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78
3부 496화
원래 역사에서 이 시기 프랑스와 스페인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건 혈연 덕이 크다. 아무래도 같은 부르봉 왕가니까. 이쪽에서는 그 혈연이 없어진 탓으로 양국 사이가 조금은 소원하리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동맹을 맺고 전쟁을 한다는 쉽지 않은 일을 해치웠다.
‘역시 국제관계에서는, 특히 이익이 눈앞에 있을 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거지.’
결정적인 변화 요인은 역시 스페인 왕가가 교체된 데 있는 듯하다. 합스부르크 통치하의 스페인은 오스트리아와 협력해서 양쪽에서 프랑스를 협공하는 존재였지만, 비텔스바흐 왕가? 스페인에서는 바비에라(바이에른) 왕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 가 들어선 스페인은 이제 합스부르크 세력과 적대하는 사이다.
스페인 왕위는 놓쳤지만, 어쨌든 대프랑스 포위망은 깨진 셈이니 프랑스로서는 이득이다. 게다가 반합스부르크 전선에 동참할 수 있는 새 후보국이 생겼다. 직접 싸움에 나설 수도 있고 국왕 호세 페르난도 1세의 출신국인 바이에른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런 탓으로 이번에 양국이 동맹을 맺고 서반아의 옛 영토를 되찾으러 나선 것이옵니다. 공동의 적, 도이치 황제를 공격하면서 말입니다.”
프랑스군은 육로로 네덜란드와 밀라노를 공격했다. 스페인은 함대를 동원해서 사르데냐를 먼저 함락한 뒤 제노바를 거쳐 밀라노로 진공했다. 제노바는 수백 년 동안 스페인과 가까운 나라였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다. 길을 여는 정도는 당연히 해주었다.
프랑스가 스페인의 밀라노 탈환을 거저 도와줄 리는 없다. 아마 오스트리아가 차지한 옛 스페인령 네덜란드를 프랑스가 갖는 것, 그리고 루이 16세의 숙부인 앙주 공작이 ‘필리포 1세’로 왕위에 올라 다스리는 양 시칠리아 왕국을 인정하는 게 대가겠지.
“아무리 서반아가 상황이 급하다고 해도 밀라노 하나를 되찾는 대가로 나폴리와 내달국을 전부 불랑국에 넘겨주는 건 좀 과하지 않겠습니까?”
좌참정대신 김여홍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서반아로서는 셋 다 이미 빼앗긴 땅이다. 그중 하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나머지 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과 네덜란드가 참전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을 거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있는 오스트리아군이 생각보다 잘 버텼다. 프랑스군이 지지부진한 진격 속도를 보이는 사이에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이 달려왔고,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영국이 참전하면서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프랑스 식민지와 함대는 또 영국 해군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돈을 벌어서 전비를 조달해야 하지만 안전하게 바다를 오갈 수 없어서 돈을 벌기 힘든 상황이 된 거다.
우리 체면을 생각했는지, 영국 해군은 대남도 이북 해역에서 프랑스 함선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자기네 영역인 동남아 쪽에서만 잡아도 충분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바예른(바이에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가?”
“불랑국이 참전을 종용하고 있는 모양이긴 하나, 선제후가 동참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엠마누엘은 호세 페르난도 1세의 친아버지다. 아들을 도와 참전하면서 뭔가 이득을 노릴 법도 하긴 하지만…지난번 전쟁에서 바이에른이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지난번 전쟁 당시, 바이에른은 프랑스군과 합스부르크군 양쪽에 짓밟혔다. 합스부르크는 바이에른을 프랑스군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냈지만, 그 실상은 점령군이나 마찬가지였다. 합스부르크군의 징발과 프랑스군의 약탈은 이름만 다를 뿐 실상은 똑같았다.
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바이에른이 그때 입은 피해는 아직도 복구가 다 안 되었다고 들었다. 그런 고생을 겪었으니, 아무리 아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해도 싸우고 싶을 리 없다.
게다가 막시밀리안은 스페인 왕위에 이어 신성로마제국 제위도 자기 가문에서 차지하려고 노리고 있다. 둘째 아들인 카를 알브레히트를 아들이 없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1세의 막내딸 마리아 아말리아와 결혼시켰고, 비텔스바흐파 선제후들에게 선거운동도 하고 있다.
이처럼 ‘평화적’으로 신성로마제국 자체를 차지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막시밀리안이 지금 전쟁에 뛰어들 까닭이 없다. 중립을 지키는 게 최선이다.
“짐이 그 입장이라고 해도 지금은 아무 편도 들지 않을 것이다. 그게 더 이득이 아닌가.”
스페인 쪽에 확고한 명분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스페인 측은 위트레흐트 조약을 뒤집겠다고 전쟁을 일으켰으니, 꼭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불랑국은 주된 목표인 내달국 남부는 얻지 못했으나, 밀라노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적어도 한 방면에서는 승리를 거둔 덕분에 새 섭정의 위신도 올랐습니다.”
미시시피 회사 사건을 이용해 조카 겸 사위인 베리 공작을 밀어내고 섭정 자리를 차지한 오를레앙 공작은 이번 전쟁에서 거둔 성과로 자기 입지를 다졌다. 바다에서 난관을 좀 겪고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해전은 늘 지는 거였으니까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오를레앙 공작은 전쟁 지도 외에도 아주 성실한 태도로 프랑스를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세기에도 프랑스가 유럽 최강국이라는 지위를 지키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프랑스쯤 되면 그 지위에서 떨어지기도 쉽지 않긴 하지만.
불쌍한 사람은 베리 공작이다.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섭정 자리를 장인에게 빼앗겼고, 그 뒤로 속이 상한 나머지 술과 사냥으로 나날을 보낸다고 들었다. 아직 자식도 없다는데, 그러다가 폐인 돼서 대 끊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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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아예 없지는 않은 ? 친구 아들이니까 ? 베리 공작이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대를 잇는 일이다. 무종 시절, 후손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해서 경성군이라는 양자로 대를 이어야 했던 건 별로 즐거운 기억은 아니다.
내가 계속 현대에 살았으면야 대가 끊어지면 끊어지는 대로 별 느낌 없이 살았겠지. 아예 결혼을 못 하더라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왕조 시대고, 나는 군주다. 나라가 안정되려면 후계자가 꼭 필요하다.
다만 현대에서 내가 좋아하던 어떤 소설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군주제는 혈연으로 권력을 물려준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어떤 형편없는 후계자가 뒤를 이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 위험을 최대한 줄이려고 세자/태자를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교육하는 거고.
“그래,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고?”
모처럼 동궁을 찾아가서 손자를 앞에 놓고 질문을 던진다. 목소리는 부드러워지고 어조는 꿀을 바른 듯 달콤하다. 믿기 어렵지만 내 목소리가 맞다.
“장조께서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결단을 내리셨는가에 관해 배웠습니다. 환난이 연이어 벌어진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태평성대라고 하겠습니다.”
황태손 영이. 정유년(1717)생이니까 만으로 아홉 살이다. 개구쟁이 기질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똑똑한 부모를 둔 덕인지 무척 영리하게 자랐다. 얼굴도 예쁘게 잘생겼다.
얼굴만 보면 서형(庶兄)인 원이 쪽이 더 잘생기긴 했다. 모친인 안나가 혼혈이니 원이는 러시아 피가 ¼ 섞인 쿼터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잘생긴 혼혈 미남으로 자랐다. 올해 나이 열세 살, 사나이다운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시기다. 이제 슬슬 혼처도 살펴야지.
하지만 머리는 확실히 영이 쪽이 더 좋다. 머리가 좋고 이해도 빠르다. 기억력도 좋다.
황태자비 한씨는 영이를 낳고는 아이를 더 낳지 못했다. 태자의 하나뿐인 적자로서 대한 천지에서 가장 귀중한 아이가 되었지만, 한씨는 이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지는 않았다. 내 조언…아니, 고백이라면 고백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귀하고 소중하다고 해서 매를 아끼고 무조건 싸고돌면 아이를 망치는 법이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매를 들어라. 이 아이가 짐의 소싯적처럼 되어야겠느냐?’
내가, 아니 성친왕이 그토록 망나니였던 건 모후의 잘못된 양육 방침 탓이 컸다. 막내가 아무리 귀여워도 그따위로 키우면 안 됐다. 내 후손들이 예법에 맞지 않게 굴면 다 지 애비 혹은 할애비를 닮아서 그런다는 소리를 듣게 만들어놓지 않았는가.
그나마 은이는 어릴 때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얘가 대궐 밖에서 자라서’라는 핑계가 통했다. 사실 대궐 밖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바다 건너 미주에서 살다가 왔으니, 대궐 안에 살면서 법도를 지켜야 하는 생활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궁에서 태어나 자란 영이에게는 그런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흠잡을 데 없는 황태손으로 자라도록 한층 더 관심을 기울였다. ‘역시 폐하의 핏줄’ 따위 말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장조께서 겪으신 여러 사건 중 뭐가 가장 힘드셨을 것 같더냐?”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 부드럽게 물었다. 엄한 역할은 교육을 맡은 강서원(講書院) 스승과 부모에게 맡긴다. 할아버지인 내 역할은 부드럽게 품어주고 예뻐해 주는 거다. 물론 적절한 선은 지켜서. 그게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 몫의 역할 아니던가.
‘아바마마, 소자에게도 태손을 대하듯 해주어 보시옵소서.’
‘태자는 이 아비가 어릴 적 얼마나 자애롭게 대해주었는지 다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짐이 태자에게 기울인 사랑과 관심은 지금 태손에게 해주는 것보다 스무 배는 되었느니라.’
은이가 진심으로 불만을 품은 건 아니었으리라. 그때는 술 좀 적게 먹으라고 나한테 볶인 뒤였으니 저런 투정을 했겠지. 그래도 요즘은 술을 아주 끊지는 않았어도 많이 줄였다. 술 때문에 안 좋은 꼴로 죽은 표트르를 본 탓인가 보다.
정말이지, 은이 어릴 때는 정말 즐겁게 살았었다. 만약 네 번째 생에서도 황실에 태어나 살아야 한다면, 그때 미주에서처럼 상희와 애들과 함께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아도 좋겠다. 끝까지 제위에 오르지 않고 말이다.
“음…할바마마, 소손이 생각하기에 말이옵니다, 장조께서 가장 힘드셨을 때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이들은 아직 어른들하고 사고 구조가 다르니까. 빨리 대답해 보라고 다그쳐 봐야 솔직하지 않은,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나 듣게 된다.
“적괴 신장과 싸워 평양군이 전사하고 오위가 패배했을 때였다고 생각하옵니다. 장조께서 쓰러진 평양군 이하 장졸들을 애도하시느라 며칠을 통곡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소손도 정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러하냐.”
하필이면 그 순간을….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절망에 빠졌던 건 분명하다.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신립과 오위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너무도 허망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떠올리기만 하는데도 당시에 앓았던 위경련이 재발하는 기분이다.
“그럼, 장조께서 가장 기쁘셨을 때는 언제일 것 같으냐?”
신립과 오위군의 붕괴는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주제인지라, 살짝 대화 방향을 바꿨다. 영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별 의문 없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스승님들은 경인년에 왜적을 완전히 쫓아내셨을 때, 그리고 을미년에 충무대왕이 왜국에 건너가 원흉을 완전히 쓰러트렸을 때를 장조께서 가장 위대하셨던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할바마마, 제 생각은 조금 다르옵니다.”
경인왜란의 책임은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 있다는 게 현재 우리 대한 조정 및 학계의 공식 입장이다. 도쿠가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대일외교에서 장애를 줄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럼 네가 보기에는 언제가 가장 기쁘셨을 때로 보이느냐?”
영이가 잠시 더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이미 생각해본 주제인 듯, 표정이 달랐다.
“무자호란 때라고 생각하옵니다. 처음 친정에 나서셔서 해서부를 멸하시고 강동 전역을 완전히 우리 강역으로 만드셨을 때 말이옵니다.”
강동은 행정구역과는 별개로 북방에서 사용하는 지리적 명칭이다. 양강 이북에서 흑룡강 이남의 북방 땅은 강줄기를 경계로 삼아 네 지역으로 구분한다. 요하 서쪽은 요서, 요하와 목단강 사이는 요동, 목단강과 우수리강 사이는 강동, 우수리강 동쪽은 극동이다.
“왜 그때 가장 기쁘셨으리라고 생각하느냐?”
“해서부를 멸함으로써 우리 북방의 모든 화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옵니다. 만약에 왜란이 일어났을 때 해서부가 북쪽에서 이에 호응했다면 정말로 큰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 당시는 장조께서 미처 깨닫지 못하셨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정말 뿌듯해하셨을 겁니다.”
“태손이 정말 생각이 깊구나.”
대답이 너무 똑똑해서 나도 모르게 영이를 꼭 안았다. 그때 신하들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훗날 왜란이 터졌을 때 배후를 걱정할 필요가 줄어들었다고 안심했었으니 말이다. 누르하치를 완전히 믿지 못해서 걱정을 아예 안 하지는 않았지만.
“네 말이 맞는다. 장조께서도 정말 뿌듯해하셨을 거다. 네가 정말 영특하구나.”
칭찬을 계속하는데 시계탑에서 4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1시간이나 영이와 이야기를 하며 보낸 셈이다.
“네 스승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강서원으로 돌아갈 때가 되긴 했구나.”
“예, 할바마마.”
영이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공부하러 가기 싫다는 태도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음, 오늘은 공부는 그만하고 이 할애비랑 말이나 타면 어떻겠느냐?”
“좋사옵니다!”
영이가 뛸 듯이 기뻐했다. 나도 흐뭇하게 웃으며 내 내관을 딸려서 옷 갈아입고 사복시로 오라고 보냈다. 동궁전 내관은 혹시 강서원 스승들한테 걸리면 꼼짝 못 할 수도 있으니, 내 시중을 드는 대전 내관을 보내야 어명을 내세워 영이를 무사히 데려올 게 아닌가.
“아니. 그렇게 하면 스승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여봐라, 성 내관. 그대가 강서원에 가서 짐이 태손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가려 하니 오늘 수업은 그만 파하라고 확실하게 전하여라.”
“예, 폐하.”
다른 내관에게 두 번째 지시를 내린 후에 강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을 타려면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영이와 함께 가는 승마니까 무슨 말을 타면 좋을지 생각했다. 역시 볼가가 좋겠다. 전에 표트르가 총값으로 보내준 바시키르 말 중에 골라 뽑은 내 어마(御馬) 말이다.
볼가는 거친 성정에 넘치는 정력으로 새끼도 백여 마리는 족히 낳았는데, 그놈도 이제는 성질이 많이 죽었다. 이제 근 스무 살이 되고 보니 제 놈도 이제 기력이 쇠한 모양이다.
나도 이젠 체력이 옛날 같지 않으니, 늙어서 순해진 볼가 같은 말이 좋다. 아직은 승마가 서투른 영이를 데리고 나가는 길이니 더더욱.
그러고 보니 영이가 탈 망아지도 볼가의 손자로구나. 말이나 사람이나, 조손간에 즐거이 나들이나 나가 보자. 양력으로 10월, 느긋하게 말을 달리기는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