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22
3부 540화(1422화)
10.
양측 고관들이 수졸들이 쳐다보는 앞에서 언쟁을 벌인다거나 외교적인 교섭을 진행하는 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회견은 치국의 사령실에서 이어졌다.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사령실 안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박문수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고, 그 앞에 앉은 조상망은 차마 박문수를 마주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양측 수행원들도 눈치만 살폈다. 이봉중 혼자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본인은, 예부상께서 사죄의 말 한 마디쯤은 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실수로 쐈다고는 하나 그쪽 군사들이 쏜 총알에 우리 관헌이 죽었잖습니까! 아니, 총을 쏴서 사람을 상하게 해놓고 뒤도 쫓지 않았단 말입니까? 핏자국이 빤히 남았는데?”
박문수가 먼저 폭발했다. 제대로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도망친 죄책감에 상대방에서 자기들이 이인좌를 죽인 줄도 모르고 있자 느낀 황당함이 분노를 더 키웠다. 파포태의 난 때도 수하에 거느린 군사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숱하게 보긴 했다. 하지만 이인좌를 그 군사들과 똑같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책임도, 이유도 없는 사람이 순수하게 자신을 도우러 나섰다가 비명횡사를 했으니 말이다. 분노 섞인 맹비난이 한참 동안 이어지자 잠자코 듣기만 하던 조상망의 얼굴에도 핏기가 올랐다. 더 참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정사게서는 저희를 탓하고 계시자마 이건 너무 억지가 아닙니까. 우리 군사들이 실수로 발포했다고 알고 계시면서 이렇게까지 하시는건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뭐, 뭐요?”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군사들이 대인과 대인의 수하를 가리켜 ‘광주절도사가 보낸 간자다!’라고 소리쳤다고요. 우리 광동왕부의 본의가 아니었다고 알고 계시면서 책임을 물으시면 우리로서는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겠습니까!”
이인좌의 시신도 거두지 않았다는 말에 격분한 박문수가 평소의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조상망은 상대가 보인 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이런 말씀까지 드리는 실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대인께서 우리 광동왕부가 곤경에 처한 틈을 타서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고자 주서사 대인을 은닉하신 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까지 들려고 합니다.”
“뭐, 뭐요?!”
지위가 지위라서 숙이고는 있지만, 애초에 조상망은 박문수에게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다. 박문수가 걸음마를 연습할 때부터 서나라 관직에 올라 경력을 쌓았고, 외교 경험도 많았다. 광동왕부 예부상 자리를 거저먹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해보십시오. 대인게서는 한의 주서사가 우리 군사들에게 사살되었다 하시지만 그게 정말 일어난 일이라는 다른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 대인게서 뒤에 세워두신 반양인은 대인의 수족이니, 그가 하는 증언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정확히 누가 이인좌에게 총을 쐈는지도 모른다. 총에 맞은 시신도 없다. 그럼 대체 무슨 근거로 광동군이 한의 관리를 해쳤다고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그 모든 잘못을 덮어쓸 수는 없었다. 조상망은 악착같이 그 사실을 부정했다.
“우리 군사가 실수로라도 한나라 관리를 해쳤다면 마땅히 광동왕게서 한황게 사죄하시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실 겁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대인게는 거듭 죄송한 말이 되겠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이 저희에게 죄를 지우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자기 품에서 죽어간 이인좌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 박문수가 더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조용히 듣고 있던 이봉중이 제지하고 나섰다.
“고령위게서는 잠시 고정사십시오. 나라의 대사가 걸린 일인데, 사절에게 해를 끼치셔서는 안 됩니다.”
“소, 송구하옵니다, 통제사 영감.”
박문수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자리에 앉았다. 이봉중은 박문수와 반대로 창백하게 질린 조상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절 앞에서 격한 모습을 보여 송구합니다. 고령위게서 수하를 비명에 잃어 감정이 많이 상하셨으니, 양해해 주시지요.”
조상망은 소리 내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숙였다. 소리를 냈다가 자칫 그 내용에 따라 이인좌가 피살됐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어서다.
“고령위께서 잠시 화를 삭이시는 사이 본관과 이야기하시지요. 예부상게서는 무슨 용무로 우리 함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봉중의 점잖은 태도를 보자 다소 마음이 풀린 조상망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 전하게서 명하시기를, ‘대한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마땅히 좋은 술과 고기를 보내 대접하고 예물을 전하도록 하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를 따르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러십니까. 저희는 어서 광동에서 일어난 난리를 수습하는 일을 도우라는 칙명을 받고 돛을 올려 달려왔습니다. 그럼 잠시 상황을 살피며 여기 머물도록 하지요.”
조상망은 이봉중이 보이는 온화한 태도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흥분한 애송이 따위와 원숙한 노장은 태도가 달랐다.
“이 난리에 관해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중간에 들어서 우리 전하를 모함한 간신들 대문에 그만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지요. 이렇게 부탁드리오니, 수사제독께서 한황께 아뢰어 부디 중재를……”
옆에서 이를 악물고 듣고 있던 박문수가 눈이 위험하게 번쩍였다. 하지만 조상망이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봉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런 이야기는 폐하께서 보내신 칙사왕 나누십시오. 본관은 그저 광동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을 뿐, 광동왕부와 무슨 협상을 진행하라는 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서 조상망이 가져온 물품들도 모두 받기를 거부했다. 졸지에 축객령을 당한 셈이 된 조상망이 더듬거리면서 반문했다.
“치…. 칙사가 따로 오신다고요?!”
“본국에서 오고 계십니다. 도중에 사고가 없었다면 며칠 안에 도착하실 겁니다.”
대한 본국에서 칙사가 오고 있다….는 말은 분명 칙사가 동반한 병력이 더 온다는 의미다. 창백해진 조상망은 쫓기듯이 자기가 타고 온 배로 돌아갔다. 광동왕부의 배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이봉중이 조용히 박문수를 타일렀다.
“고령위게서는 어직 젊으십니다. 혈기를 억제하지 못할 것 같으시면 이 늙은이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도 좋습니다.”
사소한 말실수로 상대에게 빌미를 주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인 박문수가 이봉중 앞에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부끄럽습니다.”
“괜찮습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말이 좋아서 매제지,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나이 차이가 난다. 이봉중은 마치 아들에게 하듯 박문수를 타일렀다.
“어차피 본격적인 교섭은 칙사께서 오셔야 진행될 겁니다. 광동 측 상황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니, 칙사께서 어서 오시기를 기다려 보지요. 도원수게서 함게 오실 수도 있습니다.”
조상망에게는 칙사가 도착하기 전에 아직 억류 상태인 나머지 사신들을 돌려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어두었다. 돌아가서 광동왕과 의논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어떻게 나올지는 기다려 볼 일이다.
11.
지금 와 있는 함대가 전부가 아니다. 한나라 본국에서 추가 병력이 오고 있다. 창백해진 얼굴로 돌아온 조상망에게 보고를 받은 광동왕의 궁정은 발칵 뒤집혔다.
“다시 한번 말해보라, 예부상! 한나라 외관(外官)이 우리 군사가 쏜 총에 죽었다고?”
“그렇다고 하옵니다, 전하.”
박문수가 탈출한 그 날, 도방영(都防營) 군사들과 다툼을 벌여 사상자 다수를 내게 하고 성벽을 넘어 도망친 놈들이 있기는 했다. 혹시 그놈들이 박문수 일당이었단 말인가?
“도방영에서 보고하기를, 너무 어두워서 용모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칼을 다루는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틀림없이 광주절도사가 보낸 간자라고 판단하고 곧 바로 뒤를 쫓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놓치고 말았는데……”
병부상 육수정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3품이나 되는 한나라 관리가 광동군의 총에 죽었고, 조정에서는 한 달 이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데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강변을 몽땅 파헤쳐서라도 그 시신을 찾아야 합니다. 혹시 못 찾으면 다른 시신을 구해 적당히 꾸며서라고 잘 수습해서 홍콩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 끝낼 수도 없다. 착오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대가도 치러야 한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면 그 수뿐이다. 사신이야 얼마든지 있다. 지금도 광주성 안팎에 수만 구나 되는 사람이 매장도 안 된 채 죽어 자빠져 있지 않은가. 그중에 적당히 썩은 것을 골라서 보내면 된다. 이제 막 찾았다고 하면 저쪽에서도 구분하지 못할 거다.
“으음, 그렇게 해야 하나……”
장장익이 고심했다. 군대를 거느리고 직접 전장에서 싸우는 거라면야 누구 못지않게 싸울 자신이 있었지만, 이런 식의 모략과 정략은 장장익에게는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형님 전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런 유골 따위는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십시오. 아예 찾아서 강물에 던져버리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무슨 짓을…..? 그랬다가는 한황이 더 분노하지 않겠느냐?”
장장익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동생을 노려보았다. 광동왕의 단 하나뿐인 친동생, 광주총독 장장헌은 진지한 표정으로 왜 이인좌의 시신을 없애야 하는지 설명했다.
“예부상이 보고 온 바에 따르자면, 한황은 부마의 보고에 따라 우리가 자기네 주서사를 살해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분하여 군대를 보내기는 했으나, 물증이 없습니다.”
한나라는 확실한 명분과 증거 없이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번 서반아와의 전쟁도- 그대 장장헌은 열 살 남짓이었지만-철저하게 명분에 따라 시작했다.
“한황은 호전적인 군주지만 확실한 명분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나서서 우리가 한의 외관을 죽였다고 인정하면, 싸움을 시작할 빌미가 됩니다.”
“아닙니다, 전하! 우리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그건 부마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셈이 됩니다. 자기 사위를 모욕했다고 한황이 더 격분할지도 모릅니다.”
신하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일단 모르는 일이라고 뚝 잡아떼면서 시간을 끌자-이들은 그동안 광서왕의 중재로 흥시제와 화평을 맺기를 희망했다-는 패거리와 실수를 인정하고 싹싹 빌자-이들은 한군의 지원을 받아 흥시제와 싸우자고 했다-는 두 패거리로 말이다. 장장익은 어느 쪽을 따르는 편이 좋을지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잠깐, 그럼 그동안 보호하던 한인들은 어떡하면 좋겠는가? 역시 바로 송환해야 하는가?”
죽어도 잡아두었다고 할 수는 없다. 보호해둔 거다.
“한군이 불산으로 밀려오기 전에 당장 송환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융승하게 대접했는지 알리게 하지요.”
“아닙니다. 일단 좀 더 데리고 있으면서 시간을 끄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론 한군이 지금 홍콩에 와있다는 사실은 저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요.”
돌려보내면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없어졌으니 한군이 아주 홀가분하게 공격해올 수 있다.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대는 또 그때대로 분노해서 공격해올 수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그 결과는 전쟁으로도, 평화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전하! 한군에 원구닝 온다는 말도 어쩌면 허언일지 모릅니다. 혹시 온다고 해도 몇천 명 정도가 고작일 겁니다. 우리 광도엥는 이미 50만 대군이 있고, 뽑기만 하면 백만 명이라도 더 동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왜상들이 데려올 병력도 있으니 용기를 내십시오.”
아무리 한군이 강하다고 해도 광동군이 50배, 100배의 병사를 투입하면 승리할 수 있다. 몇몇 중신들은 그 이야기를 하며 용기를 불태웠다.
“예부상이 만나보고 온 한국 수사제독의 태도를 보건데 한나라 본국에서는 전하께서 신속(신속)하겠다는 제안을 좋게 보고 있을 공산도 큽니다. 일단 좀 기다려 보시지요.”
동생 장장헌도 이렇게 진언했다. 장장익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올해로 40세, 짧다고 하기 힘든 세월을 살았지만 이런 힘든 선택의 기로에 처하기는 처음이었다.
12.
박문수와 이봉중은 적두도 앞바다에서 엿새 동안 기다렸다. 몰론 그동안 아무런 일도 안 하고 허송세월한 건 아니었다. 잉글인들과 교섭해서 협력을 얻고, 주강을 오르내린 경험이 많이 있는 외수사 주재원들에게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드디어 본국에서 함대가 왔다. 전선 5척, 수송선 31척이라는 대규모 함대였다. 싣고 온 병력은 대붕영 군사 제1진, 3천5백 명이었다.
“고생하셨소이다.”
“중간에 풍랑을 만나지만 않았으면 더 빨리 왔을 겁니다.”
육군 선봉장을 맡은 대붕영 2연대장 홍진오 참장이 이봉중에게 군례를 올렸다. 그 옆에는 칙서를 가지고 온 외무부 관원 조현명이 있었다.
“도원수 대감게서는 다음 함대로 오실 겁니다. 그때까지 전체 지휘는 통제사게서 맡아서 하시라는 어명입니다. 칙서는 여기 조 국장이 전할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무력을 통한 위압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국서도 한 장 안 날리고 곧바로 두드려 팰 수는 없다. 그건 법도가 아니다. 그래서 선발대가 출발 준비를 하는 사이 급히 국서를 준비하고 사자를 정했다.
“알겠소이다. 그런데 칙사게서는 너무 젊지 않소?’
조현명은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5품 국장이라, 별로 높은 직위도 아니다.
“광동왕은 그 격이 높지 않으니 고관을 파견할 필요도 없다는 게 조정 중론이었습니다. 덕분에 과분한 중책을 맡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일은 광동왕에게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서나라 황제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소? 서제와 협상을 진행하기에 그대는 너무 품계가 낮은 것 같은데…..”
“그건 도원수께서 직접 하실 것입니다.”
“그렇구려. 그럼 되었소.”
광동은 독립국이 아니다. 분명 서나라의 번국이다. 그렇다는 건 독자적인 외교, 교섭권도 없다는 듯이고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성도에 있는 서나라 조정이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고로 칙사의 격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흠, 그럼 칙사가 오셨으니 광동왕을 찾아가야겠구려.”
이봉중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광동인들에게 교훈을 줄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