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17
3부 535화(1417화)
8.
대기하는 병력이 2만 명이라고 해서 실제로 2만 명이 곧바로 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사 2만 명이 바다 위를 걸어서 광동으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조달할 수 있는 선박으로는 4천 명 정도 내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마침 쉬고 있는 상선과 군용 수송선을 총동원한 숫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를 넉넉히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2만 명이나 되는 인원과 그 장비, 마필까지 운반할 수 있을 만한 대함대가 평시에 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심각한 낭비다.
“그러면 보병연대 하나로구나. 그 정도 병력으로도 광동왕을 위협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선발대로는 충분합니다. 일단은 위협부터 할 것이고, 그때 저들이 굽히지 않으면 선봉이 확보한 교두보를 통해 후속부대를 들여보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할 것이니까요.”
현재 우리 육군 보병연대는 5개 중대로 구성된 보병대대 3개, 경보병인 엽군대대-일명 포수대대- 하나, 무종야포 12문을 장비한 표벙중대 하나로 구성된다. 전체 인원은 3천 명.
여기에다 연대가 장비한 장비와 마필, 필요한 물자를 고려하면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배로 나르기에 딱 맞았다. 선발대로 아주 적당한 규모다.
헌데 배만 문제가 아니다. 머리가 좀 식고, 진지하게 출병에 관해 고려하게 되자 머리에 잔뜩 열이 올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이 하나 떠올랐다.
“곧 태풍이 오는 철이 아니냐. 대군을 실은 배를 함부로 남으로 보내도 괜찮겠는가? 자칫 전조 시절에 일본을 치러 갔다가 태풍을 만난 원나라 함대 꼴이 나지 않겠는가?”
원나라는 두 차례 일본 원정을 시도하고 두 번 다 태풍 때문에 실패했다. 이를 참고해서 을미동정 때는 철저하게 태풍 철을 피했다. 하지만 광동으로 가는 함대가 태풍을 만난다면?
전투함은 그래도 부담이 좀 적다. 하지만 병력을 실은 수송선이 태풍을 만나 난파한다면 애 J은 군사들이 때죽음을 당한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비명횡사다.
“괜찮을 것이옵니다. 이미 5월 중순이온데, 이후로 불어오는 태풍은 대개 대남도 동쪽을 거쳐 북쪽으로 오는 길을 따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국에서 폭풍이 불지 않을 때 떠나서 주산진에 도착한 뒤 후송 연안을 따라 항진하면 별일 없을 것입니다.”
해군제조 홍하명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바다를 누구보다 잘 알고, 태풍을 몇 차례나 직접 겪어보기까지 한 홍하명의 자신감 있는 설명을 들으니 잠시 솟았던 불안감이 가라앉았다.
“일본으로 가는 항로는 여름이 되면 태풍에 피해를 볼 위험성이 높습니다만, 중국 연안은 그보다는 덜 피해를 봅니다. 물론 피해를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닌지라 다소 주의하긴 해야 합니다만, 출병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 현대에서도 태풍이 가끔 중국에 상륙하기는 했지만, 일본으로 가는 태풍 숫자하고 비교하면 중국으로 상륙하는 태풍 숫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혹시 피해를 볼까봐서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보내자.
“그렇다면 지금 당장 준비할 수 있는 배로 1개 연대를 먼저 보낸다. 나머지 병력은 뱃길 형편을 봐서 보내도록 하자. 그리고 삼군부에서는 대남성에 군령을 내려 계획한 바에 따른 함대 차출을 명하라.”
대남성에는 해군 남부통제영이 있다. 20년 전에는 세 통제영이 모두 본국에 본영을 두고 있었지만, 그때 군제를 개편하면서 본국에는 교동도에 있는 중부통제영만 남았다.
해군의 전력을 비율로 나눈다면… 본국에 있는 중부통제영이 5할, 남부통제영이 4할, 미주 지선성에 본영을 둔 동부통제영이 1할을 보유하고 있다. 동부통제영은 싸울 상대가 없으니 전력이 별로 없는 것도 당연하다.
남부통제영이 좀 많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필리핀, 유구, 주산진까지 펼쳐진 바다가 전부 남부통제영의 관할이라 그렇다. 중부통제영은 본국을 지키고 일본을 견제하는 임무에 집중하고, 남부통제영은 후송을 견제하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보호한다.
“해적을 토벌하느라 그 연안으로 나갈 필요는 있었지만, 설마 우리가 서나라를 직접 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서나라는 후송을 양쪽에서 견제하는 우리 동료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멀리 있으니까 친한 친구가 되기는 좀 어려워도, 설마 적이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상황이란 늘 변하는 법이옵니다, 폐하.”
그래, 변하지… 장조 때만 해도 백 년도 안 돼서 마닐라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과연 지금부터 백 년 뒤의 세상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좋다. 그럼 방금 논의한 대로 하자. 보병연대 하나를 선봉으로 삼아 먼저 보내고, 나머지 병력은 배가 준비되는 대로 뱃길 형편에 따라 보낸다.”
“예, 폐하.”
여기 더해서 대붕영 나머지 병력을 광동으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냐고, 태풍으로 인한 연기는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배를 준비하는 데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고 하자 바로 답이 나왔다ㅏ.
“한 달 안에 대붕영 군사 절반, 그리고 다시 한 달 뒤면 나머지 군사들 전부가 출발할 수 있을 듯합니다.”
“됐다, 그만하면.”
그래도 갑자기 준비하게 된 출병치고는 빠르다고 본다. 태풍을 고려하면 석 달 정도까지 잡을 수 있겠구나. 그때쯤이면 도착했을 때 상황도 뭐 빤하겠군.
“광동군이 광주성을 공격하는 동안 우리 군사가 도착하면 그 배후를 칠 수 있습니다.”
권훤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발언했다. 광주성이 그때까지는 버티리라는 데 나도 동의했다.
“저들이 얼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날뛰더라도 우리 선봉이 교두보를 잘 지켜야 할 텐데 말이다. 겨우 1개 연대인데, 본영이 도착하지 건까지 버틸 수 있겠는가?”
“잘 지킬 이를 선발해 보내겠습니다.”
권훤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자신감이 비쳤다. 저 친구, 내후년에 환갑일텐데 아직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저러니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당당할 수 있는 거겠지.
시중에서 도는 견훤의 별명은 ‘무과대장군’이다. 여기서 ‘무과’는 ‘武科’가 아니다. 과거를 아예 보지 않았다는 뜻의 ‘無科’다. 과거를 통해 정당하게 출세하지 않고 임금과의 친분으로 출세했다고 비아냥거리는 별명이다.
권훤 자신도 당연히 자기 별명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모기나 파리 세 마리만 한 가치도 없는 못난 놈들의 질투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나.
삼군부 회의는 여기서 일단 마무리됐다. 다음 회의가 열릴 때까지는 오늘 논의한 내용을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리라.
9.
대붕영 보병 2연대는 개성에 주둔하고 있다. 진남도원수로 임명받은 오군대총관 권훤의 호출을 받은 2연대장은 급히 도성으로 달려왔다.
“자네가 이번 출병에서 선봉장이다. 잘 해내리라 믿고, 무운을 빈다.”
권훤이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격려했다. 2연대장 홍진오 참장은 계미남변 때에 이어서 또 권훤의 밑에서 싸우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큰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을 표했다.
“대붕영 전체가 출정한다면, 어찌 대총관게서 지휘를 맡게 되셨습니까? 총관이신 조광원 영감이 맡는게 자연스러울 것인데….”
오군대총관은 정2품 상장이 맡는다. 그보다 위에 있는 현역 장수는 종1품 대장인 삼군부 도총사 한 사람뿐이다. 비변사에 있는 육군 제조, 해군 제조도 품계는 종1품 대장이다.
삼군부 도총사까지 오르면 무관으로서의 출세는 끝이다. 육군대신과 해군대신 -묶어서 부를 때는 양군대신(兩軍大臣)이라고도 한다 – 은 반은 문관이고, 그 윗전인 참정대신이나 국상 자리까지 오르는 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그동안 그런 사례는 없었다.
혹시 엄청나게 큰 공을 세운다면 무품인 원수에 봉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공을 살아서 인정받은 사례는 아직 없었다. 선황 시절, 충무대왕 이순신이 원수로 추증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
“이번 출병에 동참할 병력이 대붕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일세. 누손이나 대남에 원병을 달라고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그쪽에 조 총관이 명이 제대로 서지 않을 수도 있잖은가.”
각 주 병마절도사들은 오군영 총관과 같은 종2품 부장이다. 동급인 장수들끼리 협의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건 듣기에는 좋은 말이겠으나 실제로는 절대로 실현되지 않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대장은 한 명뿐이어야 한다.
“조 총관은 진남부원수로 임명받았다. 본관이 군사를 움직일 때 보좌와 조언을 맡을 결세. 그렇게 알고 자네도 많이 도와주게.”
“예, 대감.”
권훤은 홍진오에게 한 가지를 확실하게 주지시켰다. 이번 출병은 원정도, 정벌도, 토벌도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외적을 쳐부수고 땅을 뺏거나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토벌하러 가는 싸움이 아니다. 외교적인 분쟁을 힘으로 해결하러 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내 직함이 ‘정남(征남)’이나 ‘평남(평남)’이 아니고 ‘진남(진남)’인 걸세. 외적을 정벌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반란을 평정하러 가는 것도 아니야. 도착하기 전까지 그 사실을 군사들에게 확실히 일러서, 공연히 헛된 생각을 하는 자가 없도록 하게.”
“예, 대감.”
장수와 군사들이 헛된 욕심을 품으면 곤란해진다. 금상은 서나라를 본격적으로 칠 생각이 없으신데, 장졸들이 서나라를 정벌하러 간 것처럼 굴면 뒷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대감?”
“사흘 안에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배만 준비되면 내일 아침이라도 승선할 수 있습니다.”
권훤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미남변 때도 경헌했었지만, 홍진오는 확실히 유능한 장수였다. 군사들을 잘 조련해두었을 건 분명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폐하께서 호송선이 준비된 뒤에 출발하라 하시니 사흘일세. 그대는 지금 바로 개성으로 돌아가서 군사들을 술과 고기로 호궤한 뒤에 출동할 준비를 하게. 배가 도착하면 바로 승선할 수 있도록.”
2연대는 정예다. 열 배쯤 되는 적에게 포위되더라도 한 달은 항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오합지졸인 광동군 따위, 상대도 안 되리라.
권훤은 홍진오를 돌려보낸 뒤 잠시 석묵필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때에 따라서는 싸울 상대가 광동왕으로 그치지 않고 서나라 관군까지 적으로 돌려야 할 수 있다는 언급은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테니까.
10.
“그래서 그날 저희 집에 찾아오려다가 못 오셨습니까.”
“그러게나 말일세. 공주가 얼마나 매달리는지, 그 때문에 너무 늦어 버렸지 뭔가.”
본래 오려던 날보다 이틀 뒤에 정호찬을 찾아왔다. 저녁에 짬을 내어 잠시 들렀더니 아주 느긋한 태도로 글을 쓰고 있었다.
“전에 말씀드린 회고록을 손보고 있었습니다.”
“언제쯤 보여줄 텐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살아있는 한 이 책은 미완성본이니, 제가 족거든 그때 보십시오.”
“자꾸 그러니 짐은 왠지 그대가 짐보다 더 오래 살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다.”
설마 그럴까 싶기는 하다. 정호찬은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위니까, 적어도 나보다 5년은 먼저 죽겠지. 그때가 되면 내게는 정말 아무도 안 남겠구나.
“진남도원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이도 미주에서 폐하를 모신 바 있으니, 조금쯤은 속내를 털어놓고 가까이 여기실 만합니다.”
“노력해 보겠다.”
글쎄, 권훤은 총신의 범주에 들어 갈 수는 있어도 친구의 범주에는 도무지 들어갈 수 없을 듯한데. 하여튼 그런 존재라고 해도 없는 것보다야 낫기는 하겠지. 본인부터가 구설수 따위 신경도 안 쓰는 강철 신경을 갖고 있다는 것도 곁에 두기에는 유리한 점이고.
“그런데 폐하. 태풍을 피해 군사를 움직인다고 해도 물자까지 계속 무사히 운반하기는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물자는 대부분 남방에서 조달하기로 했네.”
본국에서 광동까지 보급선을 유지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자는 현지에서 구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적두도에 있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계약해서 식량 같은 소모성 물자를 공급 받는다.
탄약은 본국에서 보내지만, 이 시대에는 아직 탄약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부피가 커서 운반하기 힘든 식량과 마초가 훨씬 골치 아픈 보급품이다.
“광동은 덥고 습한 땅이지요. 폐하께서 어련히 이미 다 준비하셨겠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풀요합니다.”
“군의와 의약을 넉넉히 준비하게 했네. 이제는 친초목도 넉넉하니 학질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네.”
디에고가 남미까지 잠입해서 키니네를 구해온 지도 벌써 25년 가까이 됐다. 그때 가져온 씨앗과 묘목들은 대남도와 루손에서 힘차게 싹을 틔워 올렸다. 키니네 농장은 이제 확실히 궤도에 올랐고, 우리가 필요한 소요량을 충당하고도 여분이 남는다.
우리 키니네에 확실하게 의존하는 존재 중 하나가 후송이다. 그야 강남은 습지도, 모기도 많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고로 우리는 후송을 상대할 때 오른손에는 홍삼, 왼손에는 키니네라는 두 가지 묘약(妙藥)을 손에 쥐고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등에는 총을 메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말이지요.”
“그래도 대놓고 휘두르지는 않지 않는가? 손에 총칼을 든 것보다는 약재를 든 것이 훨씬 모양새도 좋지 않은가.”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정호찬도 내게 동의했다. 하지만 곧 이번 출정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지적했다.
“자칫하면 홍시제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줄지도 모릅니다.”
출동한 대한군이 광동군을 두드려 부순다. 그리고 나면 황제가 보낸 토벌군이 폐허가 된 광동 땅을 유유히 접수한다. 그리고 대한군에게는 입에 발린 인사말 몇 마디로 마치고 바로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역사를 보면 그런 전례가 이미 있었습니다.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을미동정도 그런 사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 식자층에서는 을미동정이 이에야스한테만 좋은 일을 시켜줬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간혹 있다. 이에야스가 쓰러트려야 할 최강의 경쟁상대인 히데요시를 내가 없애줬다는 거다. 게다가 일본 본토를 정복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나로서는 그때 그 정도 선에서 전쟁을 끝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 내가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비난하는 자들을 제대로 상대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래서 그런 수다쟁이들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낚이진 않을 걸세. 진남도 원수는 영리한 장수니까, 주변 상황을 살펴서 적절하게 판단하리라 믿네.”
권훤은 영리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사리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도 있다. 그러니까 그라면 우리 군사들을 많이 죽이지 않고 최소의 희생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