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25
3부 543화(1425화)
13.
강변에서 흰 연기가 솟았다. 저게 실포일까 공포일까 잠시 궁금해하는 사이 우현 쪽 50보 지점에서 물기둥이 솟았다. 수로를 확인하고 광동왕부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직접 선견대로 나선 이봉중은 망설이지 않고 지시했다.
“쏘아라.”
오늘은 기유년 6월 24일, 양력으로 7월 19일이다. 계미남변 이후 처음으로 대한 해군이 타국의 포대를 향해 포탄을 날리게 되는 이 명령을, 이봉중은 아주 담담하게 내렸다. 통제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한 해군 3백 톤급 기갑선, 갑동(甲棟)의 우현에 실은 18근 포 4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몇 초 뒤에는 뒤를 따라오던 요함(僚檻) 갑원(甲圓)이 탑재한 포 4문도 일제히 포탄을 날렸다.
여덟 개의 쇳덩어리 포환이 포대를 강타하자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돌과 벽돌을 쌓아 만든 포대가 무너지고, 포환에 직접 맞거나 무너진 축대에 깔린 광동 군사들이 지르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포대 쪽에서도 2차 사격을 가해왔다. 십여 발에 달하는 포탄이 날아왔지만 명중한 포탄은 단 2발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면 위에 물기둥만 만들었다. 그나마 명중한 포탄중 이쪽 기갑선의 두꺼운 철판을 뚫은 놈은 하나도 없었다.
“물기둥 크기를 보니 좌다 홍이포인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군.”
홍이포(紅夷砲)는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도입된 서양 화포다. 청, 서, 후송 세 나라 모두 이 포를 쓴다. 청나라는 녹영군이 운영하는 일부 포대에서 요새포로 사용할 뿐이지만, 서와 후송은 주역화포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 포 무게는 12근 포만큼 무겁다. 그러면서도 포탄은 9근 정도 나가는 가벼운 포탄을 쓴다. 대한에서 제작한 최신 대포와 비교하자면 좋은 대포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 뒤를 따라오는 광현은 목조라 저 포탄에 맞아도 파손될 수 있겠지. 그러니 확실히 무너뜨리는 편이 좋겠네. 조금 더 근접헤서 차근차근 부수도록. 기갑선 두 척으로는 화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가 없군.”
“예, 통제사 영감.”
군관이 멸영을 전달하러 간 사리, 이봉중은 앞갑판에 우뚝 선 채로 천리경으로 적 포대를 살피며 나직하게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어차피 상대가 안 되는 건 뻔히 알고 있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먼저 포를 쏘았단 말인가?
“마땅히 전선을 몰고 나와 임검부터 하는 게 순리이거늘.”
허가도 받지 않은 외국선이 멋대로 내륙으로 들어올 때, 그 앞을 막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필요하다면 발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침입자가 누구인지, 목적은 무엇인지를 탐문하는 절차 정도는 거쳐야 할 게 아닌가. 물론 이봉중이 함대를 이끌고 와서 적두도 앞에 닻을 내린게 벌써 여드레 전이니, 굳이 누구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왜 상류로 올라오느냐, 어디로 가려는 거냐는 질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저놈들 기갑선이 뭔지도 몰랐나……?”
3백 톤밖에 안 되는 작은 배가 다가오니까, 홍이포 정도면 충분히 위협해서 쫓아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기선이야 가끔 광주를 왕래하니까 본 적이 있겠지만, 기갑선이야 올 일이 없으니까 본 적도 없었겠지.
“그렇다고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찬가지군. 적두도에 있는 우리 본대는 어쩌려고 대뜸 포를 쏜거지.”
적진을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포대 위에 살아남은 화포들이 세 번재로 포를 쏘아댔다. 이번에도 물기둥은 잔뜩 피어올랐지만, 명중탄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포탄도 갑동의 선체에 씌운 철판을 뚫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통제사 영감!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위험합니다!”
철갑을 뚫지 못할 만큼 가벼운 포탄이라고 해도 사람 몸에 직접 맞으면 죽는다. 뛰어나온 박문수가 황급히 이봉중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봉중은 마땅찮은 듯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인도에 따라 선내로 들어갔다.
“현조이신 충무대왕께서는 적탄이 마치 비처럼 날아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대에 올라 함대를 지휘하셨건만, 이까짓 포대 하나 때문에 기갑선 안으로 숨으려니 부끄럽습니다.”
“영감, 충무대왕께서도 홍이포 포대를 단독으로 상대해야 했다면 포화에서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셨을 겁니다. 부디 몸을 아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봉중은 선내로 들어간 뒤에도 갑동은 물론 후속하는 갑원까지 신호기를 활용하여 계속 지휘했다. 두 기갑선은 포격을 가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거리로 근접한 뒤, 감히 선제포격을 가해온 광동군 포대를 확실하게 분쇄했다. 후속하는 2등 중선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14.
대한 해군 철갑선 두 척이 불산에 도착하기보다 이들이 벌인 일이 먼저 불산에 전해졌다. 파발이 가져온 소식을 받은 장장익과 신하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전선 단 두 척이, 그것도 별로 크지도 않은 배들이 광동군 포대와 함대를 연달아 때려 부쉈기 때문이다. 광동군은 40척 가까운 대한의 원군이 온 것을 알고 완전히 긴장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던 참에 대한 군선 두 척이 통보도 없이 주강 본류에서 불산으로 들어오는 지류를 타자 마침내 대포가 불을 뿜었다. 긴장감을 참지 못한 한 포수가 무단으로 불을 댕겨 버렸다.
되돌아온 응징은 참혹했다. 이쪽에서 쏜 포탄은 적함에 맞지도 않았건만, 저들은 곧바로 대놓고 조준사격을 퍼부었다. 뒤늦게 반격하여 포환 몇 개를 적중시켰으나 적선은 분명히 포탄에 맞았으면서도 구멍 하나 뚫리지 않았다. 실수로 포격을 개시했던 첫 포대는 풍비박산이 났다. 두 번째 포대는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일제사격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적선 두 척이 쏘아대는 포격에 포대가 무너지고 화약고가 터졌다. 거대한 굉음과 불꽃이 전투를 마무리했다.
급히 출격한 수군도 왼패했다. 두 번째 포대가 터진 뒤에 나선 광선(廣船) 열 척도 분명 먼저 쐈는데도 한군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가 발사한 포탄은 일격으로 이쪽의 선체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아니, 아예 관통해서 반대편으로 뚫고 나가버렸다. 일방적인 교정으로 두 척이 격침되고 세 척이 대파당했다. 그러자 나머지 배들은 더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물에 빠진 수졸들은 재주껏 살아남도록 버려졌다. 광동 수군이 저항을 포기하자 한군도 포격을 중단하고 다시 상류로 올라왔다.
이 광경을 본 세 번째 포대에 있던 군사들은 공포에 질려 모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한군은 전혀 저항하지 않는 세 번째 포대에도 일방적으로 포탄을 퍼부어 쑥대밭을 만들어놓았다. 포대는 폐허가 되고 백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그나마 네 번째 포대부터는 공격 받지 않았다. 한인들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광동군의 포대나 함선들을 보면서도 포를 쏘지 않고 유유히 항진을 계속했다. 하지만 어느 전선도, 포대도 그 앞을 가로막거나 포격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를 따라오는 목선조차도.
“이, 이 지독한 놈들……!”
한나라에 기갑선이라는 철갑선이 있다는 말이야 들었지만, 그게 저런 위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싸울 일도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던지라, 딱히 성능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기피은 무력감이, 그리고 분노와 공포가 장장익을 엄습했다.
“이놈들이 어찌 이리 무도하단 말인가! 우리 포대가 포를 쏜 것은 명백히 실수였고, 설사 실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수로에 통보도 없이 들어오는 외선(외선)에게 경고하는 건 당연한 우리 권리가 아닌가!”
“전하. 저들은 예부상에게 자기네 칙사가 오리라고 고지했으니, 통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것이옵니다. 우리가 어찌 생각하든, 저들이 판단하기에는 그렇다는 것이옵니다.”
병부상 육수정이 탄식하듯이 토로했다.
“도리가 없습니다. 한사가 도착하거든 왜 포를 소았느냐고 항의하거나 하지 마시고, 그냥 없었던 일로 치부하시옵소서. 따지고 항의해 봐야 공연히 분란만 더 커질 것이옵니다.”
예부상 조상망은 한술 더 떴다.
“한에서 칙사가 올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우리 포대가 사신이 승선했는지도 확인해보지 않고 발포했으니 한인들이 이를 사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무리가 아니옵니다. 먼저 발포한 데 대한 유감의 듯을 표하고, 우리가 한황께 적대할 뜻이 없음을 표하소서.”
“허허, 그대들 모두 과인에게 허리를 굽히라는 소리밖에 안 하는구려. 내가 일국의 왕이긴 한 거요?”
허탈해진 장장익이 헛웃음을 웃었다. 육수정이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가 어지 전하의 침통하신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성도에서 내려오는 관군만 없다면야 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라도 한군의 무도한 행동을 응징하고 싶사옵니다. 그렇지만 지금 양면으로 적을 맞을 수는 없습니다. 제발 참으시옵소서.”
한 분 밖에 안되는 한군 따위, 백만 대군을 모아서 그대로 밟아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던 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설사 정말로 백만 대군을 동원하더라도 물 위에 든 철갑선은 도무지 상대할 재간이 없는 탓이다. 장장익이 통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소….. 알겠다고.”
광동왕부는 침울한 분위기에 젖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한황이 보낸 사신을 맞이했다. 광동왕부에 보습을 드러낸 한나라의 칙사는 겨우 정5품이었다. 한황이 직접 칙사를 보내 협상하기로 했으니, 이는 광동왕부가 그 지위를 인정받은 셈이라고 자위하던 이들도 칙사의 품계를 알고는 할 말을 잃었다.
“송구하옵니다. 더 빨리 당도하려 했으나, 수로를 햇갈리는 바람에 그만 늦었습니다.”
그래도 조현명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줄기 둘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잘못된 수로를 택하는 바람에 엉뚱한 쪽으로 갔고, 그러다가 잘못을 개닫고 다시 내려오느라 조금 더 지체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증기선을 타고 왔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아니, 괜찮소. 그보다는 한황께서 경을 통해 전하신 말씀을 어서 듣고 싶소만……”
협상에서 조급한 모습을 보여서 유리할 일은 없다. 하지만 지금 장장익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반해 조현명은 침착하기만 했다.
“저희 폐하께서 분부하시기를, 광동군 군사에 의해 우리 주서사가 살해당한 일은 실로 큰 재앙이라 하셨습니다. 일개 히안이 죽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인데, 종3품이라는 고위 관리가 죽었으니 어찌 이를 그대로 넘기겠습니까?’
역시 한나라 조정은 부마가 올린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하지만, 광동으로서는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광동에서는 지금 우리 진휘사 관원 백여 명을 두 달 가까이 억류하고 있습니다. 우리 폐하께서는 지금 이 두 가지 문제로 심히 분노하고 계십니다.”
신하들의 눈이 장장익에게로 솔렸다. 부디 사전에 논의한 무난한 대답으로 한사의 기분을 맞춰서 더 이상 저들과 부딪치지 않게 해 달라는 무언의 호소였다.
“…….우리 사정은 그대도 들었으리라고 생각하오. 성도에 계시는 폐하께서 큰 오해를 하시는 바람에 상황이 무척 나빠졌소. 그래소 그래서 중재를 청하고자 먼젓번 사신 일행을 잘 대접했는데, 그만 무슨 연유인지 정사가 없어져 버렸소. 그래서 정사를 찾는 동안 불가피하게 계속……”
장장익은 침통한 표정으로 사전에 준비한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현명은 이를 끝까지 말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그러시다면 고령위게서 무사하심을 귀측 예부상께서 확인하신 뒤에도 돌려보내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제 광주절도사와의 교전도 끝났으니까 돌려보내셔도 될게 아닙니까. 배 한 척만 내시면 적두도까지 보내는 건 일도 아닐 텐데요.”
대답한 말이 있을 리 없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장장익에게 조현명이 단호하게 한 마디 던졌다.
“전하게서 해주기 힘드시다면 저희가 직접 하면 되겠지요. 물론 도와주실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시리라고 믿겠습니다.”
전각 안이 술렁거렸다. 직접 하겠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15.
여기를 빠져나가 도망친 날이 국력으로 5월 3일이었다. 오늘은 6월 25일, 정확하게 51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네놈들, 내 얼굴을 알아보겠느냐? 어서 물을 열고 우리 관원들을 내줄지어다.”
여기 머무를 때 박문수는 평범한 바지저고리에 도포 차림으로 지냈었다. 관복은 아니라고 해도 지위가 있으니만큼 격식을 갖춘 옷차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화려한 백위영 제복을 차려입고 부령 계급장까지 달았다. 백위영은 군사들 대부분이 러시아에서 온 카자크인과 바시키르인인데다, 임금의 사병에 가까운 성격 대문에 아주 화려한 유럽식 제복을 입는다. 깃털 달린 전립까지 쓴다.
“우리 관원들을 내놓지 않는다면 우리와 일전을 치러야 할 게다. 각오는 되어있는가?”
박문수가 혼자 돌아와서 이런 소리를 했다면 누구나 미쳤다고 했으리라. 하지만 박문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묜을 비롯해서 박문수가 지휘하던 백위영 중대원 104명이 뒤에 있었다. 허리에는 권총을 꽂고, 칼집에 든 환도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자세로 말이다.
이들은 자기네 중대장을 지냈던 박문수가 곤란한 상황에 몰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장 달려갔겠다며 자원했다. 임금이 그 뜻을 받아들이면서 홍진오를 따라오게 되었다.
“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대인. 저희는 광동와 전하의 명을 받아서 여기 객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 마음대로 문을 열고 어쩌고 할 수가……”
박문수를 알아본 광동군 장수는 선뜻 문을 열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티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광동왕부에서 받은 지시가 있으니 선뜻 한인들을 풀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티자니 칼부림이 벌어질 판이었다. 어느 쪽도 고를 수 없었다. 잠시 대치가 이어지는 사이 안쪽에서 ?가 소동이 벌어진 기색이 느껴졌다. 낌새를 느낀 박문수가 세묜에게 귀엣말을 건네자 세묜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하더니 마치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부사 영감! 고령위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폐하께서 보내신 구원병을 데리고 우리 일행을 데리러 오셨으니, 속히 나오십시오! 이제 여길 떠날 때입니다!”
천둥 같은 세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박문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쪽에서 진위사 일행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면 저들은 한층 더 상황이 곤란해지리라. 세묜의 목소리가 원체 크다 보니 금방 반향이 왔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안쪽에서 소란을 부리는 소리와 함게 환성이 들렸다.
“나리! 나리! 드디어 오셨습니까!”
“오실 줄 알았습니다, 고령위 나리!”
“비켜라, 이 때놈들아!”
“아이고, 때놈들이 사람 잡네!”
비명에 구원을 청하는 소리까지 들리자 박문수가 허리에 찬 환도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당황해하던 광동 군사들도 창을 잡은 손에 함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백위영 군사들도 곧바로 칼손잡이를 잡았다.
“어서 열어라! 우리 관원들을 내놓아라!”
박문수는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불산 백성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이미 대한군은 포대 세 개와 함대 하나를 박살 내고 불산까지 올라왔다. 그 소문이 성중에 퍼지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저들이 함부로 덤빌 리가 없는 것이다.
“대인, 하지만 소인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군령을 받고 있습니다!”
객사를 지키던 광동군 장수가 눈을 질끈 감더니 검을 빼 들었다. 그 뒤에 있던 군사들-어느새 3백 역 명으로 늘어 있었다-도 일제히 창과 총을 겨누었고, 군관들은 칼을 뽑았다. 절대 문을 열 수 없다는 기세였다.
“좋아, 해보자는 말이지.”
박문수가 칼을 뽑았다. 상감게서 직접 내리신 명검이 시퍼렇게 광채를 발했다. 뒤에 서서 기다리던 군사들 역시 그 빛을 보고 일제히 총과 칼을 뽑았다. 양측 군사들은 무기를 겨눈 채 무섭게 상대를 노려보았다. 어느 한쪽이라도 섣불리 몸을 움직인다면 곧바로 피바다가 펼쳐질 그 순간 말 한 필이 급하게 달려왔다.
“멈추시오! 모두 멈추시오! 객사에 있는 한사 일행을 모두 항구로 보내서 떠나게 하라는 광동왕 전하의 어명이 계셨소!”
조션명의 통첩을 받은 광동왕이 보낸 사자가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착했다. 대치하던 광동군 군사들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무기를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박문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첫 싸움, 이것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