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62
3부 580화(1462화)
22.
성벽에서 가해지는 사격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갈지자로 참호를 파는 건 공성전의 기본 중 기본이다. 하지만 이렇게 참호를 파면서 접근하는 건 불산성 남쪽을 맡은 대한군과 동쪽을 맡은 일본군뿐이었다. 북쪽과 서쪽을 맡은 서나라 관군은 흙을 채운 주머니로 담장을 쌓아 포화를 막았다. 성벽 가까이 다가갈 때는 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방패를 앞세우고 그 뒤에다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화살과 총탄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홍이포 포탄은 막지 못했다.
“싸움 참 힘들게들 하는구먼.”
서나라 관군이 보름 동안 공성전을 펼치는 모습을 본 권훤이 간단히 자기 감상을 표했다. 연일 성문 앞에 시체와 부상자로 산을 쌓고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직 참호도 파지 않은 공성 첫날, 대한군과 일본군은 첫인사 삼아서 포격만 퍼부었던 그 말부터 서나라 관군은 성벽에 달라붙었다. 성벽 꼭대기까지 한 번에 닿을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길이가 무려 예순자(18m)나 되는 사다리를 걸머지고서 말이다.
본래 불산의 성벽은 높이가 마흔자다. 고로 사다리도 그만하면 충분했겠으나, 지난겨울 불산성 코앞에까지 다가왔던 대한군이 물러가자 경각심을 느낀 장장익이 성벽을 높이느라고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성벽 자체를 더 높에서 쌓지는 않았다. 그건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다. 대신 사미 포대에서 대한군이 선보였듯 해자를 원래보다 더 깊고 넓게 파내서 공성군이 올라가야 하는 높이를 높였다. 그리고 성벽 주변 민가도 모두 불태워서 은신처와 발판을 없앴다.
피난민으로부터 이 사실을 파악한 악종기가 넉넉하게 잡아 서른 자짜리 사다리를 준비한 건 좋았다. 운제(雲梯), 충차(衝車), 공성탑(攻城塔)까지 준비한 것도 좋았다. 문제는 이런 장비들을 들이대기도 전에 광동군이 퍼붓는 포환 세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는 거다. 장장익은 사방을 막는 성벽마다 수십 문이나 되는 홍이포를 얹어놓았다. 이 많은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여장 뒤에 선 군사들도 각자 손에 든 무기로 총탄과 화살을 퍼부었다. 삽시간에 첫 전투는 승패가 나버렸다. 공성구는 파괴되고 숱한 병사들이 땅에 쓰러졌다.
악종기도 바보는 아닌지라 병력을 돌입시키기 전에 성벽에다 포격을 가하긴 했다. 문제는 적에게 충분히 피해를 주지 못한 상태에서 돌입을 서두른 데 있었다. 결국 조급함 때문에 실패를 맛본 셈이다. 그 뒤로도 악종기는 포기하지 않고 연일 공세를 이어갔다. 포격과 돌격을 반복하며 계속 공격을 가했지만, 아직도 성벽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나마 광동군이 전투가 끝난뒤 시체와 부상자를 거두도록 허용한 덕분에 전사자 숫자를 약간이나마 줄이고 있었다.
“광동왕은 생각보다 자비로운 장수인 모양입니다. 본래는 한편이라고 해도 지금은 엄연히 적인데, 적이 부상자를 구호하도록 허용하다니요.”
이부참모 신지원이 감탄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병부참모 조용선은 생각이 달랐다.
“그보다는 시신과 부상자를 거두러 나서는 이들이 광동 백성이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강제로 끌려온 자기 백성인 줄 아니 차마 쏘지 못하는 게 아닐지요.”
악종기는 인근 지역에서 광동 백성 5만 명을 ‘징병’했다. 그중에 4만 명은 자기 본진에서 쓰고, 한일 양군에도 5천 명씩 나눠주었다. 이 강제로 끌고 온 백성들이 악종기가 책임지고 보내준다던 역군의 정체였다. 대한군에서는 이들에게 문자 그대로 노역만 시킨다. 하지만 서나라 관군은 온갖 일을 다 시켰다. 물자 운반이나 진지 구축은 기본에, 심지어 공성구를 밀고 돌격하는 일까지도.
그래도 서나라 백성이라고 그러느지, 옛날 몽고군이 성을 공격할 때 그랬다고 하듯 공격 선봉에 지역 주민들을 내세워 화살받이로 써먹기까지 하진 않았다. 하지만 명목상 관군으로 징병해서 공성구를 밀라고 하는 거나 방패로 쓰는 거나 실질적으로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 이야기도 그럴듯하지만, 본관이 보기에는 화살과 화약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 같네만. 그리고 부상자를 돌보느라 전선에서 군사 하나라도 뒤로 빠지고,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어서 없애라는 뜻인지도 모르지.”
적병을 죽이기보다 부상자로 만들어서 의도적으로 적군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는 사상은 강무관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어느 병서에도 그런 구절은 없다. 하지만 권훤은 금상에게 이를 배웠다. 금상이 아직 성친왕이던 시절, 함께 미주에서 아파치를 토벌할 때 일이다.
“권 정위, 그대는 적을 한 방에 쏴죽이는 사수와 죽지 않을 만큼의 상처만 입히는 사수 중 어느 쪽의 솜씨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히 전자가 아니겠사옵니까.”
“전자는 맞힌 놈 하나를 죽일 뿐이지. 하지만 후자는 다친 놈을 안전한 장소로 보내느라 멀쩡한 다른 군사 여러 명이 손을 쓰게 만드네. 그럼 어느 쪽이 적에게 타격이 더 크겠나?”
살려달라고, 아프다고 울부짖는 아군을 버려둘 수는 없다. 다친 동료를 방치하는 건 차마 사람이 할 일이 아닐뿐더러, 남은 군사들의 사기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구해서 살리려고 기를 쓰는게 보통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병력과 물자가 소모된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도리를 이용한 야비한 술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효과가 아무리 좋아도 교범에 넣거나 강무관에서 가르치는 공식적인 전법으로 채택할 수는 없었다. 대한은 사대부가 갖춰야 할 덕을 실천하는 군자의 나라를 표방하니까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지금 하듯이 지나가는 잡담처럼 지껄일 수밖에 없다. 권훤은 마치 자신이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관군의 군량을 한 톨이라도 더 빨리 떨어지게 만들려는 광동왕늬 술책일 공산이 크지. 산 놈은 뭐든지 먹어야 하지만 죽은 놈은 더 이상 밥을 안 먹잖소.”
“딴은 그렇겠습니다.”
불산성에 도착한 시점에서 서나라 관군은 군량 2개월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광동 수군을 밀어내고 서강수로를 확보하기는 했는데, 광동 항병인지 그냥 수적인지 알 수 없는 자들이 종종 관군 수송선을 습격하고 있다. 그래서 보급선이 다소 불안하다.
“여차하면 우리 쪽 군량을 저쪽에 좀 보태줄 각오를 해야겠소. 호부참모, 미리 신경을 좀 써 두시오. 물론 나중에 쌀값은 넉넉히 쳐서 받을 거요.”
“예, 대감. 헌데 우리 치중도 보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전례도 있으니까요.”
“당연하오.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경계함은 물론이고, 대도독이 보내준 역군들에게도 우리 군사들이 동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치중을 쌓아둔 곳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시오.”
무종 시절, 구주 원정에서 부실한 경계 때문에 화약이 대부분 소실되어 원정군이 원정을 중단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대한 장수들에게 아주 중요한 전훈이다. 강무관에서는 경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지금도 그 일을 가르친다. 진영 내를 돌면서 휘하 참모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지시를 내리던 권훤이 중포대가 포진한 자리까지 왔다. 줄지어 늘어선 24근 포와 화전틀이 불산성이 있는 북쪽을 향해 차례로 불을 뿜고 있었다.
공성이 시작되고 보름째, 포격은 맹렬하지는 않았다. 24근 포는 20분에 1반씩 느긋하게 포탄을 날린다. 신기전은 모두 합쳐 하루에 60발씩 쏘고 있다. 호부참모 이일상이 꼬리에서 연기를 길게 끌며 날아가는 신기전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감. 우리 진남군이 소모한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이 벌써 2천 발에 달합니다. 나중에 군부 문관들이 난리 좀 치겠습니다. 아니, 지금도 신기전을 왜 그리 많이 쓰느냐는 서한이 줄지어 날아오고 있습니다.”
“청구하는 만큼 보내주고는 있으니, 그러면 됐소. 골치 아픈 건 나중에 해결합시다.”
신기전이 화약 잡아먹는 귀신인건 권훤도 잘 안다. 문자 그대로 돈을 태워서 날아가는 무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만큼 효과가 좋은 것을. 불산성은 성벽 높이가 마흔 자에 다 두께는 쉰 자나 된다. 흙과 석회를 합쌀풀로 반죽해서 섞어 다지고, 그 겉에는 단단하게 구운 벽돌을 쌓았다. 이 성벽은 24근 포탄으로도 거의 못 부수고 흠집이나 내는 지경이다. 그러니 많이 쏴도 소용이 없다.
실질적인 타격은 매일 쏘아대는 신기전이다. 성내에 있는 모든 건물을 불태워버릴 기세로 퍼붓고 있다. 화약을 많이 쓴다지만 그만큼 값을 하는 거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신기전을 퍼부어 성내를 불바다로 만들면 나중에 성을 함락한 다음에 전리품으로 거둘 게 거의 남지 않을 듯하니 말이다. 적당히 탄 상태에서 항복하면 좋을 텐데, 그게 사람 마음처럼 쉽게 되겠는가.
“이제 참호가 대완구 사거리까지 접근하면 신기전을 더 안 쏴도 될 거요. 대완구를 써서 성벽 안쪽에 포탄을 갈기면 성내에 있는 광동군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테지.”
그렇게 되면 필시 광동군이 성문을 열고 나와 역공을 가하리라. 일이 그리되기 전에 미리 결사대를 내보내 우리 참호를 폭파하거나 할 수도 있다.
“그러니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절대 안 되오. 자칫하면 사흘 전에 대도독이 당했듯이 우리 역시 당할 수도 있소.”
“예, 대감.”
사흘 전, 광동군은 밤중에 성을 나와 북문 쪽에서 대대적인 야습을 가했다. 북문 쪽에는 그날 막 분쪽에서 내려온 옛 광주절도사 군사 2만이 합류하고 아직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진영 분위기가 좀 혼란스러웠는데, 그 틈을 제대로 파고들어 뒤엎어버렸다.
행군과 전투로 인한 피로 대문에 곤하게 단잠에 빠져 있던 관군 진영은 쑥대밭이 되었다. 대승을 거두자 수성군의 사기는 또 올라갔다. 그 사건에 관해서 대화를 주고받다가 참모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대감, 광동왕은 왜 성에 틀어박힌 겁니까? 저만한 군재가 있다면 그냥 관군과 정면으로 싸워도 이겼을 것 같습니다만.”
“자기가 관군이랑 싸우는 사이 우리가 뒤를 틀어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만약 광동왕이 제때 불산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쪽에서 토벌군과 싸우고 있었다면, 한일 양군이 수로를 건넌 뒤에 광동왕을 배후에서 공격할 위험이 있기는 했다. 현실성은 낮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려면 불산성 안에 있는 군사들까지 다 쳐부순 뒤라야 한다. 그러기 전에 막무가네로 덤비면 성을 지나친 한일 연합군이 또 뒤통수를 찔리는 꼴이 될 수 있다.
며칠 전 투항한 광동군 향병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 성내에는 병력 10여만 명, 주민 20여만 명이 있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해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거다. 하지만 3만 5천에 불과한 한일 양군이 다 격파하기에는 여전히 벅찼다.
“자, 저족은 저쪽이고 우리는 우리앞이나 챙기세나. 다음 차례는 우리일지도 모르니.”
말을 이렇게 했으나 걱정은 그다지 크지 않다. 대한군 본진은 성벽위에서 쏴대는 홍이포 사거리 밖에 있다. 그리고 방책과 흉벽, 해자까지 전부 설치했고 야포와 경계부대도 넉넉히 배치해두었으니 적이 급습해도 별걱정이 없다. 그보다는 아까 말했듯 적이 본진이 아니라 참호를 노리고 급습한다면 도 리어 타격이 더 크리라. 그동안 애써 파낸 성과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는 셈이니까.
고개를 돌려 동문 쪽을 보자 덕천가의 문장을 그린 깃발이 높이 솟은 일본군 본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군 공병들이 판 참호는 성벽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23.
처음 파병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공성전을 펼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요시히데가 일본에서 본 성곽이라고 해 봐야 결국은 죄다 일본식 성이었으므로, 불산성과 같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둘러싼 거대한 성 같은 것은 본 적도 없었다.
북구주에 한인들이 쌓은 몇몇 성은 그런 식으로 고을 전체를 둘러싸기는 했다. 하지만 그 성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산성은 컸다. 도저히 성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저건 산이야, 산.”
입이 떡 벌어진 요시히데를 보며, 유럽의 고문관들은 어서 참호를 팔 준비를 諛′灸箚?재촉했다. 출정전에 배웠지 않냐면서 말이다. 고문관들의 지도에 따라 진영을 구축하고 포대를 배치하며 참호를 파 들어갈 준비를 하는 참인데 한군 군관 몇 사람이 진영을 찾아왔다. 처음 치러보는 공성전일 텐데, 혹시 도와줄 게 있겠냐고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감사하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처지였다오.”
아무리 잘 훈련된 군사라고 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어렵다. 일반적인 전투라면야 진영을 나눠 모의전을 펼치며 훈련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공성전 훈련을 한다고 정말로 실물과 같은 성을 쌓고 몇 달에 걸쳐 참호를 파면서 훈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한군 군관들은 자기들이 여기 온 건 일본군을 ‘돕기’ 위해서일뿐이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꺼렸다. 기본적으로는 유럽인 고문관들이 나서서 이끌도록 놓아두고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문관들이 옆에 없을 때 일본군 장병들이 실수를 범하려고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제지하고, 질문을 받으면 상세히 답해주었다. 이렇게 선의를 가지고 돕는 모습을 보여주니 포병이건 공병이건 모두 한국군에 관해 좋은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 관여하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 좋겠는데.”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할 생각은 없다. 일본군이 전력을 보내는 만큼 한군은 병력을 덜 준비해도 되지 않는가.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고, 그래도 경험은 똑같이 쌓인다. 한국군이 강한 건, 역사와 전통도 있지만 수시로 실전을 겪기 때문이다. 막부군도 전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가끔 제대로 싸울 필요가 있다고 요시히데도 생각했다. 이번 전쟁만해도 사실 참가비를 내고서라도 참전했어야 한다는 게 요즘 그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외국에 나가 개인적으로 용병이 되는 낭인무사들을 본국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뭐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막부 직할군을 부대단위로 내보내서 경험을 쌓고 돌아오개 하는 건 막부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경험이야말로 가장 큰 전리품이지. 안 그런가, 부장.”
“물론입니다, 육군봉행 나리.”
부장의 맞장구를 들으며 요시히데가 눈 앞에 펼쳐진 동문 일대를 살폈다. 적군이 맹렬히 쏘아대는 홍이포 세례를 맞으면서도 공병들과 서나라 역군들이 파는 참호는 꾸준히 성벽에 다가가고 있었다.