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48
3부 566화(1448화)
1.
곧 봄이다. 봄이 오면 목련꽃이 피고 강남에서 제비가 날아온다. 하지만 오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떠나는 것도 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말이다.
“폐하….. 신첩, 폐하를 모실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사옵니다. 신첩이 먼저 중전마마와 귀비마마를 뵈러 갈 터이니, 폐하께서도 이승에서 할 일을 다 마치시거든 오시옵소서…..”
“알겠소, 희비. 그 고운 심성 간직하고 편히 기다리시오.”
희비 박씨, 상희가 의료봉사를 다닐 때면 꼭 붙어 다니면서 충실하게 간호사 노릇을 하던 후궁이 죽었다. 사인은 지난 겨울에 걸렸던 감기가 악화한 기 관지염 혹은 폐렴. 만으로 향년 45세.
올렝카나 상희는 그래도 50세는 넘겼다. 그런데 그보다 젊은 희비가 겨우 45세에 사망할 줄은 몰랐다. 평소 건강에 큰 문제도 없었는데, 감기가 죽을 병이 될 줄이야. 나이가 젊은 점만 아쉽지도 않다. 상희와 함께 다니면서 황실에서 의술이라면 가장 많이 익혔건만 희비가 세 후궁 중 가장 먼저 눈을 감다니, 이것도 참으로 기가 막힌 우연이다. 참, 사람이 가는 데는 정말로 순서가 없구나.
“폐하, 슬프시겠으나 부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우리 대한의 3천만 백성이 기댈 이는 천하에 오직 한 분, 페하뿐이십니다.”
“알고 있소, 국상. 그래서 이토록 오래 살고 있지 않소.”
내가 까칠하게 대답하자 국상 민지원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도 뭐라고 더 하지는 않고 희비가 낳은 유일한 자식인 회왕 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도 희비가 무척 그리울 게다. 하지만 너도 이제 어른이 아니냐. 너무 슬퍼만 하지 말고 굳건하게 잘 지내도록 하여라 희비도 그러기를 원할 테니.”
“에, 아바마마.”
내 여섯째 아들인 계는 올해 만으로 27세다. 형들 눈치를 보느라 그러는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고 있다. 자식은 왕비인 여산 송씨 소생 1남1녀가 있고, 측비도 한 사람 두었으나 그쪽에서는 소생이 없다.
“나도 너를 얼마나 더 보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마비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자주 보자꾸나. 입권할 대는 혼자 오지 말고 성윤이나 재연이를 꼭 데려오거라.”
성윤이는 계의 아들, 재연이는 딸이다. 둘 다 아직 봉호를 받을 나이가 되지 않았다. 계는 고개를 숙이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곁에 있던 이들이 하나하나 내 곁을 떠나가는 구나.”
얼어붙은 향원정 연못을 바라보며 내가 쓸쓸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은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하늘의 뜻을 어찌 사람이 알겠사옵니까.”
향원정은 전에 내가 상희와 밀어(蜜語)를 나누러 찾던 곳이다. 그 추억의 장소가 지금은 은이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찾는 곳이 되었다.
“희비와는 태황태후께서 맺어주신 인연이다. 30년 동안 같이 지냈지. 네 어미인 중전과는 차마 비할 수 없기는 하나, 그 역시 짐에게는 소중한 인연 중 하나였느니라.”
“알고 있사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여 년이 되어간다. 올렝카가 죽은 게 9년 전이고, 상이가 6년 전에 떠났다. 그러더니 이제 희비다.
“그래도 아바맘께서 건강하시지 않사옵니까. 소자는 이 나라에 그 이상 큰 복이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건강…… 건강이라. 태자야 장수한다는 건 말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눈을 감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와 스승과 형제와 친구가 떠나고, 간혹 처자가 먼저 가기도 한다. 당연히 나보다 나중에 가야 할 이들이 말이다.”
깊은 한숨이 나갔다. 조선에서 지금의 나처럼 장수했던 유일한 왕, 영조가 뇌리에 떠오른 까닭이다. 5백여 년에 이르는 조선 역사에서 왕위에 앉은 상태로 환갑을 넘긴 왕은 왕위에 오를 때 이미 쉰여덟이었던 이성계 외에는 영조 한 사람뿐이었다. 그 장수의 대가로 영조는 처음 혼인한 중전도 잃고 아들도 잃었다. 사도세자의 정신질환 문제가 왜 생겼는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영조가 단명했으면 아버지의 학대를 덜 받고 자란 사도세자가 멀쩡하게 왕 오릇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쪽 세상에서의 영조 비슷한 위치에 있다. 형에게 보위를 물려받았고, 왕조가 생긴 이래 가장 장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운명을 똑같이 따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아들들과의 사이도 좋고 다들 바르게 자라준 게 아니겠는가. 그래도 한 가지는 불안하다. 내가 너무 오래 사는 데서 오는 당연한 불안감이다.
“중전과 비빈들이 짐보다 먼저 눈을 감는 건 괜찮다. 친구와 신하들이 먼저 떠나는 것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태가 네가 만일 나보다 먼저 떠난다면 이 아비는 가슴이 찢어지고 말 게다. 태자야, 너는 꼭 나보다 오래 살아서 내 장례를 치러야 하느니라.”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아바마마. 소자, 어찌 아바마마께서 참척을 겪으시게 하는 불효를 하겠나이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터이니, 마음 놓으시옵소서.”
참척(慘慽)은 ‘참혹한 슬픔’이라는 의미로, 자손이 먼저 죽었을 때 부모나 조부모가 겪는 슬픔을 뜻하는 표현이다. 내가 잃은 자식과 손자녀가 이미 여럿이긴 하지만, 적장자인 태자 은이를 잃는다면 그 충격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으리라.
“그래, 그래…. 너는 꼭 오래 살아야 한다. 태손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배필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꼭 보아야 하느니라.”
“예, 꼭 그러겠습니다, 아바마마.”
은이에게 다가가는 내 발걸음이 잠시 비틀거렸다. 내가 은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가슴에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은이가 두 팔을 내 어개에 살짝 둘렀다. 우리 부자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끌어안은 채 서 있었다.
2.
내가 일흔이 되면 은이에게 양위하겠다고 한참 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가 그만큼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은이가 즉위할 날이 더 빨리 오는 거니까 그것도 괜찮다. 그대가 오려면 이제 앞으로 5년 남았다. 을묘년(1735)이면 내가 만으로 일흔이니까, 혹시 그때까지 보위를 지키게 되면 이제 힘들다고 하면서 양위하리라. 갑자기 양위한다고 하면 또 난리가 날 테니, 대리청정을 조금씩 늘려 가면서 업무를 넘겨야겠다.
지금 진행되는 전쟁 지도에서도 은이의 역할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비변사 회의에 빠지지 않고 나오게 했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기탄없이 내놓으라고 했다.
“굳이 본국에서 군사를 더 보낼 필요는 없어 보이옵니다.”
“어찌 그러하냐?”
“광동을 지나치게 약하게 만들면 득을 보는 이는 송제밖에 없습니다. 송제가 양광 지방을 쳐서 얻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가 광동을 지나치게 대리면 안 됩니다.”
“옳은 말이다.”
두 달 전, 불산성 코앞까지 진격한 우리 진남군은 적의 수공에 당해 후퇴했다. 거듭되는 승전 때문에 다소 긴장이 풀어지기도 했고, 우리 병력이 광동군과 비교해서 원체 적다 보니 적지를 파고드는데 아무래도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 그 보고를 받는 순간, 내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옛날 무종 시절에 규슈에 출병했던 우리 원정군이 ‘원인불명의 사고’로 화약 재고 태반을 잃고 원정을 중단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대 겪은 것과 정반대되는 사태-그때는 불, 이번엔 물-가 이렇게 일어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피했던 원정은 장조 시절에 했던 음리동정뿐이다. 역시 이순신이 있어야 한다. 이순신이었으면 화공이든 수공이든 당하지 않았겠지. 어쟀든 권훤이 보낸 보고를 받고도 별 문책은 하지 않았다. 충분히 당할 법한 일이었고, 그 수습도 합리적이었다. 그만하면 잘 대처했다.
“하지만 폐하, 진남도원수 권훤은 6천여 석이나 되는 군량과 2천여 근이나 되는 화약을 내버리고 철수하였습니다. 챙길 수 있는 물자를 버렸으니 그 점은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헌부의 대간들이 그리 말하는 이유는 짐도 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창고지기가 아니라 장수의 자리에서 생각해야 한다. 쓰지도 못할 물자를 주우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틈을 노린 적의 역습을 받아 귀중한 군사와 군기(軍器)를 잃는다면 그게 더 큰 손해니라.”
젖은 화약, 젖은 식량은 짐이 될 뿐이다. 믈을 먹어 원래보다 무겁기까지 하고, 재활용도 어렵다. 차라리 그걸 실을 공간에다가 부상병을 한 사람 더 싣고 말지. 그리고 권훤이 그렇게 서둘러서 철수했는데도 진군하는 중에 만들어둔 주교(舟橋)가 이미 망가졌다거나 기세가 오른 광동군 향병들이 습격한다거나 해서 꽤 손실이 나왔다. 만약 그 물자를 챙긴다고 지체했으면 아예 퇴로가 끊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리어 짐은 도원수가 군사들을 사지(死地)에서 무사히 빼낸 성과만해도 공적으로 보아 훈장을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심사청에 명을 내려 서훈 여부를 논의하게 하라.”
“폐하! 아무리 큰 피해 없이 수행하였다 해도, 군사를 물린 장수에게 상을 내리심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옵니다!”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이런 전례를 만들면 앞으로 장수들이 적을 만났을 때 싸울 궁리가 아니라 물러날 궁리만 할 거라느니, 전장에서 적과 맞서서 절대 물러나지 않았던 충무 대왕 같은 장수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개탄할 거라느니 등등.
“알겠다. 그러면 출병이 끝난 뒤에 전체적으로 공을 따질 때는 넣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말은 최종적으로 권훤이 이기면 이 일이 병력을 온존한 공이 되는 것이고 권훤이 지면 치중을 함부로 버린 죄가 된다는 뜻이다. 아마 추자가 될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두 번 방심할 권훤은 아니니까.
“봄이 되면 원군을 추가로 보내자는 안이 있던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9월 4일-양력 10월 25일-에 본국을 출발한 우리 진남군 4진, 오군영에서 차출한 두 번재 지원군 1만 명이 광동에 도착한 날은 10월 10일, 양력 11월 21일이었다. 그 바로 이틀 뒤가 권훤이 수공을 당한 날이다. 유감스러운 부분이지만, 권훤은 두물록까지 후퇴한 뒤에야 본국에서 4진이 건너온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콜레라가 진중에 퍼진 상태였기 때문에 원군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공세에 다시 나설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두 달, 권훤은 사미 포대와 두몰목 포대, 두 곳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서 방비를 단단히 다졌다. 광동 수군이 상류에서 내려온다고 해도 절대 통과할 수 없도록 수로를 막는 쇠사슬을 걸고 대포를 겨냥해 놓았다. 그리고 몇 차례 공격을 실제로 격퇴했다. 방어만 하고 있었던 건 무 ㄹ론 아니다. 가끔 전선 몇 척을 광주로 보내서 포탄과 신기전을 퍼붓고 오개 했다. 불산에서 뺨 맞고 광주에서 눈흘긴 셈이다.
이제 봄이 되면 양군 모두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리라. 하지만 은이가 이야기했듯 우리 목표는 광동을 직접 쳐부수는 게 아니라 반란 진앞을 돕고 그 대가로 땅을 뜯어내는 거다. 고로 대군을 파견해서 전비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
“일군 2만이 파병될 예정이니, 그들과 협조한다면 굳이 우리 군사를 증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짐이 듣기에 육군대신의 말이 옳은 듯하다. 다른 의견이 있는가.”
일본 막부는 상비군 6만 명을 두고 있다. 나머지 병력은 이를테면 소집대기 상태에 있는 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상 필요 없으니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일본군은 우리 대붕영처럼 해외 파병을 위해 대기하는 상설 부대가 없다. 그래서 파병이 결정된 뒤에도 병력 편성이나 장비 조달 등에서 시간이 좀 걸렸다. 돌아오는 봄에야 일본군이 광동으로 떠나는 건 그 탓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일본 원정군에는 해군도 포함된다. 영국과 네덜란드 조선공을 고용해서 건조한 전열함과 프리깃함 몇 척이 나간다고 들었다. 이제 일본도 우리처럼 전열함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하오나 폐하, 수공을 당해 물러나기까지 한 처지에 곧바로 반공을 가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한의 권위에 해가 가지 않겠습니까? 신의 미천한 소견으로는 불산으로 진격하여 광동왕을 응징하심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그것도 좋은 일이나, 이번에 진남도원수가 겪었듯이 적은 병력으로 적지를 파고들었다가 혹시 대군에게 포위되기라고 하면 중과부적으로 패할 수도 있소. 그러니 짐이 판단하기에는 불산을 치기보다는 해안을 막아 광동왕을 고립시키는 편이 낫다고 보이오.”
박문수의 보고로 확인했지만, 장장익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고용할 수 있는 용병이라면 모조리 모았다. 내가 막부에 압력을 넣어 광동으로 가는 용병 송출을 중단시켰지만 별 소용 없었다. 장장익이 모으는 용병들은 이미 일본을 떠난 자유계약 용병들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고국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는 왜인 용병들은 돈만 준다면 어디든 갔다. 그리고 이 용병들에게 새 일자리를 주선해줄 거간꾼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일본인 외에 다른 나라 출신 용병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사미 포대와 두물목 포대, 두 곳을 고수하여 광동군이 이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그사이 일군(一軍)으로 해안을 돌며 모든 항구를 점거하거나 파괴하여 광동왕이 용병을 더 얻지 못하게 하는 거요. 그리고 시제의 군사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북진하면 되겠소.”
분명히 피바다가 될 불산 공방전이나 광주 공방전 따위를 우리가 치러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 지저분한 임무는 서나라 정부군에게 맡긴다. 애초에 그놈들이 진압해야 하는 반란이지 우리 몫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차지할 보수도 먼저 받아 두고 말이지.”
출병의 보상으로 어디를 받을 것인가. 그 문제는 비변사에세 한참을 주고받은 문제였다. 조건은 두 가지다.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아까워진 서나라가 나중에 탈환하겠다고 덤벼들 만큼 크지는 않을 것. 광동 전체를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다. 필연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분쟁에 말려들 게 분명하다. 우리 대한은 중원 삼국이 피고받는 옆에 서서 명예로운 고립을 누리는 게 내 목표 아니었던가. 그걸 이루려면 대륙 영토 다위 필요 없다.
“그러면 이번에 뇌주까지 점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하오, 외무대신. 용병 유입을 차단한다는 구실로 뇌주에 군사를 두어 주둔하고, 다 끝난 뒤에 서제로 하여금 그 땅을 할양하게 하겠소.”
뇌주(雷州)는 해남도 위에 있는 반도다. 그 자리에 항구를 짓고 함대를 배치하면 사실상 북베트남에서 주강 하구에 이르는 양광 해안 전체가 우리 통제권에 들어온다. 남쪽에 있는 해남도 역시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우리 영향권에 들어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미 논의했듯이, 본국과의 연결을 뇌주에 있는 우리 군이 가로막게 되니까 말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올해 안에는 광동의 반란이 끝났으면 좋겠다. 이제는 전쟁도 딱히 오래 끌고 싶지 않다. 공연히 오래 끌어 봐야 우리 군사들만 많이 상할 뿐이지 않은가. 얻을 거 얻고 우리 위신도 세웠으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