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52
3부 570화(1452화)
1.
궁궐 안은 늘 분주하니 바쁘다. 금위군은 내관들만큼 분주하게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각자 맡은 자리를 지키며 담당구역을 순찰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폐하께서 계시는 대궐이다! 행여 불순한 자들이 단 한 발자국이라도 황궁 안에 들어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네놈들 배를 갈라 간을 꺼낸 다음 내가 직접 씹어먹을 것이니라!”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백호장이 기세 좋게 외쳤다. 천박한 욕설이 섞였지만 어쨌든 엄연한 상관의 훈시였으므로, 백호장 앞에 도열한 총기(總旗) 1명과 소기(小旗) 10명, 일반 병사 100명은 입을 모아 외쳤다.
“예, 대인!”
“그래! 너희는 폐하를 지키는 금군이다! 목숨을 바쳐 폐하를 지키는 것이 너희의 일이니, 혹시 변고가 생기면 죽음으로 폐하를 지켜야 한다!”
죽을 때까지 흙이나 파먹을 게 지겨워서 군문(軍門)으로 도망친 농투성이 청년이 드디어 ‘대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만큼 출세했다. 장호원은 그게 너무나 즐거워서 안 해도 되는 훈시를 일부러 종종 하곤 했다.
“너희가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따라 폐하께서 베푸시는 은총도 달라질 것이니라! 그러니까 일말의 게으름도 피우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다 너희가 하는 대로 받을 것이다!”
“예, 대인!”
“좋다, 가거라! 가서 오늘 할 일들을 하여라!”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린 군사들이 각자의 근무처로 흩어졌다. 장호원도 뿌듯한 마음으로 자기 집무실로 돌아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십여 년 전 형주 원정에 자원한 건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그때 세운 전공 덕분에 말 그대로 출세의 동아줄을 잡지 않았는가. 장사를 공격할 때 세운 전공으로 군사 10명을 지휘하는 소기가 되었다. 다시 4년 뒤에 사천을 공격할 때도 그는 큰 공을 세웠고, 상관들의 추천까지 받아 50명을 지휘하는 총기가 되었다. 그리고 금위군으로 금의환향하변서 백호장이 되었다.
합비에서 온 농부의 자식이 금위군 백호장이 되다니, 정말 상상도 못 할 출세가 아닌가. 집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좋은 면포로 지은 깔끔한 옷을 입는다. 직접 짠 면포조차 다 내다 팔아야 해서 일가족이 늘 누더기를 입고 살았던 어린 시절과는 천지 차이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곳 황도의 하층민들과 마찬가지로 고구마와 땅콩을 겨우 허기만 면할 만큼씩 먹던 옛날이 가끔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매일 쌀밥을 먹고 반찬으로 돼지고기를 먹는다. 뼈를 우린 국물 따위에는 입도 대지 않느다.
장호원은 자기 인생은 관음보살님이 지켜주신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차마 바랄 수도 없었을 이런 행운이 연달아 나타날 리가 없었다.
“대인, 오늘 새 총기가 옵니다.”
“음, 그런가. 거기 새로 온 문서 주게.”
소기때만 해도 글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총기가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는 글을 알아야 했다. 군사들을 관리하는 자리에 오르니 글을 모르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끙끙거리며 처음 글을 익혔다. 덕분에 일상적인 서류 정도는 이제 문제없이 읽고 쓸 수 있다. 신임 총기의 신상 명세서를 건네받아 펼쳐 들었다.
“공석이 된 총기 자리를 석 달이나 지나서야 채워 주다니. 위에서도 너무하지 않나. 어디 어떤 놈팽이가 오는지 한번 미리 읽어나 볼까…..뭐야, 성이……고씨?”
게다가 출신지는 합비다. 그 뒤에 이어지는 글자를 훑으니 자기 고향이다. 불길한 예감에 갑자기 전신이 떨려 왔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어, 자네가 장씨네 장남인가? 내가 여기서 총기로 근무하게 되었네. 같은 고향 사람이고, 우리 가문과 인연도 있으니 여기 있는 동안 잘 부탁함세.”
잊고 있었다. 고향에 있는 아버지가 몇 달 전에 편지로 알려준, 이제 막 스물이 된 지주 고씨네 막내아들 소식 말이다. 요즘 헛바람이 들어 읽으라는 글은 안 읽고 중원을 일통하는 명장이 되겠다고 날뛴다고 했는데, 풋내기들이 흔히 하는 망상이라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장본인이 갑주를 입고 칼을 차고 눈앞에 나타났다. 설마 무과에 응시해서 정식 벼슬을 받지는 않았을 테고, 고시 가문이 막내를 위해 벙부에 뇌물을 먹여서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었으리라. 무관이라고 위세는 부릴 수 있되 죽을 일은 없는 자리로.
“자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아버님도 평소 자네를 많이 칭찬하셨거든? 부디 내가 공을 세워 출세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게.”
일단 서둘러 다른 부하들을 몽땅 집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도 눈치도 없이 지껄이는 꼴을 보니 어디서 상관에게 함부로 말하는 거냐고 확 내지르고 싶다. 하지만 지금도 고씨네 땅을 부치며 사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이 버릇 없는 도령이 대놓고 하대하는 대신 이만큼이라도 예의를 차리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 대인께 저희 일가가 입은 은혜가 있는데 어찌 제가 감히 고씨 일문에 해가 되는 일을 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할 테니 다샤오예(大少爺, 젊은 주인)께서는 부디 염려 놓으십시오.”
그래도 명색이 상관인지라 차마 먼저 고개를 숙이거나 공수(拱手)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팔을 벌려 환영하는 뜻을 표하고, 얼른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지내며 지켜주었으면 하는 원칙을 최대한 부드럽게 전했다.
“알겠네. 나도 자네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네. 공적으로는 분명히 내 상관이니, 내 군사들이 보는 자리에서는 꼬박꼬박 상관으로 존대하도록 하지.”
그럼 남들이 안 보는 자리에서는 지금처럼 말을 놓겠다는 소리 아닌가. 장호원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담장 너머에 있는 황제의 침전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폐하, 폐하라면 이런 난처한 상황을 어찌 해결하시겠습니까? 역시 관음보살님에게 비는 방법, 그거 하나 밖에 없는 겁니까?
2.
“갑자기 왜 이리 귀가 간지럽지.”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급히 환관이 달려와 황제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대나무 귀이개로 조심스럽게 귓구멍을 후볐다.
“시원하구나. 됐다, 가보거라.”
후송에서 환관들이 맡은 일은 이 정도에 국한된다. 황제의 시중을 들고 후궁을 관리한다. 그 외에는 모두 정식 관원들이 관리를 담당하고 일반적인 사내종, 계집종들이 허드렛일을 맡아 궁궐을 유지한다.
“무슨 일을 논하는 중이었던가.”
금의위 동진무사(東鎭撫司) 오화창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황제의 기분을 잘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성격 탓에, 흥분한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침착했다.
“산의 간자들을 궁에서 일소한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고 있었사옵니다, 폐하.”
후송의 금의위는 동진무사와 서진무사 두 우두머리를 두고 있는데, 서진무사는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고 혹시 황제가 지방에 순행을 나가면 경호를 맡는다. 동진무사는 도성이 남경의 치안 유지와 감옥 관리, 정보 수집 등을 맡는다. 본래 명나라 시대의 금의위는 그 븐본이 황제를 지키는 친위대였던 지라 군무도 맡았으나, 후송에서는 그 역할이 다소 축소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병부보다는 형부 역할에 더 가까운 조직이 되었다. 물론 정식 소속은 황제 직속이다.
“몇 명이나 잡았다고 하였던가.”
“총 열네 명이옵니다. 대개 하잘것 없는 하인배들이나, 폐하를 모시는 환관이 한 놈 있었고 후궁의 시녀도 두 명 있었습니다.”
조형서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조심을 해도 한인들은 용케 틈을 찾아 사람을 포섭했다. 이쪽에서는 그렇게 못 하는데 말이다. 그나마 놈들이 손에 넣은 첩자들이 대부분 잡히기는 한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심문이 끝나면 관례에 따라 처분하도록 하라. 참수형이다.”
“예, 폐하.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만……”
평소에 별로 입을 여는 법이 없는 오화창의 진언이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 조형서가 발언을 허락했다. 감사의 뜻을 표한 오화창이 황제의 지시를 바꿔 달라고 청했다.
“과거에는 그러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작금에는 저희도 한경에 관원을 보내서 간자를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관(韓官)들에게 붙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게 아니냐.”
한경(韓京)은 대한의 수도 한양을 후송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후송은 주변국의 수도를 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한경, 일경(日京) 등으로 부른다. 다만 북경과 성도 같은 곳은 당연히 본래 이름으로 부른다. 거기는 다 중화의 일부니까.
“예, 끄나풀이 잡히는 거야 흔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잡은 뒤의 대처가 다릅니다. 저희는 붙잡은 세작들을 몽땅 한인들이 있는 청구관(靑丘館) 앞에서 목을 칩니다만, 한관들은 우리 세작들을 공개리에 처형하지 않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연락이 끊어질 뿐입니다.”
금의위에서는 세작이 죽었는지, 변절했는지, 그저 돈을 떼어먹고 잠적한 것인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새 세작을 거쳐 우연히 소식을 접하게 되곤 했다.
“우리도 그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붙잡은 세작을 바로 처형하면 저들도 바로 알아채고 곧바로 새 세작을 찾지만, 그 행방을 알 수 없다면 사정을 파악하느라고 헤매게 될 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 형서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저었다.
“죄인을 공개리에 처형하고 그 머리를 효수하는 건 어리석은 천민들에게 외적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아닌가. 죄인을 백주에 중인환시하에 처형하지 않으면 아둔한 백성들이 적의 돈을 받아도 나라에서 아무 벌도 받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은가.”
다른 신하들도 황제의 뜻에 동조했다. 죄인을 처형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같은 죄를 짓는 자들이 덜 나타나리라는 전통적인 논리였다. 오화창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는 없었다.
“예, 폐하. 그러면 하던 대로 계속 참수형에 처한 뒤 머리를 효수하겠습니다.”
“그리하라.”
금의위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황제의 뜻을 그대로 따를 뿐이다. 오화창은 자기 의견이 각하됐음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숙였다. 용건을 끝낸 황제는 병부상서 장희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가? 서나라 놈들 상황은?’
“싸움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습니다. 형주도통사 유승원에게 명만 내리시면 당장이라도 그 군사가 광서로 진공할 수 있습니다.”
후송이 보유한 주력군인 8로군은 작기 12만 정예병을 확보하고 있다. 형주도통사 예하에 거느린 병력은 당연히 형주 출신으로, 옛 서나라 관병이었던 자들도 다수다. 하지만 이제는 그자들도 모두 황제의 병사일 뿐이다.
“폐하, 이제는 그만 공격해도 되지 않을지요? 한군이 출병했다고는 하지만 저들이 주둔한 곳도 광동이지 광서가 아니니, 직접 충돌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병부에서는 일거에 양광 지방을 모두 도모하기보다는 일단 광서부터 치자고 했다. 광서는 광서왕이 죽어 구심점이 약해진 데다, 서나라 관군과 반군의 격렬한 교전으로 지극히 심한 혼란에 빠졌다. 어부지리를 ㄴ ㅗ리기 좋은 상황이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 치면 한참 독이 오른 서주의 토벌군과 마주치지 않느냐.”
더 힘을 빼놔야 한다. 양군이 모두 완전히 지쳐 떨어져서 한번 살짝 밀기만 하면 자빠질 때까지, 그때까지 황제와 번왕들이 치고받아야 한다. 후송군이 밀고 들어가는 건 그 뒤다.
“반란이 완전히 끝을 맺으면 한군도 돌아가겠지. 우리 관병이 양광으로 들어가는 건 그대 가서 결정할 일이다.”
“그러하옵시면, 양광 지역 반군에 군사를 빌려주는 일은 어찌하시겠사옵니까?”
“그야 지금처럼 계속하라. 은밀하게.”
양광에 군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관병을 보내 직접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도 은밀하게 국경을 넘어 광동이나 광서에 ‘벌이’를 가는 단련 소속 민병은 그 수가 적지 않다. 애초에 지방민들은 후송이건 청이건 서건 국경에 큰 구애를 받지 않았다. 관리와 관병이 지키는 관문 따위는 무시하고 산과 들, 강과 바다를 넘나들면서 물건과 사람을 주고받았다. 무장한 병사 역시 그 일환에 불과한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게다가 광서와 형주는 십여 년 전까지 같은 나라였잖은가. 인맥도 인연도 그대로다. 한층 더 쉽게 사람이 오갈 수밖에 없다.
“향민들은 촌락 간에 사적인 분쟁을 벌이면서 군사가 필요하면 다른 지방에서 고용하기를 꺼리지 않지. 그러니 지금 우리 쪽 민병들이 양광으로 건너가 서주의 군사와 싸우고 보수를 받는 건 저들로서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방에서 촌민들이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무력 충돌을 벌이고 이를 ‘계투’라고 칭한다는 정도는 조형서도 알고 있다. 그리고 두 부락에서 싸움을 벌이기로 했는데 싸움에 나설 사람 숫자가 부족하면 타지방에서 용병을 고용한다는 것도, 그게 국경 너머일 때도 잦다는 것도.
“하지만 대놓고 보내다가 들키면 한군이 우리를 치는 빌미로 삼을 수 있다. 그러니 절대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하고, 혹여 드러나더라도 관에서는 절대 몰랐다고 해야 하리라.”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어차피 서나라 쪽에서도 관병도 아닌 향병의 신원을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급한데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어디 있나? 그 틈을 타서 형주, 북건 쪽 단련병들을 광동으로 보내 양광이 최대한 오래 버티게 돕는다. 어디까지나 후송 관부는 모르는 것으로 해서. 그 싸움이 전부 끝날 때쯤이면 양광은 정말로 허물어지기 직전이 되어있으리라. 조형서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친다. 형주를 騁珦?때처럼, 일격에 무너뜨리는 거다.”
한황이 서주에게 출병 보상으로 항구 몇 개쯤은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묵인해도 괜찮으리라. 이미 주산진이라는 큰 덩어리돋 내주었는데 항구 몇 개쯤 더 내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양광을 누가 다스리건, 그 연안에 있는 항구에서 교역하고 돈을 버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으니 말이옵니다.”
“이부상서의 말이 옳다. 우리가 한황에게 그 소유지를 계속 영유하게 허락한다면, 우리가 양광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리라.”
조형서는 여유만만하게 장담했다. 제위에 오른 지 어언 47년, 중원일통의 꿈이 이제 차츰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