인조, 명조, 경조, 여기에 대기근을 이긴 공으로 열조와 숙조. 황이(인조)부터 무려 7연속으로 조를 받았다.
부황한테부터라도 종을 썼으면 좋았겠지만, 형황은 효심이 너무 지극해서 부황에게 조를 바쳤다. 그리고 나는 형황을 속인 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내게 제위를 물려준 게 고맙기도 해서 그 빚을 갚는 심정으로 형황의 묘호를 ‘종’이 아니라 ‘조’로 했다.
묘호 인플레가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 묘호는 종으로 하라고 내가 죽기 전에 은이 데리고 진솔하게 대화 한번 해야겠지 싶다.
어쨌든 내 묘호는 아직 나중 이야기고, 지금 챙겨야 하는 건 서나라 쪽 사정이다.
“부왕이 풍을 맞아 쓰러져 운신을 못 하게 되자, 세자 장장익은 진짜로 광동왕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든 권한을 자기 손에 쥐고 있으니, 굳이 부왕을 몰아낼 필요도 없어졌지요.”
우리 조정에서는 실권을 쥔 장장익이 몇 번씩이나 후송의 공격을 격퇴한 전공을 바탕으로 부왕을 폐위하고 자기가 즉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장장익은 머리 아래는 시체나 마찬가지 신세인 부왕을 그냥 왕위에 앉혀두고, 자기는 섭정으로서 통치를 이어나갔다.
이는 당연히 부왕의 존재가 자신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성도에 있는 장원검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우리한테 조문 사절을 보내고, 조정과 으르렁거리는 것도 실상은 모두 장장익의 주도하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장원소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본래 광동왕은 황제인 동생과 이토록 노골적으로 다투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자는 그동안 자기가 세운 전공에 자만하여 광동을 혼자 이끌어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뜻이 완연합니다.”
4년 전에 후송이 광동을 공격했을 때도 조정에서는 병사 한 명 보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장장익은 별다른 도움 없이도 적을 몰아냈다. 그만하면 혼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가 없잖은가.
“광동국 세자가 어리석은 것이다. 황제를 거스르는 그 양태를 보고 인접한 땅을 다스리는 귀주왕이나 광서왕이 자기를 역도로 보고 토벌에 나서면 어쩔 셈인가. 그리고 그 틈에 송군 수십만이 또 삼로(三路)로 쳐들어오면 어쩔 셈인가.”
삼로라고 해봐야 별것 아니다. 위에서부터 형주 방면, 복건 방면, 해로의 세 가지 길이다. 여기에다 서나라 조정과 조정 측 번왕들의 토벌군이 서쪽에서 진격해 들어온다면 말 그대로 사면초가가 된다.
과연 장장익 그놈이 어떤 선택을 하려나. 일단은 나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신하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는데, 조정에서는 그놈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우리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우리한테 이익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