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4
1부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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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하나 더 얻고,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 행사를 치르고 하면서 좋은 일도 있었지만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대왕대비께서 용태가 좋지 않으신데, 아무래도 상례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이 나빠진지 좀 된 인수대비의 몸 상태가 요 몇 달 사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어의들이 부지런히 드나들며 돌보았지만, 나이가 나이인데다 ? 예순일곱이다 ? 작년 역모사건 때문에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손자들은 장손의 손에 줄줄이 유배를 당했다. 게다가 서자이긴 해도 사촌오라비 한치형이 남긴 유일한 아들이 걸려들어 처형당했다. 자신의 조카이자 임금에게는 7촌 아재뻘이었지만, 독이 오른 임금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여기에 결정타로, 눈앞에 나타난 장손은 ‘증조할아버지도 옛날에 똑같이 하지 않았느냐’며 패드립을 쳤다. 진짜 연산군이 했다고 야사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머리로 들이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수대비 입장에서는 이 정도 언사만으로도 아마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으리라.
“대왕대비께서 그리 위독하시다면 상례 준비를 시작하심이 옳사옵니다. 다만 안팎이 흔들릴 수 있사오니 은밀히 하시옵소서.”
초상을 치르는 것도 흉사는 흉사다. 게다가 그 대상이 왕실의 제일 어른인 대왕대비임에랴, 아직 사람이 죽지도 않았는데 드러내놓고 초상 치를 준비를 시작할 수는 없다.
“장례에 소요되는 베와 비단 정도를 마련하는 것처럼 약간의 준비는 주변에 드러내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을 내려 사소한 사항들부터 준비케 하소서.”
특진관 성준이 조용히 아뢰었다. 이 문제는 아무나 잡고 쉽게 의논할 일이 아니라, 나이든 전현직 대신들로만 골라서 몇 명 불러들인 참이었다. 추운 날 오가느라 힘들었겠지만 양해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초상을 치러본 경험은 있다. 하지만 그때도 챙길 일은 아버지 대 어른들이 다 하셨지 내가 한 건 없었다. 게다가 우리 시대 일반 상례(喪禮)와는 아예 준비하는 수준이 다를 터, 경험 많은 신하들에게 물어보는 게 현명한 일이다.
“나는 대왕대비께서 쾌유하시기를 비는 불사를 드릴까 한다. 조정에서는 분명 반대가 있으리라 여기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난 불교 신자가 아니다. 교회나 성당도 안 다녔고. 기도나 불공 따위는 순전히 드리는 사람 자신을 위한 자기만족 같은 거라고밖에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인수대비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진짜 할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내가 할머니로 여기고 따르던 사람이다. 그 시간동안 들인 정을 생각해서라도 불공 정도는 드리고 싶었다. 그거 보고 편하게 가시라고.
“신들은 전하께서 불우(佛宇)를 새로이 건립하지 말라 하시고 도첩 발행을 줄이시며 북악산 자락의 사찰과 암자를 모두 허셨기에 매우 기꺼워하였습니다. 허나 새로이 불사를 드리심은 실로 마땅치 않은 일이라고 여겨지옵니다.”
신규로 사찰을 세우지 말라는 명령은 2년 전에 내렸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절이야 전통적인 문화유산인 셈이니 딱히 훼손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늘릴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고려시대 말기 이후로 불교를 극도로 적대시하는 사대부들과 굳이 싸워가며 권장할 메리트가 없었다.
북악산 자락에 있던 사찰과 암자는 작년 역모소동 이후로 싹 헐어버렸다.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던 일반 민가도 모조리 부숴버렸다. 그래도 주민들에겐 이주비용은 넉넉히 주었다.
내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발 더 나가서 궁궐 수비를 맡은 군사들 외에는 아무도 북악산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를 세워 아예 출입을 막았다.
북악산을 청소해 버린 건, 갑자기 머리를 채운 걱정 때문이었다. 만약의 경우 반란군 놈의 새끼들에게 거사 직전까지 매복할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야 사실상 기획수사지만, 누군가 진짜로 역심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북악산에서는…궁궐을 바로 내려다보며 정세를 살필 수도 있고, 강한 활이나 총으로 직접 저격을 시도할 수도 있다. 내가 왜 그런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그대들이 알다시피 과인은 불교를 신봉하지 않으나, 대왕대비께서 믿으시니 어찌하겠느냐. 이게 다 효를 위함이니 그대들이 용납하길 바란다. 자순대비께서는 불교를 신봉하지 않으시니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인수대비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산스크리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재원이다. 하지만 성리학 군주가 되고자 했던 성종이 불교를 계속 억압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단단히 했고, 내가 그 억압정책을 중단한 것도 날 예뻐한 요인 중 하나였다. 대간들은 실컷 욕했지만.
“전국에 영을 내려 불사를 드린다거나 하지는 않겠다. 오직 원각사 한 사찰에만 영을 내려 대왕대비께서 쾌유하시도록 빌게 하고자 한다. 세조께서 세우신 절이니, 괜찮지 않겠느냐.”
원각사는 지금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는데, 세조가 직접 창건하고 이름까지 지어준 절이다. 진짜 역사에서는 연산군이 기생들과 노는 장소로 만들면서 폐사되어버렸고, 그 뒤에 재건되지 않았다. 만약 연산군이 아니었다면 세조가 세운 절이니만큼 계속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앉아있는 원로들 중에는 세조가 원각사를 세우라고 명하고 완성된 절을 찾았을 때 그 옆에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잠시 눈빛을 주고받던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오직 대왕대비께 효도하려는 마음으로 하신다 하니 이번은 가할 것이옵니다.”
“알겠다.”
이대로 평화로워지나 했는데 막간극이 하나 벌어졌다. 원각사 불공에 더해서 인수대비에게 주는 선물인 셈 치고 도첩을 백 장쯤 풀었더니, 불교를 우대한다고 해서 뿔이 난 성균관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투덜거린 것이다.
“이놈들이 혼이 덜 나봐서 그런가?”
작년 역모 때 제대로 한 방 맞은 간관들은 도첩 추가발행 정도 사소한 일을 가지고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동안 불교에 대해 방치로 일관하던 나다. 새삼스레 불교를 부흥시키려고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는 눈치 정도는 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균관은 달랐다. 작년 역모 때도 선배들과 어울려 날 까대던 놈들 몇이 매만 맞고 돌아온 게 다였던 성균관은 아직 반항심이 남아 있었다. 하긴, 이놈들은 성종 때는 ‘유생들은 절에 가지 말라’는 금지령을 씹고 절에 쳐들어가서 불상과 불구를 때려 부순 종자들이었지.
“이 연명상소에 서명한 자들을 모두 금고에 처하라. 추후 몸가짐을 어찌하는지 들은 뒤에 해제하겠다.”
금고(禁錮)는 과거시험을 볼 수 없게 하는 조치다.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야말로 존재가치 그 자체인 유생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침 올해가 대과니 잘 됐다.
그러고 보니 전시 문제는 내가 내지? 저번 과거까지는 대간들이 난리치는 게 짜증나서 별 논란 없을만한 그냥저냥 무난한 문제만 냈지만, 이젠 마음대로 출제해도 된다. ‘인접국이 잇단 내란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군사를 보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 한번 내 볼까?
– 14 –
“전하, 군사를 움직이는 시기를 좀 당기면 어떻겠사옵니까.”
경기수사 우현손도 평락사 멤버 중 하나다. 내가 남방순행을 나갔을 때 충청수사로 있다가 내 눈을 끌었고, 대마도 원정 때는 도해방적수사로 보급선을 지키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경기수사로서 임지인 교동도에 있어야 하지만, 내게 급히 보고할 사안이 있을 때는 임의로 도성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이미 내려가 있었다.
“군사는 10월에 내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이 당기자 하느냐?”
여기서 쓰는 날짜는 음력 기준이니까 양력으로는 11월에 여진족 토벌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굳이 겨울이 시작되는 때에 원정을 가려는 건, 그래야만 적에게 줄 타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을은 물론이고, 수확을 마치고 창고에 넣은 곡식은 쉽게 가지고 도망칠 수도 없다.
“적들이 수확을 마친 뒤에 출격해야 그 양식을 노획하여 쓸 수 있다 해서 늦게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대는 다른 생각이 있는가?”
“그러합니다.”
우현손이 조심스럽게 북방지도를 펼쳐보였다. 이극균과 성준이 힘을 모아서 제작한 바로 그 물건이다.
“신이 이 지도를 살피다가 궁금한 바가 있었는데, 북방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무장과 야인 출신 시위들에게 물어보아 답을 얻었습니다.”
우현손이 조심스럽게 막대기로 지도 위를 짚었다.
“여기, 녹둔도가 우리 땅 끝입니다. 전하께서 수년 전에 둔전을 설치하여 방비를 강화하라 명하셨고, 성책이 단단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헌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야인들의 땅으로 가다 보면, 내륙으로 들어가는 강이 나온다 합니다. 여기 이 강입니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확실히 강이 있었다. 이름은…수분하? 물론 나는 이 시대 지도 정확도를 별로 신뢰하지 않으므로, 그 강이 이 지도에 그려진 모양대로 뻗어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강줄기는 기대도 안 하고, 강어귀만 실제로 이 위치에 있어도 다행이겠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야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 강은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며, 길이가 5백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폭도 넓어 중맹선 정도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로가 얼기 전 여름에, 만약 수로를 통해 군선을 넣어 적을 후방에서 친다면 적들이 심히 혼란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우현손은 열띤 태도로 설명을 계속했다.
“허나 이는 실은 양동입니다. 아군 본영이 육상으로 진격하여 적들의 부락을 공격하면 심히 놀란 적들은 앞을 다투어 항복할 것입니다. 비록 수확한 적의 양식을 노획해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는 있으나, 대신 수분하 상류에서 별군을 만나 배로 수송한 양식을 받으면 됩니다.”
“음, 괜찮은 생각이로다.”
듣고 보니 귀가 솔깃해지는 전략이다. 병력 중 일부를 덜어내면 그만큼 본군이 기동하기도 편해지고, 보급 부담도 줄어든다. 지참할 치중을 줄여도 된다. 게다가 별군에다 할애할 전력은 모조리 보병일 터이므로, 기병 비중이 올라간 본군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우현손이 거기까지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분하 수로는 이번 원정 한 번만 활용하고 그만둘 교통로가 아니기도 하다. 장차 염두에 두고 있는 연해주 개척에서 이 강은 둘도 없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이 강이 만약 우수리강, 흑룡강까지 이어진다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만주 한복판으로만 흐른다고 해도 좋다. 내가 통합하기를 원하는 만주 동부 지역으로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는 데는 아주 효과적인 교통로가 될 테니까.
다만 일거에 대군을 밀어 넣기는 망설여졌다. 아주 결정적인 한 가지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우 수사. 그대가 만나본 야인들 중 이 수분하의 물길을 잘 아는 자가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대답하는 우현손의 목소리가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본인도 그 문제를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해결할 수 없었던 티가 났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강의 소재와 크기는 들어서 알고 있되, 직접 배를 타고 지나가 본 적이 있는 이는 없었다 이 말이겠지.”
“그러하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겸사복이나 내금위에 들어와 있는 야인들은 대개 두만강, 압록강 연변에 사는 성 밑 야인들이니까. 저 멀리 수분하까지 가본, 더 나가서 그 강에서 배를 몰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하다.
좋다, 이참에 그 강을 탐사해보도록 하자. 언제든 가야만 하는 길이었으니까.
“우 수사! 내일 조회에서 그대를 동해수군절도사로 임명할 테니, 당장 함경도로 떠나 배와 수졸을 뽑아서 이 수분하가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찾아 밝히도록 하라. 북방의 강이라 하나 4월에는 그 얼음이 다 녹을 터, 7월이면 그 상류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느냐?”
강원도와 함경도에는 수영이 없다. 옛날 고려 때처럼 여진족 해적이 동해를 휩쓰는 상황도 아니고, 왜구들도 이제는 삼남지방만 노리기 때문이다. 척박한 탓에 털어먹을 것도 별로 없는 동네라 그렇다. 덕분에 수군을 유지할 필요성도 없다.
“필요한 비용은 일단 호조에서 내주는 저화를 받아서 가라. 만약 현지에서 저화가 제값을 받지 못하거든 내수사에서 바꿔서 쓰도록 하라. 내 내수사에 명을 내려 둘 터이니, 동해수사 인수를 보이면 곧바로 미포로 바꾸어줄 것이다.”
요즘 내수사 장리는 가능하면 저화로 주고, 받는 것도 저화로 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저화 시세가 워낙 춤을 추다 보니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리고 본래는 각 관청이 맡아야 하는 태환업무(저화를 액면가대로 쌀로 바꿔 주는)도 어디에서든 하고 있다.
물론 손해를 꽤 보고 있지만, 이게 다 저화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지출이니 별 수 없다. 다른 쪽에서 이득을 많이 올렸으니 이런 데서라도 국민들에게 봉사해야지.
“알겠사옵니다, 전하. 허면, 탐사를 마친 뒤에는 어찌하시려 하십니까? 군사를 다 준비토록 하셨다가 하로(河路)를 탐사한 직후에 출병하시겠는지요.”
“그건 무리일 듯하다.”
7월에 탐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출병한다면, 추수철을 놓쳐버린다. 함경도에서 동원할 군사들이 대부분 자기 땅을 돌보는 농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9월까지는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추수를 마치고 출전할 수 있으니까. 고로 출병은 아무리 빨라야 9월 말이 된다.
“아무리 늦어도 11월에는 강이 얼겠지. 두 달 안에 원정을 마치고 선단을 바다로 되돌릴 수 있으리라 보느냐?”
“순조롭게 진행되면 가능하리라 보옵니다. 또한 북쪽 내륙으로 들어가는 강이니 북쪽부터 얼 것이고, 하류는 천천히 얼 테니 별군이 군량을 본군에 전달하고 배를 빼낼 시간은 넉넉히 있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흠.”
무리한 계획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여차하면 막판에 배를 얼음 위로 끌거나, 버리고 육지로 남하해서 해안까지만 나오면 비교적 쉽게 돌아올 수 있다. 별군은 강을 따라 걸으면 되니까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일단은 탐사부터 추진해 보도록 하자. 만약 수분하가 배를 몰아서 쳐들어갈 만한 수로라면 9월에 함경도 일대의 추수를 마친 뒤 일시에 군사를 몰아 수륙으로 진공할 것이고, 아니라면 본래 예정대로 10월에 군사를 일으키겠다.”
잠깐 쉬었다가 우현손이 듣고 싶었을 말을 추가했다. 덤으로 쓴 소리도 한 마디 더 붙였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보긴 하지만, 사람이란 건 혹시 모르는 법이니까. 한 번 더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일이 잘 풀리면 별군은 그대가 지휘하게 되리라. 힘써서 일을 진행하라. 다만 노파심으로 이르는 바이지만, 행여 공훈을 세울 욕심으로 그 강이 배가 갈 만한 길이 아닌데도 가능하다 고한다면 후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공은 다음에도 세울 수 있으니 과욕하지 말라.”
“전하께서 내리신 분부를 명심하겠나이다.”
우현손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내 의도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여진정벌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8개월, 아니 7개월 남았다. 잘 풀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