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35
3부 553화(1435화)
4.
“폐하, 어찌 왕림하셨나이까!”
내 마차가 대문 앞에 멈추자 연주네 집사가 구르듯 뛰쳐나와 땅바닥에 엎드렸다. 일부러 단출한 행렬로 나왔지만, 공주네 집사 정도 되면 내가 온 줄 못 알아챌 리가 없다.
“공주를 보러 나왔다. 공주는 안에 있느냐?”
“안채에 계십니다. 사랑에 계시면 바로 나오시게 하겠습니다.”
“아니다. 몸도 무거울 텐데 내가 들어가겠다.”
연주는 지금 임신 8개월이다. 미안한 마음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집사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공주께서 단단히 당부하셨스빈다. 누가 찾아오든 절대 공주께서 겨우 태중의 아이 때문에 운신도 제대로 못 하시는 약골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심각한 기분으로 찾아왔건만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연주가 자존심 하나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았지. 그래도 기운이 있는 모양이라 다행이다. 박문수가 최전선에서 싸운 소식을 조보에서 보고 혼절하지는 않은 모양이니.
“알겠다. 짐은 사랑에 있을 테니 가서 공주에게 차비하고 나오라고 하여라.”
“예, 폐하!”
집사는 바람처럼 안채로 달려가고, 나는 사랑채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사만큼 나이가 든 나이 든 노복이 길을 안내했다. 그 뒤를 따라 사랑에 들어갔다. 양식으로 꾸며둔 박문수의 사랑방은 주인이 머물 때보다 비어있을 때가 더 많아서 그런지 약간 을씨년스런 기색을 풍겼다. 그래도 처음 와보는 공간이 아니닫 보니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오셨습니까, 아바마마.”
“안녕하셨사옵니까, 할아버님 폐하!”
박문수가 러시아에서 가져온 이런저런 수집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두다다다다 하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셋이나 되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입을 모아 인사하면서 엎드렸다. 열한 살 난 맏이부터 일곱 살 난 셋째까지. 세 살 난 넷째는 연주가 안고 있었다.
“그래, 모두 잘들 있었느냐. 어허, 공주 너는 몸도 무거운 아이가 왜 힘들게 직접 아기를 안고 있느냐. 유모를 시킬 것이지.”
혀를 차며 내가 넷째 유연이를 받아들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막내 딸, 가장 어린 나이에 대륙을 횡단한 기록을 세운 아이다. 연주는 창백한 얼굴에 쓴웃음을 지었지만 바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개의치 않고 유연이를 어르면서 말을 걸었다.
“그래, 몸은 좀 괜찮으냐.”
“괜찮사옵니다, 아바마마.”
그제야 연주가 입을 열었다. 다소 안도하면서 마주 앉아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손자 둘과 손녀 하나가 주변을 뛰어다니니 너무 소란스러워서 깊은 이야기는 좀 어려웠다. 연주도 임신이 벌써 5번재다 보니 딱히 그 부분에서 조언할 것도 없다.
“얘들아, 마당에 나가서 놀아라. 폐하께서 피곤하시다.”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연주가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장남 순규가 막내 누이의 손을 잡고 나가자 비로소 사랑방 안이 조용해졌다.
“고령위의 소식을 전하러 오셨사옵니까, 아바마마.”
뜻밖에 연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잠시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있다는구나. 다친 데도 없고.”
연주도 그동안 박문수에게 따로 편지를 받고 있기는 했다. 정확히 뭐라고 적었는지는 잘 몰라도 짐작은 간다. 자기는 잘 있으니 염려 말라는 내용이었으리라.
“이번 싸움에서도 세운 공이 많다. 돌아오면 필시 품계도 오를 것이고 다른 포상도 있을 것이야.”
“그래봐야 다음 싸움에서 흉탄에 맞으면 아무 소용도 없지 않사옵니까.”
손은 바르르 떨었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연주는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위해, 정신줄을 붙들고 있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티가 났다.
“아쩔 수가 없구나. 고령위도 이 나라의 무관이다. 전쟁이 일어났으니 무관으로서 해야 할 책무를 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아오려고 하면 올 수 있지 않사옵니까. 애초에 고령위는 진위사로 서나라에 간 것이지 군사를 거느리고 간 게 아니었으니까요.”
이형직을 비롯한 다른 진위사 관원들은 곧 돌아온다. 이인좌의 시신과 함께 말이다. 허나 경호차 동행했던 무관 여섯 명과 박문수는 도원수 휘하 참모군관 겸 표하군으로 편제되어서 광동에 남기로 했다. 휘하에 거느리는 병력은 박문수를 찾아온 백위영 군사 1개 중대고.
돌아오려고 하면 연주 말대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 무관들은 이유야 어쨌건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고 적에게 잡힌 과오가 있다. 게다가 20년 만에 벌어진 전란은 공적을 세우고 출세할 기회기도 하다. 나로서도 남겠다는 뜻을 표하는 박문수를 말리기 쉽지 않았다.
“괜찮사옵니다. 제가 아무리 붙들어도 뜻을 이루려고 결심한 사람인것을요. 그저 고령위 곁에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그제야 연주의 손목에 걸린 염주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요즘 안채에 불단을 모셔놓고 매일 염불을 올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종교에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웬 염불인가 싶어 물으니, 이것도 사연이 있었다.
“소녀가 태후께 찾아가서 하소연 했더니 태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저 고령위를 위해 매일 염불을 백 번씩 하면 잡념도 사라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채에다가 불단을 만들고 매일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상희가 죽은 후, 연주는 어머니의 정을 찾고 싶을 때면 창덕궁에 갔다. 연주는 대궐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뻘 되는 부 인으로 정을 붙인 사람이 큰어머니인 태후밖에 없다. 태후 역시 막내 조카인 연주를 무척 예뻐해 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세 후궁도 어머니 뻘이 되긴 하지만, 후궁은 후궁이다. 연주는 단 한 번도 후궁들을 어머니인 상희처럼 대우하거나 생각한 적이 없다. 자기가 적통 공주라는 인식이 그만큼 확고한 아이 아닌가. 그래도 올렝카한테는 좀 달랐지만, 상희보다 먼저 떠났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네가 루스에 다녀온 바도 있어서, 네가 혹시 무언가를 믿는다면 예수교에 귀의할 줄 알았다.”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같은 예수교끼리 패를 갈라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싸우는 골이 보기 싫었다고요.”
연주가 어리사에 있을 때, 루시아가 연주도 세례를 받게 하려고 기를 좀 쓴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교도인 러시아 귀족들과 가톨릭인 루시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본 연주는 양쪽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매 사이가 나빠지진 않았지만.
“할마마마께서도 평생 열심히 부처를 섬기셨기에 그 보답을 받아 아바마마께서 지금처럼 명군이 되신 것이라고 태후께서 말씀하셨사옵니다. 그러니 부처께 열심히 빌면 고령위도 꼭 남방에서 무사히 돌아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열심히 빌도록 하여라.”
뭐든지 마음 기대고 위안을 받을 곳이 있다면 좋은 것이지. 그나저나 연주도 나이를 먹고 변하긴 변했구나. 속으로는 남편이 보고 싶어 울고 있을지 몰라도, 내게는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라니.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이번에 광동에서 박문수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게 이 아이에게는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나 보다. 하기야 연주도 나이가 벌써 만으로 스물다섯 살인데다 애도 다섯이나 되니, 계속 소녀처럼 지낼 수는 없겠지. 장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구나.
5.
유럽인이라고 해도 대한 땅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곳 사고방식에 물이 들기 마련이다. 대한에서 지낸 지 올해로 8년째를 맞는 프랑스 동인도회사 상관장 오스카르 메나제는 이런 인사로 내게 경의를 표했다.
“올해도 풍년이 드셨다지요. 이게 모두 주님께서 폐하를 위해 은총을 베푸신 덕이 아닐까 합니다.”
뒤이어 다른 프랑스인 한 사람이 정중한 자세로 한쪽 무릎을 끓으며 고개를 숙였다. 루이 16세가 파견한 특사 구르송 백작이었다.
“위대하신 동방의 군주이시자 아시아 제일의 기사이신 조선의 임금께 인사드립니다. 우리 루이 16세 폐하께서도 임금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셨습니다.”
이번 생에서 우리 두 나라 사이에 특사가 직접 오간 사례는 별로 없다. 양쪽 모두 딱 한 번씩 보냈다. 거리가 멀뿐더러 굳이 특사를 보낼 만한 용건도 드물었던 탓이다. 내가 직접 갔던 건 빼고, 우리 쪽에서는 루이 14세를 위한 진위사로 갔던 디에고가 있다. 본래 임무에 더해 루이 15세의 초상까지 조문하고 왔다. 그때 루이 16세도 만났다.
프랑스 쪽에서 누가 온 건 형황 때 군사고문단을 인솔한 사절단이 다녀간 뒤로 처음이니 대략 30년이 넘었다. 그때 사신단 인솔자가 누구였더라…..?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 그대는 내가 본국에 없어서 나하고 직접 얽힌 부분이 없었던 일이라서 그런가.
아, 계미남변 도중에 사략선단을 끌고 찾아온 프랑수아 바르는 제외하고, 그 녀석은 외교 특사라기보다는 특수임무를 띤 유격함대 사령관이었으니까.
“고맙소. 그대들의 국왕께도 평화와 번영이 깃들기를.”
그러고 보니….. 올해가 루이 16세가 프랑스 국왕이 된 지 딱 10년째구나. 1720년에 조부의 뒤를 이어 즉위했으니까. 그때는 13살 어린애였는데. 음, 특사 앞에서는 표현에 주의해야겠다. 아무리 내 친구의 손자라고 하지만 루이 16세를 내 손자 부르듯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데, 할아버지 친구라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대하면 저쪽에서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국왕의 사자로군. 먼 길을 오셨으니 마땅히 대접해야겠지, 만찬이나 함께 들겠소?”
“감사합니다.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손님들을 데리고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유럽 방면 소식을 제대로 듣겠구나.
“이 튀긴 닭고기가 참으로 부드럽군요.”
“우리 황실에서 무려 2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조리법이라오. 많이들 드시오.”
무종계 요리는 황실 주방의 자랑이다. 그 부드러운 맛을 내느라 옛날에는 정말 병아리를 겨우 벗어난 그런 작은 닭을 튀겼다. 조선 재래종 닭은 성장이 느린 건 둘째치더라도 고기 질이 너무 질겨서 도저히 튀겨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어린 닭은 튀길 수밖에. 현대에 살 때는 보통 치킨 한 마리를 다 못 먹는 식사량이었지만 무종시절에는 한 끼에 무종게 세 마리는 우습게 해치웠다. 그게 다 닭이 작았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시간이 흐른 장조 초기에도 조선 재래종 닭이 크지도 않고 육길도 질긴 건 여전했다.
변화가 일어난 건 스페인에서 유럽산 닭이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이후로 중국이나 동남아 등 각종 외국 산 닭을 들여와서 교배하면서 덩치가 좀 더 커졌다. 그래도 너무 크게 키우면 질기긴 한데, 이제는 압력솥이 있다. 고기가 질긴 큰 닭이라도 압력솥으로 튀기면 부드럽다.
“자, 여기 미주산 포도주도 맛보시구려. 귀하의 입에는 프랑스산만큼 못할지 몰라도 제법 괜찮은 맛이라오.”
“감사합니다, 폐하.”
무종계 말고 다른 요리도 호평이 있다. 모두 술돋 적당히 마셔서 ?纘デ?기분이 되었을 때 국혼 이야기가 화제로 나왔다. 루시아의 큰 딸 예카테리나와 앙주 공작의 결혼 교섭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래, 특사께서는 아직 그 혼사에 관한 소식은 듣지 못하셨구려.”
“그렇습니다, 폐하. 제가 본국을 떠날 때는 아직 러시아 차르로부터 그런 제안이 도착하기 전이었으니까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구르송 백작은 예카테리나와 앙주 공작의 혼인에 관한 소식은 알지 못했다. 하기야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항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하다. 다만 그 배경에 관해 듣고 나서는 괜찮은 제안이라며 호감을 표했다.
“부르봉가의 일원이 폴란드 왕국의 왕관을 쓰는 건 루이 14세께서도 바라시던 일입니다. 혹시 제가 귀국했을 때 그 혼담이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받아들이시라고 꼭 국왕 폐하께 진언하겠습니다.”
“고맙소.”
양주 공작이 폴란드 왕이 된다면 장차 러시아가 폴란드까지는 자기 땅으로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낼 거다. 소비에스키의 피를 이은 자기 자손이 폴란드를 통치하게 하겠다는 루시아의 목표대로라면, 내 맏외손자인 표트르 2세와 그 후손이 솔직히 1순위 후보 아닌가.
루시아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애의 목표를 아들인 표트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폴란드 전체를 러시아에 통합하는 방법으로 그 꿈을 이룰 위험이 있다. 그건 절대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꿈이다.
내가 표트르에게 남쪽으로 가서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라고 바람을 넣은 이유는 러시아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고 공존하게 만들려고 유도한 거였지, 유럽을 정복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유럽을 정복하고 대서양에 도달한 러시아 제국 따위는 절대 필요 없다.
폴란드는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를 갈라놓는 완충국이자 러시아의 지나친 확장을 경계하는 파수꾼으로 존속해야 한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유럽 최강국인 프랑스의 왕자가 루시아의 딸과 결혼하면서 폴란드 국왕이 되어 소비에스키의 후손에게 물려주는 게 최선이다.
물론 이런 내 속셈은 상희가 아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겉으로야 그저 내 외손녀가 좋은 혼처를 찾아서 기뻐하는 노인일 뿐이다. 구르송 백작에게도 마찬가지 태도로 대했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내 진짜 속셈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베르사유에서 루이 14세 폐하를 직접 만나 뵌 지도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구려. 그 당당하신 자태가 지금도 눈에 선하오. 내 외손녀가 그분의 후손과 맺어져 베르사유의 그 장려한 정원을 거닐게 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는구려.”
“소관도 기대가 됩니다. 유럽 최강국인 우리 프랑스와 아시아 최강국인 조선의 두 왕실이 중간에 있는 러시아를 디딤돌 삼아 연을 맺는 셈이니,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그렇다고 직접 국혼을 맺을 생각은 없겠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사정이 그런 혼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도 루시아가 폴란드 혼혈인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다가 마침 중간에 러시아가 끼어들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혼인이다.
“그러면 우리 대프랑스와 대조선, 두 나라가 더욱 가까워지겠군요. 그럼 임금께서도 우리 폐하께서 보내는 요청을 들어주시기 더 쉬워지실듯합니다.”
“어떤 요청이기에 그러시오?’
웃으며 물었다. 교역을 더 하게 해달라는 건가? 어차피 지금도 교역액이나 물량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데. 혹시 미주에 상관이라도 두게 해 달라는 건가? 설마 영국과 새로 전쟁을 시작할 테니 도와달라는 건 아닐 테지.
하지만 다음 순간 구르송 백작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정말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은이를 비롯해서 만찬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 모두가.
“임금 폐하. 인제 그만 튀르크인들을 용서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