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42
3부 560화(1442화)
4.
운남왕의 사자 마구훈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계림에 있는 광서왕의 궁전에 본영을 두고 있던 진남대도독 악종기가 혀를 차면서 상대를 나무랐다.
“아니, 운남왕께서는 어찌 그리 부주의하신가? 아무리 반란군 토벌이 중요했어도 그렇지, 본진을 지킬 군사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지휘하는 토벌군 본군도 광서군의 유격전 때문에 제대로 진격하지 못하는 참이다. 일익을 맡은 운남군이 싸움을 중단하겠다니,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운남에 남은 군사가 아직 수…..수 만은 됩니다. 하지만 그 군사들은 거의 각 부족 족장들이 개별적으로 거느린 군사라서…..”
그러니까 공격해온 안남군-엄밀하게 말하자면 안남에서도 북부에 있는 교지국(交趾國) 군대다-에 맞서기 위해 병력을 규합하고 그 병력을 맡아 지휘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운남국 중앙군은 대부분 운남왕을 따라 광동으로 왔으니까. 지금 교지군이 휩쓰는 국경지대에서야 난리가 났으리라. 하지만 후방에 있는 각 지역에선 순전히 남의 일로 여기고 있을 터였다. 수많은 족속으로 이루어진 운남 주민들은 자기들이 같은 ‘운남인’이라고 여기는 관념 같은 건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폐하께서 내리신 광동 토벌령을 무시하고 운남으로 회군하겠다고?”
악종기가 혀를 찼다. 그는 황제가 이참에 모든 번왕들을 다 몰아내고 번국도 철번하려는 계획을 세웠음을 알고 있었다. 그도 황제의 결정에 동의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싸움터에 병력이 필요한데 운남군이 빠져나가면 그것도 곤란했다. 더구나 운남왕이 자기 땅을 구하러 간들 이미 늦었다. 운남군이 돌아가려면 적어도 두 달 정도는 걸릴 텐데, 그때쯤이면 교지군은 노략질을 마치고 이미 자기네 땅으로 돌아간 후일 게 아닌가. 돌아가 봐야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아닙니다. 어찌 황명을 어기고 개인의 봉지를 지키러 가겠습니까?”
“그럼 어쩌겠다는 건가?”
악종기의 머리에 의문이 솟았다. 운남왕이 본래 제멋대로인 성품인 줄이야 안다. 하지만 교지군이 운남에 쳐들어왔는데 운남으로 돌아가 놈들과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소린가.
“그것이…..운남왕께서 교지국을 치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운남에서 달려온 파발에게 급보를 받은 장장령은 미쳐 날뛰었다. 자기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던ㅡ 그 같잖은 놈들이 감히 변경을 넘어 내 땅을 습격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교지국 정씨 놈들이 미쳤구나! 내 당장에 군사를 움직여 그놈들을 쳐 부수겠다!”
“전하, 광동 토벌은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황명은요?”
“지금 그게 문제인가!”
적이 봉지에 쳐들어왔다. 적을 막아내는 건 지배자의 의무다. 아무리 황명이 중요하다고 해도, 교지국 놈들 따위가 국경을 범하게 놓아둔다면 운남왕 노릇은 다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난 참이다. 두 달에 걸친 공성전 끝에 남녕을 함락했건만, 전리품이 거의 없었다. 그로 인한 분노가 건방진 교지국을 향했다.
“두말할 것 없다! 교지국 놈들에게 내 힘을 보여주겠다!”
당장이라도 회군하라고 호령하는 장장령을 향해 장수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회군할 군량이 없습니다.”
본래 계획으로는 남녕에서 군량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저항하던 광서군이 성을 내주기 직전에 창고에 불을 질러버렸다. 성내를 철저히 약탈해서 민가에서 가지고 있는 식량을 싹 뒤져냈지만, 그 양이 충분할 리 없었다. 남녕에서 군량을 얻었다면 진격이든 후퇴든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군량은 없었다. 귀로에 군량을 충분히 얻을 방법도 없다.
“전하! 우리는 이미 운남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발견한 모든 촌락을 샅샅이 털었습니다. 그동안 저들이 다시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쌓아두었을 리도 없는데 어떻게 운남까지 돌아갈 군량을 구합니까?”
그렇다고 다른 길로 철수할 수도 없다. 애초에 가장 좋은 길을 골라서 진격했으므로 다른 길은 당연히 오면서 이용했던 길보다 더 좁고 더 험하다. 그 주변에 거주하는 인구도 적을 것이므로 구할 수 있는 식량의 양도 당연히 더 적다.
“게다가 광서군이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퇴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광서군이 지금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는 남녕에서 확실히 체험했다. 그런 자들이 싸우다 말고 물러가는 운남군을 그냥 놓아둘 리 없다. 생각이 없는 일반 병사들이라면 몰라도, 이 자리에 모인 장수들은 그런 부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관없다! 식량이 남아 있는 다른 길로 가면 되니까. 그러면 군량을 구할 수 있다.”
장장령의 눈이 위험하게 번득였다. 그러자 운남군 장수들은 당활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서 군량을 구하겠다는 말인가? 다른 길이 없다고 이미 알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번황의 입에서는 정말 뜻밖의 발언이 튀어나왔다.
“이대로 군사를 남으로 돌린다! 남진하여 교지국 도읍 동경을 친다! 운남으로 돌아가서 적을 쫓기보다 적의 도읍을 쳐서 밖으로 나간 병력을 되돌리게 하는 편이 훨씬 빠르리라.”
운남보다 교지가 여기서 훨씬 더 가깝다. 그동안 국경에서 천 단위 교전까지는 빈번하게 벌어졌지만 이만한 대군으로 안남을 대린 적은 없었다. 장장령은 운남 전역에서 가려 뽑은 이 병력이라면 안남을 정벌 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게다가 안남의 왕도(王都)에는 막대한 재보가 있을 것이다. 어찌 그 이득을 변방에서의 소소한 싸움과 비교하겠느냐? 게다가 광서군도 우리가 남쪽으로 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을 테니, 가는 중에 저항도 강하지 않을 것이다! 어서 군사들을 재촉하라!”
생각지도 못한 명령에 장수들이 잠시 술렁거렸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인지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몇가지 논의가 더 오간 뒤 장장령은 장수 마구훈을 시켜 계림에 있는 악종기에게 자신의 결정을 전하게 했다. 마구훈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악종기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저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ㅏ.
“생각해보십시오, 대도독 대인. 교지 따위가 함부로 우리 국경을 넘게 한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교지 놈들이 수시로 국경을 범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조용한 남장이나 면전도 주데를 모르고 날뛰지 않겠습니까?”
이는 흥시제에 대한 모욕이다. 고로 황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대서국의 번왕인 운남왕은 교지국의 오랑캐들을 공격하여 혼을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하지만 본관으로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소이다. 운남왕께서는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말머리를 돌리셨으면서 그대를 보내 통보만 한 게 아니오?”
“…..그렇습니다, 대인.”
악종기가 뒤로 기대면서 팔짱을 꼈다. 이미 저질러진 뒤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자기가 입을 연다고 운남군이 다시 돌아올 리는 없다. 운남왕은 그런 인간이었다.
“알겠소. 운남왕께서 우리 대서의 남쪽 변경을 지키기 위해 출정하셨다는 말이지. 본관을 거치지 않고 폐하께 상주문도 올리셨고.”
“예. 하지만 대인게도 알리기는 알려야겠기에 이리 소인이 따로 온 것입니다.”
대답을 들은 악종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견을 끝냈다. 안도하는 표정을 지은 마구훈이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운남왕을 따라잡으려면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면서 지금 바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운남왕의 사신들이 객실에서 나가자 악종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욕지거리가 쏘아져 나갔다.
“미친 거북이 새끼!”
그렇지 않아도 광서군이 벌이는 유격전 때문에 진군을 못 하는 참이다. 그런데 운남군이 홀러 전장을 이탈하다니, 그럼 광서군과 싸우며 광동까지 가는 부담을 모두 자신이 이끄는 중앙군이 져야 하지 않는가.
5.
광서왕의 처분에 관해서는 황제가 내린 밀명이 있었다.
「연락이 닿으면 투항을 권유하고, 투항하면 바로 성도로 압송할것.」
광서왕이 광서 백성들에게 얼마나 민심을 얻고 있는지는 흥시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광서왕을 해진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고, 붙잡아서 회유함으로써 광서인들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귀순하게 만들셈이었다. 실제로 토벌군이 광서에 들어온 뒤에 보니 광서왕은 거의 저항하지 않았다. 광서군 일부 병력이 유격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좀 귀찮은 수준의 저항에 불과했다. 그리고 도중에 있는 도시와 마을에 있는 창고도 비우거나 불태우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두었다.
악종기는 당연히 이를 광서왕이 싸울 뜻이 없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광서왕이 광동왕을 용서해달라는 편지를 계속 보내는 것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행하는 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으로 그 요구는 묵살하고 항복 요구만 계속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서왕 전하가 죽었다고 했단 말이지.”
어떻게든 생포하라는 황명이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자객을 보내기는커녕 암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광서왕이 죽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것도 자신이 막내 왕자를 회유해서 부왕을 상대로 패역을 저지르게 했다고 말이다. 그게 무슨 망발인가.
“분명히 그 짓을 저지른 놈은 세자일 것이다.”
“지당하신 판단이옵니다, 대인.”
광서왕부 세자 장장권은 부왕이 악종기의 사주를 받은 동생에게 암살당했다고 주장하고는 이제 자기가 광서왕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광서왕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란 군사는 총동원해서 토벌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지금 장장권이 얼마나 눈이 뒤집혀 있는지는 그 병력을 어디서 빼왔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자기 옆에 남아 있던 왕부의 관병은 물론이고, 향병을 긁어모으는 것으로도 모자라 후송 국경에 있던 수비대까지 빼냈다. 그렇게 해서 수만 대군을 손에 쥐었다.
“혈육을 죽인 패륜범은 바로 세자임이 분명하네.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빌미로 자기가 보위에 오르지 않았는가. 그리고 광서의 전권을 쥐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필시 부왕이 더 버티기를 포기하고 투항하려 하니 시역을 저지른 게 분명해.”
대군을 손에 넣은 장장권은 미친 듯이 황제군의 수송대를 습격해댔다. 그 통에 악종기는 계림에서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계림에서 얻은 군량이 워낙 막대한 양이라 당장 군사들이 굶지는 않지만, 어서 광동으로 가야 하는 처지인데 여기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대인. 세자가 저리 날뜀은 봉작을 빼앗기기 싫어서일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 투항한다면 사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사면령을 내려 광서왕부가 투항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죄인들을 사면하는 건 내 권한이 아닐세. 폐하의 권한이야. 그리고 저들이 사면령 따위에 허리를 숙일거라면 벌써 숙였겠지.”
지금 광서군이 저렇게 맹렬하게 싸우는 건 광서왕의 죽음에 대한 복수 때문만이 아니다. 사천과 귀주에서 토벌군에 합세한 향병들이 광서땅에서 저지른 약탈 문제도 있었다.
“그놈들을 좀 더 억제했어야 하는데…..”
번국이라고는 하나 광서도 분명 서나라 땅이다. 그래서 황제는 군사들이 성도를 출발하기 전에 명령했다. 광서 땅에서 허가 없이 노략질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런 짓은 광서인들의 민심을 악화시켜 나중에 황제가 그 땅을 다스리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칠 터였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준수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악종기가 군감(軍監)들을 풀어 감시해도 20만 대군이 모두 황명을 지켜 행동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양민의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를 희롱하는 자가 어딘가에서는 꼭 있었다.
그나마 성도에서 내려온 중앙군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됐다. 이들은 황명을 따르고자 하는 태도를 품고는 있어서 적어도 그런 비행을 공공연하게 저지르지는 않았다. 들키면 수 ㅁ기려고 하는 자세도 보였다. 하지만 향병들은 달랐다.
“어쩔 수 없습니다, 대인. 그놈들 한테는 이 원정이 원거리 계투로밖에 안 보이니까요.”
향병들은 황명에 따라 반란을 진압하러 나온 군사가 아니고 한몫 잡으려 적국에 약탈하러 온 도적처럼 굴었다. 죽이고 빼앗고 불을 질렀다. 그런 사태가 하도 빈발하는 탓에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얼토당토않은 풍문을 핑계로 벌이는 광서군의 유격전 때문에 골을 썩이고, 이미 한군이 광동에 와서 터를 잡고 앉았는데 이 판에 운남군은 교지를 치러 간다고 하고…..”
광서도 아직 평정하지 못했는데 광동에는 이미 한군이 들어와서 광동군과 싸웠고 완전히 박살을 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악종기에게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한군 3천이 광동군 5만을 격파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대인.”
거의 두 달 전 일이다. 악종기가 접한 소문에 따르면, 한군은 부 ㄹ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터를 잡고 보루를 축조했다. 토벌군이 오기 전에 한군을 몰아내기로 결심한 광동왕이 왕부 속속 관군과 향병을 합쳐 5만 대군을 편성하고 사흘 밤낮을 공격했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했지.”
한군은 흙으로 쌓은 토벽 위에 화포를 거치하고 빗발처럼 소아댔다. 얕은 강에 철갑선을 띄우어 그 포화로 광동군을 쉽쓸었다. 기병으로 광동군 대열 사이를 파고들어 숱한 목숨을 그 칼로 베고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스무 배 가까운 광동군을 격파한 한군의 전력은 악종기로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여기 광서를 평정한 뒤에 광동으로 가면 그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거다.
“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관군입니다. 한군도 설마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주면 좋겠네만…..”
남쪽 국경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멋대로 전장을 떠난 운남왕은 황제가 내리는 치도곤을 맞을 거다. 하지만 이미 광동에 터를 잡은 한군을 어지 처리할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