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12
3부 530화(14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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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위사 일행은 객사에서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광동왕이 곧 다시 부르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이게 당연한 태도였다.
그런데 주변이 돌아가는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먼저,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함께 배를 타고 귀주까지 왕복했던 바로 그 링?미인들이었다.
방금 배에서 헤어진 이들이 또 몰려오자 수행원 대다수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맞이했다. 사실상 두 달 동안 배에서 살림을 차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보니, 그간 깊이 쌓인 정을 어쩔 수가 없었던 탓이다. 특히 본국에 처자고 뭐고 없는 자들은 아주 환장을 했다.
하지만 박문수를 비롯한 상층부는 이들을 보고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대체 뭘 더 요구하려고 이년들을 또 보냈단 말인가?’
가는 길에 여자를 붙여 준 대가가 황제 앞에서 자기네 편을 들어 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또 여자를? 이게 절대 공짜일 리가 없다. 분명히 따라붙는 요구가 또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인좌 몫까지 계산해서 한 명을 더 보내기까지 할 이유가 없다.
하급 수행원들이야 정든 여인들과 재회했으니 거저 좋아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박문수를 비롯한 윗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형직조차 그토록 반했던 여인을 폼지 않았다. 아니, 이미 배를 타고 주가을 내려올 때부터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곧 왕궁으로 부를 줄 알았다. 하지만 사흘이 가고 나흘이 가도 왕궁에서 부르러 오는 이는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객사를 경비하던 광동왕부 군사들이 갑자기 진위사 관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나흘째 되는 오늘 아침부터 객사 출입구가 모두 막했다.
미녀들과 다시 만나서 반색하던 수행원들도 바깥출입을 제지당하자 드디어 수상한 낌새를 깨닫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나마 광동왕부 관원들도 한인들이 경계하리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만 빼고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군사들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인좌가 간단히 보고했다.
“소인이 직접 세어보니 지금 객사를 둘러싼 군사 숫자가 무려 3백 여에 달합니다.”
불산 시내로 외출하지 못하는 거야 조금 답답할 뿐이니 크게 불편할 일도 없다. 그보다는 본국에 연락할 수 없는 게 치명적이었다. 지금 서나라에서 일아난 사태에 관해 본국에 급히 알려야 하는데 장계를 보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보낸 장계가 성도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낸 장계다 황제가 폭발한 그 연회가 끝난 직후 급히 정리한 장계를 익문사 경로로 보냈다. 광동에 도착하면 광동왕과 접견한 뒤 그 회견 내용을 포함하여 전체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고할 생각이었으나, 그 길이 막혔다.
광동에는 수서사처럼 따로 주재하는 외교관은 없다. 그 대신 광주에 있는 상관과 익문사 지부가 연락소 노릇을 하고 있다. 불산이 아닌 광주에 익문사 지부가 있는 건 당연히 광동 유일의 정식 개항장이 광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척에 있는 광주에 사람을 보내 주식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러니 광동왕의 태도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미녀가 시중을 들고 매끼 진수성찬을 대접한다지만 이래서야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건 우리를 볼모로 잡겠다는 뜻이니, 어서 빠져나가 본국에 사정을 알려야 합니다.”
“고령위께서 판단하신 바가 옳습니다. 필시 광동왕이 역모를 꾸미기로 결심한 겁니다.”
박문수와 이인좌는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이형직은 결단을 다소 망설였다.
“혹시 우리와 무관한 다른 일로 경비를 강화했을지도 모릅니다. 내일이면 문이 다시 열릴 수도 있는데,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시는 게 이닐까요.”
“소인이 생각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조금 기다려 보시지요.”
서장관 김경석도 이형직 편에 섰다. 그 역시 이형직처럼 광동왕이 준 미녀에 반해 정신이 나갔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종사관 세묜은 문가에 서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나마 광동왕부 병사들은 객사 담장 밖을 지킬뿐이고 객사 안에까지 들어오지는 않지만, 시중을 드는 하인이나 시녀중 누가 밀담을 엿듣고 밖에 알릴지 알 수 없어서다.
수행원들도 신뢰할 수 없다. 미녀의 온염한 교태와 미주(美酒)에 흐물흐물해진 어느 입이 자기가 아는 바를 함부로 지껄일지 모르는 일이다. 은밀한 일은 아는 자가 적을수록 좋다.
“아닙니다, 부사 영감.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보면 이게 일시적인 조치가 아닐 겁니다. 그러니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합니다. 문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우리 사람들을 다 무사히 빼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인데…..”
진위사 일행은 백여 명에 달한다. 객사 담장 밖을 둘러싼 군사들은 둘째치더라도, 안에서 와글거리는 하인들에다 방마다 들어낮은 여인들의 눈까지 다 피해 이 많은 인원이 은밀하게 객사를 빠져나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분명히 들키고 만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뚫고 나갈 수도 었다. 병장기라고는 혹시나 해서 호신용으로 들고 온 권총과 환도 약간뿐이다. 수행원 중에서 제대로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인원도 종사관 단세문 이하 십여 명밖에 없다. 몰론 박문수 본인은 빼고 하는 말이다.
“이곳 불산에는 1만 명에 달하는 군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객사에서 밀고 나가는 데까지 성공한다고 해도, 광주에 닿기도 전에 추격당할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겉보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먼저 난동을 부린 셈이니, 저들이 나음 놓고 살수를 휘둘러도 속수무책입니다.”
이인좌가 인상을 찌푸렸다. 객사가 봉쇄된 건 겨우 한나절, 그 위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해코지를 당한 것도 아닌데 난동을 부린다면 의혹을 사는 건 이쪽이기 쉽다. 족은 사람에겐 입이 없으니 저들이 정황을 조작하기도 쉽다.
“일단…..”
박문수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참에 대문 쪽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인 하나가 급히 뛰어왔다.
“고령위 나리! 지금 광동왕제(王弟) 저하가 나리를 뵙겠다과 찾아왔습니다!”
“왕제 저하가?”
왕제 장장헌은 장장익의 하나뿐인 동복동생이다. 공식적인 관직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형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참모 노릇을 하고 있다. 서자 출신인 이복형제 여섯은 죄다 광동왕부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우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들의 진의를 살피시옵소서.”
“그럴 참입니다. 뭔가 털어놓을 게 있으니 찾아왔겠지요.”
박문수는 이인좌는 놔두고 이형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장관 김경석이 지필묵을 챙겨서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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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위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10보 간격으로 늘어선 광동왕부 군사들이 보였다.
“좋아. 저쪽에서 소동이 벌어지면 바로 이쪽으로 넘도록 하세.”
“예, 고령위 나리.”
박문수가 매서운 눈으로 감시병들을 살폈다. 오늘 밤이야말로 빠져나갈 기회였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왕제 저하?’
뜨악한 박문수가 반문했다. 그러자 장장헌은 매우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면서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
“형님께서 한황께 도움을 청하고 계십니다.”
광동왕부는 그동안 겪은 고난에 관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황제에게 작은 보상을 요구했을 뿐이다, 처음 부른 판돈이 좀 크기는 했짐나, 그거야 협상이라는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황제께서 너무 큰 오해를 하시면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졌다.
“지금 형님께서는 끌려가면 바로 죽게 될 거라면서 공포에 떨고 계십니다. 그래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세요. 제가 말리려고 해봤습니다만, 듣지를 않으십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군사를 일으켜 자기 뜻을 관철하고 말겠다고 하십니다.”
“기필코 거병하새겠다는 겁니까?”
박문수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탄식이 쏟아졌다. 성도로 가서 용서를 청한다면 중간에서 움직인 박문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당장 죽이지는 않을 테고 시간을 벌 수도 있을 터인데, 장장익은 결국 확실하게 역적이 되는 길을 택하고 만 것인가.
“그런데 무슨 도움을 청하신다는 겁니까? 저희 임금께서 반역을 지원할 리가 없다는 점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야 잘 알지요. 하지만 형님 주변에 있는 신하들은 다릅니다. 이 부유한 광동 땅을 들고 그대로 대한에 귀부하겠다는데 어찌 한황께서 거절하시겠느냐며, 꼭 한황께 지원을 청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에서도 어쩔 수 없을 거라면서요.”
상도뿐만이 아니다. 후송에서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면 이 풍요로운 광동 땅은 그래도 대한을 위한 화수분이 될 것이다. 교역으로 푼푼이 얻는 이익 정도가 아니라. 백성들에게서 걷는 지세와 인두세가 그대로 한황의 금고로 흘러 들어간다.
“지금 조정의 여론이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한황게서는 겨우 은전 몇 닢 때문에 모반을 돕지는 않으실거라고 제가 몇 번이나 강변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장헌은 조정에서 연공으로 매년은 8백만 냥을 한양에 보내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그 액수를 들은 박문수는 자기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8백만 냔이라니, 지금 대한 조정이 걷는 수입이 대한통보로 매년 2천만 냥이니까 순깃간에 재정이 4할이나 늘어나는 셈이다.
“그게 가능한 액수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저는 왕친(王親)일 뿐이지 왕부의 관리가 아니니까요. 정람 가능해서 그 액수를 언급했는지, 그저 감언아설로 한황을 속이려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변명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형왕의 조언자 노릇을 한다고 해서 나라 살림을 전부 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재정과 상관없는 조언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조정에서는 한황께 도와달라고 청하기로 했고, 그 일을 맡은 사자를 정사 대인과 함께 대한에 보내려고 합니다. 정말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계속 동행하면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한양까지 동행하라는 게 아니다. 동행하면서 광동왕부의 사신이 임금에게 그 요청을 전하고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했다. 기가 찬 박문수가 반문했다.
“거건 성도에 올라갈 때 광동왕께서 하신 부탁 그대로가 아닙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마 드릴 수 없는 부탁이라고 한 겁니다. 조정 중신들이 대인께 죄송한 마음이 조금이라고 있다면, 그리고 사리를 조금이라도 분별할 수 있다면 어찌 이런 청을 드리자고 모의할 수가 있겠습니까.”
덤으로 지난번 상경할 때 광동왕부에서 ‘맡아 두었던’ 재보가 날라져 왔다. 은괴와 주옥, 비단이 가득 든 상자가 연이어 객사 마당에 쌓였다.
“30만 냥은 될 겁니다. 꼭 갖다 드리라고 형황 저 ㄴ하께서 명하셨습니다.”
거절할 수도 없었다. 장장헌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시겠지요. 우격다짐으로 청해 봐야 광동을 벗어나자마자 생각을 바궈버리시면 모두 헛수고가 됩니다. 그래서 형왕께서는 대인께서 진심으로 동화실때까지 기다리시겠답니다. 소용업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장장헌은 박문수의 확답도 듣지 않고 가버렸다. 며칠 뒤에 또 올 것 같다면서 밀이다.
“주서사께서는 왕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보시는지요?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복심이 따로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런 것 같은데 그게 뭔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광동왕이 당분간은 진위사 일행을 붙들어둘 작정이라는 것, 그리고 돈과 미녀로 이들을 매수할 작정이라는 것. 그러니 탈출은 오늘 밤이 되어야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들의 접대는 후해질 테고, 폐하께 할 변명도 없어질 겁니다. 그로 광동왕의 반심을 확인한 오늘 바로 도망쳐야 합니다.”
이인좌의 말을 들은 박문수가 끄덕였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광주까지만 가면 된다. 그럼 바로 본국에 연락할 수 있다.
“열어라, 이놈들아! 내가 밖에 나가야겠다는데 네놈들이 왜 내 앞길을 막느냐!”
“이놈들! 우리 부사 어르신의 말씀을 듣지 못할까!”
정문 쪽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부사 이형직이 수하 대부분을 데리고서 정무으로 나가려고 하자 경비병들이 막아섰다. 광동어와 한어가 뒤섞인 악다구니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보고 있으려니 박문수가 잇는 담장 족을 지키던 병사들도 뭐라고 외치더니 그쪽으로 달려갔다.
“저놈, 돼지 같은 동이놈들이 막설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동이라고? 저 묘노 놈들 건방진 말버릇 좀 보게.”
광동어와 사천어 둘 다 구사할 수 있는 이인과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형직이 객사에 남아 경비병들의 눈길을 끄는 동안 이인좌가 박문수를 따라나서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말에 능하다는 점이었다. 문관치고는 몸이 날래다는 게 그 ㄷ ㅜㄹ이다. 셋은 길을 안다는 거고.
“그래도 부사 영감이 스스로 남겠다 하신 건 대단한 일입니다. 광동놈들이 앙갚음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말이지요.”
이인좌가 감탄했다. 아무리 광동인들의 미인계에 넘어간 데 대한 후회라지만, 박문수를 따라 먼저 뻐져나가려면 나갈 수 있는데도 뒤에 남는 수하들을 책임지겠다며 여기에 남아서 기다리겠다고 결정한 이형직의 용기는 칭찬할 만했다.
“그래도 저들이 제정신이라면 그런 짓은 차마 못 할 겁니다.”
이미 사신들을 멋대로 억류한 것만 해도 주상의 역린을 거스르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혜치기까지 한다면 뭐….광동왕이 어찌 될지 따질 것도 없으리라.
“자, 넘어가지요.”
담을 넘은 사람은 단 셋이다. 광동 옷으로 변복한 박문수, 세묘느 이인좌. 티 내지 않고 이 객사를 빠져나가려면 인원은 적을수록 좋았고, 고민한 끝에 셋이서만 슬며시 빠져나가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부사 이형직과 서장관 김경석, 둘 뿐이다.
광주까지는 가까우니까 시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금 관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서로 편하기도 하고.
“자, 얼른 골목으로 들어가시지요. 길은 소인이 대략 알고 있으니 서두르십시오.”
“맡기겠습니다.”
이인좌는 성도에 부임하는 길에 불산에 들러서 한 바퀴 구경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조심스럽게 박문수를 안내했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강변으로 빠져나가 배를 타야 했다. 그래야 광주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루터에 있는 광동왕부 군사들의 검문은 어떻게 피해야 하나…..’
뭐, 배는 마룻배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은전을 쥐여주고 어선이라도 빌리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