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38
1부 138화
– 1 –
“온하위 추장 김주성가(金主成可)가 상경하고 싶다 조른다 하니 어쩌면 좋겠소?”
장계 내용은 다행히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여진족들이 강을 넘어 대규모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라도 보낸 줄 알고 식겁했는데,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김주성가는 선대왕 시절부터 잡아간 우리 백성을 돌려보내거나 적도들의 침입에 대해 자주 첩보를 제공해온 만큼,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줄 필요는 있사옵니다.”
온하위(溫下衛)는 압록강 일대에 거주하는 여진족 소부족이다. 본래는 함경도 경흥 일대에 거주하던 골간올적합(骨幹兀狄哈)의 일파인데, 성종 때에 압록강 유역으로 이주하였다. 지금은 100호 정도가 폐4군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온하위가 압록강 일대로 이주해 온 것은 딱 20년 전 신이 평안도 절도사로 재임하고 있던 시절이옵니다. 그 뒤로도 말썽은 거의 일으키지 않고 일관되게 충심을 보여 왔으니, 전하께서 작은 벼슬을 내려주시어 포용하는 기색을 보여주셔도 충분하리라 보이옵니다.”
특진관 이극균이 차분하게 아뢰었다. 이극균은 진짜 갑자사화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폐비 윤씨 퇴출 때 반대하지 않은데다, 이세좌의 숙부라 연좌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그것으로 끝났다.
이극균은 자신이 역적의 친족이라며 스스로 사직했다. 이해는 하지만 나는 아직 이극균이 필요했다. 건강 문제로 사직한 영의정 성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만큼 유능하고 문무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두 사람을 모두 특진관으로 임명해서 다시 조정으로 불러왔다. 내가 굳이 부르지 않으면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는 조건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두 사람을 다 불러서 의견을 들을만한 날이었다.
“김주성가는 20년 전 황성 앞에 와서 ‘조선의 울타리가 되겠다’고 청했던 김유리개(金劉里介)의 아들입니다. 그때 조정에서 논의 끝에 거부하자 폐4군 지역으로 들어가 정주했습니다.”
황성(皇城)은 고구려의 옛 수도가 있었던 집안(集安)을 가리킨다. 집안은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옛 영토지만, 지금은 일단 여진족의 땅이면서 명목상으로는 명나라 땅이다.
20년 전 조정에서는 야인인 김유리개를 믿을 수 없다면서 황성에 살면서 조선의 울타리가 되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앞장서서 반대했던 이들 중 하나가 이번에 처형된 윤필상이었다.
“신이 지난 20년 동안 살핀 바, 온하위의 야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땅이 우리 조선 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베푸신 은혜 덕분에 평안하게 살고 있음도 알고 있고, 그 은혜를 갚고자 꾸준히 야인들의 동태를 알리거나 우리 백성을 구출해 왔습니다.”
그동안 나는 온하위를 비롯해 폐4군 지역에 들어와 사는 여진 부족들에게 상당한 혜택을 주었다. 흉년이면 곡식을 보태주게 하고, 필요로 하는 농기구나 의복도 제공해 주었다. 대신에 세금삼아 초피(貂皮, 담비가죽)를 내도록 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일부 신하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들을 우대해준 건 유사시에 써먹기 위해서였다. 이극균이 말했듯이 압록강 너머 야인들의 정세를 살피는 경보기 역할도 맡기고, 필요할 때 병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지난번 원정 때도 온하위 전사 일부가 길안내를 맡았다. 올해 초 소규모 원정 때도 나서서 함께 싸웠다. 장차 벌일 대규모 원정 때도 한 몫을 당당히 하리라고 생각한다. 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는 거다.
다만 유감스러운 일은 금산적하를 잡는 데는 이놈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썩을 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습격할 테니 대비하라’는 정보는 가져와도 ‘놈이 어디에 숨어 있으니 가서 잡으라’는 정보를 가져오는 일은 없었다.
“허나 온하위는 건주위로부터 노예 취급을 받고 있지 않느냐. 저들이 달라고 해서 벼슬을 내려주면 건주위가 불만을 품거나 더 높은 요구를 하지 않겠느냐?”
온하위는 40호 정도 되는 중소부족이었다. 폐4군 지역에 자리를 잡은 후, 6진 지역에서 그 뒤를 따라 조금씩 들어오는 이주민들을 받으며 수를 불렸으나 아직도 100여 호에 불과했다. 세력이 적으니 건주위로부터 천대받는 것도 당연했다.
“선대왕 시절에 그 아비 김유리개에게 만호 벼슬을 내린 적이 있으니, 김주성가에게도 만호 정도는 내리셔도 될 것이옵니다. 더구나 저들은 지금 한세충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서라도 만호 벼슬 정도는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한세충은 조선 사람이다. 본래 삼수에 살았으나, 여진족에게 잡혀 끌려가더니 그대로 편을 바꿔 여진족들과 한패가 되어 버렸다. 놈이 길잡이가 되어 여진족 습격대를 끌고 국경지대를 휩쓸고 돌아다닌 지 벌써 5년째였다.
“그렇다면 상경하고 싶다는 소원도 들어줌이 가하겠는가? 대국에서 트집을 잡지 않을까?”
“신 특진관 성준 아뢰오. 온하위가 비록 대국 천자로부터 개설을 허락받은 위이기는 하나, 지금 저들이 거주하는 땅은 분명 우리 땅이고 저들은 우리의 번호(藩胡)이옵니다. 대국에서도 저들에 대해서는 크게 통제하지 않으니, 불러서 상을 주심도 가하리라 보이옵니다.”
음, 하긴 듣고 보니 그렇겠다. 내 입장에서 건드릴 수 없는 여진족은 명나라 땅 안에 있는 놈들이지, 밖에 있는 놈들이 아니다. 엄연히 내 땅인 압록강 이남에 사는 놈 정도야 원한다면 언제든 부를 수 있어야지.
“좋다. 교서를 보내 김주성가에게 상경해도 좋다 이르고, 벼슬과 상을 내리면서 금산적하와 한세충을 잡는 데 더 힘을 내도록 격려하는 자리로 삼겠다.”
내가 영토를 확장하려고 생각하는 쪽은 금산적하가 주로 활동하는 압록강 방면이 아니다. 언젠가 명나라가 흔들리면 그쪽도 욕심을 내 보겠지만, 일단은 두만강 방면이 목표다. 성종이 토벌하려다 끝내 제대로 치지 못했던 니마차올적합(尼麻車兀狄哈)이 표적이다.
그쪽을 공략하는데 집중하려면 금산적하를 쫓는 군대를 따로 내기는 곤란하다. 우리 대신 온하위가 금산적하 추적에 나서준다면 훨씬 상황이 좋아진다. 말 그대로 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게 되니까 말이다.
“내년 가을에는 군사를 낼 것이니, 그 전에 금산적하와 한세충을 붙잡아서 평안도 일대를 안정시키도록 하라. 우리 땅이 노략을 당하는데 어찌 원정을 가겠느냐.”
1년이면 원정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올해 수확은 괜찮은 편이니까, 군량 조달에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고 보니 북벌계획을 한 번 점검하긴 해야겠네.
– 2 –
두만강 방면으로 나갈 아군 병력은 2만이다. 전후방에서 동원한 보명 1만에 역시 전후방을 털어 조달한 기병 8천, 우리 번호인 여진 부족들에게 징발할 기병 2천. 보병 중에서 조총병은 3천 명을 예정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조총 4천 자루를 비축했으니 이 정도는 여유롭다.
그동안 5위 내에 각각 조총영을 편성하긴 했으나 실제로 총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설명하기 좀 난감한데…이게 일단 총을 쌓아놓고 나니까 나눠주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백 자루 만들었을 때는 하나도 안 아깝던 총이, 천 자루가 되니까 욕심이 생겼다.
‘어차피 언제 전쟁 시작할지 계획도 안 나왔는데 미리 안 줘도 되지 않을까? 총은 훈련도 금방 할 수 있잖아. 원정 나갈 날짜 나오면, 그때 가서 총 지급하고 훈련 시작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창고에 금을 쌓아 놓고 혼자 좋아하는 구두쇠 같은 행동이었다고 밖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내가 다 쏠 것도 아니면서 3천 자루나 되는 총을 창고에 넣어두고 가끔 가서 뿌듯하게 들여다보기만 했으니까.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창고를 헐 때가 왔다. 출정 일정도 대략적이지만 잡혔으니, 총통영 병사들에게 한 자루씩 나눠주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켜야 할 참이다.
“도총관, 총통영 군사 3천에게 조총을 지급하고, 내금위 군사 3백을 빼내어 저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게 하라.”
“예, 전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조총병들에 대한 훈련은 박원종이 책임지도록 했다. 박원종은 지난번 출병에서 여진족들과 총을 가지고 싸워 보았다. 여진족을 상대로 한 실전에서 총이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유용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3백보 거리에서 사람을 맞힐 수 있어야 한다. 잊지 말라.”
“내년 가을에 출정이니 시간은 충분합니다. 4년 동안 총을 다루어온 내금위 무사들만큼은 못할지 몰라도, 싸움터에서 자기 몫은 충분히 할 겁니다.”
두만강 이북에 있는 여진족들은 힘이 약하다. 건주위는 정예 기병으로만 1만을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두만강 이북에 사는 여진족들이 모을 수 있는 전력은 기껏 기병 2천, 보병 5천 정도가 고작이라고 알고 있다. 그나마 우리가 진공하면 그 병력을 집결시키지도 못하리라.
훈련받은 조총병 수백명이 일제사격을 가하면, 여진 기병 백 단위 정도는 순식간에 바닥에 나뒹굴게 될 거다. 화살보다 훨씬 멀리, 정확하게, 강력한 위력으로 탄환을 날리니까.
야인들이 결전을 걸어 준다면 도리어 고맙겠지만 그렇게 나오지는 않을 듯하다. 저들이라고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다. 세 배나 되는 아군에게 섣불리 덤빌 리가 없다. 저들이 늘 그러듯이, 산과 숲에 숨어서 우리가 돌아가기만 기다릴 게 분명하다.
성종 때 같은 길로 실시한 원정에서는 바로 그 수에 걸려들어 겨우 여진족 9명밖에 죽이지 못하고 돌아오는 엄청난 치욕을 겪었다. 그때도 2만 명이나 동원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목단강까지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주요 부락 위치는 그동안 우리 편에 있는 여진족들을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해놓았다. 사람과 가축은 숨을 수 있겠지만 집과 밭은 피할 수 없다. 모조리 태우고 빼앗는다. 그쯤 되면 항복하지 않을 수 없겠지.
한번 부수고 끝낼 것도 아니다. 한번 제대로 치고 나서 조선군 주력은 일단 철수하겠지만, 동청례와 여진군단은 계속 약탈원정을 벌이며 압박을 가하게 한다. 함경도 기병 약간도 남겨 계속 공격을 가하면 저들은 궁지에 몰리게 되리라.
도망치는데도 한계가 있다.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시달리다 보면 두만강과 목단강 사이에 사는 각 부족들은 정식으로 조선에 항복하든가, 명나라 영토로 도망가든가 둘 중 하나밖에 길이 없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내게는 상관없다.
전자가 되면 세금을 받으며 천천히 저들을 조선인으로 흡수한다. 후자가 되면 사람을 새로 북으로 보내 비어있는 북쪽 땅을 개척하게 한다. 둔전을 갈고 수비대를 주둔시키면, 여진족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게다.
“하지만 전하, 신은 아직 우려가 됩니다. 과연 명나라가 가만히 있을는지요.”
박원종이 우려를 표했다. 아직까지 이번 출병에 걸린 내 진짜 목적, 두만강 이북에 소재한 여러 부락을 아예 정복한다는 목표를 알고 있는 건 내 스터디그룹 멤버들뿐이었다. 조정에서 논의에 참가한 중신들은 지난번에 그랬듯이 한번 밀고 갔다가 돌아온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압록강 이북 건주위 지역이라면 모를까, 올적합이 거주하는 두만강 북방은 명나라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저들이 요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요동을 차지한 이가 힘을 모아 중원 공략에 나설까봐 두려워하는 까닭인데, 우리 조선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 않으냐.”
명나라를 정복한다고 나설 만큼 나는 미치지 않았다. 명나라 해안에 대한 해적질 같은 걸 시도할 생각도 없다. 그런 정신 나간 시도를 했다간, 필연적으로 죽이고 또 죽여도 밀려오는 명나라 군대를 상대로 싸워야 할 테니까 말이다.
명나라를 상대로 싸운다면 전투에는 이길지 몰라도 전쟁은 분명 지고 말 거다. 지금도 명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몽골은 싸우다 불리하다 싶으면 넓은 초원으로 도망갈 수 있지만, 우린 도망갈 곳도 없다. 이 한반도 안에서 가봤자 빤하지.
최악의 가능성도 있다. 자칫하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나를 붙잡아서 명나라에 넘기려고 들지도 모른다. 무도한 임금을 징벌하려고 천병(天兵)이 왔으니, 마땅히 도와야 한다고 나서는 미친놈이 있을지도 모르지.
저런 거지같은 일이 터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명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선제공격은 절대로 안 된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는데도 저놈들이 쳐들어온다면야 그때는 하늘에다 운을 맡기고 싸워야겠지만 말이다.
“지나친 근심은 할 필요가 없다. 두만강 북쪽에 있는 땅은 명나라에서 멀고, 거주민도 많지 않다. 우리 조선이 그 땅을 영위한다 하여 대국에서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 역시 노골적으로 당장 그 땅이 우리 영토라고 선포하지는 않는 편이 좋겠지만 말이다.”
형식상으로 명나라 영토인 땅을 병합하겠다고 통보하면 전쟁하자는 소리밖에 안 된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뭉개고 앉은 다음, 실질적으로 지배하면 충분하다. 명나라에서 추궁하면, 놈들이 하도 우리 국경을 털어 대는 바람에 군사를 냈다고 해명해야지.
“예, 전하. 그럼 군사들을 조련하는데 힘쓰겠나이다.”
내 말을 들은 박원종이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박원종을 내보내고 혼자 남게 되자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 모든 고뇌가 밴 듯 진하고 깊은 한숨이었다.
박원종에게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막상 전쟁이 눈앞에 다가오자 긴장이 되었다. 과연 내 생각대로 쉽게 이길 수 있을까? 동만주를, 연해주를 정복할 수 있을까?
아직 박원종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두만강 이북에 위치한 올적합을 제압하고 난 뒤에는 연해주도 정복할 계획이다. 그쪽에 사는 원주민들은 뼈로 도구를 만들며 강에서 생선을 잡아먹고 그 껍질로 옷을 만드는 수준으로 산다 하니, 제압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동만주와 연해주에는 미래에나 캐서 쓸 철과 석탄 말고도 엄청난 자원이 있다. 강과 바다에 엄청난 물고기가 있고, 숲에는 목재와 산삼, 무진장하게 생산되는 모피가 있다. 호수에 사는 조개는 민물진주를 만들고, 강바닥에서는 사금을 캘 수 있다. 바다를 건너면 북해도다.
몇 년 고생하면 그 넓은 땅, 저 많은 자원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 명나라 반대가 좀 신경 쓰이긴 한다만, 조공 액수를 올린다거나 명나라 전쟁에 군대를 파병해준다든가 하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 거다. 본의 아니게 이국으로 떠나야 할 군사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