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61
3부 579화(1461화)
20.
권훤은 참모들을 거느리고 불산성 주위를 돌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광동군이 강둑을 폭파하지 않아서다. 덕분에 수로 동쪽에서 그랬듯이 진창이 다 된 들판에 군영을 치고 괴질과 학질이 군중에 퍼질까 봐 걱정하는 처지에는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환자가 없는 건 아니니, 군의부장은 최선을 다하라.”
“예, 대감.”
군의부는 본래 여섯 참모부 중 치중을 담당하는 호부참모 산하에 속한다. 하지만 기후가 나쁜 남마나에서는 그 비중이 극히 크다. 계미남변 당시 학질에 걸려 나자빠진 군사들이 수천 명에 달했던 기억이 선명하니만큼, 권훤은 군의부를 특별하게 직접 챙기곤 했다.
“광동군 본군이 아직 철수를 마치지 못했다 보니 저들도 폭파를 망설였을 것이오. 지금은 저들이 둑을 무너뜨리기에는 이미 늦기는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므로 경계를 게일리 하지 마시오. 강둑 위에 감시병을 배치하여 섣불리 다가오는 자는 모조리 붙잡으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이런 대규모 공성전은 정말이지 몇십 년 만이다. 남중성(마닐라) 공략 이후로 처음이라고 해도 좋다. 심지어 불산성은 마닐라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다. 지금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전쟁 전에는 50만에 달하는 주민이 성벽 안팎 시가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권훤을 비롯해서 남중성 공략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장수들은 진영 안팎을 돌며 공성전을 처음 치러보는 장수와 군사들을 단속했다. 그리고 살피고 점검해야 할 군사들은 대한군만이 아니었다.
“병부참모는 일군 진영에도 미흡한 점이 없도록, 그쪽에 파견한 우리 군관들을 통해서 잘 살피시오. 유주인 고문들이 잘하고 있으면 굳이 개입할 거 없고.”
“예, 대감.”
대한군은 이런 대규모 공성전을 치르는 게 계미남변 이후 처음이지만, 일본군은 공성전에 관한 경험이 사실상 아예 없다고 봐도 좋다. 야전이야 그동안 쌓은 약간의 경험과 훈련에서 익힌 성과로 괜찮게 해치울 수 있었지만, 공성전은 이론만으로는 어렵다. 서양에서 데려온 고문관들이 공성전에 관해서도 가르치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제대로 공성전을 치러본 마지막 경험은 구주 천주교 반란 때다. 무려 백 년 전 일이다.
다만 그전에 경인왜란 때 왜군의 공성이 극히 맹렬하긴 했다. 그 당시에 왜군이 전주성과 대구성을 공략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권훤도 잘 알고 있다. 문청공(文淸公) 정철이 써서 남긴 경인왜란기에서 그 치열한 싸움을 얼마나 장엄하게 묘사했던가. 물론 그 두 성 말고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 은 성은 많았다. 당연히 경인왜란기에는 왜군의 공격을 받고 버티거나 무너진 많은 성에 관한 기술이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들어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병부, 문렬공(文烈公)의 가문에는 아직도 문렬공이 왜장의 머리를 내리쳐 부수던 그 도끼가 남아있다고 했던가.”
“남아있다 뿐입니까. 지금도 날이 시퍼렇게 서 있다고 합니다.”
문렬공 조헌은 그 서슬 퍼런 임금이던 장조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할 말은 뭐든지 하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경인왜란 당시에는 남원 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자기가 지부상소를 올릴 때 들도 다니던 도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왜병들의 대갈통을 후려쳐 박살을 냈다. 조헌이 쳐죽인 왜장의 머리에 꽂인 채 일본에 건너갔던 그 도끼는 을미동정 때 발견되어 다시 원주인의 손에 돌아갔고, 조헌은 그 뒤에도 도끼를 들고 몇 차례나 대궐앞에 가서 지부상소를 올렸다. 장조께서는 그 도끼를 든 조헌의 상소는 꼼짝없이 받으셨다.
장조께서 승하하시고 조헌도 눈을 감은 뒤에도 그 도끼는 산당(山黨)의 절개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로 남았다. 금상께서도 배천 조씨 집안이 그 도끼를 들고서 지부상소라도 하러 오면 큰일이라고 걱정하실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문렬공이 그 도끼로 대갈통을 까던 ‘왜병’들이 이제는 우리편이 되었으니 이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니오, 부원수?”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하였으니, 이것도 그런 게지요.”
부원수 조광원이 시원스레 답했다. 이번 싸움에서 일본군 장수들과 협력하면서 그동안 꽤 괜찮은 관계를 쌓았고, 앞으로도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관대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웃음을 보니 권훤의 머릿속에 언젠가 금상과 함께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정호찬은 물론이고, 아직 살아 있었던 장희재 등 금상께서 총애하시는 무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금상과 함께 사적인 술자리를 가졌던 언젠가의 일이었다.
“짐은 일본에 우리 장수들을 교관으로 보내 막부군 군관들을 가르치면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 적이있다.”
“폐하, 일인들에게 강무관을 만들어준다는 말씀이십니까? 절대 안 됩니다. 우리 수중에서 비밀스럽게 유지해야 할 온갖 전기(戰技)를 저들이 다 배우게 될 터인데, 그것이 장차 우리 대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아무리 지난 백여 년 동안 우호를 지켰다지만, 일본은 과거 경인왜란을 일으킨 나라였다. 백성들이건 무관들이건 마음 한구석에서 일말의 불안감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금상께서는 다소 다른 생각을 품고 계셨다.
“어차피 덕천씨도 외국에서 고문관을 대려다 군사를조련하지 않느냐. 기왕이면 그 일을 우리 무관이 맡는다면 그 또한 인연이니, 우리 무관들의 제자가 된 일본 무관들이 친한파가 되어 우리르 더욱 가까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겠느냐.”
강항이 크게 씨를 뿌린 덕분에 일본 유학자들도 대한 유학계를 부모처럼 여긴다. 그러한 관계를 학자들만이 아니라 무장들 간에도 맺으면 좋지 않겠냐는 게 금상의 말이었다.
“굳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칠 필요도 없다. 일본도 자기들 나름대로 무를 대하는 전통이 있는데 우리 방식을 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크게 비밀스럽지 않은 사소한 재주를 약간 가르친다고 해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겠느냐.”
그래도 그 자리에 있던 무장들은 모두 일본군에 교관을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직 연식이 짧은 젊은이엿던 권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고, 강경한 반대를 접하신 주상께서도 더고집하지는 않으셨다. 어찌 보면 이미 반대를 예상하고 계시는 태도 같기도 했다.
‘헌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때 폐하의 뜻을 알겠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일본군에게 그 경험을 전수하는 일이고, 원활한 협력을 위해서는 연락관을 상호 교환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일본군이 갑자기 무너져 대한군의 측면을 노출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같은 편이 되어 싸우려니 서로 빈번하게 연락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자니 평소 교류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대한에 우호적인 덕천가가 일본을 통치하는 한,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일이 또 없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덕천씨가 다스리는 지금의 일본은 경인왜란을 일으킨 신장이나 수길의 일본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덕천씨의 일본이라면 좀 더 신뢰하면서 가까운 사이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참모장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우겠소. 우리 본진은 부원수가 맡아서 잘 지켜 주기 바라오.”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대감.”
진영 둘러보기를 마저 마친 견훤이 참모장 권상현과 함께 말에 올랐다. 이틀 전에 드디어 도착해서 불산성 서쪽에 진을 친 서나라 관군에서 아까 연락이 왔다. 태세가 정비되는 대로 이 사태를 끝낼 군의를 열고 싶으니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야 무려 세 나라 군대가 한편이 되어서 성을 둘러싸고 있다. 제대로 협력하지 않으면 공성은커녕 포위도 제대로 안 된다. 누가 알겠는가, 간밤에도 광동군 간자가 몇 명이나 세 나라 군대가 세운 군영 사이 틈을 뚫고 저 성을 드나들었을지.
서나라 진영으로 가는 동안 호위는 박문수와 백위영 기병들이 맡기로 했다. 지금 참모부 내에서 서나라를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이 박문수인 만큼 적당한 인선이었다.
21.
진영을 구축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악종기의 군막은 호화롭기 짝이 없었다. 권훤이 차린 군막과는 비교도 안 되고, 옛날 금상께서 일본에 가셨을 때 사냥터에서 치셨다는 막사 같았다. 권훤 자신은 그 행차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수하 장수 중에는 따라간 이가 있었다. 권훤이 말에서 내리지 악종기가 막사 앞으로 직접 마중을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요시히데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히데와 인사를 나눈 권훤 일행이 자리에 앉자 악종기가 일장 연설을 했다. 반역도인 광동왕을 토벌하기 위해 정예병을 이끌고 이런 먼곳까지 찾아와 준 빈객들을 위해 간소한 주연을 대접하니, 부디 즐겨달라는 인사였다. 하지만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은 ‘간소한 주연’ 정도가 아니었다. 김이 물씬 오르는 갖가지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이 산더미처럼 차쩝낡?선녀와 같은 자태를 뽐내는 미녀들이 옆에 붙어서 시중을 들었다. 악기를 든 악사까지 있었다.
권훤과 요시히데, 두 장수 모두 호화로운 생활이라면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전쟁터, 그것도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적의 코밑에서 이런 자리를 즐기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즐기기는 하되 기분은 좀 얼떨떨 했다.
박문수는 또 달랐다. 이미 서나라 측이 베푸는대접을 질리도록 받아보았기에, 권훤처럼 편하게 즐기기조차 할 수가 없었다. 냉소적인 박문수의 표정을 본 악종기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본의 아니게 부마 대인께서 고초를 겪게 하신 데 대해서 우리 폐하께서는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시오. 그래서 사과하는 뜻으로 공주께 드릴 작은 선물을 따로 마련하여 본관을 통해 보내셨으니, 부디 받아주시면 고맙겠소.”
서천에서 제조한 최고급 비단 2백 필이 군막 안에 들어와 쌓였다. 물론 권훤과 오시히데 앞으로도 비단 보따리가 하나씩 날라져 들어왔다.
“부담스럽게 여기지들 마십시오. 이건 그저 조그만 감사의 표시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답례품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아이고, 이 먼 길을 도우러 오신분들께 어찌 답례품 따위를 받겠습니까. 편안한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하여 성대하게 모시는 것이 도리건만, 겨우 이 정도밖에 해드리지 못하였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대접을 받는 건 좋지만 너무 엉뚱한 이야기만 오가는 듯했다. 권훤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살짝 화제를 돌렸다.
“당장 싸움이 급한데 그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대인께서는 이제 반적과의 싸움을 어떻게 이끌 생각이십니까.”
“그야 당연히 일단 항복을 권해야 겠지요. 반적에게도, 반적을 따르는 군사들에게도 목숨을 건질 마지막 기회는 주도록 하라는 게 폐하의 어명이십니다.”
광동왕은 몇 차례나 역심을 드러냈다. 조정의 허락도 없는데 자기 멋대로 대한에 사절을 보낸 일부터 시작하여 그 오만함이 끝을 몰랐다. 그러더니 끝내는 한에서 보낸 사신을 자기 멋대로 감금했고, 군사를 일으켜 황제의 직할지인 광주절도사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비록 저 역도들에게 토벌령으 내리시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 죄인들에게 비루한 목숨을 건질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시고자 합니다.”
내일 아침, 토벌군 진영에서 정식으로 항복 권고를 한다. 광동왕이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좋고, 거부한다면 내일 낮부터 공성을 개시한다. 악종기는 자기가 글고 온 병력은 15만, 화포는 도중에 노획한 광동군의 것까지 합산헤서 홍이포 120문이라고 했다. 공성에 쓸모가 없는 자잘한 것들을 뺀 숫자다.
대한군은 병력 2만에 중포병대대 3개가 장비한 24군 포 12문, 대완구 12문, 화전틀 12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 포병대대 4개가 장비한 4근 포 48문과 9근 포 96문은 공성전에는 비교적 쓸모가 적다. 각 연대 포병중대가 장비한 무종야포나 중완구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군은 병력 1만 5천, 화포는 4근 포 30문, 9근 포 20문이다. 대한군과 달리 본격적인 공성포로 쓸 만한 대형 화포는 따로 가져오지 않았다.
“성의 서쪽과 북쪽은 저희 군사들이 맡고, 동쪽과 남쪽은 두 분께서 맡아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동쪽은 일군이, 남쪽은 한군이 맡으시면 어떨지요. 그리고 땅을 파고 흙을 나르는 잡역을 맡을 역군은 우리 쪽에서 제공하겠소이다.”
“그 계획에 동의하기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게 있소.”
요시히데와 의논한 바에 따라 권훤이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한일 양군은 확실히 서측 조정과 합의하고 출병한 게 아니다. 고로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벌이기 전에 두 나라가 어떤 의도로 이 싸움에 끼어드는지, 그 보상은 어떻게 할지를 확실히 정해두어야 했다.
“우리 양국은 광동왕의 무도한 행위로 인해서 나라의 체면을 상함은 물론이고 큰 손해를 보았소.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바요. 대도독께5서는 그에 대해 약속하실 수 있겠소?”
양쪽에서 내민 두 장의 청구서를 읽은 악종기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양?에서 제시한 영토 할양이나 상관 개설, 배상금 지불 등의 요구를 거부하려 들지는 않았다.
“두 나라 모두 충분히 제시할 만한 요구입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신다면, 황제께 말씀드려 꼭 승인하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불산이 함락된 뒤에는 귀측 군사들에게 열흘 동안 그 도시를 약탈하도록 허락하지요.”
약탈을 허락하는 건 반란을 진압하느라 외방에서 군대를 불러왔는데 조정에는 이들에게 지급할 포상금이 없을 때 흔히 하던 일이다. 당나라 때 돌궐족의 일파인 사타족이나 회흘족(위구르) 등이 받은 포상이 반란군이 차지하고 있던 도시를 함락하고 약탈하는 거였다. 물론 서나라 조정에 그만한 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한일 양군이 성의껏 싸우도록 미끼를 내거는 의도가 컸다. 광주만큼은 못해도 상당히 풍요로운 도 시인 불산을, 어서 털고 兀摸?그만큼 공성을 서두르라는 의미니까.
기본적인 합의는 이로써 이루어졌다. 포위망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전술을 써서 공성을 시작할지도 정했다. 물론 광동왕이 항복 권고를 받고 순순히 항복한다면야 전부 필요 없는 일이 되리라.
“광동왕이 전투 없이 투항한다고 해도 두 분께서 요구하신 사항은 꼭 받아들이시도록 제 이름을 걸고 폐하께 상주하겠습니다. 다만 도시를 약탈하게 해드리겠다는 조건만은 시행할 수 없겠습니다.”
“괜찮소이다. 싸우지 않고 항복한 도시를 약탈한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회의는 여기서 끝을 맺었다. 내일 시도할 항복 교섭의 성립 여부는 포성으로 신호하기로 하고 군막을 나서는데, 포장을 친 마차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히데와 권훤을 보고 각각 한 대씩 끌고 가라고 했다.
“이건 뭐요?”
“객지에서 노고를 푸시라고 드리는 제 조그만 성의입니다.”
열어보니 마차 안에는 아까 저녁 식사 때 시중을 들던 미인들이 두 명씩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권훤이 잠깐 멈칫했지만, 곧 박문수와 눈이 마주쳤다. 아쉬운 듯이 잠시 입맛을 다시던 권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성의는 고맙소이다만, 진중에서 장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처지인지라 사양하겠소. 대인께서 보여주신 성의만 기억하리다.”
“그러신가요. 유감입니다.”
인사를 나눈 뒤 권훤은 말에 올라 본진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는지, 돌아가는 길에 계속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아침, 권훤은 휘하 군사들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게 한 뒤에 서문 쪽에서 신호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어떤 신호가 오르느냐에 따라 공성을 시작할지 이대로 입성하여 항복을 받을지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잠시 후 정각 열시, 서문 쪽에서 연달아 포성이 세 발 울렸다. 역시나 광동왕은 악종기가 보낸 항복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포대대에 발포 명령을 내려라!”
“예, 대감!”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곧 불산성을 둘러싼 다른 방면에서도 포성이 연달아 울렸다. 성벽 안팎에 떨어진 철환들이 피워올리는 누런 흙먼지를 보며 권훤은 잠시 한가한 생각을 했다.
“과연 광동왕은 뭐라고 말하면서 항복을 거절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