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05
3부 523화(14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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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한도 많은 분야에서 본래부터 가진 능력에 더해 외부의 영향을 받아 발전 역량을 축적해왔다. 장조 시절 예수회를 통해 들여온 여러 신대륙산 농작물과 펠리페 2세가 보내준 유럽산 가축, 기술자들이 그한 예다.
사실….만렉제에 이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 2호였던 펠리페 2세를 생각할 때마다 필리핀을 뺏은 게 조금 미안해진다. 필리핀을 먹을 때야 북태평양 제국을 세울 생각에 눈이 뒤집혀서 펠리페 2세의 은혜 같은 건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니…..
명나라가 망해도 내버려 두라고 한 거야 어차피 명나라가 망할 나라였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페인령 필리핀은 놔두면 20세기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에 더 미안하게 느껴지나 보다. 하필이면 펠리페 2세의 이름이 붙은 영토라는 점도 있겠고.
뭐, 지금 와서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긴다고 해서 20년 전으로 돌아가 전쟁을 포기하거나 필리핀을 반환할 것도 아니니까 – 준다면 스페인이 넙죽 받기는 하겠지 – 이런 비생산적인 고민은 관두자. 그러느니 마포성당에서 지내는 위령미사에 예물이나 보내주는 게 낫겠다.
마포성당에서 아직도 펠리페 2세를 위한 위령미사를 드리는 건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다. 여전히 예수회에는 스페인계 성직자들이 많고, 도성에서 거주하는 스페인계 인구의 주류가 펠리페 2세 시대에 이주한 이들이라서다.
이들은 이미 백여 년 이상 조선에서 살아온지라 필리핀에서 새로 편입된 스페인인들과는달리 혼혈이 많이 진행됐다. 그래서 스페인인보다는 한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지만, 그 색채는 아무래도 좀 남아있다.
조선 초기에 개성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그 복색과 종교를 금지하고 강제로 조선인들과 혼인하게 해서 그 특색을 업애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달라지긴 했다. 억지로 동화시키지 않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놓아두니까.
어쨌든 이 문제는 그만 묻어두고 본래 화제로 돌아가면…우리 대한은 그때부터 받은 외부 지식을 화라용해서 스스로 발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유럽에서 고문관을 데려와 배우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우리가 어느 정도 기반이 있어야 제대로 소화할 게 아닌가.
계미남변 이후 유럽으로 오가는 뱃길이 재개되면서 이득을 본 이들은 교역으로 돈을 버는 상인들만이 아니다. 유럽 학계와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게 된 학자들도 큰 득을 보고 있다. 프린키피아를 주문해서 볼수 있는데 논문과 학회지가 안 오갈 이유가 없다.
다만 자료가 오가는 데 시차가 있다 보니, 연구 주체나 방법에서 유럽에서 연구하는 최신 트렌드보다는 다소 뒤처지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몇 년 정도 늦게 따라간다고 조바심을 낼 이유는 전혀 없다. 하다 보면 그것도 따라잡을 텐데 무슨 걱정인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아바마마. 우리 대한의 학자들은 일단 방향을 정하면 큰 성휘를 얻는 일이 흔하지 않사옵니까.”
정친왕, 권이가 부드럽게 답했다. 희고 부드럽던 손이 약품 때문에 얼룩덜룩하게 물들고 여기저기 흉터와 굳은살이 박인 걸 보니 안쓰럽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귀한 자식이 손이 저 지경이 됐는데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만져봐서 알지만, 화학에서 다루는 약품들은 독성이 매우 강하다. 주의해서 다루고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염려치 마시옵소서. 환기도 잘하고 있사옵고, 요즘은 장갑도 꼭 끼고 있사옵니다.”
권이가 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략 10년쯤 전부터다. 혜련이와 함께 진위사에 가고 싶다는 희망을 거부당하고 나서였으니까, 올해가 10년째가 맞을 거다.
시장원에서는 아무래도 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므로 그전에 권이가 화학 같은 학문을 배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유럽에 못 가는 대신 유럽 학문을 공부하기로 했는지, 난데없이 화학을 공부하겠다면서 서학당에 들어가겠다는 게 아닌가.
“그때는 정말 놀라웠다. 네가 난데없디 양학(洋學), 그것도 화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그저 소자가 익히고 싶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아바마마께서 특별히 권장헤서 퍼뜨리고자 하시는 학문인데, 황실에서 앞서서 익히는 것만큼 모범이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까지 서학당에는 친왕은커녕 백작위를 가진 종친조차 들어간 적이 없었다. 서학당에 들어가면 군역은 면제가 되지만, 관직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종친이라면 모두 무시험으로 강무관에 들어갈 수 있는데 누가 서학당 따위를 가겠는가.
열병에 걸린 후유증으로 머리가 홀랑 벗어지는 바람에 가발을 착용하고 있던 서학당 총장 윤두서 – 지금은 다시 머리가 났다 – 는 전례가 없는 일에 당황했다. 하지만 나중에 전례가 될 첫 번째 사례부터 예외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고, 나도 동감이었다.
그래서 권이는 다른 학생들처럼 정식ㅇ로 입학시험을 쳤다. 시강원에서 화학은 안 배워도 서학당 수험과목인 수학과 라틴어, 프랑스어는 배웠으니까 말이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수석까지는 못 했지만, 10% 안에는 들었다. 실력으로 서학당 입학 자격을 얻은 권이를 보니 참으로 뿌듯했다. 아마 이성계가 고려 때 자기 힘으로 과거 시험에 붙은 이방원을 보고 느낀 기분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지난 10년 동안, 권이는 별다른 일만 없으면 공부에 빠져 살았다. 엄마 머리를 닮았는지, 뜻밖에 이과적인 재능이 상당했다. 화학과는 상관이 없지만, 축력으로 가동하는 환풍기를 고안해서 실험실마다 설치했을 정도다. 이제껏 다들 창문 열고 부채질이나 했는데 말이지.
“두 번째 논문은 잘 되고 있느냐? 수은은 독성이 심하니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예, 아바마마. 절대 맨손으로는 만지지 않고, 환기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주에 풍부한 은광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페인령 중남미에서 은을 수입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수은이다. 스페인인들은 은광에서 수은을 사용하는 아말감법으로 빠르고 쉽게 은을 생산하지만, 우리는 독성 때문에 광산에서의 아말감법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한에서는 대체할 수단이 없는 약재 생산이나 산업용, 연구용으로남 수은을 사용하도록 허가하고 있다. 서학당 연구실에 환기시설이 꼭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수은이다.
“수은은 극독(劇毒)이기는 하지만, 여러 효능을 가진 신비한 금속입니다. 다양한 산(酸)과 반응을 시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효과가 나오니, 화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어찌 다루어보지 않겠습니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권이가 왜 하필 수은 연구를 시작했나 싶다. 하지만 수은에 참 다양한 용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권이한테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것도 분명한 듯하고.
혹시 아는가. 아직 못 만들고 있는 뇌홍(雷汞)을 이 아이가 만들어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것도 수은으로 만드는 거니까. 그대는 도 수은을 충분히 구하는 일이 큰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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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서는 이렇게 외국에서 받아들인 지식과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상당한 진전을 보인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분야도 당연히 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결국 일선에서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에….”
해군부 소속 순해국장, 이봉상이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전임자인 안용복이 지난 계묘년(1723)에 65세로 은퇘하자 그 뒤를 이어 순해국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이순신의 5대손이기도 하다.
이순신의 후손답게 능력은 없지는 않다. 계미남변 때도 하급 군관으로 출전해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 뒤에 순조롭게 출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휘하 군관들에게 뇌물을 받고 자기 파벌을 구축한 일이 군기대에 걸렸다.
파벌을 구축하는 건 문관이라고 해도 치도곤을 맞을 일이다. 학맥과 혈연에 따라 사람이 모이는 건 이것도 일종의 천륜(天倫)이라 하여 어느 정도 묵인되고 있다. 하지만 순전하게 재물이나 권세를 얻을 욕심으로 연을 맺고 당여(黨與)를 이루는 것은 금기시된다.
문관도 아닌 무관이 패거리를 만들었으니, 보통 사람이었으면 역적이라고 바로 거열형을 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봉상은 다름 아닌 이순신의 후손이고, 패거리를 만든것도 딱히 역모를 꾸밀 의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처형은 면했다.
하지만 수사제독으로서 계속 전투함대를 지휘할 수는 없게 되었다. 대신 부정을 저지를 건덕지도 별로 없는 부서인 순해국으로 보냈다. 일단 능력은 있으니까.
“우리 뱃사람들은 주로 다니는 항로가 한정되어 있는지라. 경도를 정확히 살피는 기술이 없어도 자유자재로 바다를 오갑니다. 그렇다 보니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영국이 20년쯤 전에 겪은 실리 제도 난파 사건 – 함대가 항로를 착각하고 암초지대에 뛰어들어서 모조리 난파한 사건 – 같은 참극은 겪지 않았다. 다니는 항로도 늘 다녀서 익숙한 서태평양이 중심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익혀야 할 기술인데…..”
내가 경도 측정에 관심을 쏟은 건 장조로 각성한 초기부터다. 상희 덕분에 목성의 위성을 이용하는 갈릴레이식의 경도 측정법을 익히게 되었고, 최소한 육지에서는 정확한 경도를 잴 수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를 다니는 배 위헤서는 어려운 방법이다.
이번 생에서는 디에고가 유럽에 진위사로 갔을 때 함께 다녀온 이익을 통해 영국 정부가 정확한 경도를 측정하는 기술 개발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우리도 경도를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을 열구했지만, 크게 획기적인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알겠다. 하기야 고작 7년 종안 연구해서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리가 없겠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훨씬 일찍 그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유효한 측정 방법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 후발주자에다 경험도, 자료도 부족한 우리가 그놈들보다 뒤쳐지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예, 폐하. 아시겠지만 우리 선박 대부분은 서부 대동양 연안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다 보니 익숙한 해안 지형을 참조하여 움직이기만 해도 별 불편이 없다고들 말하옵니다. 미주 방면 항로 역시 마찬가지로, 그저 쭉 가기만 하면 되니…..”
현재 우리 선박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도 측정 방법은 별자리를 이용한 방법이다. 한양의 경도를 기준으로 해서 시간대에 따른 별의 위치변화를 관측해서 경도를 측정한다. 알려진 항로를 다니는 동안에는 이 정도면 별 불편이 없기는 하다.
“날씨가 흐리면 잴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지.”
배의 진동을 견딜 수 있는 정확한 시계가 나오면 훨씬 쉽고 확실하게 경도를 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기술로는 아직 그만큼 정밀한 시계를 만들지 못한다. 유럽에서도 그런 시계는 아직 못 만든다. 언제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영국에서 처음 만들었던가…..?
‘차라리 나중에 영국제 시게를 사다가 쓸까…..’
시계만 구해오면 측정은 쉽다. 기준 자오선과 시차가 얼마나 나는지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러면 그 시계가 어느 나라 제품인지는 별 의미가 없다. 처음에는 영국제 시계를 쓰더라도 우리가 복제하거나 생산권을 사들일 수도 있잖은가. 그럼 국산이지 뭐.
“그 문제는 되었다. 짐이 일전에 명한, 남대동양 일대의 해도를 보완하는 작업은 잘 되고 있는가.”
“예, 폐하. 저희 순해국에서 보낸 조사선이 철저히 다니며 모은 자료를 이용해 여러 섬과 해안을 열심히 기재하고 있사옵니다.”
우리 영토인 북태평양은 지난 백여 년 동안 꽤 철저하게 탐색이 이루어졌다. 미드웨이와 웨이크 같은 중간에 있는 섬들도 발견되고 위치가 기록됐다.
다만 하와이 이남 남태평양 해역은 아직 모르는 곳이 많다. 그래서 순해국에서 조사선을 내보내 돌아다니며 여러 섬과 해안을 관측하고 있다. 다만 위치와 정보를 기록할 뿐, 영토 선언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해봤자 관리도 안 되니까.
‘여기 어디 나우루가 있기는 할 텐데…’
하와이나 갈라파고스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로 배를 몰고 가서 찾을 수가 있었지만…. 나우루는 이름만 알지 위치를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내 손이 닿는 곳에 분명히 보물산이 있는데 구분이 안되니 원.
어쩌면 이미 순해국이 찾아 기록한 섬 중에 나우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우루라는 이름도 유럽인들이 지은 걸 텐데, 이게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하고 다를 수도 있잖아? 그런데 나는 나우루 원주민들이 자기네 섬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모른단 말이다.
섬마다 탐사대를 보내서 인광석을 찾게 할 수도 없는 노k이니….어떡할까. 원래 역사대로 누군가가 그 섬을 발견해서 ‘나우루’라는 이름을 붙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섬을 사들이든지 뺏든지 해야 하나? 그 섬이 보물덩어리라는 사실을 그놈들이 모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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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가 요청한 병력 파견 문제는 일단 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군영과 북병, 남병에 있는 각 공병 부대에서 모두 자원자를 받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루시아와 함께 보낸 보병들과 다른 조건을 한 가지 제시했다. 러시아군이 이번에 계획한 크림 타타르와의 전쟁을 끝내면, 파견한 병사들을 귀환시키는 걸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장병들이 실전을 은 지도 벌써 20년 아닌가. 계미남변에서 쌓은 공성전 경험이 잊혀가고 있다. 훈련이야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실전을 경함한 병력이 있는 것과 전혀 없는 건 차이가 크다.
“군사들이 마음이 바뀌어 돌아오지 않으려 하면 어떡하시렵니까, 폐하?”
“그건 어쩔 수 없다. 일부라도 돌아오면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 같아서야 귀환을 거부하는 놈들은 탈영병 취급해서 잡아 오고 싶지만, 러시아 쪽이 먼저 해준 바가 있으니 상호주의 입장에서 우리가 너무 야박하게 굴 수도 없다. 알렉세이는 조선에 건너가겠다고 대놓고 탈영한 놈들도 그냥 보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번에 알렉세이가 보내준 답례품의 값어치만 해도 용병 천 명 값어치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그걸 고려한다면, 참전한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고 러시아에 정착하겠다고 해도 용납할 만하다.
“돌아오는 이들에게는 공적에 따라 포상이 있을 것이고, 출세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미리 고지하면 돌아오려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예전에 청나라에 민란을 진압하러 나가던 시절과 다를 게 없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형황 시절까지는 가끔 있었던 일이다. 청나라는 자기네 병력을 아낄 겸, 우리한테 으스댈 기회를 줄 겸 해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면 원병을 청했었다. 형편없는 적을 상대로 공적을 쌓고 실전을 경험할 기회여서 우리 장수들은 앞다투어 나가려고 했었고.
“각 군영에 칙령을 내려 자원하는 이를 모으도록 하라.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고 있으니, 겨울 동안 인원을 모아서 봄에 출발하게 하면 되리라.”
요즘 교통 사정으로는 요동에서 봄에 출발하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러시아에 들어갈 수 있다. 과연 알렉세이가 언제 개전할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병사들이 늦지는 않을 거다.
이제 올해도 거의 끝났다. 겨울이 오면 강무를 나가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지. 자식들하고 사냥감을 놓고 한잔하면서 말이다. 은이도 그 좋아하던 술을 요즘은 많이 줄였으니, 그렇게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조금은 기분을 풀게 해줘야지.
농사도 풍년이고 해서 걱정할 거 없이 올해 무신년(1728)을 마무리 하면 되었다. 그런데 남쪽에서 급히 올라온 정기선이 내가 생각도 못 했던 소식을 들고 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이 나올 이야기였다.
“무엇이라? 그게 정말이냐?”
“예, 폐하! 서나라 승평제가 가을에 또 쓰러졌는데, 그만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고 하옵니다.”
아니, 올해는 정말 뭐가 낀 해인가? 파사합이 죽더니 장원검도 죽었다고? 중원 삼국에서 국상을 치르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후송 하나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