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60
3부 578화(1460화)
17.
지시를 받은 기패관이 깃발을 흔들었다. 그 깃발 신호를 보자 여기저기에 있는 포상에서 일제히 함성이 울렸다. 지난 보름 동안 흙과 돌, 통나무를 쌓아 공들여 구축한 포상이다.
“쏘아라!”
한국어와 일본어로 호령이 떨어지자 2백여 문에 달하는 양군의 대소 화포가 일제히 불을 토했다. 그동안 하루 40발가량 쏘아대던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이 광동군의 막사와 군영을 불태우는 데 중점을 둔 것과 달리, 건너편 둑을 지키는 적을 직접 제압하려는 사격이었다.
양군 포병대의 야표와 완구는 건너편 둑에 드러나 있던 포대와 방책 따위를 먼저 겨누어 철환과 진천뢰를 쏘았다. 광동군 쪽에서도 곧 응사가 날아왔다. 적탄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재수가 없는 군사들이 맞아 쓰러지기도 했지만, 포화는 그치지 않았다.
지난 보름 동안, 한일 양군은 둑가에 포상을 구축하는 한편으로 진창 한복판에 흙을 붓고 돌을 깔아 도로를 북돋웠다. 보병이 행군하고 화포와 치중을 운반하며 도하용 자재를 나를 길이었다. 본래 계획으로는 지역 주민들을 징발해서 역군으로 쓸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근에서 살던 광동 백성 태반이 운남군의 약탈을 피해 도망가는 바람에 이 힘든 작업 대부분을 군사들이 직접 수행해야 했다.
“그 많은 남녀노유를 전부 우리 진영에 들여 보호해줄 수도 없었으니……”
포병대의 분투를 바라보던 박문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수로를 건너 불산으로 진공을 개시하는 날이건만, 운남군의 약탈을 피해서 대한군이나 일본군 군영으로 달려와서 제발 안으로 들여달라고 호소하던 피난민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받아줄 수가 없었다. 일단 그 숫자부터가 한일 양군의 몇 배나 되었고, 당장 불산 공략을 진행해야하는 양군으로서는 진영 내에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보호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운남군이 쫓아와 반적을 내놓으라고 따지면 곤란해진다는 점도 있었다.
때문에 도원수 권훤은 피난민을 일체 진영에 들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지엄한 군령이니까 다들 지키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생으로 살해당하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손을 놓고 바라봐야 하는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도 누손에서 똑같은 짓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반항하는 부락을 상대로 하는 응징이었지 저렇게 반항도 안 하는 양민을 상대로 하지는 않았네. 저놈들은 그저 도적질할 핑계로 토벌을 운운할 뿐이지,”
옆에 선 홍진오가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휘하 연대와 함께 후방 양도 유지를 맡았지만, 홍진오가 홧김에 운남왕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권훤이 소환령을 내리면서 최일선으로 다시 배치했다.
“그나마 기지촌 백성들이 살아서 다행일세. 도원수께서도 그 백성들은 우리 군사가 빠져 자리가 빈 본영에 따로 들여 보호하라 명하셨으니.”
‘기지촌(基地村)’은 본영인 사미 포대에 바로 인접한 마을 셋을 가리킨다. 그 이름은 그에 관해 보고받은 주상께서 서한으로 친히 언급하신 것으로, 주상께서도 관심을 표하신 이들이 죽게 할 수는 없다고 권훤이 특별히 예외적으로 조치해주었다.
“임 부총병은 어디 갔습니까? 늘 데리고 다니시더니요.”
불편한 화제를 그만 끝낼 생각으로 박문수가 화제를 돌렸다. 임용완의 목에 칼을 겨누고 생포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지만, 임용완이 전장에서의 일로 원한을 품지는 않았기에 그도 임용완과 꽤 가깝게 지냈었다. 다만, 장기에서는 박문수가 8승 5패로 확실히 우세였다.
“글쎄? 어제부터 안 보이네. 어디 틀어박혀서 운남왕과 광동왕을 저주하는 글이라도 쓰고 있는 모양이지.”
홍진오는 시큰둥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모르겠다는 것치고는 표정에 긴장감이 없었다. 혹시 홍진오가 임용완을 어디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게 아닐까 하고 박문수가 약간의 의구심을 품는 순간 새 깃발 신호가 올랐다.
“:도강하라!”
“와아아!”
호령과 함께 거룻배를 들쳐 맨 대붕영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거룻배를 탄 손봉이 포병의 엄호를 받으며 먼저 물을 건너 표두보를 확보하면 공병들이 더 큰 거룻배와 뗏목을 사용해서 배다리를 놓는다. 그 뒤에 주력이 도하할 예정이다.
“훈련한 대로 잘하겠지요, 연대장 영감.”
“잘할 걸세. 우리 폐하께서 공들여 키우신 군사들이 아닌가.”
두 사람이 살펴본 바로는 강 건너편에서 응사하던 광동군 포병은 거의 제압되었다. 강물 위에서 물기둥이 간간히 솟는 걸 보면 살아남아 저항하는 화포가 있는 듯하긴 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얼마 안 가서 선두에 가던 거룻배들이 건너편 기슭에 닿았다. 그쪽구간을 때리던 포격이 멈췄고,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육지에 올랐다. 선두에서 군사들을 이끄는 군관이 빼든 환도의 날이 빛을 발했다.
건너편 둑 뒤에서도 함성이 울렸다. 창칼을 든 광동군 한 무리가 머리를 내밀더니 곧바로 둑을 넘었다. 척탄이 날아가고 총성이 울렸다. 양쪽 군사들이 뒤엉켜 베고 찌르고 후려치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18.
악종기 휘하 토벌군은 지난 보름동안 굴욕을 맛봐야 했다. 분명히 광동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우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연패했기 때문이다. 사천에서 내려온 본대에다가 귀주와 광서에서 합류한 병력까지, 지금 악종기 휘하에는 총 20만에 이르는 병력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4만 명에 불과한 광동군을 상대하며 이 대군이 제대로 맥을 추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
“군사를 분산한 탓이 큽니다. 집중하여 대적했어야 하는데……”
수하 장수들이 한탄했다. 하지만 악종기는 고개를 저었다.
“분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도 알지 않는가? 이 광동으로 오는데 대체 어떤 길로 20만 대군이 일시에 진격할 수 있단 말인가?”
악종기가 지휘하는 주력부대는 서강을 따라 움직이면서 강을 따라서 들어선 주요 고을을 함락하고 보급로를 확보했다. 그동안 다른 부대들은 앞서가면서 각 고을에 흩어진 광동군을 토벌했다. 그런데 그 앞에 광동왕이 나타났다.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서 말이다.
광동왕부 관군과 남만 용병, 왜병으로 구성된 광동왕의 4만 정예군은 악종기가 앞서 보낸 선봉대들을 호랑이처럼 찢어발겼다. 악종기가 가장 신임하던 부장들조차 광동왕과 맞붙으면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다.
“광동왕의 무재는 실로 뛰어나다 게다가 지리(地利)에서도 광동군이 훨씬 유리하니, 어찌 제대로 합치지도 않은 우리 군이 상대할 수 있었겠는가.”
토벌군은 광동왕을 상대로 무려 일곱 번이나 연달아 패했다. 그나마 패배가 멈춘 건 6만 명에 달하는 악종기의 본진이 뒤늦게 전선에 도착, 15만에 달하는 대군을 편성하여 완전히 수 적으로 광동군을 압도한 뒤였다. 그동안 토벌군은 전사자 2만을 포함해서 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잃었다. 악종기로서는 이 암담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군이 방어선을 펼치고 있는 강을 정면으로 건넌다면 확실하게 발생할 큰 소 ㄴ해가 두려웠다.
“하오나 대인, 계속 싸움을 미룰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반적을 어서 토벌하지 않는다면 폐하께서 진노하실 것인데요.”
“맞습니다. 소문을 듣자 하니 한일 양군이 모인 동로군도 불산성 코 앞까지 진격한 뒤에는 꼼짝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대인께서 내리신 지시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니, 결국 반적을 토멸하려면 우리 손으로 끝을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장수들은 이제 병력도 세 배나 되었으니 패할 리가 없다면서 공세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악종기는 고개를 저었다. 전의 충만한 적군 앞에서 강을 건너다니, 너무 위험했다.
“저들은 연거푸 승리를 거두어 그 사기가 한껏 올라 있으니 당장 이기기 어렵네. 게다가 지금은 싸우고 있으나 본래는 모두 똑같은 대서의 군병(軍兵)이 아닌가? 죽자고 싸워 모두 쓰러트리기보다는 그 전의를 꺾어 투항하도록 이끄는 편이 나을 것이네.”
“하지만 원정을 나온 건 우립니다. 싸움을 오래 끌면 끌수록 군사들이 지쳐서 싸우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반적을 어서 토벌하지 못하면…….”
“얼마 안 남았네. 조금만 기다리면 돼.”
악종기에게도 믿는 바는 있었다. 이틀 전, 북쪽으로 간 광서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후송이 구 ㄱ경을 넘지 못하게 막겠다고 광동왕이 변경으로 보낸 광주절도사 휘하 군사들과 접촉하여 항복을 받았다고 말이다. 이들은 본래 관병이었으니 곧바로 아군으로 편입할 수 있다. 악종기는 그 군사들을 바로 광주로 내려보내고 국경은 광서군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했다. 광동왕을 향한 복수심을 간직하고 있을 그들에게 북쪽에서 광주를 공격하게 하고, 이로써 광동왕이 사방이 포위되었음을 알고 포기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지금 너무 몰아붙이면 광동군은 북쪽으로 빠져나가 호남으로 가버릴지도 모르네. 아무리 역적의 도당이라고는 하나, 후송으로 도망치게 하기보다는 여기서 붙잡아 황제께 귀순하게 하는 편이 낫지.”
눈앞에 있는 적군만 4만, 불산에 대기하고 있을 병력과 동로군을 상대하고 있을 병력까지 합치면 10만은 너끈히 될 거다. 그만한 대군이 상처 하나 없이 고스란히 후송으로 넘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더구나 그 군대를 광동왕이 이끈다면……”
서나라로서는 단순히 10만 명만 잃는 게 아니다. 병력을 받은 후송이 이득을 보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정예병 30만 명을 손해 보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만한 손실을 감수할 수는 ㅇ ㅓㅄ다.
“대인!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전령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광동군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장수들이 추격을 허락해 주십사고 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날뛰던 광동군이 갑자기 물러나다니. 정말 놀랄 일이다. 잠시 고민하던 악종기는 강을 건너 적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옆에 있던 장수들이 도리어 놀랐다.
“아니, 대인. 조금 전까지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니 함부로 공세에 나서면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적이 우리 군사를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는데 어찌 장수들에게 적을 쫓으라고 하십니까?”
“그대들이야말로 당장이라도 적을 치자고 하더니 왜 갑자기 망설이는 거요? 지금 저들이 물러나는 이유는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거나 동로군이 큰 성과를 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느 쪽인지 확인하려면 따라 붙는 수밖에 없소.”
따라붙지 않으면 어디로 가버릴지 알 수 없다. 머뭇거리는 사이 광동왕이 수하의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도망가기라도 하면 영원히 잡을 수 없게 된다. 광서군이 앞을 막아 봐야 광동왕에게는 상대가 안 될 거다. 악종기는 휘하 장수들에게 조심스럽게 적을 추격하라고 명령했다. 혹시 광동왕이 관군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유인전술을 펼치는 거라면 즉시 물러날 수 있게 하라고.
19.
장장익은 무사히 불산성으로 돌아왔다. 20여 일에 걸친 전투로 토벌군에게 약 6만 명에 달하는 병력 손실을 입히고서 말이다. 톼각하는 광동군을 쫓다가 조바심을 낸 토벌군 일부 병력이 그대로 함정으로 걸어들어온 덕분에 두 차례 타격을 가해 보탠 성과다.
“한왜 양적(兩賊) 놈들이 뒤에서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도성 동쪽, 마지막 수로에 형성한 방어선이 마침내 뚫렸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악종기가 무슨 짓을 해도 광동군을 정면에서 깰 재간이 없었으리라. 남쪽이나 북쪽으로 2백 리쯤 더 우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방어선을 맡은 육수정이 패하고 말았다. 백전노장인 병부상은 최선을 다해가며 적을 막았지만 한왜군이 포격을 가하며 진격하자 끝내 밀려났다. 병력 숫자만으로는 적과 비슷했지만, 전체적인 전력은 아무래도 부족했다.
“보름 동안 이어진 포격과 그 뒤 사흘 동안 벌어진 지연전에서 잃은 병사가 대력 7천여 명입니다. 명하신 바를 달성하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아니오. 잘하였소. 본왕도 복잡한 고민 없이 신나게 싸우고 나니 훨씬 마음이 후련하오. 남은 일에나 집중하도록 합시다.”
장장익이 직접 끌고 나간 부대에서는 3천여 명을 잃었으니, 합해 1만 명을 잃은 셈이다. 적의 소 ㄴ해는 이쪽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
“적이 강을 막고 있다고 하나, 사람 하나가 헤엄쳐 건너가는 것까지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거요. 광주총독에게 편지를 보내 이쪽에서 농성에 돌입했음을 알리고, 광주성도 문을 굳게 닫고 엄히 지키게 하시오. 조만간 송군이 구원하러 오리라는 것도 알리고.”
과연 두 방면으로 보낸 사자가 무사히 후송으로 들어갔을지는 알 수 없다. 가다가 적에게 잡혔을 수도 있고, 잡히지 않고 건너갔다고 해도 후송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히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누가 한군과 싸우고 싶겠는가.’
후송군이 한군과 정면으로 교전한다면 이는 곧 한과 후송의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그 말인즉슨 이 광동 구석에서 끝날 수 있엇던 전쟁이 후송 해안 전체로, 그리고 그 수도인 남경이 불바다가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솔직히 소신이라고 해도 쉽게 개입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병부상?”
하지만 군사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버티고 있으면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꼭 온다고, 그렇게 외쳐야만 군사들이 더 힘을 낸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버티다 보면 하늘이 은총을 내려 상황을 뒤집어 줄지.
“한황은 이미 일흔이 되어 가는 노인이다. 한황이 갑자기 붕어하면 한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군은 한군을 따라 덩달아 철수할테도, 혼자 남은 사천군은 우물쭈물하다가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송나라가 돕지 않아도 우리가 이긴다.”
장장익은 명을 내려 자신이 비를 빌던 제단에서 한황의 죽음을 빌라고 했다. 물론 그따위 일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그 자신은 아들들과 함께 성벽에 서서 적을 맞아야 했으니까.
하루 뒤, 악종기가 이끄는 토벌군 본진이 불산성 앞에 나타났다. 이제 광동군은 불산성에 들어앉은 채 포위되었다. 병력은 11만, 비축한 무기와 군량은 2년분을 조금 넘었다. 그리고 북쪽에서 기각지세(?角之勢)를 펼쳐야 할 광주성에는 3만 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